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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웉 Sep 29. 2024

변함없는 오후 4시

9월 26일의 기록

 아침에 진짜 마지막 인사를 저마다 나누고 버스를 타고 신탄진 역으로 이동했다. 안경이 부러졌을때 잠깐 시내로 나갔던 적이 있지만 이렇게 멀리 이동하며 시내 구경을 한 적은 없었다. 신탄진까지 가는 길과 신탄진역 앞은 내가 살던 서울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정겨운 길이었다. 언젠가 대청호에 놀러갈 때 친구가 데리러왔던 그 역이지만, 워낙 오래 전 일이라 기억이 잘 나질 않았다. 좋았던 그때를 온전히 떠올릴 수 없어서 아쉬웠다. 조금씩 길어진 사람들의 소매는 계절의 변화를 느끼게 했다. 2시간동안 신탄진역 지하 공간에서 대기하다가 부산역까지 가는 새마을호를 탔다. 옆자리에 앉은 친구와 이야기를 하고 바깥구경을 하다보니 세 시간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나는 풍경을 구경하는 것을 예전부터 참 좋아했다. 대학교 2학년때 대전에 놀러갈 때도 KTX를 타면 금방 가는데 굳이 그 분위기를 느끼려고 무궁화호를 타고 왕복했다. 비닐하우스와 논이 천천히 뒤로 흘러가며 내 마음을 평화롭게 해줬다. 사실 가만히 그 앞에 머무르고 있으면 지루하고 냄새나겠지만 이것이 계속 뒤로 지나가니까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의무학교에서의 추억도 흘러감이 그 아름다움을 부여한다. 앞으로 남은 군생활도 마찬가지리라 생각했다.

 부산역에 도착하니 여전히 사람들이 많고 외국인들도 이따금씩 보였다. 어묵집과 빵집이 많은 번화한 모습은 내가 여행왔을 때의 그 모습이었다. 저 멀리 부산항이 보이는 것도 좋았다. 당연히 버스를 타고 이동할 줄 알았는데 인사과에서 나를 마중나오신 중사님과 단둘이 차를 타고 이동했다. 오후 4시쯤이라 그런지 경성대, 부경대 앞의 대학가에는 차들과 사람들이 많았다. 차가 막혔지만 오히려 구경을 오래 하고 중사님과 대화도 오래할 수 있어서 좋았다. 부산은 날씨가 아직 더워서 그런지 학생들은 여름옷이었다. 광안대교를 건너면서 본 광안리와 민락의 모습은 내 기억속 그것과 같았다. 기억 속 한 구석에서는 언제나 여름 냄새가 난다. 그걸 간직하고 나를 맞아준 부산이 좋았다. 내가 우주에 격리된 동안 지구가 공전해서 저 멀리 가있을까 걱정했는데 변함없는 오후를 보내며 안심했다. 벚꽃 하나가 떨어져 내 손바닥으로 들어와도 봄은 다시 오듯이. 모든 것이 흘러가더라도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는 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느낌을 준다. 첫날은 부대에 도착해서 짐을 풀고 선임들을 따라 px와 노래방을 가며 정신없게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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