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늘 교사 퇴임한 이정자입니다. 사십여 년 교직에 있었습니다.
집안이 넉넉한 편이라 원하면 대학에는 가게 해 주겠다, 그런데 여자는 시집가면 살림하는 세상에 대학 가는 건 좀 낭비라고 생각한다, 그러니 교대에 가면 학비를 주겠다는 아버지 말씀 따라 교대에 갔어요. 하하하, 딱히 교사로서의 사명감 이런 거는 없었네요, 솔직하게.
사명감 가지고 교사 일 하시는 동료 선생님들과 직업관이 다른 게 부끄러울 일은 아니잖아요. 직장으로 학교가 좋은 점만 있는 것도 아니고, 이제 대부분 아시다시피 행정적 잡무가 많잖아요. 그나마 요즘은 전산처리 되는 게 많으니까 편하다지만 우리 때는 그거 다 일일이 손으로 했으니까 얼마나 더디고 시간이 많이 걸렸겠어요. 맞아요, 나이 먹어 그 컴퓨터 배우는 것도 나 같은 사람한테는 일이었죠.
그래도 예전에는 선생님들을 우대하는 분위기가 있어서 막무가내 학부모들은 별로 없었으니까 그게 편하다면 편했을까요? 학생 수는 많았지만 모두 공주님, 왕자님인 요즘 아이들에 비하면 유순했다고 할까요? 아유, 요즘처럼 선생님들이 학생한테 맞고, 학부모한테 맞고 그런 뉴스가 넘치는 시절은 아니었어서 생각해 보면 또 그때가 좋기도 했죠.
“그런데 나 잠깐 쉬었다 해도 될까요? 화장실도 좀 가야겠고...”
시간도 늦어졌고, 오늘은 사전 인터뷰 형식이라 카메라도 없었다. 그럼에도 선생님은 탁자 위에 올려둔 전화기의 녹음 기능을 끄는 것을 확인한 후 자리에서 일어났다. 육십 대라지만 제법 큰 키에 살짝 웨이브진 단발머리가 선생님을 좀 더 젊어 보이게 했다. 옆자리에 선생님이 내려놓은 퇴임 축하 꽃다발에서 잔잔한 꽃향기가 났다. 카네이션은 보이지 않았다.
선생님은 화장실에서 나오며 손수건으로 손을 닦았다. 주문대에 가 차를 한 잔 더 주문하는 것 같았다. 눈이 마주치자 슬쩍 웃었지만 차를 더 마시겠냐고 묻지는 않았다.
“나이를 먹으니까 입도 자꾸 마르고, 이것도 인터뷰라고 좀 긴장도 되고 그러네요.”
다시 자리에 앉은 선생님은 어깨에 걸친 쇠사슬 문양이 인쇄된 스카프를 다시 바르게 매만졌다. 그럼 긴장도 풀 겸 방송에는 내보내지 않을 가벼운 질문을 하겠다고 하니 그러라고 했다. 선생님이 만진 스카프는 아까보다 더 한쪽으로 치우쳤지만 굳이 말해주지 않았다.
사명감을 요구하는 직종 중 하나가 교사직이잖아요. 그리고 그 사명감을 자존심으로 안고 생활하시는 훌륭한 선생님들도 많아요. 하지만 나는 그런 분들과 다른 사람이고, 직업인 교사로 사는 게 부끄럽지 않아요. 아이들 자체에 딱히 애정이 없어서 편애를 한 적도 없고, 훈육이라는 이름으로 회초리를 든 적도 없어요. 문제가 있으면 교칙대로 움직였고, 운이 좋았는지 아이들이 드세지는 시점에서는 담임을 맡지 않았어요.
아, 꽃다발요, 카네이션이 별 건가요. 난 그런 거에 의미 두지 않아요. 내가 직장인으로 생활한 만큼 내 교사 생활에 학생들의 존경과 감사를 원하지 않아요. 균형이 맞는 기브 앤 테이크가 좋아요.
그렇죠. 예전에는 김영란 법 그런 거 없으니까 아이들 맡겨놓고 고생하신다고 성의 표시 해주시는 부모님들 많았죠. 그거에 대한 테이크? 뭐 별거 있겠어요? 예체능 실기 때 점수 조금 더 주는 거죠. 그리고 또 부모들이 그렇게 신경 쓰는 애들은 눈치도 좀 남달라요.
그렇게 물으니까 생각나는 애들이 있기는 한데 황정민이라고 얼굴도 하얗고 귀티 나게 생긴 애가 있었어요. 한 달에 한 번씩은 어머니가 학교에 오셔서 상담도 하고, 성의표시도 하고 가셨는데 정민이가 이 애 저 애 가리더니 최종적으로 붙어 다니는 애가 있었죠. 걔는 이름이 생각 안 나는데, 아버지 사업이 망했는지 빚쟁이가 교무실에 쫓아오기도 한 애였어요. 집안 형편 그러면 기가 죽을 법도 한데 부잣집 애 정민이랑 다니면서도 애가 기죽는 데가 없더라고요.
어쨌든 정민이가 미술 시간에 내내 게으르게 놀다가 한 시간 지나고 나면 그 단짝 거를 베끼더라고요. 내가 봐도 그 단짝 애 아이디어가 좋았거든요. 그런데 미술 학원 다니는 정민이가 거기에 한 두 개를 첨가해서 비슷하게 내놓으면 구도나 색감이 좋을 때가 있었어요. 그럼 나도 공정하게 정민이는 A+을 주고, 그 애는 B를 줬어요. 반복이었죠.
그런데 학교에서 무슨 대회가 있었어요. 찰흙으로 만들기를 해서 학교 대표를 뽑는 거였던가. 그날도 정민이가 그 애 거를 베꼈는데 갑자기 그 애가 자기가 만든 거를 다 뭉개고 정민이가 점수받고 난 다음에 공룡인가를 만들어서 내놓았어요. 비슷하게 만들어진 비교 대상이 있어야 정민이 작품이 더 돋보이는데 그 틀을 걔가 깬 거죠. 왠지 기분이 나빠져서 걔가 만든 거에 C를 줬죠. 근데 일이 이상하게 된 게 복도를 지나가던 미술반 선생님이 창틀에 올려진 그 애 작품을 보고 예심에 올려버린 거야. 기분이 더 나빠졌지.
그래서 그날 종례시간에 말해버린 걸지도 몰라. 너네 아버지 뭐 하시니? 왜 자꾸 교무실로 이상한 사람들이 찾아와? 그날이 마지막이었어. 그 애가 나랑 눈을 마주친 건.
아무런 감정 변화가 없는 선생님의 목소리가 기계음 같았다. 아홉 살 인생이었나. 그 책에 나왔던 월급 기계 선생님. 월급 기계. 어린아이에게 모욕감을 느끼게 하고, 그 아이에게 무시와 경멸의 감정을 받았음에도 자신의 이해관계와 관련이 없으면 아무 생각이 없구나.
그 이야기 너무 많이 들어요. 국민의 세금으로 월급 받는 공무원이 어쩌고 저쩌고, 애들 가르치는 선생님이라는 사람이 어쩌고 저쩌고. 아휴, 우리는 세금 안 내나. 우리 같은 공무원도 세금 내고 살아요. 그리고 그런 아이들. 교무실로 빚쟁이가 쫓아오게 만들어 놓고 고작 박카스 한 상자 들고 오는 그런 부모들이 애들을 얼마나 잘 가르쳤겠어요? 그런 애들이 자라서 세금 내는 일이나 하고 살까요?
그런 애들 나중이야 뻔해요. 운이 좋아 좋은 직업 가졌을지 몰라도 뭐 그런 운, 얼마나 되겠어요?
“그 운을 누린 사람이 저예요, 선생님. 저 모르시겠어요?”
왜 갑자기 그런 객기를 부린 건지 잘 모르겠다.
뭐?
다음에 말을 잇지 못하고 내 얼굴을 더듬더듬 바라보는 선생님의 표정을 보는 게 나쁘지는 않았다. 불안해 보이는 시선을 다잡으며 노려보듯 나를 보는 선생님의 시선을 마주하는 긴장감이 점점 올라갈 즈음, 인터뷰는 안 하는 걸로 하죠,라며 가방을 들고 선생님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한쪽으로 흘러내린 스카프를 바람에 날리며 멀어지는 선생님의 뒷모습을 유리벽 안에서 보며, 나는 복지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애써주셨던 고1 때 담임이었던 구현모 선생님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고아인 내게 지속적으로 연락을 하며 관심을 보내주신, 지금은 제주에 계시는 이영화 선생님께도 다녀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또 교사용 자습서를 내게 주셨던 김을영 선생님의 추모관에도 인사를 다녀와야지.
이정자 선생님이 두고 간 꽃다발을 바라보다 자리에서 일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