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 「괜찮을 거야」)
시골쥐가 설레는 기대감을 안고 서울에 처음 당도하던 모습을 기억하는가. 있는 힘껏 고개를 치켜올려도 가늠할 수 없는 높이의 고층 건물과 파도처럼 밀려왔다 밀려가는 사람들의 물결. 이 장면을 지면에 다 담을 수 없어 조그만 시골쥐와 그 옆을 오가는 사람들의 다리만 빼곡히 그려 넣은 그림도 기억난다. 작디작은 시골쥐는 하늘이 보이지 않는 울창한 도시의 밀림 속에 잘못 발을 들여놓은 탐험가처럼 경외심과 공포감이 가득한 눈으로 이 모든 것들을 올려다보고 있다. 그림책 「괜찮을 거야」를 덮고 나서 떠오른 「서울쥐와 시골쥐」의 한 장면이다.
도시를 구성하는 모든 것들은 우리의 감각을 압도한다. 땅으로부터 하늘까지 솟아오른 건물들이 우리의 보는 능력을, 문명의 온갖 소리가 우리의 듣는 능력을, 알 수 없는 것들로부터 풍겨오는 향이 우리의 냄새 맡는 능력을, 생각을 초월한 다양한 기자재와 상품들이 우리의 촉감 능력을, 기발한 조합의 음식들이 맛을 감지하는 우리의 미각 능력을 압도한다. 이전에 없던 것들이 계속 양산되는 도시에서 사람들은 감각이 더욱 예민해지거나, 혹은 무뎌지거나 둘 중 하나의 상태가 된다. 도시에 머문 지 오래되지 않은 존재들은..... 아직 감각이 너무 예민하다.
하얀 눈발이 흩날리는 차창으로 반대편 건물과 도로의 차들이 비친다. 겨울이 온 도시. 상기된 얼굴의 아이는 고개를 약간 숙이고 앞을 응시하고 있다. 아이의 겨울이 무언가의 이유로 몹시 춥다고 근심 서린 눈이 말한다. 그래서 차창 아래 ‘괜찮을 거야’라는 글(제목)은 근심하는 아이가 새롭게 다잡은 마음처럼 느껴진다.
아이가 버스로 이동하는 장면이 일곱 컷의 그림으로 표현되고, 버스에서 내린 아이는 거대한 도시 속 아주 자그마한 존재가 되어 버린다. 풍경은 어떤 것이 배경이고, 전경인지 구분할 것 없이 펼쳐진 그림 자체로 도시를 설명한다. 그리고 여기서 그림책이 첫 말문을 틔운다. ‘나는 알아. 이 도시에서 작은 몸으로 산다는 게 어떤 건지.’ 고층 빌딩과 각양의 차량과 오가는 사람들 무리 가운데 아이는 존재의 미약함을 이렇게 나직이 읊조린다.
걸어가는 길마다 도시는 아이에게 호의적이지 않은 모습을 보인다. 복잡하고 바쁜 도시의 혼란스러움이 아이의 예민한 감각을 건드리고 아이는 자신에게 다짐하듯 혼잣말을 한다. ‘너는 괜찮을 거야.’라고. 건물 외벽에 비친 중첩된 아이의 모습은 휘청거리는 감각의 표현이다.
복잡한 도심을 빠져나온 아이는 보폭이 넓어진다. 그리고 계속해서 혼잣말을 이어가며 스스로에게 길 안내를 한다. ‘골목길로 가는 게 더 빠를 거야.’, ‘나라면 이리로 오지 않을 거야.’, ‘숨기 좋은 곳도 많아.’... 마치 무서운 상황에서 무섭지 않다고 자기 암시를 하는 것처럼 아이는 도시의 길을 잘 헤쳐 나갈 수 있다고 자신에게 끊임없이 타이른다. 아니, 타이르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아이의 혼잣말이 어떤 대상을 향한 걱정과 우려의 목소리라는 것을 알게 된다.
‘저 아랫동네 생선 가게 주인들은 좋은 사람이야. 네가 달라고 하면 아마 생선도 좀 줄걸.’, ‘가시덤불이 있어. 털이 덤불에 걸릴지도 몰라.’ 이 장면에서 주황색 자그마한 종이가 가게 문과 철조망에 붙어 있는 것을 확인하게 된다. 그리고 다음 장은 기둥에 주황색 전단을 붙이고 있는 아이의 모습이다. 아이는 잃어버린 고양이를 찾고 있다! 그 사이 날은 더 추워져 눈발이 바람의 방향을 따라 흰색의 기다란 줄을 연신 그림 위에 덧칠한다.
발이 푹푹 빠지는 눈길과 휘몰아치는 눈바람에도 아이는 꿋꿋이 전단을 붙이며 잃어버린 고양이를 향해 애틋하게 속삭인다. ‘집은 안전하고 조용해. 그러니까 지금 바로 돌아와도 괜찮아.’ 어딘가에서 고양이가 겪고 있을 추위와 배고픔이 거세게 휘몰아치는 눈발 속에서 느껴지는 듯하다. 아이는 그 자리에 꼿꼿하게 서서 눈바람에 대항하며 고양이의 애처로운 상황을 깊게 염려한다. 눈은 아이를 파묻어버릴 기세로 쏟아져 내린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어귀에 아이를 마중 나온 엄마가 있다. 오랜 걱정 끝에 무사히 돌아온 아이를 엄마는 꼭 끌어안는다. 글은 이렇게 이야기한다. ‘하지만 나는 너를 알아. 너는 괜찮을 거야.’ 이제 이 글은 아이가 고양이에게 하는 말이자, 엄마가 아이에게 하는 말임을 이해하게 된다.
주인 잃은 고양이가 혼자 떠돌아다니기에 도시는 너무 많은 위험을 품고 있다. 도시가 한꺼번에 움직일 때, 고양이가 가진 탁월한 감각 능력은 자신을 보호하고자 더욱 예민해지면서 이것이 오히려 두려움과 공포를 불러온다. 민첩하고 놀라운 점프력에도 수많은 차들을 비껴갈 수 없고, 온갖 소음은 청력을 지나치게 자극한다. 빠른 속도의 움직임과 이동, 정체불명의 냄새가 고양이의 눈과 코를 현혹하면서 동시에 교란한다. 작은 고양이는 도시 속에서 불안정한 존재이다.
도심을 헤쳐 나가면서 아이는 직감한다. 지금의 이 경험과 이 감정이 작은 동물 고양이에게도 똑같았을 것이라고. 작은 아이의 눈높이에서 바라본 세상은 고스란히 작은 동물이 겪었을 세상으로 이어진다. 성인에 적절하도록 설계된 도시에서 작고 미약한 존재는 적절하지 않은 장면을 자주 경험하게 되고, 그럴 때마다 ‘괜찮을 거야.’라며 다독임으로 서로 연대한다. ‘너’에 대한 믿음과 ‘괜찮을 것’이라는 자기예언적 혼잣말이 어딘가에 있을 또 다른 미약한 존재와의 교감으로 이어지면서 도시 속 작은 이들은 공존의 힘을 얻는다. 그리고 작은 이들의 경험을 앞서 한 성인의 격려에는 애정과 따뜻함이 담뿍하다. 그들 역시 과거의 어느 시간대에는 작은 이였으므로.
겨울 어느 날의 도시를 그림책은 담고 있다. 아이가(고양이가) 느끼고 있을 두려움이 도시의 구석구석 사물과 그림 컷의 프레임에 검정의 거친 선으로 표현된다. 아이에게 다가오는 도시의 심리적 색깔은 검정이다. 어디에서 튀어나올지 모르는 위험을 싸고 있는 검정 장막이다. 그럼에도 이 그림책은 우울하거나 슬프지 않다. 오른쪽 장면에서 덮쳐오는 눈보라의 기세를 왼쪽 하단에서 정면으로 맞서는 아이는 고개를 숙이고 있지 않다. ‘내가 괜찮다면 어딘가에 있을 고양이도 괜찮을 것’임을 믿기 때문이다. 이 믿음은 아이를 기다리는 엄마에게도 전해진다.
도시의 풍요로움과 아름다움에 대해서만이 아니라, 혹시 모를 두려움에 대비해 ‘괜찮을 거야.’ 라고 서울쥐가 한 마디 얹어주었다면 어땠을까. 라는 생각을 해본다. 어쩌면 서울쥐는 자신도 작은 존재이면서 약함을 감추고 겉으로만 강한 척, 도시에서 잘 살아가는 척 애쓰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서울쥐에게도 ‘괜찮다.’는 한 마디를 얹어주어야겠다.
꼬꼬마 시절 그림 속 시골쥐와 똑같은 시선으로 위를 올려다보며 가슴 콩닥거리던 추억이 이 그림책으로 되살아난다. 그 시절 마음의 부침이 많았던 나에게도 ‘괜찮을 거야.’라고 따스하게 토닥여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