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 9시. 오늘도 늦잠을 자서 9시 정각에 칼같이 출근했다. 입사 한 이후로 언제나 재택근무를 간절히 바라고 있지만, 지난 4년간(2021년~2024년)의 직장 생활 동안 단 한 번도 재택근무를 경험해 보지 못했다. 심지어, 인턴 기간이었던 2021년도는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수많은 기업에서 재택근무를 실시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부동산 개발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다양한 업계 관계자들과의 협업이 필요하다. 크고 작은 회의(내부 업무 회의, 외부 미팅 등)가 쉴 새 없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업무 효율을 위해 재택근무는 활성화되지 않은 편이다. 동종업계 지인들이 7~8시 출근하는 모습을 보며, 이제는 칼출근에 쓴소리 듣지 않는 것에 위안 삼고 근무하고 있다.
자리에 앉자마자 가장 먼저 하는 일은 메일을 확인하는 것이다. 전날 요청했던 자료를 확인하거나, 요청받은 업무가 있는지 확인한다. 출근 직후는 물론 상시로 메일함을 확인함으로써 업무의 우선순위를 조율한다. 오늘은 은행으로부터 도장 날인 요청이 왔다. 오늘 중으로 천천히 보내달라고는 하지만, 외부에서 온 요청은 웬만하면 확인하는 즉시 처리하는 편이다. 개발 업무를 수행하다 보면 협력업체들에게 여러 가지 도움을 요청하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 평소에 연락도 잘 안되고 도움이 필요할 때 늦장 부리던 사람을 어느 누가 내 일처럼 도와주겠는가. 협력업체와의 관계 유지는 곧 나의 업무역량과 직결된다. 따라서 다른 급한 일이 없다면 1순위로 업무를 처리해 주지만, 늦어지게 되면 전화로 양해를 구하기도 하고, 평소 업무 전화 전 안부를 묻기도 하는 등 관계 유지에 신경 쓰는 편이다. 간혹, 협력업체에 갑질을 하는 일부 시행사 직원이 있다. 부동산업계에서 갑(甲)의 위치에 있는 시행업의 지위를 악용하는 것인데, 부디 서로 배려하고 돕는 마음을 가졌으면 좋겠다.
은행 요청 사항을 처리하고 나니 벌써 10시 30분, 나의 사수가 출근하는 시간이다. 사업성 검토를 요청받은 OO동 개발사업에 대해 보고할 준비를 시작한다. 어제 퇴근하기 전 자료작성은 마무리했지만, 혹시 모를 실수가 숨어있을 수 있기 때문에 커피 한잔을 마시며 다시 한번 천천히 살펴본다. 모든 프로젝트의 시작은 사업성 검토를 통해 결정된다. 즉 주니어의 “이 토지는 돈을 벌 수 있는 / 돈을 벌 수 없는 토지입니다!”라는 보고에 따라 일의 시작과 중단이 결정된다. 일이 한번 시작되면 외부 규모 검토(건축설계)부터 시작해서, 외부 법률 검토(변호사), 투자자 미팅 등의 수많은 업무 절차가 진행된다. 따라서 사업성 검토에 실수가 발생하면 이것은 곧 회사의 시간적·금전적 손실로 이어진다. 물론 주니어가 작성한 사업성 검토서는 시니어들의 2차 검토를 통해 바로잡힌다. 그러나 주니어의 경험 미숙으로 인한 실수(분양가 및 금리 예측)가 아닌, 숫자(대지면적 오기재, 수식 오류 등)에서 실수가 발생한다면 이것은 그 어떠한 실수보다 가장 크게 혼나니 오전에 맑은 정신으로 반드시 재검토해야 한다.
사업성에 대해 보고드리고, 관련하여 짧은 내부 회의를 진행하고 나니 벌써 점심시간이 20분이나 지났다. 억울한 마음이 들긴 하지만, 맛집들을 대기 없이 먹을 수 있다는 작은 장점이 있긴 하다. 나는 보통 사수와 함께 식사한다. 그러나 직급이 올라갈수록 내부 사람들보다는 외부 사람들과의 점심 식사 자리가 많아지고는 한다. 부동산 개발 업무가 결코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아닌 만큼, 네트워크 구축은 곧 업무적 자산이 된다. 12시 정각에 나왔다면 오래 기다려야 하는 오삼불고기 맛집에서 빠르게 점심을 해결하고, 나의 오후 근무를 함께 버텨 줄 플레인요거트스무디를 테이크아웃해서 사무실에 복귀한다.
오늘 오후 4시에는 예전에 검토했던 ㅁㅁ동 개발사업에 관심 있는 투자자와의 미팅이 예정돼 있다. 미팅 전, 오늘 오전에 보고드렸던 OO동 개발사업을 구체화해 보라는 지시에 따라 TM(Teaser Memo, 약식 투자 제안서) 작성을 시작한다. TM은 불특정 다수에게 보내는 약식 투자 제안서로, ‘토지개요(대지면적, 용적률 등), 위치도, 현황 사진’ 정도의 간략한 내용이 들어간다. 만일 오늘 작성하는 TM이 투자자들에게 반응이 좋으면, 나중에는 IM(Information Memorandum, 투자 제안서)을 작성하게 된다. IM에는 개발 사업성, 건축 도면, 조감도, 시장분석, 사업구조 등의 상세한 내용이 들어간다.
TM을 작성하다 보니 벌써 4시가 다 되어 간다. 회의실 모니터에 ㅁㅁ동 개발사업 IM을 띄우고, 열심히 회의록을 작성할 준비를 한다. 오늘의 미팅 주제는 자본금(투자금) 협의이다. 자본금은 보통주와 우선주 두 가지 형태로 나뉜다. 보통주는 원금손실의 가능성이 있지만 사업이익을 가져갈 수 있지만, 우선주는 원금은 지킬 수 있지만 정해진 이자만 받을 수 있다. 즉, 보통주는 일반적인 주식으로, 우선주는 사설 은행으로 이해하면 편하다. 돈을 확실히 벌 수 있는 프로젝트라면, 시행사 입장에서는 우선주 투자자를 모집하는 것이 사업 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다. 다만, 오늘 온 투자자는 슬프게도 “오로지 보통주 투자만 가능하다.”라는 소식을 가지고 왔다. 요즘 같은 고금리 시대에는 토지 매입을 위한 대출 자체가 까다롭기 때문에, 함께 투자할 만한 우량한 우선주 투자자가 없는지에 대해 고민하며 미팅을 마무리한다.
미팅이 끝나니 벌써 퇴근하기 30분 전이다. 오늘 미팅에서 다룬 논의 사항을 자료에 반영해달라는 지시에 따라 자본금 구조를 수정한 후, 슬슬 퇴근할 준비를 한다. 요즘은 특별히 바쁜 시즌이 아니기 때문에 칼퇴근을 할 수 있다. 부동산 개발의 5가지 단계마다 일이 몰리는 시즌(토지 매입 직전, 인허가 심의 직전, 대출 약정 직전 등)이 생기는데, 해당 시즌에는 야근이 잦은 편이다. ‘칼퇴근이 가능한 상황이라면 눈치 보지 말고 칼퇴근하자.’ 라는 신념에 따라 바쁘지 않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오늘도 하루를 마무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