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정 유강인 20편 <검은 피, 저주의 서릿발>
“자, 시합이 끝났어요. 이제 점심 먹으러 가야 해요. 먼저 손을 깨끗이 씻어요. 그리고 식당에 입장해야 해요.”
선생님 말에 아이들이 이구동성으로 크게 소리쳤다.
“네! 알겠습니다! 선생님.”
“배고프당! 오늘 메뉴가 뭐지?”
“함박 스테이크야!”
“우와! 신이 난다!”
함박 스테이크는 아이들이 간절히 원하던 메뉴였다.
아이들이 손을 깨끗이 닦고 식당으로 향했다. 서로 말을 나누며 걸음을 옮겼다. 재잘재잘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 같았다.
“아이 귀여워.”
선생님이 그 모습을 보며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선생님은 20대 후반 여성이었다. 날씬한 몸매에 키가 컸다.
이목구비가 수려한 미인으로 긴 생머리가 허리까지 내려왔다. 긴 머리는 여러 번 묶어서 단정함을 유지했다.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점심시간 시작됐다. 아이들이 군침을 꿀컥 삼켰다. 힘든 축구를 해서 그런지 배가 더욱 고팠다.
식당에 들어간 아이들이 식판을 들었다. 맛있는 점심을 하나둘씩 받고 함박웃음을 지었다. 냄새만 맡아도 탄성이 절로 나오는 식단이었다.
살이 많이 찐 윤호가 실실 웃었다. 그는 함박 스테이크를 제일 좋아했다. 오늘 점심은 그에게 있어 한마디로 대박이었다.
친구인 강인, 윤호, 진호가 자리에 같이 앉았다. 셋은 절친이었다. 그래서 밥도 같이 먹고 게임도 같이했다.
“흐흐흐!”
윤호가 나이프로 함박 스테이크 반을 푹 자르고 큰 덩어리를 포크로 쑥 찔렀다. 아주 먹음직스러운 함박 스테이크 조각을 들고 입을 크게 벌렸다.
그리고 아항! 탄성을 지르고 함박 스테이크를 입에 넣었다. 그렇게 입에서 살살 녹는 함박 스테이크를 오물오물 씹으며 환하게 웃었다. 커다란 만족감을 느낀 듯했다.
강인과 진호도 마찬가지였다. 둘 다 함박 스테이크를 참 맛있게 먹었다.
셋 다 같은 생각을 했다. 함박 스테이크를 매일매일 먹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흐흐흐! 참 맛있다.”
“맞아, 꿀맛이야.”
강인이 점심을 맛있게 먹다가 냅킨으로 입을 닦았다. 소스가 입 주변에 묻었다. 그렇게 만족감을 즐기고 있을 때
옆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강인이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옆에 한 아이가 서 있었다. 그는 동철이었다.
동철이 셋을 보고 씩 웃었다.
동철은 좀 전 축구 시합에서 두 골이나 넣은 짝수 팀 주장이었다. 반에서 가장 키가 컸고 덩치도 좋았다. 얼굴도 부리부리했다.
그가 깨끗이 비운 식판을 들고 입을 열었다.
“야, 너희들! 오늘 운이 좋은 줄 알아. 그걸 잊지 마.”
“뭐라고?”
반장 진호가 포크를 테이블에 탁! 내려놓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는 마른 체격에 키가 작았다.
비록 몸집이 작았지만, 호락호락한 아이가 아니었다. 단단한 몸에 기가 셌다. 네모난 얼굴에서 강한 기질이 보였다.
“너, 지금 뭐라고 했어? 우리가 운이 좋았다고?”
진호가 무척 기분 나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동철이 실실 웃으며 답했다.
“그래, 운이 참 좋았지. 그리고 진호, 잘 들어. 네가 반장이라고 으스대는데 … 난 그런 거 전혀 신경 안 써.
그러니까 까불지 마. 쪼그만한 게 어디서!”
“이 자식이!”
진호가 화를 참지 못했다. 동철이 키가 크고 덩치가 좋다고 작은 사람을 무시했다.
동철이 이번에는 강인에게 말했다.
“특히 강인이가 참 운이 좋았지. 평상시 같으며 공이 아니라 신발을 날렸을 텐데 말이야.”
“뭐?”
강인이 그 소리를 듣고 삽시간에 얼굴과 귀가 뻘게졌다. 동철이 강인의 아픈 곳을 찔렀다.
동철의 말대로 공을 찰 때 공이 아니라 신발이 날아간 적이 있었다. 그때 아이들이 배가 터질 듯이 웃어댔다.
“이게 진짜!”
가만히 있던 윤호가 결국, 참지 못하고 고개를 마구 흔들었다. 그가 포크를 꼭 쥐고 말했다.
“야! 다음에 또 붙자. 세 번째 시합이야. 그때 승부를 내자!”
“OK! 좋았어. 기다리던 말이야. 그때도 윤호, 네가 골키퍼 해라. 넌 둔해 터져서 골 넣기가 참 좋더라고. 골대가 그냥 태평양이야.”
“이것이! 어떻게 그렇게 심한 말을!”
윤호가 발끈했다. 모욕을 당하자, 몸을 부르르 떨었다.
“흐흐흐!”
동철이 연신 비웃음을 흘리며 식판 반납대로 향했다.
“저 왕싸가지!”
진호가 화를 참지 못했다. 윤호도 마찬가지였다. 윤호가 이를 악물며 말했다.
“저 왕짜증!”
강인도 친구들과 마찬가지였다. 동철이 아주 얄미웠다. 키가 크고 덩치가 좋다고 같은 반 아이들을 업신여기기 일쑤였다.
“으으으~!”
강인이 화를 삭이고 식판을 내려다봤다. 밥이 아직 남아 있었다. 남은 밥을 다 먹어야 했다.
엄마가 항상 말했었다. 비싼 밥 남기지 말라고 … 싹싹 다 먹으라고 늘 말했었다.
강인이 숟가락을 들었다. 남은 밥을 맛있게 싹싹 먹었다.
맛있는 점심 식사가 끝나고 오후 수업이 시작됐다. 마지막 수업인 국어 수업이 끝났다. 선생님이 고운 목소리로 아이들에게 작별 인사했다.
“오늘 수업이 끝났어요. 내일 건강한 모습으로 다시 봐요! 여러분.”
“네! 선생님. 감사합니다.”
아이들이 책가방을 싸 들고 학교에서 나왔다. 다시 재잘거리며 학교 정문으로 향했다. 정문 앞에 차들이 많았다. 학부모들의 차였다.
많은 아이가 부모의 차를 타고 학원으로 향했다. 진호와 윤호도 마찬가지였다. 그들도 학원에 가야 했다.
반면 강인은 그렇지 않았다. 그는 학원을 다니지 않았다. 아빠의 뜻이었다.
강인 엄마는 다른 엄마들처럼 아들을 학원에 보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강인 아빠는 이에 반대했다. 아빠가 말했다.
“우리 강인이는 똑똑한 아이야. 굳이 학원을 다닐 필요 없어. 오히려 역효과만 날 거야. TV 볼 거 다 보고 게임 열심히 하고 노는 게 제일 좋아.”
“아니, 그게 대체 무슨 말이에요?”
엄마가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반박했다.
아빠가 말을 이었다.
“강인이는 공부보다 다른 거에 소질이 있는 거 같아. 잘 놀다가 성인이 되면 알아서 잘할 거야. 걱정하지 마.”
“어떻게 그렇게 무책임할 수 있어요?”
아빠가 대답 대신 빙그레 웃었다. 엄마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빠가 말했다.
“내가 그랬어. 강인이는 나와 달리 키우고 싶어. 내 전철을 밟으면 나처럼 돼. 그러기를 원해?”
그 말을 듣고 엄마가 반박하지 못했다.
아빠가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강인이를 크게 키우고 싶으면 내 말대로 해.”
“아이, 참!”
엄마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녀가 고개를 흔들었지만, 남편의 뜻을 따랐다.
그녀가 보기에도 아들은 비범한 데가 있었다. 그 비범함은 독특했다. 말로 표현할 수가 없었다. 건들면 안 되는 그 무엇이 있는 거 같았다.
그렇게 강인은 아빠의 결정과 엄마의 배려로 학원을 다니지 않았다. 그래서 학교를 파하고 집에 돌아오면 강아지랑 실컷 놀고 TV를 보고 게임을 즐겼다.
오늘도 그런 날이었다. 강인이 저녁을 맛있게 먹고 아빠랑 같이 안방에서 TV를 봤다.
공중파에서 ‘오늘 저녁 좋을시고’가 방송됐다. 전국의 향토 음식을 소개하는 인기 프로였다.
유명 개그맨들이 나와서 각지의 향토 음식을 먹으며 구수한 너스레를 떨었다.
그렇게 아빠와 강인이 TV 삼매경에 빠졌을 때,
엄마가 소반을 들고 방으로 들어왔다. 소반에 맛있는 과일이 잔뜩 있었다. 오렌지와 바나나였다.
“흐흐흐! 오렌지다!”
강인이 오렌지를 보고 두 눈을 크게 떴다. 강인은 오렌지를 참 좋아했다. 오렌지의 달콤하고 시큼한 맛이 그의 혀를 살랑살랑 놀렸다.
아빠가 말없이 바나나를 들었다. 껍질을 벗기고 한입 베어 물었다.
강인은 오렌지 조각을 들고 과육을 먹기 시작했다. 과즙이 터지면 그 향긋한 풍미가 코를 간지럽혔다.
바나나 껍질을 벗기던 엄마가 근심 어린 목소리로 아빠에게 말했다.
“여보, 우리 동네에서 애 하나가 실종됐어요.”
바나나를 먹던 아빠가 그 말을 듣고 멈칫했다. 그가 놀란 얼굴로 말했다.
“그런 일이 있었다고?”
엄마가 고개를 끄떡이고 말을 이었다.
“진주 엄마가 아이를 찾고 있어요. 애가 무용 학원을 마치고 집으로 갔는데, 시간이 늦어도 집에 오지 않았대요.
그래서 경찰에 실종 신고를 했대요.”
“아이고! 이런. 그래서 어떻게 됐어?”
“경찰이 찾고 있는데 아직도 소식이 없대요. 애를 잃어버린 지 벌써 삼 일이나 지났어요.”
“정말, 큰일이 생겼군. 진주 엄마가 크게 상심했겠네.”
“맞아요. 지금 진주 엄마 얼굴이 반쪽이 됐어요. 하도 울어서 눈두덩이가 퉁퉁 불었어요. 누가 아이를 데리고 간 거 같아요.”
“쯧쯧!”
아빠가 안타까움에 혀를 찼다.
강인이 그 소리를 듣고 진주라는 아이를 생각했다. 동네에 진주라는 이름을 가진 여자아이가 있었다.
엄마가 노란 바나나 하나를 아들에게 주며 말했다. 간곡한 목소리였다.
“아들, 누가 따라오라고 하면 절대 따라가면 안 돼! 무슨 말인지 알겠지?”
“네, 알겠어요.”
“혹 낯선 사람이 엄마, 아빠가 저기에 있다고 말해도 그 말을 절대 믿으면 안 돼! 알았지? 그런 사람들은 다 나쁜 사람들이야.”
“네! 명심할게요.”
강인이 방긋 웃으며 답했다. 바나나를 맛있게 먹기 시작했다. 바나나를 먹으며 생각했다.
‘진주는 내가 아는 아이인데 … 왜 집에 돌아오지 않았지? 분명 동네 학원 다닐 텐데 … 이상한 일이네. 엄마 말대로 누가 데리고 간 건가?’
강인이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러다 뭐가 생각이 났는지 급히 말했다.
“엄마, 내일 선생님이랑 아이들과 함께 산에 가기로 했어요.”
엄마가 고개를 갸우뚱하고 말했다.
“산에 간다고? 내일은 휴일인데 ….”
강인이 말을 이었다.
“선생님이 산에 다 같이 놀러 가자고 하셨어요. 우리 반, 봄 소풍이라고 하셨어요.”
“아, 그렇구나. 반에서 하는 봄 소풍이구나.”
엄마가 환하게 웃으며 답했다. 엄마가 잘 알겠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떡였다.
아빠도 고개를 끄떡였다.
둘 다 담임 선생님을 신뢰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녀가 하는 일에 토를 달지 않았다.
강인의 선생님은 아이들을 사랑으로 가르쳤고 누구보다 친절하고 자상했다. 그리고 엄할 때는 누구보다 엄했다. 신상필벌이 분명했다.
무엇보다 특정 아이를 향한 특별 대우가 없어서 학부모들이 대만족했다. 보기 드문 선생님이라고 칭찬이 자자했다.
엄마가 말을 이었다.
“어디로 가는데?”
“우리 동네에 높은 산이 있잖아요. 그 산으로 가기로 했어요.”
“아, 명덕산. 명덕산을 말하는 거지?”
“네, 맞아요.”
“명덕산 좋지. 수풀이 우거진 곳이지. 그런데 산이 좀 험한데 ….”
“엄마, 그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에요. 아빠랑 같이 명덕산에 많이 올랐어요. 작년에는 정상까지 올라갔어요. 별로 힘들지 않았어요.”
엄마가 고개를 끄떡이며 말을 이었다.
“그렇지, 우리 강인이가 다 컸으니 그 정도 산은 아무것도 아니지. 암!”
엄마가 활짝 웃었다. 아들에게 오렌지를 건네며 말했다.
“어서 더 먹어, 우리 아들.”
“네, 엄마!”
모자가 다정하게 말을 나누며 깔깔 웃었다. 그 모습을 아빠가 물끄러미 지켜봤다.
그는 말은 안 했지만, 강인에게 많은 기대를 걸고 있었다. 무뚝뚝한 아빠였지만, 강인이 큰 인물이 되기를 바랐다.
그래서 자기가 이루지 못한 꿈을 아들만큼은 이루기를 간절히 바랐다.
그렇게 화목한 가정에서 웃음소리가 그치지 않았다.
그 웃음소리와 함께 밤이 점점 깊어만 갔다. 민가의 불이 하나둘씩 꺼지자, 저 멀리 보이는 명덕산도 어둠에 휩싸였다.
명덕산은 크고 높은 산이었다. 해발 652m였다. 바위가 많은 바위산이기도 했다.
어두운 밤이라 산에 인기척이 없었다. 야행성 동물들만 돌아다닐 뿐이었다.
그렇게 어둠에 휩싸인 명덕산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산 중턱 암벽에 한 사람이 모습을 드러냈다.
한 손에 술병을 들고 있었다. 술병을 들더니 병째 마시기 시작했다. 그러자 뒤에서 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젊은 남자 목소리였다.
“박사님! 안 됩니다!”
술을 마시던 남자가 술병을 꽉 쥐더니 병을 바닥에 내리쳤다.
쟁그랑!
병이 깨지는 소리가 크게 들렸다. 그가 신경질적인 목소리로 말했다. 중년 남자 목소리였다.
“알았어. 알았으니 너는 안으로 들어가.”
“박사님, 희망을 버리지 마세요. 음주하시면 큰일 날 수 있어요.”
“나는 희망을 버린 적 없어. 어서 들어가!”
“네, 알겠습니다.”
젊은 남자가 풀이 죽은 목소리로 답하고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중년 남자가 산 중턱에 서서 산 아랫마을을 내려다봤다. 잠시 뭔가를 생각하다가 아! 하며 탄성을 질렀다. 그가 큰소리로 외쳤다.
“그렇지! 그게 있었지. 역발상이다! 역으로 조제하자! 그걸 시도해 보자! 하하하!”
중년 남자가 서둘러 움직였다. 그도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그렇게 명덕산에 인기척이 사라졌다.
밤이 더욱 깊어졌다.
산 아래 민가는 평온한 밤이었다. 명덕산은 그렇지 않았다. 긴장감이 서리는 일촉즉발의 뭔가가 도사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