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살고 싶지만 갓생은 어려운 너에게' - 나에게 말하는 갓생
자신에 대한 지속적 탐구. 매일 반복적 일상에 기계적인 움직에 벗어나지 못한다. 나만의 자유를 누리는 시작을 갈망한다. 나와 맞는 것을 찾는 건, 인간의 본능 일 것이다.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반복되는 일상에 의미를 부여하고 싶어진 것이다.
퇴근 후의 시간, 자신을 찾는 끝없는 열망의 시간.
마음 한 구석 큰 이벤트 없이 시간이 무사히 흘러 감에 하루를 무사히 보냄에 무언의 아쉬움을 삼킨다.
나이가 들면 근사한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란 동경이 있다. 행동에 제약이 없는 성인들을 보며 자신도 그 나이가 되었을 땐, 어른들의 울타리에서 벗어 날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을 하게 된다. 하라는 대로 자신의 앞날만 바라보며 다다른 성인의 나이에 생각보다 별거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돈을 벌 수 있지만 사놓고 보면 허무함이 많이 밀려오고, 뭐든 자유롭게 할 수 있는 건 일상을 사는 책임이 뒷받침 된다는 것을 깨닫게 되고, 사람들과의 관계는 어렸을 땐 친구와는 다르게 만남과 헤어짐의 연속이라는 걸 매일 반복하게 된다. 어른이라는 동경이 겉으로 보여지는 것과는 다르게 빈 껍데기의 정체됨을 끊임없이 까먹는다.
추억을 갈망하는 건 어찌보면 당연하다. 사람의 기억 속에 회색빛 반복에 삶의 피폐함을 벗어나고 싶다. 색다른 것에 하루의 특별함을 더한다. 여행을 떠나거나 봄의 향기를 느끼러 가거나 무더움을 피해 바다로 떠나거나... 순간을 잊지 않기 위해 기록을 한다. 기록이 있어 머릿속 기억의 행복과 긍정이 떠오르는 것이다.
어릴 적의 경험과 추억이 어른이 되어 반복적 회사 업무에 묻어둔다. 이게 맞나.
분명, 어린 마음의 순수함이 존재하는데 이를 사회적 시선에 단념을 반복한다.
쉼으로 다음의 업무를 준비할 뿐이다. 자기 발전적 열망은 어린 시절의 기억에 삶의 전환이다.
세상이 변하고 비대면적 사회가 익숙해진 세대를 만나며 기존의 동경과 추억에 많은 변화가 생겼다. 직접 가야만 하는 것에서 개인 한명의 갈망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흐름으로 나아가고 있다. SNS 속 화려함에 원격의 단조로움을 두뇌에 인식시키며 점점 다양성과 수평적 시야가 소멸되는 듯 하다.
자신을 찾는 갓생은 직접 움직이면서 변화를 거치기에 일상의 반복에서 자신의 시간을 틈틈이 만들어 나가는 것이다. 지금 당장의 화려함과 초단기적 밈에 두뇌를 단순화 시키지 않는다. 행복과 긍정을 갉아먹는 좀벌레와 같다. 스스로의 갓생을 찾고 싶다면 당장 자신의 시간을 찾아라.
자기 자신을 찾는 궁극적인 이유, 행복과 긍정적 마인드를 찾는 것.
쉬우면서도 어려운, 움직이지 않으면 기회가 소멸된다. 각자에게 주어진 행복과 긍정은 자신의 경험과 타인의 만남이다.
매일 아침 침대에서 일어나 잠을 깨우게 한 후 아침 홈트를 진행한다. 같은 듯 다른, 일어난 직후의 컨디션을 어떻게 다스리냐에 따라 하루의 흐름이 결정된다. 침대에서 일어나는 일은 보통의 에너지론 한번에 몸을 일으켜 세울 수 없다. 전날의 몸상태, 과음 정도, 과식을 하지 않았는지, 기분을 좋거나 나쁘거나 한 일은 없었는지 등등. 몸의 가볍고 무거운 상태는 전날 자신이 무엇을 했느냐에 따라 기상으로 그 결과를 알려준다. 요즘은 무슨 걱정이 많은지 한번에 일어나는 경우가 드물다시피 한다.
하루의 약 80%를 차지하는 아침 시간, 기상 직후 2시간을 잡는 것만으로 하루 시간을 약 5배 늘린 효과를 보여줄 수 있다. 어떠한 외부의 방해 없는 고요한 시간이기에 자신의 역량을 최대로 발휘할 수 있다.
행복과 긍정적 마인드는 하루를 시작하는 시간을 잡는 것만으로 절반 이상 성공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저자가 말하는 다양한 부분들에 조금만 신경 써서 노력에 지속화 시킴을 이야기했는데 기상 직후 2시간이 그 힌트라고 본다. 어떠한 특별 비법이 숨겨있지 않고 그냥 꾸준히 하는 것이 정답이라는 반복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거대한 것보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에서 나타나는 소소함이 삶의 즐거움을 가져다 줄 때가 많다. 반복적인 하루에 사소한 것들을 신경 쓸 여력이 없어 이를 잘 잊어버리는 경우가 많을 뿐이다.
아침 시간을 함께하는 프로그램이 많아 혼자라면 힘들었을 기상 후 시간관리를 원활히 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다. 줌을 통해 대면적 만남의 한계를 극복 해준다. 운동, 독서, 글쓰기. 짧지만 몰입을 극대화 시킨다. 행복과 긍정적 에너지를 유지하는 비법은 꾸준함이고 기상 직후의 시간을 활용함에 있다.
10,20대 당시의 나는 혼자 조용히 돌아다니는 것을 좋아했다. 사람들과 어울리지 않았고 오로지 나자신에게만 집중했다. 당시에는 몰랐지만 지금에 와서 보니 글쓰기 작가로 가는 밑거름이 되었다. 깊은 사색으로 나만의 생각을 글로 옮기게 되었고, 생각의 채움을 글로 버리며 새로운 채움을 위한 비움을 정의하는 나만의 글쓰기를 확립했다. 모호하고 불확실해 스스로 나의 글쓰기를 말할 수 있을지 몰랐는데 매일 글을 쓰며 누적을 반복하니 다른 사람에게 말하는 것이 가능한 정도가 되었다.
나만의 강점을 발견해 이를 갈고 닦는 과정을 알아챈 지금, 나만의 갓생이 무엇인지 말할 수 있게 되었다. 글쓰기 그 자체다. 글쓰기만큼 나를 행복, 즐거움, 긍정의 에너지를 가져다 준 적이 없었다. 방황을 하더라도, 글이 안써져도, 일단 쓰면 정리되지 않을 것 같은 게 하나의 큰 뭉치로 만들 수 있었다.
글쓰기의 과정에서 남과의 비교로 열등감을 가진 적이 많았다. 내가 봤을 때 글을 올린 사람보다 훨씬 글을 잘쓴 것 같은데 왜 나의 글은 사람들이 봐주지 않고 좋아요, 구독, 댓글이 없었는지 홀로 괴로워했다. 팬 확보로 내글이 널리 알려지기 바라는 마음이 컸던지라 나의 글에 온전히 집중 할 수 없었다. 불확실함을 견디기 힘들어 여러 글쓰기, 독서 관련 클래스를 등록하여 내가 모르는 글쓰기 스킬과 비법을 빠른 시간 안에 습득하려 했다. 결과는 아무런 성과를 내지 못했다. 과정이 중요하지만 결과도 그만큼 나와줘야 한다는 강박이 나를 짓눌렀다. 클래스에 참여하며 이미 알고 있는 내용도 많아 스스로 자만심과 오만함이 하늘을 찌르기도 했다. 어떤 클래스는 자체 프로그램에 고액의 돈을 지불해야 하는지 의문이 들기까지 해 결국, 나만의 글쓰기 철학에 리스크를 감수하고 중도 포기한 경우도 있었다.
타인과 비교해서 좋을 게 하나도 없었다. 나자신의 정체성만 소멸되어 내가 써야 할 글이 무엇인지 찾지 못하는 우를 범했다. 다양한 글쓰기 방식을 접한 건 좋았지만 그와 동시에 나의 글쓰기에 집중을 하지 않은 것이 겉으로 화려한 껍데기만 쫓아다닌 알맹이 없는 망상에 빠지게 되었다. 지금은 이런 시행착오를 과정의 밑거름으로 삼아 문학 글쓰기에 매진하고 있다.
스스로 찾는 행복에서 좋아하는 것을 알고 나만의 정답을 정의한 이 과정이 소중한 자산으로, 지금 당장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지만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나아간다면 갓생을 넘는 진정한 나만의 행복과 긍정을 지속시킬 것을 믿는다. 세상의 정답을 쫓지 않기에 어떤 상황이 닥쳐와도 나의 주체성이 크게 흔들리지 않는 힘을 갖는다.
추억을 버리고 나 자신을 위한 사색이 남다른 길을 만들어 가는 밑바탕이 된 것 같다. 남들처럼 어느 시기가 되었을 때 놀러다니고 만남을 추구하고 함께 여행을 떠나지 않아, 무엇이 하고 싶은지의 고민이 빨랐다.
저자는 나이가 들면 세상을 바라보는 유연함이 생긴다 했는데 나의 생각이 다르다. 사람마다 고유의 개성이 있어 나이가 어떻든 자신이 얻는 지식과 지혜를 통해 삶을 살아간다고 생각한다. 나이듦은 생물학적인 정의로만 설명이 가능할 뿐, 각자 꿈꾸고 있는 목표와 비전은 시기가 다를 뿐이다. 정말로 그렇다면 나이든 사람들과의 갈등이 잦는 건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자기 자신을 찾지 못해 세속의 비교와 열등감에 자격지심 같은 마음을 가지게 된, 타인에 대한 분풀이 많아진 것.
대면적 갈등이 비대면적 갈등으로 전환된 현대 사회에서 나이에 관한 언급은 무의미하다. 익명의 공간은 평등하다며 선을 넘는 말들을 여기저기 쏟아내는 것에서 섣부른 생각이 삶의 방향을 송두리째 바꿔놓을 수 있다.
오랜 기간 글쓰기, 나의 정체성을 확립한 것 같이 나의 사례가 각자의 행복, 긍정적 마인드에 많은 힌트가 제공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