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정 유강인 20편 <검은 피, 저주의 서릿발>
용궁 보살이 두 눈을 부릅떴다. 그녀가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외쳤다.
“용왕님과 심청 황후님의 뜻이다! 간악한 총각 귀신은 썩 물러가라! 빈대처럼 들러붙지 말고 어서 썩 꺼져라! 이 팥죽이 두렵지 않느냐!”
그 소리와 함께 바가지가 위로 올라갔다.
용궁 보살이 바가지를 높이 쳐들고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
“칭! 칭! 칭!!”
“삐리리! 삐리리!!”
풍악이 점점 빨라졌다. 그 소리가 최고조에 다다랐을 때!
“어서 썩 물러가라!!”
용궁 보살이 큰소리를 내질렀다. 그리고 들고 있던 바가지를 바닥으로 힘껏 내리쳤다.
빡!
바가지 깨지는 소리가 크게 들렸다. 동시에 검붉은 팥죽이 사방으로 쫙 퍼졌다.
“우와!”
모인 사람들이 그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다. 두 눈이 동그래졌다.
검붉은 기운이 안채 마당에 한가득했다.
검붉은 거미줄이 삽시간에 퍼진 듯했다.
마당에 팥죽 냄새가 진동하기 시작했다.
“저거 팥죽이지?”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그러다 너도나도 한 손으로 코를 막기 시작했다.
“냄새가 좀 이상한데 …”
“피비린내가 나는데 ….”
“팥죽에 돼지 피를 섞었나?”
“팥이 귀신을 쫓는다고 듣기는 들었는데 돼지 피도 그런가?”
악단이 음악을 멈췄다. 드디어 예식이 끝났다.
지인광이 서둘러 용궁 보살을 향해 걸어갔다. 그가 말했다.
“용궁 보살님, 총각 귀신이 도망갔나요?”
용궁 보살이 대답 대신 작두에서 내려왔다. 한 손으로 이마에서 줄줄 흐르는 식은땀을 닦았다. 기력이 쇠한 듯 휘청거렸다.
“어머니!”
새끼 무당이 달려와 신어머니를 부축했다.
“어머니, 괜찮으세요?”
“괜찮다.”
용궁 보살이 짤막하게 답하고 굿 의뢰인인 지인광을 쳐다봤다. 그녀가 엷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이제 다 됐습니다. 총각 귀신을 쫓아냈습니다. 따님이 곧 쾌차하실 겁니다.”
“정말입니까?”
“네, 그렇습니다. 선생님의 지극한 정성에 용왕님과 심청 황후님이 감복했습니다. 어서 따님을 만나러 가세요.”
“네, 알겠습니다.”
지인광이 기쁨을 참지 못했다. 용궁 보살에게 공손히 인사하고 안채로 달려갔다. 안방에 병든 딸이 있었다.
안방 바닥에 작은 접시가 있었다. 접시 안에 검붉은 액체가 반쯤 있었다. 이 액체는 용궁 보살이 직접 제조한 약이었다.
어머니가 딸의 한 손을 꼭 잡고 울먹였다.
“얘야, 어서 눈을 떠! 제발. 용한 무당이 오셨어.”
“으으으~!”
신음이 들렸다. 괴로운 소리가 아니라 뭔가에서 벗어난 소리였다.
음탕한 총각 귀신이 진짜로 사라졌는지 딸이 몸을 미세하게 떨었다. 그러다 천천히 두 눈을 떴다.
“아! 드디어 눈을 떴구나.”
어머니가 기적을 본 듯한 얼굴로 외쳤다.
안방에 들어온 지인광이 부인의 소리를 듣고 급히 말했다.
“여보!”
부인이 서둘러 고개를 돌렸다. 그녀가 남편에게 말했다. 기쁨이 넘치는 목소리였다.
“막내가 눈을 떴어요. 드디어 정신을 차렸어요.”
“그, 그래? 정말 다행이다!”
지인광이 급히 딸에게 달려갔다.
아빠가 달려오자, 딸이 두 눈을 크게 떴다. 그렇게 아버지를 반겼다. 예전과 달리 얼굴에 생기가 감돌았다.
그녀가 입을 열었다. 개미 소리처럼 작은 목소리였다.
“아버지.”
“그래, 우리 딸, 이제 괜찮은 거야?”
“좀 나아졌어요.”
“정말 다행이구나! 정말 다행이야! 용왕님이, 심청 황후님이 우리를 보살폈어. 하하하!”
지인광이 크게 웃었다. 그 웃음소리가 안채 마당에 들렸다.
모인 사람들이 그 웃음소리를 듣고 너도나도 기뻐했다.
“따님한테 쾌차가 있는 모양이네요.”
“네, 그런 거 같습니다. 역시 용궁 보살이 용합니다.”
“맞아요. 우리도 굿을 부탁해야 할 거 같아요. 집에 아픈 사람이 있어요.”
모인 사람들이 기쁜 나머지 너도나도 손뼉을 치기 시작했다. 그 소리가 청기와집에서 크게 들렸다.
지역 유지의 딸이 쾌차했다. 무척 경사로운 일이었다.
하인들이 모인 사람들에게 크게 말했다. 신이 난 목소리였다.
“여러분, 제사 음식을 나누겠습니다. 모두 한 보따리씩 받아가세요.”
“아이고 고맙습니다.”
“이거 수지맞았는데 ….”
모인 사람들이 아주 즐거워했다. 굿의 마지막은 나눔이었다. 제사 음식을 이웃과 나누는 친목 도모가 마지막이었다.
오늘 차려진 제사 음식은 상다리가 부러질 정도로 진수성찬이었다. 누구든지 군침을 흘릴만 했다.
“돼지머리 좀 잘라주세요. 우리 아들이 머리 고기를 참 좋아해요. 고기가 야들야들하잖아요.”
“난 과일을 좀 …. 요즘 과일이 댕기네.”
“네, 네. 알겠습니다.”
하인들이 돼지머리를 자르며 답했다.
“휴우~!”
잠시 쉬며 숨을 돌리던 용궁 보살이 기력을 되찾았다. 허공을 잠깐 주시하더니 공손히 큰절했다. 그녀가 말했다.
“감사합니다. 용왕님, 심청 황후님! 다 두 분 덕분입니다.”
용궁 보살이 절을 마치고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씩 웃었다. 웃음에 기쁨과 함께 비열함이 묻어 있었다. 그녀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역시 젊은 것의 피가 참 좋군. 흐흐흐!”
용궁 보살이 걸음을 옮겼다. 그 뒤를 새끼 무당이 따랐다.
그렇게 질펀한 굿이 끝났다.
지인광의 딸이 회복했다는 소문이 삽시간에 퍼져나갔다. 그 소문을 들을 사람들이 엄지척했다. 용궁 보살이 참으로 용하다고 칭찬했다.
지인광은 용궁 보살에게 감사함을 전했다. 굿값과 약값으로 50만 원(현재 금액 2억 원)을 쾌척했다.
큰 금액이었지만, 그는 전혀 아깝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이후 지인광의 딸은 건강을 되찾았다. 예전처럼 아침 일찍 일어나 동네 약수인 용천수를 떠왔다.
지인광은 딸의 정성이 가득 담긴 용천수를 마시며 정말 기뻤다. 이 세상에서 가장 달콤하고 감미로운 물이라 생각했다.
시간이 흘러 겨울이 되었다.
강원도라 한파가 매서웠다. 하지만 동장군도 딸의 효성을 막을 수는 없었다.
지인광의 딸이 어두컴컴한 길을 걸었다. 옆에 하녀가 있었다. 둘이 저 앞에 있는 산을 향해 걸었다.
용천수는 용천산 초입에 있는 약수터 물이었다. 그 물을 마시면 피부가 비단결처럼 좋아지고 소화도 촉진한다는 속설이 있었다.
특히 동틀녘에 떠온 물은 가장 효능이 좋다고 알려졌다.
딸이 용천산 초입 약수터에 올랐다. 하녀가 주인에게 말했다.
“오늘, 날이 너무 추워요. 발이 시려서 죽겠어요.”
딸이 빙긋 웃으며 답했다.
“용천수는 추울수록 그 효능이 좋대. 오히려 더 잘된 일이야.”
딸이 한 손을 들었다. 그러자 하녀가 품에 안고 있던 물병을 주인에게 건넸다. 유리로 만든 커다란 물병이었다.
딸이 용천수를 물병에 담으려 할 때
“억!”
갑자기 큰 소리가 들렸다. 이윽고
쟁그랑!
유리병이 바닥에 떨어져 깨지는 소리가 들렸다.
“아가씨! 아가씨!”
하녀가 크게 외쳤다. 무척 다급한 목소리였다.
딸이 바닥에 쓰러졌다. 입에서 뭔가가 흘러나왔다. 그건 검은 피였다. 다량의 검은 피가 입 주변에 있었다. 딸은 의식을 잃은 듯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헉!”
딸이 흘리는 검은 피를 보고 하녀가 소스라치게 놀랐다. 검은 피가 입에서 계속 흘러나왔다.
“아이고! 이를 어째!”
하녀가 급히 달리기 시작했다. 주인집으로 달려가 도움을 요청했다.
일주일 후 청기와집에서 상여가 나갔다. 젊은 딸이 요절하고 말았다. 그녀는 17세에 불과했다.
딸을 잃은 슬픔에 지인광이 비탄에 잠겼다. 가장 소중한 걸 잃어버린 사람의 모습이었다. 이후 지인광은 식음을 전폐했다.
그렇게 이틀이 지났을 때 한 사람이 그를 찾아왔다. 그는 용궁 보살이었다. 용궁 보살이 무척 굳은 얼굴로 지인광에게 말했다.
“제가 말한 금기를 지켰나요?”
지인광이 울먹이며 답했다.
“다 지켰습니다.”
“혹 무슨 일이 있었나요? 사실대로 말해주세요.”
용궁 보살의 말에 지인광이 한 사람을 떠올렸다.
그는 김덕길이었다. 청기와집 뒤편 동굴에서 딸과 함께 죽은 자였다. 김덕길이 죽기 전 저주를 남겼다.
지인광은 그 저주를 용궁 보살에게 숨겼다. 죽기 전 싸지른 개소리라 생각하고 개의치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말해야 했다. 김덕길의 저주대로 딸이 죽고 말았다. 딸이 검은 피를 토하고 세상을 떠났다.
“그게, … 김덕길이라는 자가 굿을 하기 전, 저주를 퍼부었습니다.”
“네에? 뭐라고요? 그걸 왜 말하지 않았죠?”
“그냥 별거 아니라 생각했습니다. 죽기 전, 개소리 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저주가 대체 뭐죠?”
지인광이 김덕길이 말한 저주를 그대로 읊었다.
“지씨 집안에 저주를 내리리라! 모두 검은 피를 토하고 불지옥의 고통을 느끼며 … 서서히 죽어갈 것이다.
이는 피할 수 없는 운명이다. 너희가 자초한 업보다! 내 저승에서 그 모습을 똑똑이 지켜볼 것이다!”
그 말을 듣고 용궁 보살이 소스라치게 놀랐다. 그녀가 급히 말했다.
“부정 탔다! 부정 탔어!!”
“으으으~!”
지인광이 신음을 흘리고 고개를 푹 숙였다. 뭔가 찔리는 게 있는 거 같았다. 그가 말을 이었다.
“김덕길이라는 자는 … 영숙이 아버지입니다. 영숙이는 우리 딸을 위해 피를 바친 아이고요.”
용궁 보살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녀가 크게 외쳤다.
“검은 피의 저주가 내렸어. 지씨 집안에 우환이 닥쳤어! 앞으로 큰일이 날 거야! 지씨 집안에 악재가 넘칠 거야!”
“네에? 악재가 또 있다고요?”
지인광이 매우 놀란 얼굴로 물었다.
용궁 보살이 이를 악물었다. 그녀가 말했다.
“이를 막아야 해. 하지만 쉽지 않은 일이야. 영숙이 피로도 막지 못했어. 앞으로 무슨 일이 닥칠지 몰라!”
용궁 보살의 예언은 거짓이 아니었다. 그 이후로 지인광의 아들들이 차례대로 죽어갔다. 모두 검은 피를 토하고 요절했다.
그렇게 일곱 아들 중 다섯이 모두 죽고 말았다.
한 집안에 비극이 닥쳤다. 그 비극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그 속에서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공포와 불안이 가득했다.
아울러 동굴 속에 파묻혔던 분노도 꿈틀거렸다.
31년 후
1996년 4월 19일 오전 11시
화창한 날이었다. 오늘은 날이 좋았다. 어제는 비가 많이 오고 바람이 많이 불었다.
오늘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역시 4월은 종잡을 수 없는 달이었다.
한 초등학교에서 아이들이 운동장으로 우르르 몰려나왔다. 모두 노란색 체육복을 입고 있었다. 선생님이 한 손을 들고 아이들을 불러모았다.
“자, 여기로 오세요.”
“네! 선생님.”
아이들이 크게 대답했다. 그 아이 중에 강인도 있었다. 강인이 선생님을 향해 달려갔다. 무척 해맑은 얼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