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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개발업자의 고난과 극복

by 커리어걸즈

현재, 흥정 행위는 결코 시행업의 본질이 아니며, 흥정은 분양가를 올리지 않기 위한 최후의 수단임을 알게 되었다. 우수한 입지이지만 가격이 상당히 낮은 토지를 만나보기도 하고 종 상향(용적률과 건폐율을 상향 조정하는 행위)을 통해 상대적으로 토지의 가격이 낮아지는 효과를 경험함으로써, 굳이 용역비를 낮추지 않고도 사업이 진행될 수 있다는 희망을 보았기 때문이다. 앞으로 연차가 쌓이는 과정에서 개발업자로서 살아남기 위한 여러 고민이 필요할 것이다. 그 고민 속에서 나의 ‘공익’이라는 가치관을 흔들리지 않고 지켜나가는 것이 첫 번째 성장 포인트이며, 그 가치관을 이루기 위해 토지에 대한 인사이트를 기르고 용역업체와의 협상 능력을 길러나가는 것이 두 번째 성장 포인트다.


부동산을 개발할 때 발생하는 비용은 ‘토지비, 건축비, 판매비, 부대비, 금융비’ 5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나는 이것을 더 간소화하여 ‘토지매입비, 세금, 용역비(토지매입비와 세금을 제외한 나머지 비용 일체)’의 3가지로 나누어 보았다. 이것을 다시 ‘조정 가능한 비용(토지매입비, 용역비), 조정 불가능한 비용(세금)’의 2가지로 나누어 보고자 한다. 통상적으로, 조정 가능한 비용은 전체 비용의 10% 내외이며 나머지 90%는 조정 불가능한 비용이다. 즉, 토지매입비와 각종 용역비용을 어떻게 조정하느냐에 따라 개발비용의 총규모가 정해지는 것이다.


당신이 신축 부동산을 구매한다고 가정해 보자. 아파트던 상가 건, 신축 부동산의 분양 가격이 떨어지는 것을 보았는가? 아마 떨어지기는커녕 계속 오르기만 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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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그림을 통해 신축건물의 가격이 지속해서 상승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1971년에 분양한 반포주공1단지(이전 남서울아파트)의 가격은 350~700만 원으로, 분양 평당 17만 원 수준이었다. 한편, 반포주공1단지를 재건축하여 2027년에 준공될 반포 디에이치 클래스트의 분양가는 인근 아파트의 시세를 고려하면 분양 평당 1억 원을 호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물론 지난 53년간의 화폐가치 차이를 고려했을 때 아파트 가격이 오르는 것은 당연하다. 다만, 53년 동안 가구 평균소득은 125배 증가(1971년 4만 원 → 2023년 3/4분기 503만 원)한 반면, 아파트 분양가는 500배 이상(평당 17만 원 → 평당 1억 원) 증가한 것을 고려했을 때 그 증가 폭은 물가상승률 이상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신축 건물의 가격은 왜 지속해서 오르는가? 저출산 문제가 심각하다는데, 왜 아파트 가격은 계속 오르는지 궁금할 수도 있다. 나는 이것에 대하여 ‘조정 가능한 비용’이 올랐기 때문이라고 답하고 싶다.


토지매입비: 우리나라 영토 면적은 좁다. 그마저도 산악 지형이기 때문에, 개발이 쉬운 평지는 더더욱 좁다. 그 와중에 사람들의 수요는 인프라가 잘 갖춰진 서울 및 수도권에 몰려있다. 그 때문에 토지의 가격은 점점 상승할 수밖에 없다.

용역비: 용역비에는 건축비, 인허가비, PM(Project Management, 사업 관리)비, 설계비 등이 있다. 이 비용들은 기본적으로 인건비가 상승하면 자연히 오른다. 다만 그중에서도 가격이 크게 오른 것이 있는데, 바로 건축비이다. 인건비 상승은 기본이며,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해 원자재 비용 자체가 올라랐고, 제도 변경으로 인해 공사에 필요한 각종 인증 및 기준이 강화되었기 때문이다. 그 결과 지난 3년간 건축비는 최소 2배 이상 상승했다.


위와 같은 상황에서 신축 부동산을 공급하는 시행사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겠는가? 정답은 단순하다. 비용이 늘어난 만큼 부동산 가격을 올리거나, 비용 자체를 줄이는 것이다. 현재 많은 시행사가 1번 방법을 택했다. 부대 시설과 디자인을 특화하여 주택을 분양 평당 1억 원 이상에 판매하는 것이다. 즉, 수준 높은 서비스와 시설을 제공하는 대신 어마어마한 가격에 판매하는 전략이다. 그러나 이 방법은 시행사는 살아남을지언정, 서민들의 경제 사정을 위협할 수 있다.


1번 방법의 경우, 높은 가격의 부동산을 구매할 실수요자가 있을 것이라는 가정하에 사업이 시작된다. 실수요자가 없다면 미분양이 발생하게 되는데, 이것은 국가 경제에 부정적인 영향을 준다. 부동산 개발사업은 PF(Project Financing, 부동산개발 프로젝트 자체의 사업성에 대해 대출을 해주는 것)를 기반으로 하는데, 미분양이 발생하면 은행에 빌린 돈을 갚지 못하게 된다. 대출 이자는 물론, 대출 원금까지 상환하지 못하면 금융기관에 위험이 발생하고, 더 나아가 국가 경제 전체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지난 2022년도의 레고랜드 사태와 최근 태영건설의 워크아웃 신청을 대표적인 사례로 들 수 있다. 만일 실수요자 있어서 분양을 성공적으로 마친다면, 부동산 가격이 상승하여 서민들의 내 집 마련에 영향을 준다. 해당 분양가가 시장의 사례가 되어 이후에 형성될 신축 부동산 분양가 산정의 기준이 되기 때문이다.


나는 사익보다는 공익을 추구하는 사람이다. 단순하게 ‘살아남기 위하여’ 고급 부동산을 시장에 공급하는 행위는 결코 서민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주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때문에, 시행사로서 올바르게 살아남기 위해서는 2번 방법(비용 절감)이 가장 먼저 검토되어야 한다. 다행히도 내가 재직 중인 회사는 2번 방법을 택하고 있다. 저평가 되어있는 토지를 최대한 낮은 가격에 사거나, 각종 용역비용을 최대한도로 낮춰서 비용 자체를 줄이는 방식이다.


나는 평소에 흥정이라는 행위 자체를 상당히 싫어하는 사람이다. 얼마나 싫어하는지 설명해 보자면, 나의 동행자가 흥정하려고 하면 즉시 말리고 내가 돈을 더 지불하기도 하며, 흥정이 필요한 여행지는 최대한 피하는 편이다. 그런데, 나는 그 행위를 회사 업무 중에 하고 있다. 정확히 말하자면 내가 아닌 우리 회사가 하고 있다. 나는 처음에 용역비 흥정 행위에 대해 상당한 회의감이 들었다. 용역비는 최대한 낮추지만 일은 일대로 시키는 것이 너무나도 미안했고, 이것은 곧 “난 이런 식으로 용역업체에 갑질하고 싶지 않아!”라는 시행업에 대한 반발로 이어졌다.


나의 이런 고민을 알아봐 준 것인지, 나의 상사는 나에게 조언을 해주었다. “제비씨, 이건 개인의 일이 아니라 회사의 일이잖아. 회사를 대신해서, 회사의 이익을 위해 비용을 낮추는 거야.” 솔직히, 위로가 되지 않았다. 요즘 2030세대에게는 평생직장이 없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평소 나의 가치관에 맞지 않았던 흥정 행위가 오로지 회사의 이익을 위한 행위였다면, 당장에라도 그만두고 싶었다. 이것이 부동산 개발업의 최상위 갑(甲)의 위치에 있는 시행업의 본질이었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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