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진짜 마지막 인사를 저마다 나누고 버스를 타고 신탄진 역으로 이동했다. 안경이 부러졌을때 잠깐 시내로 나갔던 적이 있지만 이렇게 멀리 이동하며 시내 구경을 한 적은 없었다. 신탄진까지 가는 길과 신탄진역 앞은 내가 살던 서울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정겨운 길이었다. 언젠가 대청호에 놀러갈 때 친구가 데리러왔던 그 역이지만, 워낙 오래 전 일이라 기억이 잘 나질 않았다. 좋았던 그때를 온전히 떠올릴 수 없어서 아쉬웠다. 조금씩 길어진 사람들의 소매는 계절의 변화를 느끼게 했다. 2시간동안 신탄진역 지하 공간에서 대기하다가 부산역까지 가는 새마을호를 탔다. 옆자리에 앉은 친구와 이야기를 하고 바깥구경을 하다보니 세 시간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나는 풍경을 구경하는 것을 예전부터 참 좋아했다. 대학교 2학년때 대전에 놀러갈 때도 KTX를 타면 금방 가는데 굳이 그 분위기를 느끼려고 무궁화호를 타고 왕복했다. 비닐하우스와 논이 천천히 뒤로 흘러가며 내 마음을 평화롭게 해줬다. 사실 가만히 그 앞에 머무르고 있으면 지루하고 냄새나겠지만 이것이 계속 뒤로 지나가니까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의무학교에서의 추억도 흘러감이 그 아름다움을 부여한다. 앞으로 남은 군생활도 마찬가지리라 생각했다.
부산역에 도착하니 여전히 사람들이 많고 외국인들도 이따금씩 보였다. 어묵집과 빵집이 많은 번화한 모습은 내가 여행왔을 때의 그 모습이었다. 저 멀리 부산항이 보이는 것도 좋았다. 당연히 버스를 타고 이동할 줄 알았는데 인사과에서 나를 마중나오신 중사님과 단둘이 차를 타고 이동했다. 오후 4시쯤이라 그런지 경성대, 부경대 앞의 대학가에는 차들과 사람들이 많았다. 차가 막혔지만 오히려 구경을 오래 하고 중사님과 대화도 오래할 수 있어서 좋았다. 부산은 날씨가 아직 더워서 그런지 학생들은 여름옷이었다. 광안대교를 건너면서 본 광안리와 민락의 모습은 내 기억속 그것과 같았다. 기억 속 한 구석에서는 언제나 여름 냄새가 난다. 그걸 간직하고 나를 맞아준 부산이 좋았다. 내가 우주에 격리된 동안 지구가 공전해서 저 멀리 가있을까 걱정했는데 변함없는 오후를 보내며 안심했다. 벚꽃 하나가 떨어져 내 손바닥으로 들어와도 봄은 다시 오듯이. 모든 것이 흘러가더라도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는 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느낌을 준다. 첫날은 부대에 도착해서 짐을 풀고 선임들을 따라 px와 노래방을 가며 정신없게 지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