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정 유강인 20편 <검은 피, 저주의 서릿발>
“으으으!”
무척 고통스러운 신음이 들렸다. 한 남자가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그가 연신 신음을 내뱉었다. 그 신음에 핏빛 분노가 서려 있었다.
남자는 신음만 연신 내뱉을 뿐 움직이지 못했다.
그렇게 괴로운 시간이 흘러갔다.
20분 후, 마치 시체 같았던 남자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뜰채에 잡힌 물고기처럼 버둥거렸다.
그러자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바닥에 깔린 지푸라기들이 서로 부딪히며 나는 소리였다.
이곳은 무척 어두웠다. 깊은 굴 같았다. 그리고 밀폐된 공간이었다. 문과 창문이 꼭 닫혀있었다.
여기는 시골 곳간이다. 농기구나 농산물, 잡동사니를 보관하는 곳이었다.
곳간은 꽤 컸다. 쌀 50가마니를 차곡차곡 쌓을 수 있었다. 그런 공간에 아무것도 없었다. 텅 비어 있었다.
낙엽 같은 지푸라기만 바닥에 깔려 있을 뿐이었다.
그곳에 한 남자가 있었다.
“헉! 헉!”
신음을 내뱉던 남자가 숨을 헐떡였다. 어금니를 꽉 깨물더니 … 커다란 분노를 일순간에 토해냈다.
“젠장!!”
남자가 간신히 몸을 일으켰다. 그러자 그의 얼굴이 드러났다.
얼굴은 한마디로 흉측했다. 모진 매를 맞은 듯 엉망진창이었다. 곳곳이 풍선처럼 부풀어 올라 그 인상을 알아보기 힘들었다.
모진 매의 흔적은 코에도 있었다. 콧구멍에서 선혈이 흘러내렸고 콧대도 부러졌다.
비참한 몰골은 옷도 마찬가지였다. 흰색 셔츠는 검게 물들었고 검은 바지는 희뿌옇게 변했다.
여기저기 찢기고 헤져서 그 틈으로 피멍이 든 살이 보였다.
“안돼! 안돼!!”
남자가 휘청거리며 일어났다. 기다란 장대가 이리저리 흔들리는 거 같았다.
“젠장!”
남자가 어떻게든 중심을 잡으려 애썼다. 하지만 역부족이었다. 다리가 받쳐주지 못했다.
결국, 다시 쓰러지고 말았다. 쿵! 소리가 곳간 안에서 크게 들렸다.
“으으으!”
남자가 다시 신음을 내뱉었다. 굼벵이처럼 바닥을 기기 시작했다.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다시 또 들렸다.
1분 후
바스락거리는 소리와 함께 다른 소리가 들렸다.
“영숙아! … 영숙아!”
누군가를 애타게 부르며 우는 소리였다. 그 소리와 함께 피 묻은 손가락 10개가 쫙 펼쳐졌다. 쫙 벌린 두 손이 지푸라기를 꽉 움켜쥐었다.
그 구슬픈 소리가 한동안 계속됐다.
그렇게 한 남자가 곳간에 갇혀 울부짖고 있을 때
심상치 않은 발소리가 들렸다. 곳간 밖에서 나는 소리였다.
저벅저벅! 발소리가 점점 크게 울렸다. 바로 옆에서 들리는 소리 같았다. 그렇게 발소리가 절정을 이루었을 때 … 갑자기 소리가 뚝 멈췄다.
이윽고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철컹! 하며 쇳소리가 들렸다.
뒤이어 끼익! 하며 문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문이 열리자, 어두운 곳간 안으로 빛이 새어 들어왔다.
“어?”
문이 열리자, 흉측한 몰골로 바닥을 기던 남자가 고개를 쳐들었다.
그가 두 눈을 크게 뜨려고 애썼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눈두덩이가 크게 부풀어 올라서 두 눈을 크게 뜰 수 없었다.
“흐흐흐!”
비열한 웃음소리가 들렸다.
곳간 안으로 남자 둘이 들어왔다. 둘은 그 외모가 천양지차였다.
한 남자는 장대처럼 키가 크고 호리호리했고 다른 남자는 부러진 나무토막처럼 키가 작고 왜소했다.
둘이 바닥에 쓰러진 남자를 내려다봤다. 그러다 키 큰 남자가 입을 열었다.
“… 어이, 덕길이. 우리도 이러기는 정말 싫지만, 어쩔 수 없어. 주인 어르신 지시야.
주인님이 지시를 내리면 우리는 따를 수밖에 없어. 그게 여기의 법도야. 그건 자네도 잘 알잖아.”
키 작은 남자가 고개를 끄떡이며 거들었다.
“맞아, 맞는 말이야. 유감스럽게도 … 자네가 그걸 어겼으니 딸 옆으로 가야겠어. 미안해.”
“뭐, 뭐라고!”
덕길이라 불린, 바닥에 쓰러진 남자가 분을 참지 못하고 몸을 파르르 떨었다.
그는 김덕길이었다. 지씨 가문에서 허드렛일을 하는 30대 중반 남자였다. 중간 키에 다부진 체격이었다.
“안돼! 안돼!!”
김덕길이 크게 울부짖었다. 몸을 일으키려고 애썼다. 그렇게 상체를 간신히 일으켰을 때
곳간으로 들어온 둘이 서로 쳐다봤다. 키 작은 남자가 고개를 끄떡이더니 품에서 뭔가를 꺼냈다.
그건 … 아주 날카로운 칼이었다. 시퍼런 칼날이 어둠 속에서 반짝거렸다.
“헉!”
김덕길이 칼의 광채를 보고 움찔했다. 그가 황급히 말했다.
“내 딸은, 내 딸은 대체 어디에 있는 거야?”
키 큰 남자가 답했다. 차가운 목소리였다.
“네 딸 영숙이는 … 집 뒤 동굴 안에 있어.”
“으으으~!”
김덕길이 분을 참지 못했다.
“어서 끝내! 저놈이 또 용을 쓸라!”
키 큰 남자의 말에 키 작은 남자가 입술에 침을 묻혔다. 두 눈에 살기가 감돌았다.
그가 칼을 높이 쳐들었다. 그 잔혹한 눈빛이 김덕길의 목으로 향했다.
“죽어라!”
차가운 칼이 허공에서 정점을 딱! 찍고 내려갔을 때
바로 그때
“야아~!”
큰 소리가 들렸다.
김덕길이 있는 힘을 다해 몸을 일으켰다. 두 주먹을 꽉 쥐고 앞에 있는 남자들을 덮쳤다.
쿵쾅!
큰 소리가 들렸다. 남자 둘이 바닥에서 나뒹굴었다. 쟁그랑! 하며 칼이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잡혔던 김덕길이 도망치기 시작했다. 곳간 문을 열고 뛰어나갔다.
밖은 환한 대낮이었다. 정오가 지난 시각이었다.
“자, 잡아라!”
“덕길이가 도망친다!”
남자 둘이 몸을 일으키고 크게 외쳤다.
그 소리가 청기와집에 울렸다. 청기와집은 무척 큰 집이었다. 안채, 부엌, 사랑채, 광, 곳간, 행랑채, 사당, 별당 등 있을 건 다 있었다.
“헉! 헉!”
김덕길이 거친 숨을 내쉬며 저 앞 담장으로 달려갔다. 담장에 작은 문, 중문이 있었다. 중문은 활짝 열려있었다.
중문을 통과한 김덕길이 정문인 솟을대문으로 달려갔다. 솟을대문 밖은 분주했다. 사람들이 많았다.
고깔모자를 쓰고 형형색색 옷을 입은 한 여인과 악기를 든 악단, 젊은 남자들 그리고 점잖은 중년 신사가 서 있었다.
그들이 환하게 웃으며 얘기를 나눴다. 중년 신사가 말했다.
“용궁 보살님, 점심을 맛있게 드시고 오후 의식을 부탁합니다. 우리 하인들을 따라가세요. 한 상 잘 차려놨습니다.”
고깔모자를 쓴 여인이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알겠습니다. 오늘이 길일이라 굿의 효능이 아주 좋을 겁니다. 용왕님이 선생님의 정성에 감복할 겁니다.”
“그러면 천만다행이지요.”
중년 신사가 흐뭇한 표정으로 답했다.
그때! 대문이 쾅! 하며 열렸다. 솟을대문에서 한 사람이 튀어나왔다.
“뭐야?”
모인 사람들이 고개를 돌렸다. 그들의 눈에 흉측한 몰골의 김덕길이 보였다.
“어? 덕길이!”
“덕길이가 도망쳤다!”
“저놈이!”
중년 신사가 김덕길을 보고 두 눈을 부릅떴다.
그는 50대 초반 남자였다. 흰색 양복과 흰색 중절모를 썼다. 구두도 백구두였다. 청기와집 주인 지인광이었다. 그가 크게 외쳤다.
“김덕길을 어서 잡아!”
“예, 알겠습니다.”
옆에 있는 청년들이 크게 답했다.
“지인광!”
김덕길이 흰색 양복을 입은 남자, 지인광을 보고 치를 떨었다. 그가 이를 악물고 도망치기 시작했다. 그 뒤를 청년 십여 명이 따랐다.
“김덕길!”
“넌 도망가봤자다! 우리 손바닥 안이다!”
김덕길이 기를 쓰며 달렸다. 그렇게 집 뒤로 향했다. 그가 달려간 곳은 집 뒤에 있는 야산이었다.
산은 산세가 꽤 험했다. 무척 가파른 산이었다. 산 초입에 산길이 있었다. 한 명이 겨우 다닐 수 있는 좁은 길이었다.
김덕길이 산길을 오르기 시작했다. 이미 망가질 대로 망가진 몸이었지만, 그는 개의치 않았다. 몸이 부서지든 말든 상관하지 않았다.
그렇게 초인적인 의지로 산 중턱까지 올랐다. 산 중턱에 커다란 바위가 있었다. 한가운데에 동굴이 있었다.
동굴 입구는 성인 남자 둘이 고개를 숙이고 들어갈 수 있었다.
김덕길이 황급히 동굴 안으로 들어갔다. 동굴 안은 무척 어두웠다. 길이 갈수록 넓어졌다.
10m 이상을 내달리자, 공터 같은 곳이 나왔다. 그곳에 한 사람이 쓰러져 있었다.
김덕길이 쓰러진 사람에게 달려가 그를 부둥켜안았다.
“영숙아! 영숙아!”
김덕길이 크게 울부짖었다. 그가 부둥켜안은 사람은 그의 딸이었다.
딸은 십 대 중반이었다. 아빠가 딸의 이름을 목놓아 불렀지만, 딸은 대답하지 않았다. 딸은 이미 숨이 끊어졌다.
하얀 옷이 붉은 피로 흥건했다. 바닥도 마찬가지였다.
“영, 영숙아!”
처절한 소리가 계속 동굴에서 들렸다. 그 소리와 함께 발소리가 들렸다.
새하얀 양복을 입은 중년 남자, 지인광이 동굴 공터로 들어왔다. 그의 뒤에 건장한 남자 셋이 있었다.
인기척을 느낀 김덕길이 고개를 번쩍 들었다. 새하얀 양복을 입은 남자를 무섭게 노려봤다.
새하얀 양복을 입은 남자가 말없이 서 있었다.
김덕길이 몸을 부르를 떨더니 분을 참지 못하고 크게 외쳤다.
“반드시 복수하겠다! 원한에 사무친 악귀가 돼서 너희 모두 지옥으로 끌고 가겠다! 이를 기억해라!”
“뭐, 뭐라고?”
새하얀 양복을 입은 남자가 코웃음을 쳤다.
김덕길이 피를 토하며 말을 이었다.
“지씨 집안에 저주를 내리리라! 모두 검은 피를 토하고 불지옥의 고통을 느끼며 … 서서히 죽어갈 것이다.
이는 피할 수 없는 운명이다. 너희가 자초한 업보다! 내 저승에서 그 모습을 똑똑이 지켜볼 것이다!”
동굴에서 그 소리가 크게 울려 퍼졌다.
새하얀 양복을 입은 남자, 지인광이 김덕길의 말에 대꾸하지 않았다. 대신 가소롭다는 표정으로 씩 웃을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