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소설]밤의 속삭임

by 주노

1.

‘지금 몇 시일까?’

고막을 간질이던 시계 초침 소리는 더해지는 시간의 힘을 받은 듯 북소리처럼 울려왔다. 북소리는 뇌수를 타고 온몸을 휘감아 돌며 내 몸을 안절부절못하게 만들었다. 하루 동안의 피로를 지우개처럼 지워 줘야 할 깊은 밤의 어둠은 온몸을 눌러 숨 쉬기조차 힘들게 하였다. 나를 누구보다도 걱정하는 남편과 나란히 누워있는 포근한 침대는 시침과 분침이 몇 번이나 만났어도 달콤한 잠의 세계로 나를 데려가 주지 않았다. 베개를 뒤집고 눈을 감아도 눈동자를 덮고 있는 얇은 막은 그 바깥쪽 세계를 선명하게 내게로 데려왔다. 남편의 새근거리는 숨소리도 더 이상 자장가로 들리지 않았다. 이제는 누워있는 매 순간이 잔혹한 순간으로 변해갔다. 나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애쓰는 남편이 행여나 뒤척여 잠을 깰까 봐 천천히 내 몸을 덮은 이불을 들어 올려 다리 하나를 침대 밖으로 내딛는다. 그리고 편해야 하지만 지금은 전혀 편하지 않은 숨 막히는 작은 직사각형의 공간을 천천히 빠져나왔다. 차가운 어둠과 적막함이 내려앉은 거실은 또다시 나를 불러내고야 말았다. 소파에 걸터앉아 가만히 숨을 내쉰다. 창밖에서 들려오는 희미한 자동차 소음조차도, 내 머릿속에서는 거대한 파도처럼 요란하게 울려왔다. 불이 꺼진 거실은 지금 이 순간 내가 집 안에서 찾을 수 있는 유일한 위안처다.

‘고통스러운 긴 밤이 또다시 시작이야’

잠 못 드는 밤은 너무나 길고 힘겹게 느껴진다. 벌써 반년이 다 되도록 다른 사람들 보다 더 긴 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나는 스스로 누구보다 강한 사람이라고 생각해 왔다. 지금도 강한 사람이고 싶다. 회사에서는 여전히 활발했다. 늘 그래왔다. 팀원들 앞에서 웃으며 다음 프로젝트의 계획을 짜고, 클라이언트와의 회의에서도 주도적으로 의견을 냈다. 십여 년의 세월 동안 입사 동기들의 맨 앞에서 달려왔다. 5년 전 남편이 회사를 그만두고 글을 쓰겠다고 했다. 남편은 나의 능력을 믿었던 것이다. 자신이 가정의 경제를 책임지지 않아도 내가 충분히 그 책임을 짊어질 수 있다고 믿었으리라. 그때부터 나는 내게서 더 많은 것을 끄집어내어 썼다. 그런 탓일까? 어느 순간 말라버린 우물처럼 수액이 다 빠진 고로쇠나무처럼 내 몸의 멜라토닌이 말라버린 것일까? 나의 잠은 점점 말라가기 시작했다. 불면증이 예사롭지 않다고 느끼기 시작할 즈음 정신과 의사와 상담을 하고 수면유도제라는 약을 처방받았다. 한 달 정도는 예전만큼은 아니지만 잠을 청하기가 조금은 편해졌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다시 잠을 들기가 힘들어졌다. 남편은 내가 불면을 겪기 전부터도 나의 건강을 위해 알뜰히 살뜰히 많은 것을 챙겨주었다. 글을 쓰는 건지 이 지구상의 건강식품들을 검색하는 건지 모를 정도로 다양한 건강식품들을 구해서 가정의 경제를 위해 애쓰는 나에게 공급해 주었다. 덕분에 나의 회사 생활은 항상 명료한 정신 상태를 유지하였고 피로라는 단어가 뭔지 모르는 사람처럼 브레이크 없이 앞으로만 달려갈 수 있었다.

“정신과 약들은 대부분 의존성이 있대. 약 먹을 때만 괜찮다가 나중엔 약을 끊기 힘들어진다네. 내가 당신을 위해 더 열심히 알아볼게”

그렇게 말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나에게 차(茶)처럼 복용할 수 있는 식품을 따뜻한 물에 타서 권했다. 남편의 권유로 마시기 시작했던 식품들 덕에 내 정신과 육체는 그 힘든 불면의 시간을 보내면서도 쓰러지지 않고 있는 듯하였다. 그렇다고 불면증이 나아진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몸과 마음이 견디고만 있는 것이란 생각을 했다. 사실은 내 깊은 곳에서는 내가 부서지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그 누구도 내가 무너지고 있다는 걸 모를 것이다.

‘남편도 모를 거야.’

도대체 무엇이 나를 이렇게 만든 것일까? 무슨 문제가 있었던 것일까? 지금의 나는 계속 척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 같다. 버틸 수 있는 척, 아직도 강한 척. 불과 반년 전까지 남편에게 버팀목이던 내가 이제는 남편에게 기대고 있다. 힘이 들어서, 마음에, 정신에 남아있는 진이 다해가고 있어서. 남편은 언제나 나에게 헌신적이었다. 글을 쓰기 시작하고 내가 집안 경제의 많은 부분을 부담하면서 그는 더 헌신적인 사람이 되었다. 반면에 나는 그 헌신에 무감각해지고 때로는 무심한 아내가 되었다. 이제는 내 몸과 마음이 약해지면서 그의 헌신은 나에게 큰 사랑으로 다가왔다.

‘당신이 없었다면 나는 아마 벌써 쓰러졌을 거야’

2.

그녀가 뒤척이고 있다. 잠들지 못한 것일까? 몸부림을 치는 것일까? 그녀의 몸이 조심스럽게 움직이고 있다. 잠시 후 침대의 옆자리가 비었다.

‘또 잠들지 못했구나.’

아내는 반년 째 불면으로 고통받고 있다. 그녀의 아픔을 바라보는 내 마음은 출구가 보이지 않는 미로에 갇힌 것처럼 복잡하다. 그녀는 빛나는 여자였고 지금도 빛이 난다. 결혼 전 대학생일 때부터 그녀의 존재는 학과 내 남학생들에겐 별과 같은 존재였다. 아름답고 건강한 외모와 의욕적인 성격으로 여학생들에겐 부러움과 시기의 대상이었다. 그런 그녀가 나와 커플이 되었다. 그 후로 한동안 나는 남자 동기들과 선배들의 공적이 되었다. 그녀는 나의 남다른 문학적 감성이 좋다고 했다. 그것이 자기에겐 없는 것이라고 했다. 그렇게 우리는 졸업을 하고 각자 다른 회사에 입사를 했다. 각자가 생계를 꾸릴 처지가 되자 우리는 몇 년 동안의 믿음을 저버리지 않고 결혼을 했다. 결혼을 했지만 우리에겐 아이가 생기지 않았다. 좋다는 음식도 먹어보고 용하다는 병원, 한의원, 심지어 점집까지 가봤지만 아이는 생기지 않았다. 해가 거듭될수록 내 마음은 초조해졌다. 아내는 포기한 듯 아니면 별 상관없는 듯했다. 아이가 생기면 만들어질 수도 있는 가정의 탄탄함과는 별개로 아내의 회사에서의 입지는 더욱 탄탄해져 갔다. 학생 때도 그랬지만 아내는 회사에서도 두드러지는 사람이었다. 나는 회사 생활이 잘 맞지 않았다. 아내에게 내가 빛나 보일 수 있는 무언가를 보여주고 싶었다. 5년 전 어느 날 아내에게 회사를 그만두고 글을 써보겠다고 했다. 잠시 아내의 눈에 걱정스러운 빛이 스쳐갔다.

“그래, 당신 원래 문학적 감성이 남달랐어. 내가 있으니까 걱정 말고 당신 글이 인정받을 수 있게 열심히 해봐”

그렇게 5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나는 시도 쓰고 소설도 썼다. 지역 일간지에 시가 당선되어 작가로서의 호칭은 얻었다. 짧은 소설 여러 편을 모아 소설집도 한 권 펴냈다. 그때마다 그녀는 나를 칭찬하고 응원해 주었다. 하지만 그녀가 이뤄놓은 회사에서의 커리어와 비교해 보면 나는 너무나 초라했다. 나는 아름답고 빛나는 그녀를 잃고 싶지 않았다. 언젠가부터 나는 그녀를 위해 내조를 하고 있었다. 시간이 날 때마다 인터넷 세상을 돌아다니며 아내의 건강을 챙기기 위한 건강식품을 구해다 주었고 아내가 퇴근 후 집안일로 힘들지 않도록 가사를 챙겼다. 아내가 나의 부재를 불편하게 느끼도록. 그런 그녀가 어느 날부터 병들기 시작했다. 잠들지 못하는 시간이 거듭될수록 그녀는 힘들어했고 자신감을 잃어가는 듯했다. 화려하게 빛났던 그녀의 불빛들이 조금씩 희미해져가고 있었다.

‘내 사랑으로 당신을 끝까지 지켜낼 거야’


3.

비워진 아내의 자리는 그의 정신을 명료하게 했다. 더는 누워있을 수 없었다. 아내가 힘들게 지키고 있는 거실로 그는 조용히 몸을 움직였다. 그녀는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고 힘없이 처져버린 어깨가 잔잔한 파도처럼 떨리고 있었다. 그녀에게 다가가고 싶었다. 하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괜찮아?’라는 말은 지금 그녀에게 아무 의미도 없을 것이다. 그는 대신 부엌으로 향했다. 그녀를 위해 그가 준비해 왔던 차를 다시 한 잔 탔다.

“나 때문에 당신 또 잠을 깼구나. 내 불면이 당신까지 힘들게 하네”

그녀가 거실 등을 켜며 슬픔과 미안함이 뒤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오렌지색 거실 등 불빛이 창백해진 그녀의 얼굴에 그림자를 만들었다. 하지만 그녀는 여전히 아름다웠다.

‘당신의 고통을 나는 나눠 가져야 해’

그는 그렇게 생각하며 그 자신을 위해 또 한 잔 차를 탔다.

“아니야. 당신과 함께하지 않는 삶은 나에게 의미가 없어. 나는 모든 걸 당신과 함께 해야 할 운명이야”

그가 건네는 말에 그녀는 더 큰 미안함과 슬픔을 느꼈다. 지난 반년 동안 그녀는 약해지고 있었다. 그럴수록 그녀의 몸과 마음은 예전과는 달리 남편에게 더욱 의지하고 있었다.

“같이 마시자. 몸이 한결 가벼워질 거야”

그는 아내에게 찻잔을 건네면서 다른 손에 들고 있는 찻잔의 차 한 모금을 들이켰다. 금세 머릿속이 맑아졌다. 그녀도 그를 따라 향기로운 차향을 음미하며 몇 모금을 넘겼다.

“기분이 한결 나아지네. 당신한테 너무 미안하고 고마워”

그녀가 그의 어깨에 머리를 살짝 기대며 말했다. 그는 그의 어깨로 전해지는 그녀의 체온과 향취에 행복감을 느꼈다. 그는 그녀에게로 몸을 돌려 그녀를 자신의 품으로 가볍게 안았다. 그리고 그녀의 볼과 목에 가볍게 입을 맞추었다. 그녀의 몸이 살짝 떨렸고 그녀의 두 팔은 그의 몸을 끌어당겼다. 그는 약간은 가벼워진 그녀의 몸을 안고 소파 위로 향했다. 두 사람의 육체를 감싸고 있던 헝겊들이 하나씩 사라지고 그들은 하나가 되었다. 소파 위에서 하나가 된 둘의 몸놀림은 격렬했다. 뜨거워진 둘의 몸이 절정을 지난 후 그녀는 그의 품 안에서 가느다란 숨소리를 내며 잠이 들었다.

한두 시간이 지난 후 거실 창을 뚫고 들어온 햇빛이 그와 그녀의 얼굴을 덮었다. 둘은 거의 동시에 눈을 떴다. 짧은 수면 때문인지 그녀의 눈은 충혈되어 있었다.

“당신 품 안에서 조금이라도 잠들 수 있었던 것 같아. 나는 이제 당신에게 의지하지 않으면 나를 일으키기가 힘들어진 것 같아. 당신이 나를 위해 너무 애쓰는 것 같아서 너무 미안하고 고마워. 그래도 나를 계속 잡아줬으면 좋겠어”

그녀의 말에 그는 환한 표정으로 말했다.

“나의 존재가 당신이 세상에 존재하기 위한 필요조건이 되도록 하고 싶었어. 이제 내 소망이 이루어지는 것 같아서 난 너무 기뻐”

순간 그녀의 충혈된 눈이 그의 눈을 향해 물음표를 보냈다.

“무슨 말이야? 당신의 소망이 이루어지다니?”

그는 약간은 어리둥절한 표정의 그녀를 향해 기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나는 오래전부터 당신의 관심과 사랑을 독차지하고 싶었어. 당신과 결혼 후부터는 항상 당신에게 절대적인 존재로서 함께 사랑하며 살아가고 싶었어. 하지만 우리에겐 아이가 생기지도 않았고 당신은 모든 면에서 항상 나를 앞서갔었지. 회사 생활을 그만두고 글을 쓰게 된 것도 결혼 전 당신이 나의 문학적 감성을 부러워했기 때문이었어. 하지만 글을 쓴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어. 더구나 글을 써서 당신에게 절대적인 존재가 되고 싶다는 나의 바람은 망상으로 끝나버릴 것 같았어. 그래서 나는 당신이 나보다 약해진다면 내 소망이 이루어질 수도 있다고 생각했지. 그래서 오랜 시간을 공을 들였어. 이제 당신에게 나의 존재는 절대적일 거고 앞으로도 영원할 거야. 당신은 나를 영원히 사랑할 거고 나도 당신을 위해 살아갈 거야. 사랑해... 여보”

그녀의 눈은 놀라움과 충격으로 커졌다. 그녀의 몸이 차갑게 경직되면서 떨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소리쳤다.

“당신.... 내가 도대체 왜 이렇게 아픈 거야? 왜 잠을 못 자는 거야? 왜 잠을 못 자도 피곤도 못 느끼는 거야? 나는 지금 안에서 계속 무너지고 부서지고 있는데 왜 그런 거냐고?”

그는 그녀의 외침이 이해되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여보.... 그건 나쁜 게 아니야. 당신과 나의 완전한 사랑을 위해서 그동안 내가 얼마나 노력해서 찾아낸 건데. 당신도 좋아했잖아? 당신 이제 그것들 끊을 수 없어. 내가 당신을 위해 계속 줄 거야. 걱정하지 마”


그녀는 바닥에 주저앉아 절망한 듯 흐느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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