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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_간도에서 온 사나이 1_44_사토의 염원과 다나카

간도에서 온 사나이_피빛 운석과 복수의 화신

by woodolee

“사령관님! 아직도 결정을 내리지 못했습니까?”


야마모토가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다나카를 슬쩍 떠봤다.


“뭐라고?”


다나카가 깜짝 놀랐다. 야마모토의 갑작스러운 질문에 순간 당황했다.


아먀모토가 말을 이었다.


“사령관님은 … 아직도 소년처럼 순수하신 것 같습니다. 하하하!”


야마모토가 고개를 젖히고 큰소리로 웃기 시작했다.


“…….”


다나카가 아무런 말도 못 했다. 수석 부관인 야마모토의 도발에 아무런 대꾸도 못 했다. 얼굴이 뻘게져서 어찌할 바를 몰랐다.


한편 에리카는 2층 손님방을 향해 급히 걸어갔다. 신우한테 전화해야 했다.


그때 수행 비서 집무실 문이 열렸다. 사토가 문을 열고 복도로 나왔다.


“안녕하세요.”


에리카가 건성으로 인사하고 걸음을 재촉했다. 자기 전에 신우의 몸 상태를 확인하고 싶었다. 가슴에 박힌 돌덩어리가 신우를 계속 괴롭힐 거 같아 마음이 급했다.


사토가 서두르는 에리카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아가씨 ….”


에리카가 손님방 방문을 열었다. 곧 문이 닫혔다.


사토가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고개를 잠시 숙였다가 걸음을 옮겼다. 그는 급한 일이 있었다. 야마모토가 다나카와 면담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사토와 야마모토는 다나카를 같이 모시는 부관이지만, 둘의 사이는 심상치 않았다.


그들은 다나카의 총애를 다투는 맞수이자, 지향하는 바가 다른 숙적이나 다름없었다.


사토는 항상 군인으로서 명예를 중시하는 사람이었고, 야마모토는 목적을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냉혈한이었다.


다나카는 이 두 사람을 쌍두마차로 해서 한쪽으로는 명예와 다른 쪽으로는 피도 눈물도 없는 잔혹함을 추구했다.


“음!”


사토가 헛기침했다. 다나카 집무실에 들어가기 전, 옷매무새를 고쳤다. 혁대를 단단히 조여 매고 모자를 똑바로 썼다.


모든 준비기 끝나자, 문을 두드리려고 한 손을 들었을 때 야마모토의 비열한 목소리가 들렸다.


“에리카 ….”


야마모토가 에리카에 대해 말했다.


사토가 이를 악물었다. 집무실 문을 두드리지 않고 그대로 서서 야마모토의 말을 엿들었다.


야마모토가 에리카의 이름을 부르다가 말을 멈췄다. 고개를 돌리며 사방을 살폈다. 별 이상이 없자, 다나카에게 은밀히 말했다.


“이제, 에리카를 신부로 맞이하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뭐, 뭐라고? 말도 안 되는 소리야!”


다나카가 크게 외쳤다. 마치 본심이 들킨 거 같았다. 화들짝 놀라서 더는 말을 잇지 못했다.



쿵!



갑자기 문을 여는 소리가 들렸다.


사토가 문을 거칠게 열고 성난 표정으로 안으로 들어왔다. 날카로운 눈초리로 야마모토를 노려보기 시작했다.


야마모토가 실실 웃기 시작했다. 그가 말했다.


“어이! 사토 중좌, 총사령관님께 보고할 게 있는 모양이지? 너무 늦은 거 같은데 ….”


야마모토가 비아냥거리며 사토를 맞이했다.


“야마모토 대좌님도 늦은 거 같습니다.”


사토가 지지 않고 응수했다.


부관들이 신경전이 벌이자, 다나카가 불편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다나카의 심기를 알아챈 듯 야마모토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허리를 굽혀 상관에게 정중하게 인사하고 말했다.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총사령관님.”


“그래, 어서 가봐. 수고했어.”


야마모토가 걸음을 옮겼다. 문 앞에 서 있는 사토를 향해 걸어오더니 귀에다 속삭였다.


“건방진 자식!”


둘만 들을 수 있는 작은 소리였다. 사토의 얼굴이 굳어졌다.


“그럼, 수고해. 사토 중좌.”


야마모토가 환하게 웃으며 사토를 격려했다.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으으으으~!’


사토가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그는 야마모토의 무례한 행동에 화가 치밀었지만, 다나카 앞에서 싸울 수는 없었다. 이에 끓어오르는 분노를 꾹 참고 상관에게 걸어갔다.


“자네 웬일인가? 아직 퇴근하지 않았나?”


다나카가 귀찮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이제는 쉬고 싶은 눈치였다.


사토가 정색하더니 다짜고짜 다나카에게 따져 묻기 시작했다.


“야마모토 대좌의 말이 무슨 뜻입니까?”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사토의 갑작스러운 추궁에 다나카가 기분이 상한 듯 크게 소리쳤다.


“총사령관님, 아가씨를 제게 주기로 한 약조를 … 벌써 잊으셨나요?”


사토가 차분하면서도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


“뭐, 뭐라고? 내가 언제? 난 그런 소리를 한 적이 없어.”


다나카가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을 받았다. 말을 마치고 사토를 매섭게 노려보기 시작했다.


“어찌 이러십니까? 사내대장부가 한 입으로 두말을 하다니요!”


사토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뒤로 돌아서더니 문을 향해 걸어갔다. 방문을 단단히 잠그고 다나카를 잠시 뚫어지게 쳐다봤다.


두 사내의 거친 숨이 방에 가득했다.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다나카가 몹시 못마땅한 표정으로 입을 꾹 다물었다.


사토가 창문 쪽으로 걸음을 옮기며 입을 뗐다.


“그날! … 제가 모든 걸 덮어 준 걸 잊지 않으셨죠?”


“으으으!”


다나카가 무척 괴로운 듯 신음을 내뱉었다. 사토의 소리에 허가 찔린 듯 움찔했다. 그러다 이를 악물고 소리쳤다.


“그래서 … 내가 네놈의 뒤를 봐줬잖아!

너는 하찮은 출신에 불과했어. 그런데도 중좌까지 진급했잖아. 그건 다 내 덕이야!”


다나카가 분을 삭이지 못하고 주먹을 부르르 떨었다.


사토가 고개를 흔들었다. 그가 크게 웃으며 말했다.


“하하하! … 그렇게 말씀하시다니 너무 섭섭하군요. 전 여태까지 충성을 다해서 총사령관님을 모셨습니다. 진급 같은 건 제가 바라는 게 아닙니다. 제가 바라는 것은 단 한 가지입니다.”


“원하는 게 … 여전히 에리카냐?”


다나카가 송곳니를 드러내며 말했다. 흡사 호랑이의 송곳니 같았다.


“아가씨만 제게 주시면 제 몸을 바쳐 결사보국 하겠습니다. 그리고 … 그날의 일을 영원히 묻겠습니다. 만약, 제가 입을 열어서 아가씨가 그날의 진실을 알게 되면 어떻게 될까요? … 잘 생각해보세요, 총사령관님!”


협박이었다. 수행 부관에 불과한 사토가 하늘 같은 헌병대 총사령관을 협박하기 시작했다.


“…….”


한동안 다나카가 말이 없었다. 괴로움에 몸을 떨 뿐이었다. 그러다 힘들게 입을 뗐다.


“좋다! 에리카를 너와 맺어주겠다. … 사토 중좌!”


사토가 환하게 웃었다. 간절히 바라는 걸 얻은 아이 같았다. 두 손에 커다란 사탕을 든 거 같았다. 그가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좋습니다. 그럼, 전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약조를 반드시 지켜야 합니다. 나중에 딴소리하시면 저도 어쩔 수 없습니다. 아가씨께 사실대로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사토가 말을 마치고 다나카에게 정중히 인사했다. 그리고 밖으로 나갔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집무실에 다나카 혼자 있었다. 한 남자가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숨소리가 점점 커졌다. 분노의 수위도 점점 올라만 갔다.


“하아! … 저놈을! 저놈을!!”


다나카가 이를 악물었다. 오른손으로 바짓자락을 있는 힘껏 움켜잡았다. 옷이 찢어질 거 같았다. 치를 떨었고 눈에서 분노가 활활 타올랐다. 살벌하고 차디찬 냉기가 온몸에서 뿜었다.


사토가 급히 걸음을 옮겼다. 쿵쾅거리는 가슴을 부여잡고 집무실로 돌아왔다.


방금 잔인무도한 다나카에게 목숨을 걸고 대들었다. 미친 듯이 뛰는 가슴을 달래야만 했다. 이에 진한 커피를 타 마시면서 숨을 골랐다.


“젠장!”


사토가 커피를 마시며 그날을 떠올렸다.


13년 전 그날, 스스로 명예를 더럽힌 날이었다.


그는 한미한 가문 출신이었다. 출신이 별로라서 해서 꿈이 작지는 않았다. 어릴 적부터 장교가 되겠다는 큰 꿈을 갖고 있었다. 그래서 첫 단추로 일본사관학교에 도전했지만, 그만 낙방하고 말았다.


사토는 보기 좋게 떨어졌지만, 장교가 되겠다는 꿈을 포기할 수 없었다. 이에 만주국 군관학교에 도전해 간신히 합격했다.


이후 학교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려고 갖은 노력을 다했지만, 막상 졸업 성적은 신통치 않았다.


졸업 후, 전장에 나가서 공을 세워보려고 온 힘을 다했지만, 출신이 좋지 않아 좋은 보직을 맡을 수도 없었다.


사토는 앞날이 암울했지만 그래도 계속 버티기로 했다. 그러다 운 좋게 에리카 아버지인 오오하라의 부하가 되었다. 사토의 노력을 인정하는 오오하라 덕분에 좋은 보직을 얻을 기회를 잡았다.


그렇게 출세의 끈을 잡았을 때. 에리카의 부모님들이 죽는 비극이 발생했다. 그는 끈 떨어진 뒤웅박 신세가 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인생은 새옹지마’라 했다. 새로운 뒷배인 다나카가 등장했다.


사토는 다나카 덕분에 그동안 밀렸던 진급을 할 수 있었다. 좋은 출신의 동기보다 더 빠르게 중좌 자리에 올랐다.


한마디고 고속 진급을 했다.


갑자기 사토의 얼굴이 붉어졌다. 부끄러움을 느낀 거 같았다.


뒷배를 다나카로 갈아타던 날!


그는 그날을 생각하면 오금이 저렸다. 에리카에게 몹쓸 짓을 했다는 생각에 그녀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볼 수 없었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그녀가 꼭 필요했다. 이 세상에서 자기만큼 잘 해주는 남자는 없을 거라며 합리화했다.


사토는 에리카의 미모뿐만 아니라, 목을 조여오는 죄책감을 덜기 위해서라도 그녀가 꼭 필요했다.


밤이 늦었다. 관저 사람들도 일을 마치고 쉬고 있었다.


늦은 밤에 현관문이 열렸다.


에리카와 요시코가 수다를 떨면서 밖으로 나왔다. 바람 쐬러 나가는 거 같았다.


“응?”


갑자기 현관문 열리는 소리가 들리자, 사토가 창문으로 달려갔다.


그는 불길함을 느꼈다. 에리카와 요시코가 예쁘게 단장하고 어딘가로 나서자, 두 눈을 크게 떴다.


혹, 에리카가 공원에서 만났던 그 남자를 다시 만날 거 같아 안절부절못했다.


“정원을 한 바퀴만 돌다 들어가자. 오늘 달빛이 너무 좋아.”


“맞아요. 그윽한 달빛이에요.”


자매가 달빛을 즐겼다. 즐거운 마음으로 정원을 거닐었다.


“휴우!”


사토가 안심했다. 에리카가 정원만 거닐 뿐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다행히 그 남자를 만나러 나가지 않았다.


“그놈은 … 대체 뭐 하는 놈이지?”


사토가 신우를 생각했다. 그러자 신우한테 망신당했던 일이 떠올랐다. 자존심과 명예의 상징인 대검이 두 동강 난 일이었다.


그는 신우의 당당한 태도와 엄청난 힘에 두려움을 느꼈다. 그래서 신우하고는 다시는 엮이고 싶지 않았다.


신우를 상대하기보다는 다나카를 압박해서 하루라도 빨리 에리카와 혼례를 치러야겠다고 생각했다.


다나카는 에리카의 후견인이었다. 에리카가 믿는 사람이었다. 다나카가 혼례를 주선한다면 에리카도 이에 응할 거 같았다.


그런데 문제는 다나카도 에리카한테 마음이 있는 것 같았다. 확실하지는 않지만 그러한 낌새를 느낄 수 있었다.


눈엣가시 같은 야마모토가 다나카와 에리카를 엮으려는 것이 눈에 훤히 보였다.


그것은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사토가 벽으로 걸어갔다. 벽에 걸린 검거치대에서 긴 칼의 손잡이를 잡았다. 그리고 ‘휙’ 뽑았다.


날카로운 칼이 빛을 받아서 번들거렸다.


책상 서랍에서 흰 천을 꺼내더니 칼을 정성스럽게 닦기 시작했다. 그렇게 혼란한 마음을 다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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