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소설_간도에서 온 사나이 1_43_원수의 정체

간도에서 온 사나이_피빛 운석과 복수의 화신

by woodolee

명호를 기다리다 지친 신우가 잠이 들었다. 곤히 잠들었을 때 깨우는 소리가 들렸다.


“신우야! 어서 일어나.”


명호였다. 뭐가 그리 신이 나는지, 기분이 아주 좋아 보였다.


“… 왜 이리 늦게 온 거야? 걱정했잖아!”


잠에서 깬 신우가 약간 짜증을 내며 명호에게 말했다.


“그게, 일이 좀 있었지. 하하하!”


명호가 말을 마치고 거울 앞으로 걸어갔다. 품에서 머리빗을 꺼내더니 머리를 빗으며 빙그레 웃었다.


신우가 명호에게 말했다.


“무슨 일인데? 나도 좀 알자.”


“흐흐흐!”


“어서 말해.”


신우가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명호를 다그쳤다. 명호가 환하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그게, 옥희 … 아! 그것보다 중요한 게 있어. 진짜 중요한 정보를 알아냈어.”


“뭐? 진짜 중요한 정보라고? 그게 대체 뭔데?”


명호가 대답 대신 품에서 종이 한 장을 꺼냈다. 종이를 신우에게 건넸다.


신우가 종이를 받고 내용을 살펴보았다. 모르는 한자가 잔뜩 있었다.



----------------------------------------------

山本次郎 大佐 総督府 憲兵隊司令部 総司令官 首席副官


田中哲也 中将 総督府 憲兵隊司令部 総司令官

----------------------------------------------



그는 하늘 천(天), 돌 석(石), 내 천(川) 정도의 한자만 아는 수준이었다. 민망한 표정을 짓더니 명호에게 종이를 돌려줬다. 그가 말했다.


“명호야! 모르는 한자가 너무 많다.”


“아! 참, 그렇지. 내가 읽어줄 테니 잘 들어.”


명호가 목청을 다듬고 글을 읽기 시작했다.


“야마모토 지로 대좌 총독부 헌병대사령부 총사령관 수석 부관.

다나카 테츠야 중장, 총독부 헌병대사령부 총사령관.”


야마모토 지로와 다나카 테츠야라는 말에 신우의 두 눈이 단팥빵처럼 커졌다. 그들은 부모님과 마을 사람들을 죽인 원수였다.


갑자기 뒤통수를 강타하는 놀라움이었다. 신우가 몸을 바들바들 떨었다. 그가 떨리는 목소리로 크게 외쳤다.


“헌병대 총사령관 부관과 헌병대 총사령관이라 말이야?”


“맞아.”


명호의 말에 신우가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원수의 정체가 드러났다. 한 명은 총독부 제3인자인 헌병대 총사령관이었고 다른 자는 그의 수석 부관이었다.



**




다나카 헌병대 총사령관이 업무를 마치고, 관저로 향했다. 그는 요즘, 일본제국에 반역하는 자들을 색출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한국의 독립을 꿈꾸는 자들과 천황제를 부정하고 민주주의를 지향하는 불순분자를 처리하느라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그에게 있어 독립군은 항상 골칫거리였기에 그다지 대수롭지 않았다. 하지만, 민주주의자들은 달랐다.


그들은 서양으로부터 민주주의를 배워온 자들로 일본인들이 주축이었다. 민주주의자들은 입만 열면 인간의 존엄이니 개인의 자유, 평등, 정직 등을 주장했다.


특히 정직이 그의 심기를 불편하게 했다.


민주주의자 중 정직을 강조하는 특이한 세력이 있었다. 그들은 매수나 고문으로도 회유할 수 없는 자들이었다.


정직하지 못하면 어떤 이념도 허울뿐인 구호일 뿐이라며 거짓말하는 자를 미워했다.


“싸가지 없는 XX들! 정직이 밥 먹여 주냐? XXX!”


다나카가 욕설을 내뱉었다.


지금 나라가 국운을 걸고 미국과 전쟁하는 엄중한 시기였다. 천황폐하를 중심으로 온 나라가 똘똘 뭉쳐도 모자랄 판에 그런 한가한 소리나 하는 민주주의자들이 너무나도 한심했다.


어떤 거짓말을 해서라도 전쟁에서 이겨야 했다.


그게 힘의 논리였다.


승자가 하는 말은 모두 진실이었다. 그게 어이없는 소리라 할지라도 ….


토끼를 호랑이라고 부르면 그날부터 호랑이가 되는 거였다.


“휴우~!”


다나카가 답답한 듯 크게 숨을 내쉬었다. 에리카 때문에 마음이 불편했다.


애지중지하는 에리카가 미국 유학을 갔다 와서 민주주의에 완전히 물든 거 같아서 쓸데없는 짓을 했다고 자책했다.


몇 년 전 대학교수라는 작자가 에리카에게 헛소리했고 그게 미국 유학의 시발점이 되고 말았다.


대학교수면 교수답게 교양이나 전공 분야만 가르칠 것이지 쓸데없이 민주주의 타령을 해서 그녀를 망가뜨린 거 같았다.


“마에다 쇼타!”


다나카가 교수의 이름을 나지막하게 불렀다. 미간이 확 모이기 시작했다. 인상을 찌푸리며 이를 갈았다.


마에다는 20여 년 전 다나카가 아끼던 병사였다. 대학물을 먹고 똑똑한 자라 중용했었다. 그런데 항명을 한 적이 있었다.


당시 다나카는 살기 위해 절벽을 필사적으로 기어오르던 한 소년을 끝장내려고 총을 들었다.


소년의 어머니는 수십 발의 총알을 맞고도 아들을 살리겠다고 쓰러지지 않고 두 팔을 벌렸다. 그 독함에 다나카가 혀를 내둘렀다.


‘조선인은 소 힘줄보다 더 질긴 놈들이다!’라고 생각하면서 속으로 커다란 두려움을 느꼈다. 이들을 살려두면 필시 복수할 거 같았다. 그래서 씨를 말려야 했다.


그 소년을 처형하려고 총을 들었을 때 이를 막아선 병사가 있었다. 바로 이병 마에다였다.


전시에서 항명은 사형이었다. 하지만 다나카는 그렇게 하지 못했다. 본토의 수도, 동경에서 우수한 성적으로 대학을 졸업한 마에다의 능력이 아까웠다. 이에 죽어 마땅할 하극상의 죄를 가벼운 매질로 다스렸다.


지금은 그때 죽이지 못한 걸 후회하고 있었다. 그자를 그 자리에서 죽여버렸다면 에리카와 만날 일이 없었고 그러면 에리카가 민주주의에 물든 일도 없었다.


간 크게도 중대장에게 항명한 이병 마에다는 군을 전역하고 몇 년 뒤, 동경에서 대학교수가 되었다.


그는 신입생 수업을 맡고 강의하던 중, 한 여학생이 소리 죽여 울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이에 측은한 마음이 들어 수업이 끝난 후 그녀와 면담의 시간을 가졌다.


그 학생은 에리카였다. 마에다는 에리카의 가슴 아픈 사연을 듣고 그녀를 진심으로 위로했고, 에리카도 자기 마음을 알아주는 마에다를 스승으로 여겼다.


이후, 마에다는 에리카의 지도 교수가 되었다.


4년 뒤, 다나카는 에리카가 무사히 졸업할 수 있도록 물심양면으로 도와준 지도교수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려 학교를 찾았다.


근무지에서 상당히 먼 거리였지만 에리카가 존경하는 선생님에게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싶었다.


연구실을 열었을 때 다나카가 깜짝 놀랐다.


“아! 마에다!!”


마에다도 마찬가지였다.


“중대장님!”


연구실에 두 남자가 오랜만에 만났다.


“교수님이 되셨군요, 마에다 선생님.”


“중대장님은 장군이 되셨군요. 축하드립니다.”


다나카가 허리를 굽히며 말을 이었다. 내키지 않았지만, 에리카를 생각하며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었다.


“마에다 교수님. 우리 에리카를 잘 지도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덕분에 에리카가 탈 없이 졸업하게 됐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에리카 학생은 인재입니다. 저는 한 게 별로 없습니다. 영문학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낼 겁니다.”


“에리카는 제게 딸과 같습니다. 부모를 잃은 에리카를 애지중지하며 수양딸로 키웠습니다. 좋은 선생님을 만나 미국 유학까지 가게 됐습니다.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다나카가 연신 허리를 굽혔다. 그렇게 과거 하늘과 땅 차이였던 이병과 중대장의 신세가 역전됐다.


그런데 돌아온 것은 배신과 배반이었다.


그렇게 마에다에게 정성을 다했건만, 그자가 가르친 게 고작 민주주의였다는 사실을 알고 기가 막혀서 말이 나오지 않았다.


“마에다! 이 잡놈 새끼!!”


다나카는 요즘 들어 더 초조해졌다.


에리카가 그놈의 인권 타령하면서 정직을 입에 달았다. 조선인들도 능력이 있으면 우대해야 한다며 자기한테 대들었다. 능력이 없으면 일본인도 자리에서 내려와야 한다며 황당한 소리를 하기 시작했다.


요시코처럼 하찮은 조선인까지 옹호하는 꼴을 보면서, 왜 거금을 들여서 미국 유학까지 보내줬냐 하며 한탄했다.


특히, 대일본 제국의 권위를 내세울 때마다 자기를 경멸하는 눈초리로 바라보는 거 같았다. 아무리 잘해줘도 속마음까지는 바꿀 수 없을 것 같아 무척 초조했다.


이렇게 갈등이 계속되면 에리카가 자기한테 환멸을 느끼고 독립선언을 할까 봐 두려움에 떨었다.



그는 에리카를 계속 품에 안고 싶었다. 영원히!



다나카가 관저로 들어와 하녀 수장인 나나코에게 에리카의 안부를 물었다.


“아가씨는 방에 계십니다.”


“별일은 없지?”


“특별한 일은 없습니다.”


다나카가 고개를 끄떡이고 집무실로 들어갔다. 집무실에 그를 기다리는 사람이 있었다. 수석 부관인 야마모토 지로 대좌였다.


“총사령관님!”


야마모코가 절도있게 경례를 붙였다.


다나카가 답례하고 말했다.


“그래. 야마모토, 자리에 앉게.”


“총사령관님, 지시한 대로 함경도 지역 불순분자 명단을 작성했습니다.”


야마모토가 말을 마치고 한 묶음의 서류철을 다나카에게 내밀었다. 야마모토는 다나카가 데리고 있던 소대장이었다. 그때의 인연이 지금까지 이어져 왔다.


다나카가 미소를 지었다. 신뢰의 표시였다.


야마모토는 다나카한테 있어 해결사와 같았다. 다나카한테 곤란한 일이 있을 때마다 앞장서서 일을 깨끗하게 처리했다. 예전 신우 아버지를 죽였을 때와 같았다. 이에 다나카의 큰 신임을 얻어 수석 부관까지 승진했다.


그는 간혹, 다나카의 술친구가 되기도 하는 등 다나카가 유일하게 마음을 터놓는 사람이었다.


“그래, 뭐 잘 처리했겠지.”


다나카가 만족감을 표시하며 서류철을 쭉 훑어봤다. 그의 눈에 흡족한 웃음이 가득했다.


“50페이지부터는 민주주의자들과 공산주의자 명단도 있습니다.”


야마모토가 노고를 치하받고 싶은지 은근히 업적을 자랑했다. 눈썹이 꿈틀거리더니 하얀 이가 드러났다. 만연한 웃음 위로 이마가 보였다.


이마에 큰 흉터가 있었다. 흉터는 두 치(6.06cm)정도 됐고 이마를 가로질렀다. 앞머리를 애써 내려 흉을 감췄지만, 큰 흉을 다 가릴 수는 없었다.


호미가 남긴 흉터였다.


신우 아버지, 이덕수가 내리친 분노의 흔적이었다.


“저, 사령관님 그자가 또 잡혀 왔습니다.”


야마모토가 어이가 없다는 혀를 차며 말했다


“누구를 말하는 거야?”


다나카가 궁금함에 눈동자가 커졌다.


“마에다 쇼타, 저번에 3년 형을 받고 정신 차리는가 싶었는데, 이번에 밀고로 또 잡혔습니다.”


“뭐라고? … 허허허! 그자가 또.”


다나카가 어이가 없어서 허탈 웃음을 지었다. 그가 말을 이었다.


“민주주의 지하 운동을 또 한 거군. 그래 이번에는 몇 년형을 선고받을 거 같나?”


다나카가 담뱃불에 불을 붙이고 괘씸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야. 헌병대에서 어떻게 조서를 쓰냐 달려 있습니다. 봐주면 훈방이고, 그놈의 정신머리를 고쳐 놓겠다 싶으면 … 한 20년 형도 나올 수 있습니다. 하하하!”


야마모토가 고소한 듯 크게 웃었다.


“그냥 저번보다 좀 더 형량을 주라 그래. 그래야 정신 차리지. 그렇게 머리가 좋은데도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다니 참 한심한 놈이야.”


다나카가 말을 마치고 서류를 살폈다. 둘이 한참 동안 서류를 뒤적이며 의견을 교환했다.


그때 에리카가 집무실 앞을 급히 지나갔다. 집무실 문이 반쯤 열려 있었다. 에리카의 발소리와 치맛자락 소리가 들렸다.


다나카가 급히 고개를 돌렸다. 반쯤 열린 문 사이로 에리카의 모습이 보였다.


문 사이로 보이는 에리카의 아름다운 자태에 다나카의 두 눈이 갑자기 커졌다.


이 모습을 보고 야마모토가 미소를 지었다.


에리카는 급한 일이 있는 듯 집무실 앞을 순식간에 지나갔다.


다나카가 군침을 연신 삼켰다. 점점 작게 들리는 여인의 발소리에 집중했다.

keyword
월, 화, 수, 목, 금 연재
이전 13화소설_간도에서 온 사나이 1_42_경성제국대학병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