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글, 철학, 비수의 아픔

글과 독서에 비수가 꽂힌 이야기

by 삼삼

2019년 11월 어느 날, 아무 것도 모르는 나를 직접 픽업하던 사수님이 취미가 뭐냐고 물어봤다. 망설일 것 없이 독서라고 이야기했는데 순간 사수의 비웃음이 보였다. 겉으로 드러내지 않았지만 기분이 상당히 나빴고 가슴의 비수를 꽂는 사건 중의 하나가 되었다. 후에 미안하다 하면서 대중적인 관심사의 대화를 해야 한다는 말을 했다. 나를 두 번 죽이는 말이었다.

사람마다 관심사가 다양하고 독서, 글쓰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존재할 수 있다. 일 특성상 대중적인 관심사가 필요하다지만 상대를 존중하지 않는 태도에서 마음의 복수같은 분노가 올라왔다. 다행인 것은 이를 행동으로 옮기지 않았던 것. 다듬어지지 않은 복수는 안 하는 니만 못한 결과를 초래하기 때문이다. 소수의 의견은 확실한 근거로 자기주장에 확신을 가져야 하기에 혼자가 아닌 함께 함이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허공에 외치는 불만 제기일 뿐이다.


재작년 어느 날, 아버지께서 나의 목표, 비전, 철학을 무시한 말로 평생 한으로 남게 된 사건이 있었다. 어느 책방에서 진행하는 출판 원데이 클래스에 참여하는데 어디 가냐는 아버지 말씀에 움찔했다. 솔직하게 말을 했는데 지금 니가 그럴 것이 아니다는 말을 하며 나의 기를 다 죽이셨다. 명확하고 구체적인 삶의 방향이 있었는데 오로지 돈으로만 모든 걸 판단하셨다. 경제적 관념을 계속 강조하셨는데 원론적인 말에 어디에 초첨을 맞춰야 할지 전혀 몰랐다. 감정적 욱함에 아버지 말씀은 들리지 않았고 왜 그러냐는 식으로 우기는 말싸움을 했다. 불필요한 싸움인데 나의 이야기에 전혀 귀기울이지 않은 아버지에 화가 많이 났다. 이 날 이후로 집밖으로 나갔을 때 아버지가 대뜸 전화하실까 두려웠고 전화가 오면 머릿속의 회로가 여기저기 날뛰었다. 한번은 북카페에 있다 아버지 전화로 예전과 똑같은 말을 하셨고 나는 나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했는데 다 무시하고 지금 당장의 상황에 대한 말을 해보라고 하셨다. 말문이 막혔고 할말도 없었다. 그냥 전화를 끊고 싶었다. 가족의 관계에 대한 생각이 부정적으로 급변한 때이기도 하다. 돈을 버는 건 중요한데 내가 왜 이런 상태로 하루를 보내는지 관심조차 가지지 않음은 죽어도 용서 못 한다.


10,20대 당시, 나에 대한 깊은 사색으로 세상에 대한 문제를 풀고 싶었다. 누군가에게 이 말을 해야 할지 몰랐고 부모님은 오로지 성적, 돈만 이야기하며 나에 대한 진심 어린 관심에 귀기울이지 않으셨다. 부모님이 아니더라도 누군가 내 말에 계속 관심을 가져줬으면 어땠을까 했는데 그런 사람은 나타나지 않았다. 근본적 원인을 해결하고 싶었다. 내적인 문제에 대한 해답을 혼자 파고들어도 한계에 부딪혔기에 홀로 투쟁적 내적 싸움이 지속되었다. 지금도 진행 중이다. 마음에 담아두고 있었기에 사람들이 알리 없다.


나의 글은 사색에서 비롯된 나 자신과 세상에 대한 호기심 탐구다. 문학적 표현, 묘사로 흘러가는 글은 어찌보면 당연했다. 말로 설명하기 힘들기에 문학적으로 표현하는 작가들을 유심히 살피고 나와 결이 비슷한 작가가 있다면 그와 비슷한 하루 루틴을 가져보기 까지 한다. 현재의 글쓰기 이야기다. 과거에는 오롯이 혼자 생각을 적고 또 적었다.


매일 불안정하고 걱정이 많음은 홀로 글쓰기를 하면 누적된 결과이다. 한적하고 고요하다 느낀적은 손가락에 꼽을 정도다. 그럼에도 글을 쓴다. 글이 없다면 나는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타인의 이해를 바라는 것보다 나 자신을 살펴보며 많아진 생각이 채워져 글로 버리는 반복에 새로운 채움을 맞이한다. 내적으로 홀로 견뎌야 할 에너지가 많기에 글쓰기를 취미로 하라는 말을 많이 한다. 이 글로 나의 고집과 생각, 마음의 균열을 일으켜 본다. 불편하고 힘들 수 있지만 지금 마음 먹었을 때가 기회다.


아무것도 안하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불편함은 성장으로 가는 삶의 정석이겠다. 이를 잊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