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하얀 눈동자 <회색 인간 외줄 타기>
임무혁이 본 식사를 마쳤다. 디저트로 바닐라 아이스크림과 딸기 타르트, 살구 타르트 나왔다. 그가 디저트도 남김없이 다 먹었다.
“음!”
그는 디저트 중 살구 타르트를 아주 맛있게 먹었다. 살구 잼 향이 과자와 참 잘 어울렸다.
“이거 의외군.”
임무혁은 살구 잼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그런데 살구 타르트는 예상과 달리 참 맛있었다. 10개를 먹어도 또 먹고 싶은 맛이었다.
“살구 타르트가 참 맛있네.”
임무혁이 만족한 표정으로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대폭발 사고 이후 힘든 일을 겪고 있지만, 지금 먹은 디저트는 작은 행복이었다.
견디기 힘든 고통과 압박 속에서 작은 과자가 숨통을 트여주었다.
“식사를 마치셨으니 그릇을 치우겠습니다.”
호텔 직원이 무척 공손한 목소리로 말했다. 임무혁이 고개를 끄떡이고 답했다.
“수고하셨습니다. 송아지 스테이크와 살구 타르트가 아주 맛있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별말씀을 … 회장님이 손님을 VIP로 대접하라고 지시하셨습니다. 저는 그 지시를 따르는 거뿐입니다.”
직원이 말을 마치고 그릇을 치우기 시작했다. 카트에 빈 그릇이 수북이 담겼다.
임무혁이 배가 부른 듯, 배를 주무르기 시작했다. 그렇게 잠시 배를 주무르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가 테라스로 향했다.
시간이 흘러 날이 점점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호텔 20층 회장실에 보스 남궁철이 있었다. 그가 초조한 표정으로 실내를 서성거렸다. 미간이 확 모이기 시작했다. 삭발한 머리가 조명을 받아서 계속 번쩍거렸다.
그렇게 그가 안절부절못하고 있을 때
삐리릭!
전화 벨소리가 들렸다. 남궁철이 급히 책상으로 달려갔다. 발신자는 김덕기 과장이었다. 그가 급히 전화 받았다. 곧 허스키한 목소리가 들렸다.
“회장님, 매향 남도 임무혁 사진을 받았습니다.”
“그래요? 그래서 결과가 어떻게 됐죠?”
핸드폰에서 김과장의 목소리가 들렸다. 보스 남궁철이 그 소리에 집중했다.
임무혁의 운명이 결정되는 순간이었다.
그 시각 임무혁은 테라스에 서서 노을이 지는 인천시를 바라다봤다. 오렌지색 하늘이 마천루와 함께 장관을 이루었다. 참 따뜻한 하늘이었다.
아래에 보이는 수영장은 한산했다. 사람이 전혀 없었다. 물만 잔잔했다.
날이 어두워지자, 기온이 급속히 떨어졌다. 수영하기에는 날이 추웠다.
임무혁이 오랜만에 인천시의 평안한 석양을 즐기고 있을 때
뒤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호텔 직원의 목소리였다.
“손님, 옷을 준비했습니다. 회장님께서 특별히 선물하는 옷입니다.”
임무혁이 서둘러 고개를 뒤로 돌렸다.
직원이 공손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손님의 옷이 더럽다며 새 옷을 준비하라고 지시하셨습니다. 찢어진 바지를 어서 갈아입으세요.”
“감사합니다.”
임무혁이 말을 마치고 걸음을 옮겼다. 테라스에서 거실로 돌아왔다. 그가 거실 소파로 향했다.
소파에 새 옷이 있었다. 속옷과 검은색 셔츠와 검은색 바지, 검은색 양말, 검은색 구두였다.
카트 바퀴가 굴러가는 소리가 들렸다. 직원이 카트를 끌고 객실에서 나갔다. 곧 문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좋은 옷인데.”
소파에 놓인 옷을 잠시 바라보던 임무혁이 입고 있던 옷을 벗기 시작했다.
그의 옷은 노숙자 옷 같았다. 산속을 뛰어다니느라 때가 많이 묻었고 바지는 총상 때문에 찢어지기까지 했다.
새 옷은 알아주는 명품 브랜드였다. 아주 고가의 옷이었다. 가벼웠고 부드러웠다.
임무혁이 옷을 입기 시작했다. 옷을 검은색으로 깔맞춤 하자, 그의 외모가 살아나기 시작했다. 그는 검은색이 참 잘 어울리는 외모였다.
“하하하!”
임무혁이 기분이 좋은 듯 씩 웃었다. 옷을 다입고 구두도 신었다. 새 신이었지만, 부드러운 가죽이라 불편하지 않았다. 명품이 명품값을 했다.
마지막으로 바지에 혁대를 끼우고 버클을 채웠다. 혁대와 버클도 모두 검은색이었다.
“음!”
임무혁이 고개를 끄떡였다. 맛있는 음식을 먹고 새 옷을 입자, 기분이 한결 나아진 거 같았다.
그렇게 그가 옷맵시를 자랑하고 있을 때
똑똑!
노크 소리가 들렸다. 공손한 노크 소리였다. 그리고 말소리가 들렸다.
“손님, 와인을 준비했습니다.”
“알겠습니다.”
임무혁이 걸음을 옮겼다. 객실 문을 열었다. 문이 열리자, 호텔 직원이 그에게 꾸벅 인사했다. 키가 크고 마른 직원이었다. 작은 눈에 턱이 뾰족했다. 허연 얼굴이었다. 직원이 임무혁에게 말했다.
“뚤루앙 화이트 와인입니다. 최고급 와인입니다. 와인색이 무색에서 호박색이 됐습니다. 최고의 품질을 자랑합니다.”
“그렇군요. 어서 들어오세요.”
직원이 카트를 끌고 안으로 들어왔다. 카트에 바구니와 쟁반이 있었다. 바구니 안에는 얼음이 가득 들어있었다. 그 얼음 속에 와인병 하나가 있었다.
쟁반에는 안주가 듬뿍 담겨있었다. 앵두, 포도와 같은 과일과 파스타치오 견과류, 구운 오징어였다.
직원이 무척 친절한 목소리로 임무혁에게 말했다.
“손님, 소파에 앉으세요. 와인과 안주를 준비해서 대접하겠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임무혁이 소파를 향해 걸어갔다. 소파에 털썩 앉았다. 벽걸이 TV를 바로 볼 수 있는 자리였다.
소파 앞에 테이블이 있었고 테이블 위에 리모콘이 있었다. 그가 리모콘을 들었다. TV를 켜고 채널을 돌렸다. 지역 뉴스 채널을 찾았다.
뻥! 하며 코르크가 병에서 빠지는 소리가 들렸다.
임무혁이 그 소리를 듣고 고개를 끄떡였다. 소리만 들어도 알 수 있었다. 좋은 와인이라는 것을 ….
뒤이어 발소리가 들렸다.
임무혁이 뉴스를 보며 입술에 침을 묻혔다. 그가 뉴스에 집중하려고 할 때
순간! 멈칫했다. 그의 귀가 이상 신호를 감지했다. 뒤에서 들리는 발소리가 이상하게 자연스럽지 않았다.
먼저 들어와 식사를 준비한 직원은 발소리가 자연스러웠다.
그런데 와인과 안주를 준비한 직원의 발소리는 자연스럽지 않았다. 발소리의 간격이 길었다. 목표를 향해 아주 천천히 걷는 거 같았다. 뭔가 상황을 살피는 거 같았다.
‘혹!’
임무혁이 긴장하기 시작했다. 이마에서 식은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그는 경찰한테 쫓기는 신세였다. 그를 함정에 빠트린 사람은 다름 아닌 아내였다.
아내는 그가 가장 믿는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이 배신했다는 사실에 그는 그 누구도 믿을 수 없었다.
그의 정체는 경찰이 아니라 물뱀파 조직원이었다. 경찰에 잠입한 빨대, 스파이였다. 빨대는 이용가치가 없으면 조직에서 언제든지 꺾일 수 있었다.
그게 조직의 생리였다. 빨대가 필요 없거나 거추장스러우면 뽑아서 잘근잘근 짓밟아버렸다.
‘젠장!’
임무혁이 침을 꿀컥 삼켰다. 발소리가 점점 커졌다. 그는 고개를 돌려 직원의 실체를 확인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그건 위험한 일이었다.
직원의 실체가 조직원이라면 고개를 돌렸다가 기습당할 수 있었다.
현재 임무혁은 등을 돌리고 있었다. 그래서 매우 불리한 처지였다. 적의 허점을 이용하는 기습 공격은 불가능했다. 그래서 적의 방심을 최대한 이용하고 마음먹었다.
적이 다 됐다고 마음 놓을 때, 그때가 바로 상황을 역전시킬 기회였다.
발소리 간격이 짧아지기 시작했다.
이윽고
발소리가 다급해졌다!
직원이 임무혁을 향해 달려왔다.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임무혁의 귀가 쫑긋거리고 두 눈이 두 배로 커졌다.
바로 그때!
“야아!”
임무혁이 기합을 넣고 재빨리 움직였다. 소파에서 스프린터처럼 튀어 나갔다. 앞에 있는 테이블을 밟고 벽걸이 TV를 향해 날아갔다.
수미터를 날아서 안전하게 착지한 후 고개를 획 돌렸다.
소파 바로 뒤에 직원이 서 있었다. 그의 양손에 기다란 밧줄이 있었다. 그가 놀란 눈으로 임무혁을 쳐다봤다.
그는 임무혁의 행동을 예상하지 못했다. 스프링처럼 소파에서 튀어 나갈 줄을 상상조차 못 한 거 같았다.
임무혁이 크게 일갈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적에게 말했다.
“너는 대체 누구냐?”
그 소리가 객실 안에서 쩌렁쩌렁 울렸다.
“젠장!”
직원이 거칠게 말을 내뱉더니 이를 악물었다. 밧줄을 내던지더니 품에서 뭔가를 꺼냈다. 그건 칼이었다.
15cm 칼이 거실에서 그 존재감을 드러냈다. 칼에서 광채가 뿜어나왔다.
직원이 자신의 정체를 밝혔다. 냉혹한 목소리였다.
“나는 … 물뱀파 행동대 짝손이다. 행동대 에이스지. 임무혁, 네놈을 경찰한테서 구한 사람이기도 하다. 네 은인이지.”
“짝손이라고?”
임무혁이 짝손이라는 말에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그는 짝손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 인천 남부 경찰서는 물뱀파 행동대 중 일부를 파악하고 있었다. 그중에 짝손이 있었다.
짝손은 두 손의 크기가 달라서 짝손이라고 불리는 조직원이었다. 행동대 중 가장 과격한 인물이라고 알려졌다.
짝손이 직원으로 가장해 칼을 들고 나타났다. 이 말은 보스가 임무혁을 해치우겠다는 말과 같았다.
다시 절체절명의 위기가 찾아왔다.
임무혁이 급히 생각했다.
‘이런! 보스마저 나를 죽이려 하는구나! 경찰처럼 나를 죽이려 하고 있어!’
“흐흐흐!”
짝손이 웃음을 흘렸다. 섬뜩한 웃음이었다. 사냥 전 입맛을 다시는 거 같았다.
그리고
“야아!”
짝손이 크게 외쳤다. 칼을 든 오른손을 높이 쳐들었다. 딱 봐도 커다란 손이었다.
짝손은 그의 별명대로 오른손이 왼손보다 훨씬 컸다. 왼손은 평범한 크기였지만, 오른손은 그렇지 않았다.
“젠장!”
임무혁이 서둘러 사방을 살폈다. 맨손으로 칼을 든 자와 싸울 수는 없었다. 그가 그렇게 무기를 찾을 때
짝손이 재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소파로 올라오더니 임무혁처럼 테이블을 밟고 위로 솟구쳤다. 벽걸이 TV를 향해서 날아왔다. 고함이 들리고 칼날이 검광을 뽐냈다.
“야아!”
칼날이 번개처럼 아래로 떨어졌다. 타깃은 임무혁의 머리였다.
임무혁 고개를 들었다. 위에서 떨어지는 짝손의 커다란 오른손과 그의 살기 어린 눈동자를 봤다. 어서 피해야 했다.
칼날이 떨어지는 순간!
쿵!
큰 소리가 들렸다.
임무혁이 옆으로 굴러서 떨어지는 칼날을 피했다. 그가 급히 몸을 일으켰다. 바닥에 그가 벗은 옷이 있었다. 급한 대로 그거라도 잡아야 했다.
임무혁이 급히 손을 뻗어 벗은 옷을 잡았다.
“야아!”
다시 고함이 들렸다.
짝손이 칼을 높이 쳐들고 임무혁을 다시 덮쳤다. 맹수의 그림자가 임무혁의 얼굴로 향했다.
“이놈!”
임무혁이 서둘러 반격했다. 손에 잡은 바지를 짝손의 얼굴을 향해 내던졌다.
“아이고!”
짝손이 바지를 뒤집어쓰고 주춤했다. 임무혁이 그때를 놓치지 않고 거실을 내달렸다. 그렇게 출입문으로 향했다.
구두 굽 소리가 크게 들렸다. 그가 출입문 손잡이를 잡고 문을 활짝 열었을 때!
“헉!”
놀란 목소리가 들렸다. 임무혁이 내는 소리였다. 출입문 앞에 많은 사람이 서 있었다.
그들은 행동대였다. 행동대 다섯이 그의 앞을 딱 가로막았다. 모두 손에 연장을 들고 있었다. 야구 배트, 망치, 긴 칼이 보였다.
5대 1의 상황이었다.
출입문 앞에서 5대 1로 싸울 수는 없었다. 이는 승산이 없는 싸움이었다.
“제기랄!”
임무혁이 뒤로 물러섰다. 뒤에서도 거친 숨소리가 들렸다. 짝손이 씩씩거리며 거실에 서 있었다. 그가 임무혁이 던진 바지를 질끈질끈 짓밟았다.
객실 안에 살기가 충만했다. 아니 넘쳤다. 행동대의 타깃은 임무혁이었다.
임무혁이 그 살기를 뼈저리게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