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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커리어걸즈 Sep 14. 2024

안경사의 하루

나는 직장에서 제공해 준 출퇴근 30초 거리 숙소에서 지내고 있다. 세 살 버릇 못 고친 지각쟁이는 출근 시간 9시 50분을 넘어 51분에 숨을 헐떡이며 도착한다. 꼭 집 제일 가까운 애들이 지각하듯이 말이다. 매장에 가면 제일 먼저 켜야 하는 것은 유리알식 히터기이다. 유리알식 히터기는 데워지는 데까지 시간이 걸리는 피팅 공구로 아침 일찍 피팅 하러 오신 고객님을 위해서 먼저 켜두는 것이 좋다. 옥습기(가공 기기), AR과 포롭터(검사 기기), 컴퓨터, 카페 기기를 모두 On 시켜주고 아침 청소를 위한 손걸레를 세탁기에 돌려놓는다. 


아침 오픈 준비가 끝나면 가운으로 옷을 갈아입고 회의 장소로 모인다. 아침 회의에는 팀장인 내가 주도하여 공지, 예약 리스트, 직원들의 판매 실적 현황 보고 및 개선 요구, 매장 매출 매입 분석, 금일 할 일 보고 등을 진행한다. 회의가 끝나면 세탁기에 돌려둔 걸레를 가지고 거울, 진열장, 유리창, 기계들 등을 전부 닦는다. 안경원에는 생각보다 거울, 유리가 많아서 하루 만에 수백 개의 지문들이 쌓이기 때문에 청소는 꼭 필수다. 청소를 마치면 각자 아침 회의에 계획해 놓은 일들을 처리해 나간다. 


오늘 안경을 받기로 한 고객 리스트를 확인했다. 어라? 이 고객님 주문 건 왜 아직 출고 처리가 안 되었지? 급히 업체에 전화를 걸었다. “안녕하세요 OOO 안경원인데요, OOO 고객님 주문 건 오늘 출고되나요?” 잠시 후 “아니요, 이거 내일 나가요, 선생님.”이라 답변을 받았다. 안경원에서는 이런 일이 허다하다. 매 순간이 고객과의 약속으로 돌아가는 시스템이다. 중간에 일이 어그러지기 십상이라 순간의 기지를 발휘해 대체할 서비스를 찾는 센스가 자주 필요하다. 나는 바로 고객님에게 전화를 걸었다. “OOO 고객님, 너무 죄송하게도 오늘 나오기로 한 안경렌즈가 업체에서 하루 지연되어 출고됩니다.”, “많이 기다리셨을 텐데 늦어져서 죄송합니다.” “내일 나오는 즉시 만들어서 바로 연락드리겠습니다.” “늦은 만큼 정성을 다해 만들어서 연락드리겠습니다.” 이렇게 말씀드리면 화가 나려던 고객도 “괜찮아요, 천천히 잘 만들어주세요.”라는 답변을 해주신다. 안경원은 이러한 일이 자주 있는 서비스직이기 때문에 쿠션어 같은 고객 응대용 멘트를 미리 공부해 두는 것도 좋다. 


고객님이 왔다. 안경테가 많이 찌그러져서 오셨다. 안경테를 수리할 수 있는지 물어보신다. “많이 찌그러져서 피팅 하는 도중에 파손될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안 부러지도록 최선을 다해 잡아보겠습니다. 혹시 부러지게 되면 A/S 서비스를 맡기셔야 하고 비용이 나올 수 있습니다.”라고 말씀드리고 양해를 구한 후 피팅 하는 것이 좋다. 안 그랬다간 살짝 건드리기만 했는데 파손되면 보상해 드려야 할 수도 있다. 초년 차였던 어느 날 코받침이 찌그러진 테를 피팅 했었다. 아무 멘트 없이 피팅 하던 중 다리를 살짝 건드렸는데 웬걸? 툭하고 부러지는 것이 아닌가. 안경렌즈는 고가의 수입 유리렌즈였다. 이미 5년을 사용한 안경을 물어줘야 하는 상황이었다. 나는 매우 당황하며 고객님께 말씀드렸다. “안경다리 부분에 약간의 크랙이 있었던 거 같은데 피팅 하던 중 부러졌습니다. 좀 더 확인해 보고 만져야 했는데 부러뜨려서 죄송합니다. 우선 안경렌즈가 유리렌즈라서 다른 테에 갈아끼는 것이 쉽지 않을 겁니다. 그래도 제가 부러뜨렸으니, 책임지고 최대한 같은 모양인 테로 잘 찾아보겠습니다.”라고 말씀드렸다. 운 좋게도 7만 원 테 중에 맞는 것을 찾아서 보상해 드렸던 적이 있다. 만약 운이 없었다면 안경테뿐만 아니라 50만 원 상당의 안경렌즈도 보상해야 할 뻔했다. 실제로 다른 매장에서 초년 차 선생님이 천만 원짜리 테를 부러뜨려서 보상한 얘기도 들어봤다. 아무튼 이 사건 이후로 나는 피팅 시작 전에 꼭 파손 가능성 멘트, 피팅 전 안경테 전체 이상 유무를 확인한다.                     


참고) 고객 응대 프로세스 (안경을 맞추는 과정)

   : 문진→시력검사→안경테 선택→안경렌즈 선택→안경 가공→피팅



              문진

문진은 이 사람이 필요한 안경을 찾아주는 나침반 같은 역할을 하기에 가장 중요하다. 문진 시 중요한 첫 번째는 고객의 나이다. 40대 이상이라면 누구나 겪는 노안의 유무에 따라 물어봐야 할 질문들이 달라진다. 두 번째는 직업이다. 고객의 직업에 따라 자주 보는 거리가 다를 것이고 생활패턴이 정적인지 동적인지 유추할 수 있다. 나는 나이와 직업을 묶어서 질문을 많이 하는 편이다. 우선 나이가 40대 이상이고 노안이 온 것 같다면 직업을 물어본 뒤 원, 중, 근거리 중 어떤 거리를 많이 보는지 알아낸다. 원거리라면 운전을 많이 하는지, 중간 거리라면 컴퓨터를 많이 보는지, 근거리라면 휴대폰 이외에 직업상 특수하게 많이 보는 것이 있는지 물어본다. 그리고 더 중요한 질문인 중간 거리와 근거리를 번갈아 보는지, 근거리를 볼 때에는 앉아서 보는지, 걸어 다니면서 동시에 보는지 등 여러 가지 상황을 직업과 연관 지어 물어본다. 이에 따라 내가 검사할 항목과 추천할 안경렌즈가 결정되기 때문이다. 세 번째는 이전 안경 착용 상태이다. 몇 년 전에 맞춘 것이 가장 최근 안경인지, 안경을 자주 쓰는지, 도수가 부족하다고 느끼는지, 적응은 잘 되었는지 등이 있다. 이외에도 문진 시 사람에 따라 물어볼 항목은 정말 다양하다. 처음 안경사 일을 시작하는 사람이라면 뭘 물어봐야 할지 감도 안 잡힐 것이다. 하지만 경력이 쌓이면서 점점 중요한 부분들을 알게 될수록 물어볼 질문들도 점점 많아질 것이다.


              시력검사            

시력검사는 초년 차일 때도 어렵지만 고년 차일 때도 어려운 부분이다. 이유는 안경원에서 하는 시력검사는 자각식 굴절검사로 안경사가 설정하는 값이 고객의 대답에 따라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고객이 잘 보이지 않는데도 잘 보인다고 대답하는 순간 오차가 나버린다. 그렇기 때문에 고객의 눈 컨디션, 억양, 검사 시 안경사와의 호흡, 성격 등에 따라 충분히 달라질 수 있다고 본다. 안경사로서 할 수 있는 부분은 고객이 숫자를 읽는 속도, 확신에 차서 읽는지 아닌지 같은 억양, 성격이 급한지 유순한지, 예민한지 둔한지, 피곤한지 아닌지 등을 판별할 줄 알아야 한다. 만약 이렇게 고객을 읽기 힘들 것 같다면 매번 선명한지 흐린 건데 억지로 읽은 건지 물어보면서 진행할 수밖에 없다. 


              안경테 고르기            

안경테를 골라 드릴 때는 고객이 먼저 짚는 안경이 무엇인지 보는 것이 중요하다. 그 안경테가 지금 고객이 관심 있는 안경테 모양과 유사할 것이기 때문이다. 만약 쉽게 고르지 못한다면 고객이 찾았던 스타일이 있는지 여쭤보거나 얼굴형에 어울리는 모양을 골라서 추천해 드린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 고객이 안경테를 고를 때 아무거나 고르게 놔두면 안 된다. 고객이 볼 수 없지만 안경사 눈에는 보이는 것들을 봐야 한다. 우리는 도수가 높을 때, 원시일 때, 다초점을 사용해야 할 때, 얼굴이 크거나 작을 때, 눈 사이 거리가 멀거나 좁을 때, 귀가 높거나 낮을 때, 코가 높거나 낮을 때 등을 봐야 한다. 이것들을 모두 동시에 볼 수 있어야지 고객에게 최적인 안경테를 찾을 수 있다.


              안경렌즈 고르기            

안경렌즈를 고르는 것은 안경사의 가장 큰 역량이기도 하다. 너무 광범위하기에 따로 다루지는 않겠다. 다만, 수많은 안경렌즈의 그 특징들을 더 자세히 알수록 그 사람에게 맞는 렌즈를 떠올리기 쉬워지기 때문에 많이 알아두는 것이 좋다. 보통 나는 검사 전 문진 시 이 사람에게 맞는 안경렌즈가 딱 떠오르는 편이다.


              안경 가공하기            

모두 결정했다면 안경을 가공해야 한다. 내가 처음 일할 때 가장 못했던 두 가지가 가공과 피팅이다. 두 가지 모두 많이 할수록 실력이 향상되는 게 두드러지게 보이는 파트이기 때문에 그저 많이 겪어봐야 한다. 가공 시 주의해서 봐야 할 점은 안경테다. 안경테 소재, 모양에 따라서 가공 순서나 방법이 많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안경테 소재도 테를 딱 보고 알 수 있을 만큼 공부해 두는 것이 좋다.


              피팅하기            

피팅은 처음에 잘하기 정말 어려운 파트다. 피팅은 학교에서 이론적으로 공부한다고 해도 실무에서 시력을 쌓을 수밖에 없는 부분이다. 안경테를 고를 때와 마찬가지로 이 사람 얼굴의 특성을 파악하고 이에 맞춰서 안경을 조정 해주어야 하는 부분이기 때문에 모든 케이스가 다 다를 수밖에 없다. 그저 많이 부러뜨려보고 드라이버에 찔려보고 해봐라. 하지만 그럼에도 피팅에도 공식은 있다. 이론을 바탕으로 공부하는 피팅이 제대로 된 피팅 실력이기에 학교에서 배우는 안경 피팅 용어나 이론을 잘 배워두기를 바란다.


하루가 끝날 즈음 이제 안경렌즈, 콘택트렌즈의 주문 건들을 모두 취합해서 발주를 넣는다. 발주할 때 신경 쓸 점은 그달의 매출과 매입 현황, 제품이 앞으로 잘 나갈만한지 고려해서 뺄 건 빼야 한다는 점이다. 발주가 끝나면 이제 다시 청소 시작이다. 수많은 발자국으로 지저분해진 바닥을 청소기와 대걸레로 청소하고 카페를 마감 청소한다. 그리고 그날의 시재를 작업하는 일(들어오고 나간 돈의 액수와 현재 보유 중인 현금을 비교하여 확인하는 작업)을 하고 모든 기기를 끄고 퇴근한다.

위에서는 특정 사건들만 다루었기에 전체적인 하루 일과를 표로 보여주고자 한다.                              

시간에 관계없이 하는 일

              고객 응대 (상담, 시력검사, 테 고르기, 피팅, 안경 가공, 전화주문 받기)            

              안경테 닦기 (한가할 때)            

              카페 응대            


아침에 하는 일

              업체랑 소통해야 하는 일            

              안경테, 안경렌즈 당일 약속일 건 출고 확인            

              안경테 주문(재고 확인 위함)            

              A/S건 진행 확인(3~4주 걸려서 확인 필수)            

              고객이랑 당일까지 약속한 일            

              안경 가공            

              주문 누락 건 확인              


낮에 하는 일

              안경테 담당 : 안경테 입고 잡기 및 진열 / 안경테 회전율 확인 및 발주            

              안경렌즈 담당: 안경렌즈 입고 잡기 및 정리            

              콘택트렌즈 담당: 콘택트렌즈 입고 잡기 및 정리            

              안경 가공 담당: 조제 및 가공            

              해피콜 담당: 인계 날로부터 한 달 후 잘 쓰시는지 확인 전화            

              SNS 담당: 네이버 블로그 작성, 네이버 스마트 플레이스 소식 및 리뷰 관리, 인스타 및 페이스북 게시글 관리 및 과금 홍보, 카카오톡 플러스 친구 게시글 관리 및 메시지 발송, 월 2회 홍보 문자 발송, 스마트 스토어 관리


나는 1년 차에 안경테, 2년 차에 콘택트렌즈, 3년 차에 안경렌즈를 담당했고 3년 동안 SNS를 전부 관리했다. 가공은 담당이 없이 돌아가면서 진행했다.


저녁에 하는 일

              당일 주문 건 발주            

              바닥 청소 및 카페 마감            

              시재 마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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