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추픽추, 네가 처음이야

- 사고 여행을 떠나봅니다

by 준 원 규 수

마추픽추는 난생처음으로 ‘가 보고 싶다’고 생각한 곳이었다.


뛰어노는 것도 좋아하고, 책을 보며 혼자 노는 것도 좋아했지만 ‘모험’이라는 말에 가슴이 두근거릴 만큼 호기심이 많은 아이이기도 했다. 모험이라는 낱말 자체가 '설렘'의 재질을 가지고 있기도 하지만 말이다.


책 제목은 기억나지 않지만 우연히 읽었던, 거대한 문명을 이루었지만 어느 날 갑자기 사라졌다는 잉카, 마야 문명에 대한 이야기는 우리나라의 어떤 설화보다 더 많은 이야기들을 내 머릿속에 낳아 놓았다.

그 호기심에 불을 붙인 건 같은 관심사를 가진 친구를 만나면서였다. 초등학교 6학년 때 같은 반이었던 그 아이와 한 달 여 가까이 틈만 나면 아틀란티스, 버뮤다 삼각지대, 잉카 마야 문명 같은 곳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 날 궁서체의 진한 글씨체가 머리에 새겨진 것이다.


마추픽추에 가고 싶다.

거대 상형 문자라는 나스카 라인도 보고 싶다.


정말 그들은 어디로 갔을까.

이 호기심을 싹을 잘 틔웠다면 나는 지금 고고학자나 인류학자가 되어 있거나 혹은 남미 지역의 전문 여행가가 되어 있지 않았을까.

아니라면 한 번쯤은 페루 여행이라도 다녀왔을 것이다.


그러나 여행이라는 것을 생각할 만큼, 장래희망을 넓게 펼쳐 생각할 만큼의 여백이 내 삶에는 없었다.

현실이라는 콘크리트를 뚫고 동굴 속 햇살만큼의 여유가 생겨 여행을 다니기 시작할 무렵에는 힘겹게 지나온 과거는 모두 잊고 있었다.

그러다 2014년 예능 ‘꽃보다 청춘’을 보다 문득 떠올랐다.


맞아, 나, 마추픽추에 가 보고 싶었어.

맞아, 나, 나스카 라인을 보고 싶었어.

오래된 앨범에서 잊고 있던 어린 시절의 사진을 발견한 것만 같았다.

그렇게 마추픽추는 다시 내 마음의 별이 되었다.


그렇다면 페루는 이 사고 여행의 첫 목적지가 되겠구나!


우선, 시기를 정해보자. 남반구에 있는 페루를 여행하기 좋은 시기는 6~8월이라고 한다. 건기의 겨울에 해당하지만 서울의 11월 기온과 비슷하다니 여행하기에는 딱 좋다.


내가 일주일 이상의 시간을 낼 수 있는 기간은 7월 초가 가장 만만하므로 7월 10일에 떠나는 것으로 하자.


우선 항공권을 구매해야 하는데 페루의 리마 공항까지 직항은 없다. 최소 1회 경유지를 거쳐야 하는데 미국을 경유하는 경우 미국 비자가 필요할 수도 있다고 하니 가급적 미국 공항 경유는 피한다. 잘못하면 비행시간이 40시간까지 늘어나므로 잘 선택해야 한다. 12월쯤에 미리 티켓을 구매하면 백만 원 후반 대에 표를 살 수 있다고 하는데, 나는 미리 표를 사지 않았으니 이백삼십만 원 초반대의 표를 구매한다.

마추픽추 가까이 있는 쿠스코로 가는 방법도 있지만 비행기 표는 백만 원 이상 더 비싸고, 페루의 수도인 리마를 관광하는 것도 나쁘지 않으니 리마에서 쿠스코로 하루를 들여 버스로 이동하거나 페루 국내선을 타기로 한다.


표를 예매한 후 황열병 예방주사를 맞을 수 있는 곳을 검색한다. 남미 여행을 할 때는 준비할 게 또 있는데 바로 예방접종. 황열병, 장티푸스, A형 간염, 파상풍, 말라리아 등을 맞아야 하는데 필수적인 것은 황열병이고 나머지는 선택사항이라고 한다. 볼리비아의 경우 접종 확인증을 요구한다고. 출발 일주일 전에는 맞아야 한다니 서둘러 보자.


또 하나, 마추픽추는 해발 2,400미터 이상의 고산지대에 있으므로 고산병에 대한 대비도 해야 한다. 쿠스코에서 미리 적응을 한 후 가는 것이 좋다는 말도 있으니 그렇게 되려면 리마에서의 일정을 줄이고 쿠스코에서의 일정을 늘려야 한다. 진짜 여행을 간다면 리마나 쿠스코에서 무엇을 보고, 어떻게 시간을 보낼지를 결정해야겠지만 이 사고 여행은 목적지인 마추픽추로 바로 향한다.


유적보호를 위해 마추픽추의 하루 방문객 수가 제한되어 있어 입장권과 교통권을 미리 예약하기도 해야 한다.

쿠스코에서 마추픽추로 가는 방법도, 마추픽추로 올라가는 코스도 다양하므로 나중에 생각하기로 한다. (사실은 예약을 하는 것이 편하고, 인터넷 예매도 가능하다.)


쿠스코에 도착해서는 머리가 아프고, 속도 메스꺼워 힘들었지만 삼일 째부터는 정상 컨디션을 찾았다. 하지만 만만치 않은 마추픽추. 비행기 고도가 올라갈 때처럼 귀가 멍해지다 이내 괜찮아졌다. 안개가 너무 심하면 보기 어렵다는데 마침 날씨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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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했던 것보다 더 거대하고, 정교한 손기술로 건축된 공중도시. 산꼭대기에 자리해 산허리의 구름을 발아래 두고 살았던 고대인들의 마을. 만여 명에 가깝던 잉카인들이 한 명도 남아있지 않던 폐허의 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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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카인들이 옥수수와 작물들을 심고 가꾸던 농경지와 물이 흐르던 관개 시설, 풍요를 기도했을 제단 등을 둘러보며 새삼 그 오랜 시간을 들여 내가 이 낯선 곳에 있구나, 하는 객수에 잠길 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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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산들과는 생김새도 다르고 느낌도 다를 그곳에서, 습도와 공기도 다를 그곳에서 망중한의 한나절을 보낼지도 모르겠다. 마추픽추에서 하루 자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지 모르지만 나스카 일정이 있으므로 아쉬워하며 발길을 돌릴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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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스카에 도착하면

경비행기장으로 향한다.

멀미가 심하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으니 멀미약을 미리 먹고, 아침부터 먹는 양도 좀 줄였다. AI의 도움으로 303개의 나스카라인을 더 찾았다는 기사를 보았다.

하지만 경비행기로 볼 수 있는 곳은 대표적인 원숭이, 고래, 벌새 등등의 그림들.


이 거대한 그림을 어떤 목적으로 어떻게 그려 놓은 걸까. 하늘에서 내려다보지 않으면 알 수 없어 도로로 잘린 그림을 볼 때 더 늘어나는 질문들...

정말 잉카나 마야의 문명을 세운 사람들은 외계인이 아니었을까...

장비만 발전하고 그들에 비해 현대인의 능력은 오히려 퇴화한 건 아닐까...

그런 생각과 벅찬 감동들이 가득할 것 같다.

멀미를 안 했다면...

SSC_20240928175944.jpg 새롭게 발견된 나스카 라인이라고... (출처 - Now뉴스/박종익 기자의 [핵잼사이언스] 2024.09.28 기사)

그 생각과 감동들이 내 어릴 적의 호기심을 풀어주지는 못 하리라.

이 호기심을 풀려면 이 분야에 대해 연구하는 학자가 되어 있어야 할 테니.


하지만 여행만으로도 어릴 적 꿈을 이루었다는 뿌듯함과 그 신비의 공간에 발을 디뎠다는 짜릿함은 무엇보다 값진 경험이 되지 않았을까.....

이렇게 생각하니 아직 마추픽추에 가지 못했다는 것이,

이제는 마음에서 내려놓으려 한다는 것이 아쉽다.

글을 쓰겠다고 이리저리 검색하며 이게 진짜 여행이라면... 생각을 하다 보니

진짜 마추픽추는 여행사 관광상품이 아니면 힘들겠구나 싶었다.

그런데 한국 여행사의 관광상품들 중 일정이 널널한 게 있기는 할지.


무엇보다 비행시간과 저 일정들을 소화해 낼 체력이 내게 있는가.

자신감은 체력에서 온다던 누군가의 말을 떠올리며 상상만으로도 황홀하고 고단한 마추픽추 여행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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