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923
To. ___, ___, ___, ___, ___
어느덧 일 년의 반이 지나가고 푸른 계절이 찾아왔어. 물방울 머금은 숨을 들이쉬고 내쉴 때마다 폐에 그 새파란 색이 가득 덧칠해져. 내리쬐는 햇살에 눈이 부셔서 문득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품고 있던 말들을 전할 용기가 피어올랐거든.
네가 많이 노력하고 있다는 건 너를 아끼는 사람 모두가 알고 있을 거야. 결과는 노력에 비례한다는 말은 다 허황이고 입바른 말이야. 모든 사람이 투명하게 노력한 만큼씩 얻는다면 정말 좋겠지만, 행운은 종종 너를 배신할 수도 있어. 하지만 노력은 결코 배신하지 않아. 네가 지금껏 쌓아 왔고 쌓고 있는 시간과 고통과 인내는 커다란 수조에 흐르는 물방울이 쌓이는 것처럼 고요할 거야. 언제쯤이면 수면이 눈에 띄게 오를지, 예쁜 물결을 가질 수 있을지 아득하기만 할 수도 있지만, 그건 매 분 매 초 분명히 모이고 있어. 그리고 그건 훗날 반드시 보답할 거야. 내가 기억하는 일 년 전의 너보다 너는 배로, 어쩌면 그보다 많이 성장했어. 우리는 아직 어리고 앞에 펼쳐진 기회와 도전의 길은 끝이 없지만, 무수한 갈림길은 수없이 있을 거야. 갈림길에서의 선택이 너를 어떤 길로 이끌건 거기에서 끝까지 너를 위로하고 축하하고 지탱할 사람은 너뿐이야.
우리는 소년만화의 흔한 클리셰 속에 갇힌 주인공이 아니지만, 늘 그 속의 뻔한 교훈과 멍청해 보일지도 모르는 신념들을 맹목적으로 믿는 나는 바보 같은 사람일지도 몰라. 권선징악은 어쩌면 교육과 사회의 세뇌의 산물일지도. 이런 내가 말하는 신념이라는 것은 어쩌면 때 타지 않은 어린아이의 무결한 어떤 믿음과도 같겠지만,
네 속에 너만의 확고하고 절대적인 무언가가 있다면 그건 너를 단단하게 만들어.
네가 누가 뭐래도, 시선과 잣대와 내게 쏟아질 비난의 화살들이 두려워도, 정보의 홍수에서 무엇이 진실이고 거짓인지, 나는 어떤 것을 믿어야 하는지 혼란해 이리저리 휘둘려도 굴하지 않을 영혼을 가졌으면 해. 꿈이고 목표고 남들이 기준에 맞춰 세우는 줄에 떠밀리는 것도 다 제치고 넌 너랑 네 사랑하는 사람들에만 귀를 기울이는 거야.
몇 세기 정도 철이 지난 촌스런 무사도 같은 무언가로 보일 만한 거지만...
넌 좋은 사람이야. 충분히 멋진 사람이고.
많은 사람에게 사랑받는단 게 얼마나 따뜻한 일인데.
무조건적으로 네 뒤에 있어 줄 사람이 두세 명쯤 있으면 그건 여태껏 남겨 온 발자국들이 적어도 틀리진 않았단 뜻 아닐까?
너희는 내가 정말로 아끼는 몇 없는 사람들이야.
우리의 시간은 영구적이지 않겠지만 우리가 서로에게 남긴 것들은 영원하겠지?
시간이 지나고 조금씩 멀어져도 문득 생각나면 얘길 걸 수 있는 사이가 되었음 좋겠음 좋겠어. 오래오래 서로의 친구로 남자.
항상 지금처럼만 빛나 줘. 이번 여름은 네게도 푸르길 바랄게.
From. 2023년의 파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