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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작 중요한 문제

(그림책: 「중요한 문제」)

by 안은주 Feb 19. 2025

   하루의 무게는 작지 않지만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일상의 평온함이 그 무게감을 완충시킨다. 내게 맞춰진 반복적이고 체계적인 일상은 지루할지언정 문제가 불거지지 않기에 평범함 속의 행복이라고 만족할 만하다. 그래서 우리는 ‘무탈’한 하루를 소망한다.




   문제는 아주 사소하게 발생한다. 그림책 속의 ‘네모’ 씨처럼 동전 크기만 하게 시작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것이 평온했던 일상을 흔들 만큼의 문제인지는 ‘나’의 판단에서 비롯되지 않는다. 문제가 나를 떠나 객관화되면서, 그 위중함이 한층 더해진다. 공교롭게도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은 일상을 어그러지게 하고 혼란을 가져온다. 그러나 ‘문제’ 앞에 속수무책인 우리는 이 과정을 ‘해결’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이때부터 문제는 ‘중요한’ 문제가 되기 시작한다. 네모 씨에게 발생한 동전 크기의 ‘탈모’가 일상을 마비시키는 ‘중요한 문제’가 되는 것처럼.


   문제 해결을 위해 찾은 병원에서 네모 씨는 의사로부터 문제가 ‘심각하다’고 진단받는다. 아울러 엄격히 지켜야 할 각종 처방을 듣는다. 네모 씨의 생각이나 의견은 전혀 작동하지 않으며, 행여 의견이 있다한들 전문가의 해결 방식 앞에 내어놓을 카드가 되지 못한다. 탈모가 문제로 판단된 순간부터 네모 씨는 문제를 발생시킨 진원지일 뿐이다. 동전만 한 크기의 탈모를 더 확장하지 않기 위해 네모 씨는 마음을 굳게 다잡는다. 탈모는 이제 네모 씨의 일상을 침범하는 아주 심각한 문제가 되어 버린 것이다. 


   의사의 처방은 이제까지의 일상을 완전히 뒤엎는다. 통풍이 중요하다는 이유로 모자를 쓸 수 없으며, 땀을 흘리면 안 된다는 이유로 네모 씨는 자전거 출퇴근도 새벽 달리기도 주말 등산도 그만두게 된다. 두피에 안 좋다는 이유로 좋아하는 온수 샤워도 자제해야 하고, 동물의 털이 악영향을 준다는 이유로 반려견과도 거리를 두게 된다. 즐기고 좋아하던 일들을 모두 자제해야 하는 한편, 싫어도 해야 할 일들이 생긴다. 먹기 싫은 채소와 해조류, 검은색 음식을 먹어야 하고, 시간 맞춰 약을 복용해야 하는 것, 약을 바르는 것과 두피 마사지, 침을 맞는 것까지.... 새로운 일상의 목록이 투입된다. 순조로운 일상을 역행하는 처방은 점차 네모 씨에게 무거운 짐으로 다가온다. 


  탈모에 스트레스가 최악이라는 의사의 경고대로, 노력하면 할수록 이상하게 네모 씨는 모든 스트레스의 중심에 서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그동안 네모 씨에게 행복과 즐거움과 기쁨과 만족감을 주었던 일들이 치료라는 명분으로 통제되면서 네모 씨는 점차 우울한 사람이 되어 버린 것이다. 동전만 한 크기의 탈모가 그토록 ‘중요한’ 문제였던가! 온갖 발버둥에도 나아지지 않고 오히려 심려만 키우는 네모 씨의 불안정한 하루가 흩어져 날리는 머리카락 속에서 기울어간다. 어느새 네모 씨는 쓰면 안 된다는 모자를 깊숙이 눌러 쓰고 거리를 걷고 있다.




   

   집에 돌아온 후, 네모 씨는 안 되는 줄 알면서 뜨거운 목욕을 한다. 마음이 점점 편안해지면서 그동안 밀쳐두었던, 너무나 좋아했었던 것들이 떠오르기 시작한다. 따뜻한 샤워기 물을 맞으며 눈을 감은 네모 씨의 얼굴이 평화롭다. 네모 씨의 마음을 글이 대신 이야기한다. ‘너무 자연스러워서, 좋아하는 줄도 모르고 당연하게 해 왔던 것들.’ 그리고 여기서 그림책이 말하지 않은 이야기가 독자의 입에서 무심결에 터져 나오게 된다. ‘정말 중요한 건 그거였던 거야.’라고.


   결국 네모 씨의 탈모는 치료되지 않았다. 그리고 네모 씨는 ‘중요함’의 저울질에서 스트레스를 받지 않았던, 만족감을 느꼈던 이전의 평온한 일상을 선택한다. 역행하는 일상에서 오는 무게감으로 탈모가 낫지 않을 바에야 차라리 순조로운 일상으로 회귀하는 것이 현명하다고 판단했음 직하다. 무게감은 삶을 지치게 하고, 지속하여야 할 의지를 감소시킨다.


   완만한 산등성이를 달려 올라가는 네모 씨. 그의 뒤로 불그스름한 색의 잘 닦여진 길이 드러난다. 그리고 손에 쥔 검정색의 밀대 옆으로는 먼지 같은 오라기가 흩어진다. 이전의 감각이 네모 씨의 상념 안에서 서서히 되살아난다. 차고 신선한 새벽 공기, 자전거가 가르던 둥글둥글한 바람, 복슬복슬한 반려견의 촉감. 네모 씨의 마음이 따뜻한 물속에서 이완되고 잔잔한 흐름대로 몸이 부유한다. ‘네모 씨는 오랜만에 활짝 웃었어.’ 그림책이 네모 씨를 향해 흐뭇하게 미소를 띤다.


   활짝 웃는 네모 씨의 얼굴 아래 세면대로 머리카락이 수북하다. 독자는 급히 이전 그림을 다시 넘겨볼 것이다. 그리고 깨닫는다. 그 산등성이는 네모 씨의 머리였다! 밀대를 쥐고 산등성이에 길을 내던 그림은 네모 씨가 스스로 삭발하는 모습이었다. 동전 크기만 한 탈모는 이제 자취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탈모가 사라지면서 ‘중요했던’ 문제 역시 사라졌다.

 



   우리 삶에 정작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이 그림책이 묻는다. 무언가에 매달려 있느라 놓치고 있는 것들을 한 번쯤은 되돌아보라고 이야기한다. 동전 크기의 탈모로 은유 될 수 있는 것들이 우리 삶에는 아주 많다. 일에 매달리느라 건강을 놓치는 직장인, 아이의 성적만 점검하느라 마음을 읽어주지 못하는 부모, 못 하는 하나에 매몰되어 잘 할 수 있는 여러 개를 돌아보지 못하는 우리.... 그림책에서 네모 씨가 삭발하듯, 건강을 놓치지 않으려 퇴사한다거나, 학원을 모두 끊는다거나, 뭐든 잘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내세울 수도 있을 것이다. 네모 씨의 행보가 독자의 선택에 영향을 줄 수 있을지 모르나, 결국 사안의 ‘중요성’과 그것을 ‘문제’로 이름 붙이는 것은 개인의 판단이다. 그 문제가 동전 크기보다 훨씬 작아지거나, 걷잡을 수 없이 커지거나, 완전히 사라지거나 하는 과정 역시 개인이 생각하는 ‘중요함’의 기준으로 조정될 것이다.


   그림책은 유쾌하게 끝을 맺는다. ‘동전 크기만 하게 시작된 문제는 이렇게 끝났지.’ 

별것 아닌 일로 소중한 삶의 순간들을 흘려보내고 있지는 않은지, 별것이라 할지언정 모든 소중함의 우위에서 나의 삶을 좌지우지하고 있지는 않은지, 네모 씨와의 만남을 통해 독자의 ‘중요한 문제’는 무엇인지 생각해 보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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