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남자 만나지 말라.' 재미로 썼던 나의 끄적임을, 백만 명이 넘는 분들이 읽어주셨다.
재미로 썼다지만, 지난날의 망한 연애들이 주는 나의 뼈아픈 경험들이 녹아져서 많은 언니들에게,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 바보같이 홀라당 넘어가는 나 자신에게 쓰는 말이었는데, 참 많은 반응을 불러왔던 것 같다.
그중에서 ㅄ이라는 격한 표현은 아무래도 너무한 거 아니냐는 반응.
글쎄,
서른이라는 나날을 보내며 연애를 그래도 해본 사람이라면, 지난날 누구나 한번쯤은 누군가에겐 ㅄ이지 않았을까? 나 역시 그 누군가에겐 ㅄ이었고 ㅆㄴ이었으니까.
무지에서 나왔던 지질함과 미성숙함을 겪고, 상처를 주고받으며,
연인이라는 관계라는 경험을 통해서 '나' 자신을 점점 바로 알게 되었던 것 같다.
아무리 좋은 사람도, 나와 맞는 사람이 아니라면 아무 상관이 없다. 아무리 이런 남자를 만나지 말라라는 조건을 피해도, 항상 변수라는 것은 있는 것이다. 그러나, 아프지 않고 싶었고, 나만큼은 좋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 아팠기 때문에, 내가 겪은 그 끔찍한 상처를 감히 누군가에게 주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많은 노력을 했을 뿐이고, 사랑할 때엔 최선을 다하려고 한다.
'이런 남자를 만나세요.'라고 썼지만, 이건 남자 여자를 떠나서, 지금도 나 자신에게 적용시키려고 많이 노력하는 부분이다. '사랑'이라고 느끼는 감정은 연인 관계를 시작할 때에 분명 필요한 연료이지만, 안타깝게도 감정이라는 것은 영원히 기댈 만큼 튼튼하지 않다. 그러나 '사람'은 남는다. 콩깍지라는 감정이 지나가고, 결국 어떠한 사람과 함께 하느냐가 남는 것이다. 그것은 의지로 유지되며, 의도적인 습관으로 감정보다 더 깊은 차원의 관계로 강해지는 것이다.
그렇기에, 이 글은 단순히 '좋은 남자'를 찾기 이전에, 나부터 좋은 사람인지의 여부를 체크하는 수단으로 참고하면 될 것 같다.
1. 연락이 없어도 불안하지 않은 사람
남녀를 떠나서 인간의 촉이란, 참 신기하다. '바빠서 그래.'라는 핑계로 연락을 하지 않으면, 머리로는 '응, 그래. 내가 이해해야겠다.'라는 마음을 먹어도, 무언가의 찝찝함과 서운함이 밀려오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그것은 당신에게 충분한 신뢰를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따가 전화할게.'라는 말을 하면, 여자는 하염없이 기다리게 된다. 울리지 않는 핸드폰을 무의식적으로 자꾸 바라보게 된다. 그리고 자기 전까지 배게 옆에 둔 핸드폰이 울리지 않으면, 그렇게 불안한 마음을 안고 잠을 자게 된다. 그리고 점점 마음이 닫힌다.
연락이 없어도 불안하지 않게 하는 남자가 있다.
'이따가 연락할게.'라는 사소한 약속을 꼬박 지키는 사람이다. '나 오늘 어디 갈 거고, 집에는 언제 들어갈 건데, 너무 늦은 시간이라 전화는 못할 것 같고 자기 전에 톡은 할게.'라고 세세하게 말해주는 사람이다. 이 것은 연락 빈도의 여부를 떠나서, 당신의 걱정하는 감정을 배려하고 있다는 뜻이다. 정말 바빠서 연락이 되지 않아도, 발 뻗고 잘 수 있게 해주는 남자는 당신에게 신뢰를 주는 남자다.
2. 나의 결핍을 고치고 싶게 만드는 사람
나를 무조건 이해해주는 사람이 좋은 사람일까? 나의 바닥을 다 보여줘도 되는 사람, 나의 ㅈㄹ을 무조건 다 받아주는 사람이 좋은 사람일까?
좋은 사람은 맞지만, 좋은 관계는 아니다. 한 없이 넓은 사람처럼 보인다 해도, 당신을 끝까지 이해해주는 사람은 없다. 왜냐하면 사람은 누구나 이해받고 싶어 하고, 결국에는 서로 존중하는 따뜻한 관계를 원한다. '내가 막 대해도, 이 사람은 나를 떠날 수 없어.'라는 생각을 가지게 된다는 것은, 관계에 갑과 을이 형성되었다는 것이다. 건강한 관계란, 나의 바닥을 다 이해해달라고 강요하는 것이 아니다. 나의 부족함과 결핍이, 그 사람을 혹여나 아프게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으로 늘 고치려고 노력하고 조심하는 것이다. 나를 더 나은 사람으로, 나도 모르게 이끌어주는 사람이다.
나의 부족함과 결핍으로 인하여, 그가 아픈 것을 보았는가? 그가 아픈 것을 볼 때에, 아무렇지도 않다면 당신은 그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다. 그를 존경하는 것이 아니다.
3. 한이 없는 사람 (높은 자존감의 동기가 바른 사람)
이런 말을 하면 사람들이 잘 믿지 않는데, 나의 ex들의 외모는 사실 그다지 썩.. 특출 나지 않다.
외모를 보지 않고 됨됨이를 보려고 많이 노력한다. 대머리도 있었고, 키가 나보다 작은 -내 키 참고로 162cm- 남자도 만나보았다.
존경할만한 부분이 있었다. 내가 잘하고 싶어 하는 그 무엇을 월등하게 잘했다. 그런데, 그 월등하게 잘하는 부분이 어느 동기에서 나왔는지는 잘 점검하지 않았다. 못생기거나 학력, 능력이 좋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자존감이 문제다. 그 월등한 부분이, 열등감에서 나온 사람이 있다. 예를 들면, 키가 엄청 작은데 의사가 된 사람인데, 여자를 엄청 만나면서 자신의 능력을 꼭 입증시키려 하는 사람처럼 보였다. 이런 사람은 자격지심으로 인하여 당신을 어떻게든 깎아내리고 자신이 우월함을 입증하며 만족을 얻는다. 내 실수를 공개적으로 망신을 주거나 나의 외모나 성격을 비하한다. 한이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연애 중에 이성의 유혹이 있을 때에도, 자존감이 높은 사람들(한이 없는 사람)은 유혹을 이길 여유가 있다. 흔들리지 않은 신념과 의지로 이겨내는 것에 익숙하다. 그러나 열등감과 한이 있는 사람은 당신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내가 아닌 다른 이성의 대시가 있을 때에 (평소에 흔치 않는 기회라고 생각해서인지) 계속 흔들린다.
기억하자. 사람에겐 초심, 중심, 진심이 있는데, 그중에 제일은 '중심'이라는 것을.
4. 문화가 맞는 사람
너 같은 여자를 누가 감당할 수 있을까?라는 말을 많이 듣는다.
그 말 뜻을 이해하는 데에는 한참이 걸렸다.
내가 행복을 느끼는 순간은 사소하지만 참 다양하다. 혼자 잘 지내려고, 좋은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다 보니 잔재주가 많아졌다. 음악을 하고, 춤을 추고, 그림을 보고, 사람들에게 요리를 해주고, 다국어를 하고, 이렇게 틈틈이 글을 쓴다. 나는 끼가 많다. 그러나 많은 남자들은 끼가 많으면 '별난 사람'이라고 정의하고, 부담스러워한다.
꼭, 같은 취미를 가지지 않아도 된다. 그러나 당신이 가진 문화를 수용하고 인정하는 사람을 만나야 한다. 친구 중에 음악을 하는 친구가 있다. 이 친구의 애인은 '돈'이라는 문화가 가장 큰 것이므로, 음악을 돈을 위한 하나의 수단으로밖에 이해하지 못하였으며 그것을 즐기는 것을 시간낭비라고 생각하여, 친구가 음악으로 큰돈을 벌지 못한다고 무시하였다.
문화가 맞는다는 것은, 서로가 본래 가진 가치가 비슷하다는 것이다. 나는 음악을 하지 못해도, 즐길 줄 아는 사람을 만나고 싶다. 미술관에 가본 적이 없더라도, 작가의 삶에 대해서 이해하려고 노력을 하는 사람을 만나고 싶다. 그가 다국어를 못해도, 춤을 못 추더라도, 글을 쓰는 취미를 갖지 않는다 하더라도, 지금까지 내가 쌓아온 문화를 무시하지 않고 존중해주는 사람을 만나고 싶다. 나처럼 건전한 취미가 있는 사람 말이다.
5. 감사할 줄 아는 사람.
나에게 이상형이 뭐예요?라고 물어보면 '고생을 많이 해본 사람이요.'라고 대답한다.
사소한 것에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내가 누리는 사소한 것들을 당연하다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일 수 있다는 것이다.
겨울에 찬물로 목욕을 해본 사람은, 따뜻한 물이 귀하다는 것을 안다.
매일 귀찮아서 밥을 잘 챙겨 먹지 않은 사람은, 나에게 요리를 해주는 그 수고스러움이 황송하다.
약속을 지키지 않는 사람들로부터 마음을 다친 사람은, 작은 약속까지 기억해주는 그에게 더없이 감사하다.
삶이 지쳐보고 절망해본 사람은, 따뜻한 사람에게 함부로 대하지 않는다.
고생을 해본 사람이라면, 내가 누리는 것들 중에 당연한 것은 없다. 그 누군가의 희생과 노력이 있기 때문이다. 이 것을 아는 사람이라면, 따뜻한 사람이다. 당신의 존재만으로도 감사해하는 사람, 당신의 배려를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지 않고 고마워하는 사람. 이런 사람은 정말 놓치지 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