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부터 나는 공사현장에서 겪은 고난 속에서 만난 하나님을 간증하려 한다.
현장소장 15년 동안 대형공사 4개를 수행하면서 참으로 많은 하나님의 은혜를 입었지만 그중 잊을 수 없는 사건 중의 하나이다.
이름만 대면 누구나 다 아는 대기업에서 부장으로 승진했던 그해, 나는 여수에 있는 모 화학 공장에 현장소장으로 파견되었다.
화학 공장에 필요한 발전설비(스팀 및 전기를 공급)를 설치 및 시운전하는 공사였다.
푸른 꿈을 안고 현장에 나갔지만, 현장소장은 그리 만만한 자리가 아니었다.
1997년부터 우리나라에 발생했던 외환 유동성 위기는 내 공사에도 치명타를 안겨주었다.
1997년 11월 22일 김영삼 대통령이 대국민 담화를 발표하여 대한민국 경제를 국제통화기금(IMF) 관리하에 운영토록 한 바로 그 시기이다.
당시 대한민국 경제는 풍전등화와 같은 매우 위태로운 상황으로 치닫고 있었다.
내가 수행한 공사는 대통령 담화 직전에 완공되었으니 가장 어둡고 암울한 시기를 거친 셈이다.
당시 우리나라는 문민정부의 잘못된 금융정책으로 많은 기업이 무분별한 차입에 의존하며 과잉투자를 벌였다.
이로 인해 수많은 공사가 난립하며 대부분 현장은 쓸만한 숙련된 작업자가 부족하여 애를 먹었다. 게다가 많은 회사가 자금난으로 줄도산하기 시작하면서 우리 현장도 예외 없이 주 협력사인 기계업체와 전 계장 업체가 큰 산을 넘지 못하고 부도가 나고 말았다.
그런 어수선한 가운데 한 사람의 생명을 앗아가는 안타까운 대형안전사고까지 발생하였다.
안전사고로 검찰청을 들락거리고, 부도난 협력사들을 정산해주고, 재입찰을 통해 새로운 협력사를 확정하기까지 옆도 돌아보지 못하고 정신없이 달리고 뛰어야 했다.
그런 역경을 딛고 겨우 설치공사가 마무리 되고 시운전에 돌입했는데 설상가상으로 더 큰 문제가 발생하고 말았다.
본사를 통해 입고된 대형 수처리 탱크 2대가 시운전 과정에서 탱크 내부가 몽땅 내려앉아 버리고 말았다.
현장에서 수지를 산처럼 쌓아놓고 그것들을 수정 보완하고 재 시운전할 때까지 들인 노력과 마음고생을 어찌 다 설명할 수 있을까!
그런 고생이 무색하게 공사가 지연되면서 계약금액의 30%에 해당하는 지체상금이 발생하고 말았다. 지체상금이란 공사가 지연된 일수만큼 계약금액에서 공제해 버리는 제도를 말한다.
이로 인해 본사와 현장 간에 공사 지연에 대한 책임 공방이 벌어지기 시작하였고 결국 본사 책임자와 다툼이 일어나 원수지간이 되고 말았다.
사실 그 지연 건은 본사가 발주하고 검사까지 마무리하여 현장으로 납품한 완제품임으로 마땅히 본사에서 책임질 일이다.
그러나 본사는 현장소장의 무한책임을 강하게 주장했다.
공사를 마무리하고 본사에 복귀하자 직속 상관인 그는 나를 벼르고 있었다.
팀장 회의 때마다 사사건건 우리는 부딪쳤다.
지체상금을 당장 되돌려 놓으라고 으름장을 놓았다. 다시 책임 공방이 오가고 매번 팀장 회의는 그 일로 진흙탕 회의가 되고 말았다.
한가지 희망은 공사 진행 과정에서 발생한 설계변경이었다.
다행히 그 금액은 지체상금을 상회하고 있었다.
일이 안 되려니 발주처 담당 부장까지 협의가 완료되었지만 발주처 최고 책임자는 승인을 거부했다.
발주처와의 관계, 상사와의 관계가 얼크러져 일 년이란 세월이 금세 지나가 버렸다.
‘결국, 옷을 벗고 나가야 하나?’ 고민하고 있을 때 주님이 찾아와 주셨다.
어느 주일 예배에 마치 내 고민을 상의한 것 같이 내 문제와 관련된 모든 말씀을 쏟아 부어주셨다.
원수를 사랑하라는 제목의 설교였다.
믿음이 있다는 자가 원수를 사랑하지 않고 자기 의만 들어낸다고 강하게 책망하셨다.
원수는 주님께 맡기고 원수의 죄까지도 자신의 죄로 회개하라는 말씀은 까맣게 잊고 싸움질만 한다고 나무라셨다
무늬만 믿는 자요. 실상은 믿지 않는 자와 하나도 구별되지 않는 가짜임을 지적하셨다.
그렇게도 하나님 영광을 드러내지 못하는 자가 어찌 주변 사람들을 하나님 나라로 인도할 수 있겠냐고 호통을 치셨다.
특히 다투는 자는 당사자는 물론이요 듣는 자까지도 망한다는 사실을 잊은, 믿음이 없는 자라고 책망하셨다.
그날 목사님을 통하여 전달된 하나님 말씀은 바리새인과 서기관 같은 나의 믿음을 송두리째 갈아엎게 했다.
비록 늦은 감은 있었지만 나는 다시 마음을 다잡았다.
그로부터 매일 새벽에 상사를 위하여 먼저 기도하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분이 밉지 않았고 오히려 친절하게 다가갈 수 있게 되었다. 나만 변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분 또한 나에 대한 미움이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성령님이 그를 인도하여 선한 마음으로 바꾸어주었다. 우리 사이는 급속도로 가까워졌다. 오히려 주변 사람들이 더 놀라워했다.
그렇게 상사와 관계 개선이 되자 하나님은 발주처와 협의 중인 설게 변경에 대해 손을 대셨다.
어느 날 발주처 최고 책임자가 우리 교회에 새 가족으로 등록했다.
목사님의 설교 말씀이 너무 좋다는 소문을 듣고 서울에서 부산에 있는 우리 교회를 찾아왔다고 했다.
이것을 어찌 우연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그렇게 우리는 한 교회에서 예배를 드렸고, 설계변경은 급속도로 재협의 되어 그 지긋지긋한 지체상금 문제는 기적적으로 일단락이 되었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결과였다.
사람들은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났느냐?’라고 의아해했지만 나는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돌리고 감사와 찬양을 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