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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좌표

(그림책: 「두 갈래 길」)

by 안은주

막힘과 뚫림이 산만한 선들 속에서 이어지는 통로를 찾아내어 출발지부터 도착지까지 하나의 선으로 연결해야 하는 ‘미로 찾기’ 게임을 하고 나면, 구부러지거나 빙 돌아서 갈지언정 결국에 길은 하나였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막다른 선에 다다라 되돌아 나온 흔적이 군데군데 남아있지만, 가지 않은 길은 곧 지워지고 최종 선택된 길만 굵직하게 미로 속에서 섬광처럼 떠오른다. 우리 삶도 그렇다. 선택하지 않고, 가지 않은 길은 표식되지 않는다. 그래서 내 등 뒤로 펼쳐진 과거 모든 시점과 현재의 나를 연결하는 길은 하나이다.



언뜻 보면, 이 그림책은 양자택일로 삶의 중요한 순간을 결정해야 하는 선택의 문제를 담고 있다고 읽힌다. ‘두 갈래 길’이 한 사람 앞에 놓인 선택의 기로이고, 갈래의 길들이 각각 펼쳐 보일 삶의 국면이 어떻게 다를 것인가 하는 것 말이다. 하지만 제목 아래 그림이 이 생각을 완벽하게 뒤집는다. 두 개의 길 위에 두 명의 사람 즉, 남자와 여자가 각각 한 갈래씩의 길 위를 걷고 있다. 한 사람 앞에 주어지는 길은 하나이며, 주어지되 가지 않고 머무를 수는 있으나 다른 길로 들어섰더라도 그것 또한 연결되는 하나의 길이며, 돌아 나왔다면 흔적은 남을지나 여전히 하나의 길 위를 걷고 있다. 표지의 그림은 명징하게 말한다. 하나의 삶이 하나의 길이라고.


지도 위에 표기하면 어울릴 것 같은 기호적 나무 표상이 표제지의 ‘두 갈래 길’ 글자 왼편에 흩어져 있다. 길은 아직 보이지 않는다. 다음 페이지에서 구획을 나누듯 나무들 사이를 가로지르는 여러 갈래 길들이 만들어진다. 길은 서로 교차하기도 하고 전혀 다른 방향을 향하기도 하면서 양쪽면 전체 네모 화면 안에서 최대한 길게 만들어지고 있다. 그리고 그 길 어디쯤 여자와 남자가 걷고 있다. 물론 한 갈래씩의 길 위를. 화면대로라면 남자는 왼편에서 오른쪽으로 걸어와 비스듬히 북쪽을 향해 걷는 동안 그림책 화면 밖으로 사라질 것이다. 반대로 여자는 오른편에서 왼쪽으로 완만하게 걸어가다 우회전하면서 역시 화면 밖으로 사라질 것이다.



두 사람이 각각 사라질 지점을 화면 밖에서 점으로 확인하다 문득, 이 둘이 교차로에서 마주치게 될 가능성을 떠올린다. 통과하여 우직하게 걸어가거나, 방향을 틀어 ‘좌 또는 우’로 길을 바꿀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두 사람이 하나의 길로 들어서게 될지도 모른다. 한 사람이 두 길을 걸을 수는 없지만 한 길에 선 두 사람의 동행은 충분히 상상할 수 있다.


본 이야기에 들어가기도 전, 지도와 묘하게 닮은 양면 그림이 세계지도를 펼쳐 놓고 미지의 나라로의 여행을 꿈꾸듯 두 남녀의 행보를 여러 갈래 길로 상상하게 한다. 간결하게 기호처럼 그려진 남녀의 표현이 마치 게임의 ‘말’로 여겨져 손으로 집어 몇십 걸음 앞에 놓거나, 후진하여 몇 걸음 뒤에 올려놓고 싶은 충동을 일으킨다. 주사위를 굴려 나오는 숫자로 전진과 후진이 결정되는 게임처럼. 그러나 길의 방향과 보폭을 정해주는 주사위 같은 것이 실제 삶에 있다면, 그건 요행이나 미신일 뿐이다.



이야기는 왼쪽과 오른쪽으로 화면을 나누어 여자와 남자의 길을 표현한다. 두 사람은 각각의 집에서 문을 열고 나온 후, 줄곧 자신의 화면 안에서만 길을 걸으며 삶의 여정을 이어간다. 남녀의 여정이 분할되어 그려진 그림이 서로 간 접점이 없는 이방인의 삶을 표현한 듯하지만, 글은 오히려 모든 사람의 삶을 아우르는 보편적인 진리를 내레이션 한다. “길 위에는 신기한 것도 많고, 두려운 것도 많지... 밤처럼 온통 캄캄할 때도 많지만, 뜻밖의 재미있는 일들도 많아... 온 길을 되돌아가기도 하고, 말없이 걸어야 할 때도 있어...”


분리된 화면 안에서 외길로만 뻗어가던 길이 반듯하게 붙여진 2차선 도로로 등장한다. 두 사람은 여전히 자신의 길 위를 걷고 있지만 근거리에 있으며 같은 방향을 향하고 있다. 삶의 목적과 방향이 같은 동료끼리 서로 지지하며 응원해 주는 관계 같다고 할까. 두 사람은 언제 서로의 존재를 알게 되었고, 나란히 함께 서게 된 걸까? 견고하게 분할되어 우직한 ‘내 길 걷기’를 종용하는 그림 안에서조차 서로 영향을 주고, 영향을 받고 싶어 하는 인간의 욕구를 감출 수 없었다고 생각한다. 분할된 화면이지만 두 사람이 미세한 눈 마주침을 하고 필요한 정보를 건네받는 소소한 움직임이 표현되곤 했다. 숨은그림찾기처럼.


2차선 도로를 나란히 걷던 두 사람이 다음 장에서는 교차로에 이른다. 잠시 마주 선 두 사람. 아직은 자신의 길 위에 두 발을 딛고 있다. 그리고 이어지는 다음 장에서 두 사람은 엇갈려 지나치지 않고 계속해서 함께 가기로 한다. 여전히 2차로를 걷고 있지만 둘의 거리는 한결 가까워져 있다. 걷는 도중 서로를 쳐다보며 담소를 나누고 보폭을 맞추며 걷는 그림에서 그들의 관계가 더욱 발전했으며 애정이 충만하다고 느낀다. 이런 독자의 상상에 반전 같은 이야기는 나타나지 않길 바라며 다음 장을 걷는다.


두 사람은 손을 잡고 있으며 그들이 걷고 있는 앞길이 점차 하나의 길로 합쳐진다. 그렇게 하나의 길로 들어선 두 사람을 뒤로하고 마지막 장은 첫 화면과 같이 두 개의 집이 각각 왼쪽과 오른쪽으로 그려진 그림이다. 왼쪽 집 문만을 살짝 열어둔 채로 그림은 소리 없이 이야기한다. ‘자, 마음껏 상상해 보세요!’라고. 여기서 글은 소리 내어 말한다. “인생은 찬란해지지.”라고.




아무도 가지 않은 외진 곳을 발로 다지고 다져 사람들을 이끄는 길을 생각한다. 고속도로처럼 매끈하고 장애물 없는 길, 돌투성이로 조심스럽게 발을 디뎌야 하는 길을 생각한다. 교차로에서 만난 누군가가 멋지고 대단하게 보여 그 길에 합류하고 싶어진다. 세심한 조언과 용기를 북돋는 이에게 영감을 받아 그의 곁에 나란히 서서 걷고 싶어진다. 때론 사람들이 걷고 있는 길을 가만히 앉아 바라보고만 싶다. 길의 종류, 길의 방향, 그리고 속도는 정해진 것이 없다. 정해주는 이도 없다. 대신 영향을 주고받는 사람들과의 관계는 걸어가는 길을 견고하게도 독특하게도, 그리고 다른 길로 전환하게도 한다. 외곬으로 전연 관계의 영향 안에 들지 않을 것 같은 사람조차 그의 외곬이 행하는 마음과 행동은 사람을 향해 있을 수밖에 없다.


‘두 갈래의 길’은 이 그림책이 던지는 화두이다. 남녀가 등장하여 이성관계로 읽히고 해석될 여지가 높으나, 삶이라는 여정에서 맺게 되는 무수한 사람들과의 관계로 읽어도 무방하다. 평행선으로 내달려 일생 만나지 않을 관계인지, 2차선으로 맞붙은 동료의 관계인지, 온전히 한 길로 합쳐져 마음과 일상을 공유하는 관계인지는 내 길에 우뚝 선 나에게서 나올 대답이다. 대답이 정답은 아니듯, 관계도 정답이 없다.


단순하고 간결하면서 감각적인 그림이 마치 그래픽 디자인 작품을 보는 듯하다. 작가의 이력과도 무관하지 않다. 이토록 간결한 그림에서 이토록 많은 이야기와 생각이 떠오르다니, 그림이 담고 있는 함축성이 새삼 대단하게 느껴진다. 오늘도 자신의 길 위에서 서다 가기를 반복하고 있을 독자에게 잠시 관계의 좌표를 생각해 볼 기회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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