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한 주를 살아내는 힘

(그림책: 「월요일기」)

by 안은주

두 부자가 유난히 지치고 슬픈 얼굴로 베란다에 기대서 있다. 아빠와 아들의 축 처진 눈매가 일의 성격은 다를지라도 그것을 헤쳐가는 과정은 똑같은 무게의 힘듦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 일이 다가오는 시점이 제목으로 표기되어 독자를 이해시킨다. ‘월요일기’



일요일 저녁마다 괴롭고, 월요일마다 불행한 수돌씨와 수동이가 등장한다. 월요일이 다가온다는 생각만으로 깊은 한숨이 쉬어지고 아무 일도 손에 잡히지 않는다. 푹신한 소파에 앉아 상상하는 월요일 아침 빽빽한 지하철 속 풍경과, 다그치는 상사의 얼굴은 더욱 불편하고 감당하기 어려울 것처럼 느껴진다. 월요일마다 치러야 하는 시험과 방과 후 학원을 상상하는 수동이 역시 끌어안은 애착인형의 몽글거림과 부드러움과는 전혀 상반되는 느낌으로 월요일의 일과가 연상된다. 그들은 그렇게 폭신한 소파에 몸을 담그고, 털북숭이 인형을 양팔에 끌어안고선 재미없고 하기 싫은 일들의 천지인 월요일과 한 주의 시작을 괴로워한다.


예상했던 대로, 그리고 그들의 몸과 마음이 기억하는 대로, 월요일은 그들을 불행한 사람으로 몰아간다. 수돌씨의 업무엔 쉼이 주어지지 않고, 성과 앞에선 늘 작아진다. 수동이는 시험을 늘 망치고 수업은 재미가 없다. 그런데 이건 시작일 뿐이다. 불행의 시간들은 월요일을 필두로 금요일까지 전개될 예정이기 때문이다.


다행히도 이들이 한 주를 견딜 수 있게 해주는 방법이 있다. 단골 초밥집에서 좋아하는 음식을 먹는 것. 불행했던 월요일 일과를 마치고 저녁에 맛있는 초밥과 우동을 먹으면서 이들은 남은 불행할 요일들을 견뎌낼 힘을 얻는다. 그림책에서 처음 마주하는 수돌씨와 수동이의 불행하지 않은 얼굴이다. 음식을 먹는 그들의 눈이 초승달 모양이다.



일요일 저녁이 괴롭지 않을 요량으로 소파에 깊숙이 파묻힌 김에, 부드러운 인형을 껴안은 차에 재미없고 싫은 일과보다는 저녁에 맛볼 음식을 먼저 떠올리는 건 어땠을까. 한 주를 힘내서 살게 할 맛있는 음식을 생각하면 일요일 저녁의 괴로움이 한결 작아지지 않았을까. 그러기엔 업무가, 학업이, 삶이 주는 무게가 압도적이어서 위안이나 보상이 주는 설렘이 감지되지 않았던 것인지도. 그러고 보니 수돌씨와 수동이는 한 주를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견뎌내고 있었고, 견디는 방식으로 입맛에 맞는 음식을 한 끼 즐기는 것으로 그저 소박하게 대처하고 있었다.


누군가는 그것으로 충분히 한 주를 살아가고 삶을 이어갈 수 있으리라. 매 저녁을 맛있는 음식으로 차리지 않더라도 한 주에 하루라는 희소성으로 더 감사하고 더 유용하게 여기며 그 한 끼로 인해, 아니 어쩌면 그 한 끼를 위해 다음날을 부지런히 살아갈 수 있는 것이리라. 너무나도 수수한 부자의 ‘한 주 견뎌내기’ 방법이, 배가 채워짐에 따라 마음도 채워지면서 만면에 웃음을 띠고 있는 지금의 이 페이지에서 모쪼록 문제가 해결되어 해피엔딩으로 종결될 것으로 희망하고 싶으나...그림책은 이제 겨우 삼 분의 일 밖에 그림을 보여주지 않았다.



부자의 낙이었던 음식점이 문을 닫는 불상사가 벌어진다. 그들의 머리에 떠오른 생각은 단 하나, “이제 어떻게 일주일을 보낼 힘을 얻을 수 있을까?”뿐이다. 매우 당황한 이들이 선택한 방법은 그들 입맛에 맞는 다른 초밥집을 찾아 나서는 길이다. 고민도 대안도 필요 없는 즉각적이고도 일차원적인 대응이다. 불행한 나날들을 묵묵히 참아내는 데 절대적인 위안이 되어주는 완벽한 음식이 없는 삶이란 당장 다음날을 견뎌낼 마음의 양식 한 토막이 제공되지 않는 것이며, 이는 공복의 삶을 의미한다. 거의 한 계절 동안 적당한 초밥집을 찾으러 다녔을만큼 그들은 삶의 견딤과 음식과의 상관성에 대해 매우...지나치리 만큼 진심이었다.


겨우 그들 입맛에 맞는 음식점을 찾아내었고, 수돌씨와 수동이는 원래의 한 주 루틴대로 돌아갔으며 그들의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고 그림책은 말한다. 가뿐한 마음으로 출근과 등교를 한 그들. 그런데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문제가 추가로 불거졌음을 네 개의 사각 프레임으로 마치 자료 보고하듯 수돌씨와 수동이의 상태를 보고한다. 두 개의 네모 칸 안에는 수돌씨의 답답하고 괴로운 상황이, 오른편 두 개의 네모 칸 안에는 수동이의 속상하고 우울한 마음이 각각 그려지면서 새로운 맛집 발견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삶은 이전처럼 견뎌낼 만하지 않다고 말한다.



맛있는 음식이 그들을 살아가게 했다는 건 환상이었을까? 수돌씨와 수동이가 마음에 심어 놓은 자기기만이었을까? 우리는 종종 감당하기 어려운 현실 앞에 자기를 위장하면서 본인조차 모르게 자신을 속일 때가 있다. 한 주의 큰 버팀목이라 믿었던 음식이 실은 가짜 위안이었던 것처럼. 혹은 위안이 너무도 미약하여 삶의 먼 지점까지 미치지 못하고 그 효력을 잃게 되는 것인지도. 어느 쪽이든 그들의 위락 방식이 삶을 지탱할 만큼의 에너지를 주지 못했다는 것만큼은 사실이다.


부자는 월요일 아침, 돌연 바다로 향한다. 불행하지 않은 그들의 첫 월요일이자 온전히 자신을 위해 보낸 첫 하루이다. 괴롭지 않은 일요일 저녁과 불행하지 않은 월요일을 보내는 동안, 일주일을 견딜 수 있는 새로운 힘의 원천을 발견한다. 이것이야말로 그들 인생에서 전연 새로운 방식이자 도전이고 현재의 삶을 바꾸는 시도이다. 업무와 학업의 귀퉁이에서 불안해 하며 꼼지락대듯 쉬어가는 주말이기보다 그것과 등지고 전혀 새로운 활동에 온몸을 들이밀어 에너지를 쏟음으로써 오히려 에너지를 충전해가는 방식이 그것이다. 그림책 마지막 두 페이지, 네 컷의 그림에서 그들이 찾은 방식이 독자를 웃음 짓게 한다. 캠핑을 하고, 수중탐험을 하며, 놀이기구를 타고, 모래사장에 누워 있다...



독자의 한 주를 지탱하게 해 주는 위안은 무엇인가. 필자는 집에서 내리는 커피보다 투명컵에 잔얼음과 커피가 일대일로 찰랑거리며 고운 뜨개질 받침대에 내어오는 커피가 위안이 되어 주곤 한다. 그 위안이 몇 시간, 길게는 하루를 견디게 할 때도 있지만, 결국은 순간이고 찰나이다. 이 그림책을 읽으며 필자 역시 골몰하였다. 찰나를 영겁으로 이어줄 마법의 커피는 어디서 찾아야 할까. 한 주가 힘든 독자라면 이 그림책을 읽으며 필자와 함께 찾아보길 권한다.

keyword
이전 09화정작 중요한 문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