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정 유강인 19편_검은 판사, 악의 분노
포크가 바쁘게 움직였다. 그렇게 탐정단과 정찬우 형사가 전투적으로 파스타를 흡입했다.
한마디로 파스타의 식감이 예술이었다. 딱딱하면서도 감칠맛이 나는 면발이 식욕을 팡팡 터트렸다.
안전 가옥 1층에서 서울청 경찰 가족이 비밀리에 운영하는 도나 파스타집은 파스타 본연의 식감을 아주 잘 살렸다. 그래서 맛집이 분명했다. 10점 만점에 별 다섯 개가 아깝지 않았다.
한 마리로 이탈리아 파스타의 진면목을 참 잘 살렸다. 면뿐만 아니라 소스도 이에 못지않게 훌륭했다. 한국인의 입맛에 딱 맞는, 아주 개운하고 깔끔한 맛이었다.
크림이 들어가면 자칫 느낄 수 있었다. 그를 우를 범하지 않고 밸런스를 잘 맞췄다. 느끼하기보다는 볶은 깨처럼 아주 고소했다.
“흐흐흐!”
모두 식사에 만족한 듯 웃음이 흘러나왔다. 가게와 메뉴 선정을 잘했다는 듯 서로를 쳐다보며 웃었다.
15분 후 모든 식사가 끝났다. 후식으로 커피가 나왔다. 주인장이 흡족한 표정으로 커피잔을 돌렸다. 그녀가 말했다.
“유탐정님, 맛이 어때요? 아주 맛있죠? 한마디로 끝내주죠?”
유강인이 격하게 고개를 끄떡이고 답했다.
“최고입니다. 재방문을 100퍼센트 보장하는 맛입니다. 파스타하면 도나입니다. 도나 파스타집, 그 이름을 기억하겠습니다.”
주인장이 그 소리를 듣고 크게 기뻐했다. 그녀가 환하게 웃으며 답했다.
“하하하! 역시 유강인 탐정님은 수사만 잘하는 게 아니라 맛집 감별도 예술입니다.
매우 매우 존경합니다. 유탐정님, 자주 방문해주세요. 오시면 라자냐를 서비스로 제공하겠습니다. 우리 집은 라자냐도 최고입니다. 넓적한 파스타 피에 고기가 듬뿍 들어있어요.”
유강인이 그 말에 감사함을 표했다.
“감사합니다. 조만간에 다시 방문하겠습니다. 다음에 올 때는 어머니와 함께 오겠습니다.”
“어머님도 분명 대만족하실 겁니다.”
“물론, 그렇겠죠. 어머니도 파스타 좋아하십니다. 열혈 드라마 팬이지만, 이 냄새를 맡으면 연속극을 보다가도 맨발로 허겁지겁 달려오실 겁니다.”
유강인이 말을 마치고 미소를 지었다.
잠시 후 주인장이 조리실로 돌아갔다. 유강인의 눈빛이 빛나기 시작했다. 이제 본격적으로 정금학을 조사해야 했다.
그가 앞에 있는 정금학을 쳐다봤다. 정금학이 커피잔을 들었다.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크게 숨을 내쉬었다. 마음의 준비가 끝난 거 같았다.
그녀는 어리석게도 실수를 범하고 말았다. 집에서 유강인을 만났을 때 자기 정체를 감췄다. 유령 의사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 어리석음의 대가가 곧 닥쳐왔다. 불시에 나타난 블랙맨 둘한테 죽을 고비에 처했다. 그러다 삼색이 길고양이와 유강인의 도움으로 겨우 그 위기에서 벗어났다.
그래서 감출 게 없었다. 감출 필요도 없었고 감출 수도 없었다.
유강인이 정금학에게 말했다.
“정금학씨. 제 질문에 사실 그대로 답해야 합니다. 그래야 정금학씨를 도울 수 있습니다. 정금학씨는 현재 매우 위험한 상태입니다.”
정금학이 커피잔을 내려놓고 답했다.
“잘 알겠습니다. 유강인 탐정님 말씀을 잘 따르겠습니다.”
그녀가 말을 마치고 황수지와 눈을 맞췄다. 그리고 말을 이었다.
“조수님이 … 집에서 나가기 전 하신 말씀이 있었습니다. 그 말씀이 하나도 틀리지 않았습니다. 저도 유강인 탐정님을 전적으로 믿고 따르겠습니다.
자칫하면 어머니를 죽인 원수에게 죽을 뻔했습니다. 그것만큼 원통한 일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있는 그대로 말하겠습니다.”
그 말을 듣고 황수지가 미소를 지었다. 마치 동지를 얻은 듯했다.
정금학이 이를 악물기 시작했다. 그녀가 강한 어조로 말했다.
“저는 … 유령 의사 조직에 속해있습니다. 유령 의사가 맞아요. 그런데 조직이 저를 배신했습니다.
집에 들이닥친 놈들이 제 정체를 속속들이 알고 있었어요.
조직이 제 정체를 놈들에게 넘긴 게 확실합니다. 제가 유령 의사이고 문제의 1년 전 수술에 관여했다는 걸 조직만 알고 있어요. 다른 사람은 알 수 없습니다.
조직이 저를 배신하게 확실해요. 저를 팔아넘겼어요.”
정금학이 말을 마치고 배신감에 몸을 떨었다. 그녀의 눈에 시퍼런 분노가 서리기 시작했다. 오랫동안 몸담았던 조직에 배신당하자, 그 화가 분수처럼 솟구쳤다.
“그렇군요. 조직이 정금학씨를 버렸군요.”
유강인이 안타깝다는 표정으로 정금학을 바라봤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정금학의 화가 어느 정도 가라앉자, 유강인이 첫 번째 질문을 던졌다.
“정금학씨, 확인 질문을 하겠습니다. 유령 의사가 맞나요?”
정금학이 고개를 끄떡이고 답했다.
“맞아요. 저는 유령 의사입니다. 면허 없이 수술했어요. 이에 대한 책임을 지겠습니다. 유탐정님 덕분에 목숨을 건졌으니 책임질 건 책임 지겠습니다.”
정금학이 시원하게 답했다. 죽을 고비를 간신히 넘기자, 사람이 확 달라진 거 같았다. 이전에는 진실을 감추고 주저하는 모습이 있었다.
이제는 그런 모습이 사라졌다. 그럴 만도 했다.
그녀는 요단강을 건너기 직전에 놈들한테서 도망쳤다. 다락방 커피숍 화재보다도 더 위급한 상황이었다.
정금학이 입을 떨기 시작했다. 그녀는 원수인 이동호한테 죽을 뻔했다. 이동호는 어머니를 죽인 원수였다. 그리고 그녀의 애인이기도 했다.
그녀의 머릿속에 이동호가 떠올랐다.
목에 걸린 밧줄이 꽉 당겨져 숨이 막혀 죽어갈 때 그 처참한 모습을 이동호가 무척 재밌다는 표정으로 지켜봤다.
그 사악한 눈동자가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정금학은 철천지원수, 이동호를 잡기 위해서라도 진실을 밝혀야 했다. 그녀가 마음을 굳게 먹었다.
늦었지만, 어머니의 원수를 갚아야 했다. 그리고 자신을 팔아넘긴 조직에게도 그 대가를 치르게 하고 싶었다. … 반드시!
눈에는 눈, 이에는 이였다.
이제 그녀는 나약했던 대학생 윤이슬도 10년간 두려움에 떨며 숨어 지내던 정금학도 아니었다. 복수의 일념이 그녀를 사로잡았다. 복수의 화신으로 거듭났다.
유강인이 미소를 지었다. 정금학이 진실을 말하기 시작했다. 그가 질문을 이었다.
“1년 전 세컨드 라이프 병원을 방문해 주미희씨와 함께 한종호씨를 성형 수술을 했나요?”
“아, 그건 아닙니다.”
정금학이 정색하고 답했다.
그러자 유강인이 이상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조수 둘과 정찬우 형사도 마찬가지였다. 유강인이 말했다.
“뭐가 아니죠? 유령 의사라고 인정하셨잖아요?”
“제가 유령 의사는 맞지만, 그날은 수술하러 간 게 아닙니다. 제자의 수술을 코치하러 간 거뿐입니다. 수술에 참여하지 않았습니다.”
“제자라고요? … 코치는 또 뭡니까?”
“실은 … 미희 언니는 제 제자입니다. 제가 3년 반 동안 가르쳤어요.”
유강인이 그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그가 급히 물었다.
“주미희씨가 제자라고요?”
“네, 그렇습니다. 미희 언니는 제 제자였어요. 제가 나이가 어리지만, 스승이었습니다.
저는 수습과 주니어, 시니어를 최단기간에 마쳤습니다. 어머니의 기록을 깼다고 들었습니다.
이후 가장 어린 나이에 마스터가 돼서 제자를 받았습니다.
미희 언니는 제가 가르친 수많은 제자 중 하나입니다. 성격이 좋아서 친하게 지냈습니다.”
“그렇군요.”
“미희 언니는 유령 의사학교를 졸업하고 곧바로 유령 의사로 활동했습니다. 돈 욕심에 아주 열심히 뛰어다녔다고 들었습니다.
그러던 중 미희 언니한테 연락이 왔습니다. 난이도가 높은 환자가 있다며 도움을 요청했어요.
환자의 형을 먼저 수술했는데 그때 수술이 쉽지 않았다고 … 자칫하면 큰일이 날 뻔했다고 말했습니다.
비슷한 외모의 동생도 수술해야 한다며 조언을 구했습니다. 동생의 요구 사항이 무척 까다롭다며 어려움을 호소했어요.
수술실에 같이 들어가 환자의 상태를 보고 코치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아, 그렇군요.”
“저는 수술이 부담스러우면 하지 말라고 당부했습니다. 미희 언니는 이를 거부했습니다.
딸 유학 자금을 벌어야 한다며 반드시 수술해야 한다고 말했어요. 이에 제자의 부탁을 외면할 수 없어서 같이 세컨드 라이프 병원을 방문했습니다.”
“이후에 어떻게 됐죠?”
“미희 언니와 함께 수술실로 들어가 한종호씨 상태를 확인하고 수술 계획을 짰습니다.
수술 계획을 미희 언니에게 전달하고 곧바로 수술실에서 나왔습니다. 이후 수술이 끝날 때까지 휴게실에 미희 언니를 기다렸습니다.
그러던 중 갑자기 비보가 날아왔어요. 한종호씨가 수술 중 죽었다고 들었습니다.”
유강인이 의외라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일이 그렇게 돌아가는군요. 그러면 정금학씨는 수술과는 관련이 없네요.”
“맞습니다. 저는 수술에 관여하지 않았어요. 수술 전 환자의 상태를 살피고 수술 계획을 점검한 다음, 집도의에게 주의할 점만 당부했을 뿐입니다.
그렇게 수술 준비를 철저히 했지만, 무척 어려운 수술이라. 미희 언니가 그만 일을 그르치고 말았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미희 언니가 저한테 숨긴 게 있었습니다.”
“그게 뭐죠?”
“턱 수술은 무척 어려운 수술입니다. 뇌와 가까운 곳이고 중요한 혈관과 중요한 감각이 있습니다. 출혈, 저혈압, 기도 막힘이 발생할 수 있어요.
그런데 미희 언니가 턱 말고도 다른 곳까지 수술했다고 들었습니다. 돈 욕심에 해서는 안 될 짓을 하고 말았습니다.
이 사실을 미희 언니가 숨겼습니다. 제가 그 사실을 알았더라면 수술을 막았을 겁니다. 이런 수술은 몸에 무리가 가는 대수술이라 심장에 쇼크가 올 수 있습니다. 결국, 그렇게 되고 말았죠.
매우 위험한 수술이었습니다. 그래서 사고가 난 겁니다.
이제 갓 시니어가 된 사람이 마스터를 속여서 발생한 일입니다.”
유강인이 눈을 가늘게 떴다. 그가 정금학에게 말했다.
“확실합니까? 사고를 제자인 주미희씨에게 덮어씌우는 거 아닙니까? 죽은 자는 … 말이 없습니다.”
정금학이 단호한 목소리로 답했다.
“아닙니다. 이를 증명할 수 있습니다. 당시 수술에 참여한 간호사들이 제 말을 맞는다고 증언할 겁니다.”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그 점은 확인할 수 있습니다.”
유강인이 말을 마치고 세컨드 라이프 병원의 정간호사를 떠올렸다. 정간호사는 1년 전 한종호씨 수술에 참여했었다.
그녀는 병원에 압박에 굴하지 않고 유령 의사의 존재를 유강인에게 알렸다. 그녀라면 진실을 말할 거 같았다.
유강인이 고개를 끄떡였다. 그가 다음 질문을 던졌다.
“정금학씨, 다음 질문으로 넘어가겠습니다. 집에 들어와 목숨을 노린 괴한이 어머니의 원수라고 말씀하셨는데 이건 또 무슨 뜻이죠?”
정금학이 그 말을 듣고 몸을 부들부들 떨기 시작했다. 그들이 잔인하게 웃고 있었다. 잔혹한 행위를 즐기는 거 같았다.
그녀가 분노를 참지 못하고 말했다.
“저를 죽이러 온 괴한 중 한 명은 … 제가 잘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네에? … 아는 자가 죽이러 왔다는 말인가요? 그 사람이 누구죠? 지인인가요? 친구인가요?”
“그 사람은 … 10년 전 제 애인이었던 이동호입니다.”
그 말을 듣고 유강인이 소스라치게 놀랐다. 그가 급히 말했다.
“다른 사람도 아닌 전 애인이 암살자라고요? 이동호라는 자가 확실합니까? 분명히 말해주세요.”
“맞아요. 그자의 얼굴을 봤습니다. 그자가 저를 조롱하려는 듯 마스크를 내렸어요.
그리고 자기 정체를 스스로 밝혔어요. 저를 여전히 사랑한다며 … 자신을 이동호라고 말했어요. 으으으~! 그자는 이동호가 맞았어요.”
정금학이 괴로움을 참지 못했다.
그 말을 듣고 유강인뿐만 아니라 조수 둘과 정찬우 형사도 화들짝 놀랐다. 보통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전 애인이 정금학을 죽이려 찾아왔다. 그것도 10년이나 지난 후에 찾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