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정 유강인 20편 <검은 피, 저주의 서릿발>
강원도 진향리, 유서 깊은 청기와집 뒤편 산속 동굴에서 한 남자와 어린 딸이 서로 껴안고 죽었다.
남자는 이곳 유지인 지씨 집안을 저주하는 말을 남겼다.
그로부터 몇 시간이 지난 후, 늦은 오후가 되었다.
정점에서 떨어진 해가 저 멀리 산꼭대기를 향해 굴러갔다.
그때,
“훠이! 훠이!”
호화로운 청기와집에서 난데없이 큰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우르르르~! 우르르르르~!”
“어리어리동동! 아리아리동동!”
큰 소리가 연달아 들렸다. 높은 어조였다. 싱싱한 목소리였다. 젊은 여자가 내는 소리였다.
그 소리에 맞춰 흥겨운 풍악이 들렸다. 꽹과리. 장구, 북, 징, 태평소 소리가 크게 들렸다.
“깽~ 게 깽~ 게 깽 깽 깽~!”
리드 악기 꽹과리가 먼저 리듬을 타기 시작했다.
그 리듬에 따라 북이 둔탁한 소리를 냈다. 장구가 빠른 음을 내며 휘몰아쳤다. 징이 큰 소리로 그 존재감을 알렸다.
“징~! ……… 징~!”
“얼쑤! 지화자!”
한 여인이 음악 소리에 맞춰 춤을 추기 시작했다. 그녀는 남다른 옷을 입고 있었다.
오방색 저고리, 치마에 소매가 아주 넓은 하얀색 두루마기를 걸쳐 입었다. 머리에는 하얀색 고깔모자를 썼다.
허리에는 번쩍번쩍 금속 장신구가 달린 넓은 허리띠를 맸다.
“좋을시고!”
연신 흥겨운 소리를 내지르던 여자가 마당에서 폴짝폴짝 뛰기 시작했다. 개구리처럼 위로 튀어 올랐다. 신발에 스프링이 달린 듯했다.
시간이 갈수록 점점 높이 튀어 오르더니 방방! 위로 치솟았다. 실로 놀라운 점프력이 아닐 수 없었다.
이곳은 청기와집 안채 앞마당이다. 아주 푸짐하게 차려진 제사상 앞에서 한 무당이 흥겨운 춤을 추고 있었다.
무당은 나이가 젊었다. 20대 초반이었다. 그녀는 전능한 용왕신과 효의 상징, 심청 황후를 모시는 용궁 보살이었다.
용궁 보살은 키가 작았다. 140cm 중반이었다. 몸매는 매우 말랐다. 얼굴은 네모났다. 이목구비도 볼품이 없었다.
눈과 입이 콩알처럼 작았고 코는 버선코 같았다.
용굴 보살의 외모는 한마디로 존재감이 없었다. 하지만 의식을 시작하자, 상황이 180도로 바뀌었다.
졸린 듯 거슴츠레했던 두 눈이 두 배로 커졌다. 두 눈에서 광채가 번쩍였다. 실로 무서운 눈빛이었다. 승냥이의 눈빛 같았다.
“어머니! 어머니!”
용궁 보살 옆에서 그녀를 연신 부르는 사람이 있었다. 무당을 부르며 응원하는 거 같았다. 10대 초반 소녀였다. 용궁 보살의 신딸, 새끼 무당이었다.
새끼 무당은 하얀색 소복을 입었다. 양손에 커다란 부채와 방울을 들고 서 있었다.
의식의 흥을 돋아주는 악단은 총 다섯 명이었다. 각자 악기를 잘 다뤘다. 꽹과리, 장구, 북, 징, 태평소 소리가 아주 잘 어울리며 굿판의 흥이 돋구었다.
“아!”
용궁 보살이 갑자기 탄성을 지르고 푸른 하늘을 쳐다봤다. 그녀가 크게 외쳤다. 그 소리가 안채에 크게 울렸다.
“용왕님이시여! 공양미 삼백 석에 팔려 인당수에 스스로 떨어진 불쌍한 심청 황후를 구했듯, 우리 지씨 가문 따님을 구해주소서!
심봉사를 구하려 깊디깊은 인당수에 쏙 빠진 심청 황후처럼 얼른 지씨 가문 따님을 구해주소서! 얼쑤!”
용궁 보살이 말을 마치고 다시 춤을 추기 시작했다.
굿판에 많은 사람이 모며 있었다. 대략 50명이었다.
그들이 무척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무당의 활약을 지켜봤다. 굿은 일종의 공연이었고 놀이였고 병을 고치고 집안의 안녕을 기원하는 의식이었다.
그중에 눈에 띄는 사람이 하나 있었다.
그는 하얀 양복과 하얀 중절모, 백구두를 신은 신사였다. 청기와집의 주인, 지인광이었다.
지인광은 50대 초반 남자로 강원도 진향리 유지였다. 이 일대에서 그를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읍내에 나가면 읍장이 그에게 굽신거렸다. 대단한 권세를 휘두르는 실력자였다.
그는 하얀 얼굴에 후덕한 인상이었다. 딱 보기에 성격 좋은 점잖은 신사였다.
“좋군.”
지인광이 씩 웃었다. 그러자 옆에 있는 청년들이 너도나도 말했다.
“주인 어르신, 이제 굿판을 벌이고 있으니, 따님도 곧 쾌차하실 겁니다.”
“맞습니다, 주인 어르신. 용궁 보살은 용하다고 소문이 아주 자자합니다. 유명한 양의사가 못 고치는 병을 단박에 고쳤다고 들었습니다.”
지인광이 그 말이 맞는다는 듯 고개를 격하게 끄떡이며 말했다.
“그렇지. 이 세상은 … 사람의 힘으로 할 수 없는 게 있어. 그럴 때는 영험한 신령님께 의존해야 해. 지금이 바로 그때야.
우리 딸 몸에 아주 몹쓸 악귀가 들어왔어. 그 악귀를 쫓아내야 해. 그래야 우리 딸이 살 수 있어.”
“맞습니다. 주인 어르신이 가장 아끼는 따님이신데, 하늘도 외면하지 않을 겁니다. 곧 쾌차하실 겁니다.”
“그래, 두영아. 듣기만 해도 기분이 좋구나. 하하하!”
두영이라 불리는 남자가 황송하다는 듯 고개를 푹 숙였다. 그의 입가에 미소가 흘렀다. 그 미소는 저승사자처럼 섬뜩했다.
그는 부러진 나무토막처럼 키가 작았다. 몇 시간 전 곳간 안으로 들어가 시퍼런 칼을 쳐들고 김덕길을 죽이려 한 자였다. 이후 동굴 안에도 들어갔다.
지인광이 무척 흡족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때 급한 소리가 들렸다.
신이 나게 춤을 추던 용궁 보살이 갑자기 뛰기 시작했다. 안채 마당을 힘차게 달리며 크게 외쳤다.
“우르르르~! 우르르르르~! 얼어 죽은 귀신! 생귀신! 달걀귀신! 처녀 귀신! 물귀신! 총각 귀신! 변소 귀신! 꽃귀신! 모두 물러가라!”
용궁 보살 입에서 별의별 귀신의 이름이 다 나왔다. 마당에 뽀얀 먼지가 일었다.
용궁 보살이 순식간에 안채 마당을 세 바퀴나 돌았다. 무척 날쌘 몸놀림이었다. 그녀가 한 손을 높이 쳐들고 외쳤다
“부채와 방울!”
“예이! 어머니.”
새끼 무당이 급히 용궁 보살에게 달려갔다. 신어머니에게 커다란 부채와 방울을 건넸다.
부채와 방울을 받은 용궁 보살이 씩 미소를 지었다. 오른손으로 부채를 시원하게 쫙 펴고 왼손으로 방울을 마구 흔들어대며 외쳤다.
“용왕님이시여! 충신 별주부를 보내주소서. 지금 지씨댁 아가씨 몸에 아주 음탕한 총각 귀신이 착 달라붙었습니다.
총각 귀신이 아가씨의 정기를 몽땅 뽑아먹으려 합니다. 어서 구해야 합니다! 시간이 없습니다.
충신 별주부를 어서 보내주소서! 교활한 토끼는 제가 그 입을 틀어막았습니다. 걱정할 필요 없습니다.”
용궁 보살이 연신 고개를 수그리며 말을 이었다.
“심청 황후님도 보살펴주소서! 지씨댁 따님도 심청 황후님처럼 효성이 아주 지극합니다!
매일 아버지를 위해 아침 일찍 일어나 용천수를 바쳤습니다. 부디 가엽게 여기시어 지씨댁 따님을 살려주소서!”
경쾌하게 울리는 방울 소리를 듣고 지인광이 침을 꿀컥 삼켰다. 눈빛에 간절함이 엿보였다.
"지씨 어르신."
새끼 무당이 지인광에게 눈짓하며 말했다.
그러자 지인광이 고개를 끄떡였다. 양 입술에 침을 덕지덕지 바르고 걸음을 옮겼다. 품에서 지폐 뭉치를 꺼내서 제사상으로 걸어갔다.
제사상에 돼지머리가 있었다. 그가 말했다.
“용왕님, 심청 황후님 제발 부탁합니다. 딸을 살려주세요.”
지인광이 말을 마치고 돼지 입에 천원 지폐 열 장 (현재 금액, 4백만 원)을 꼽았다.
그 모습을 보고 용궁 보살이 인상을 팍 썼다. 그녀가 크게 외쳤다.
“정성이 적다! 정성이 적으면 부정탄다!”
“아이고, 죄송합니다.”
지인광이 급히 말하고 품에서 지폐 다섯 장을 더 꺼냈다. 지폐 다섯 장을 돼지 입에 서둘러 꽂았다.
그 모습을 보고 용궁 보살이 빙그레 웃었다. 그녀가 신이 난 목소리로 말했다.
“아주 좋다! 정성은 지극할수록 좋은 것이다! 돈이 중요하냐? 딸이 중요하냐? 둘 중에서 하나를 택해라! ……… 아! 별주부님, 오셨군요. 용왕님 뜻을 전하러 오셨군요.”
용궁 보살이 말을 멈추고 큰절을 하기 시작했다. 마치 그녀 앞에 누군가가 있는 거 같았다.
“와! 드디어 신령님과 통했구나!”
모인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용궁 보살 앞에는 아무도 없었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신령님이 그녀를 찾아왔다고 생각했다.
사람들이 너도나도 두 눈을 크게 떴다. 굿이 절정을 향해 달려갔다. 이제 지씨댁 딸의 몹쓸 병을 고쳐야 했다. 음탕한 총각 귀신을 얼른 쫓아내야 했다.
정성스럽게 큰절을 하던 용궁 보살이 몸을 일으켰다. 그러다 화들짝 놀랐다. 깜짝 놀란 표정을 짓더니 다시 한번 정성껏 큰절했다. 그녀가 말했다.
“아이고 황송하옵니다. 심청 황후님도 오셨군요! 정말 감사합니다. 그 뜻을 성심껏 받들겠습니다.”
용궁 보살이 바짝 엎드렸다. 그러자 악단이 연주를 멈췄다. 모인 사람들도 입을 다물었다.
넓은 마당에 고요함이 깃들기 시작했다.
지인광이 무척 간절한 표정으로 두 손을 모았다. 그에게 요즘 커다란 근심이 있었다.
그는 자식이 많았다. 아들 일곱에 딸 하나였다. 총 여덟 자식을 뒀다.
그런데 막내딸이 갑자기 시름시름 앓기 시작했다. 막내딸은 그가 가장 아끼는 금지옥엽이었다.
아들을 내리 일곱을 낳고 마지막으로 낳은 딸이었다. 딸은 아빠를 똑 닮았다. 성격도 비슷했고 먹성도 같았다. 애교도 많아서 아빠의 기쁨이었다.
매일 아버지 건강을 위해 산에 올라가서 용천수를 떠왔다.
그런 딸이 넉 달 전부터 갑자기 아프기 시작하더니 사경을 헤매기 시작했다.
용하다는 의원을 모조리 찾아갔지만, 그 병을 알 수 없다는 말만 했다.
그는 내키지 않았지만, 딸을 살릴 생각에 읍내로 가서 양의사도 찾았지만, 양의사도 도통 무슨 병인지 모르겠다는 말만 거듭했다.
그래서 마지막 희망으로 무속에 의지했다.
그동안 아주 용하다는 무당 다섯이 그의 집을 찾았지만, 아무런 효과가 없었다.
딸의 상태는 점점 심해졌다. 삼 일 전부터 의식을 잃어서 혼수상태였다. 날로 수척해져 곧 죽을 것만 같았다.
지인광은 마음이 급했다. 다시 용한 무당을 수소문했다. 그렇게 해서 모셔온 게 용궁 보살이었다.
그는 무당의 나이가 너무 젊어서 내키지 않았지만, 그녀의 번뜩이는 눈빛을 보고 그녀를 믿기로 했다. 총명함과 신기를 느낄 수 있었다.
지금 용궁 보살이 마지막 희망이었다. 어제 다녀간 의사가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말했다.
“그건 안 될 일이야! 내 딸은 어떻게 든 살려야 해! 무슨 수를 쓰더라도!”
지인광이 뼈만 남은 딸의 손목을 잡고 다짐했다. 그는 생기를 잃어가는 딸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얘야, 너만 살릴 수 있다면 이 청기와집도 다 바칠 수 있다. 제발 딸아 일어나라! 다시 산에 올라 용천수를 떠오렴.”
지인광이 간절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렇게 딸은 그의 몸과 같았다.
심청 황후를 맞이한 용궁 보살이 다시 춤을 추기 시작했다. 악단이 다시 연주를 시작했다. 그녀가 크게 외쳤다.
“작두를 대령하라!”
“예이! 어머니.”
새끼 무당이 낑낑거리며 커다란 작두를 들고 왔다. 작두를 탁 열자, 시퍼런 칼날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
용궁 보살이 작두날을 보고 만족한 표정으로 외쳤다.
“아주 좋구나! 날이 시퍼런 게, 대왕 무도 싹둑 자르겠구나! 하하하!”
용궁 보살이 말을 마치고 신발과 버선을 벗었다. 작두 위로 폴짝 올라가더니 작두 위에서 춤을 추기 시작했다.
시퍼런 작두 위에서 폴짝폴짝 뛰며 크게 외쳤다.
“이제 바가지를 가져와라! 본때를 보여주겠다. 총각 귀신을 혼쭐내겠다.”
“예이, 어머니.”
새끼 무당이 커다란 바가지를 갖고 왔다. 바가지 안에는 검붉은 액체가 잔뜩 담겨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