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수감자라고?

by 이삼오

병동 입구는 두터운 철문으로 되어 있지만 중간이 얄팍한 유리로 되어 있어서 안을 엿볼 수 있게 되어 있었다.



아침 이른 시간치고 굉장히 분주해 보였다. 제법 많은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으나 누가 의사이고 간호사며, 환자인지 구분하기가 어려웠다. 다들 사복을 입고 있었고 한 두 명 정도를 제외하고 환자들도 대부분 사복을 입고 지내는 듯했다.



"우선, 여기가 네 방이야. 2인 1실이지만 지금은 너밖에 없으니 좀 편할 거야."



침대는 일반 병원 침대와 별반 다를 게 없어 보였고 방의 층고가 상당히 높았다. 내 침상 공간을 커튼으로 완전히 가릴 수 있어서 사생활에 도움이 될 듯했다. 물론, 아무도 없지만.



병실 화장실은 변기와 세면대만 있을 뿐 샤워 공간은 없었다. 샤워실은 병동 복도에 따로 있다고 들었다. 화장실과 병실의 문은 여닫이 문으로 되어 있었고 끝까지 닫히지 않았다. 고장 난 건지 일부러 이렇게 설계가 된 건지는 잘 모른다. 아마 환자가 뻘 짓을 하는지 감시하기 편하게 되어있는 듯 같았다.



"여기서 지켜야 할 규칙이랑 시설을 보여줄게."



담당 간호사인 데이나는 거의 백발에 가까운 짧은 금발머리를 하고 있었다. 할머니까지는 아니지만 곧 퇴직을 한다 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의 연배로 보였다. 매우 상냥하지만 또렷한 목소리와 발음에, 작은 눈이지만 강한 눈 빛을 지니고 있는 그녀에게서 부드러운 카리스마가 느껴졌다. 마치 매우 착한 선생님 같지만 함부로 대들 수 없는 그런...



"우선 가장 기본적인 것, 다른 화자들에게 고함지르기, 욕하기, 서로 싸우기 등은 당연히 안 되겠지?"



꼭 유치원생을 타이르는 듯 한 말투다.



"그런데, 여기 사람들 상태는 어떤가요? 영화 같은 데서 보면 귀신에 홀렸거나... 제대로 미쳐 보이는..."



"아... 호호. 정말 심각한 중증 환자들이 있는 곳은 아니란다. 정말로 위험하다고 생각되는 사람들은 이곳에 있지 못해. 물론, 항상 긴장의 끈은 놓지 말아야지..."



마지막 말이 심히 신경 쓰였다. 긴장의 끈이라...



"여기는 다목적 실이야. 매일 저녁시간 전에 1시간씩 그룹미팅이 있어. 이건 의무적으로 참석해야 해. 심리학 박사님과 단체 면담이라고 생각하면 돼. 그리고 TV시청은 밤 10시 까지야. 단, 토론토 하키팀이 연장전을 간다면, 경기 끝날 때까지 시청할 수 있어."



역시, 토론토는 하키의 도시이다. 토론토 메이플립스가 연장전을 치르는 게 어느 한 정신 병동의 규칙보다 더 중요한 걸까?



물론, 더 중요하다.



다목적 실은 따뜻한 전구색 조명과 짙은 나무색과 녹색톤의 가구들이 배치되어 있었다. 전반적으로 따뜻한 느낌이 들었다. 한쪽에는 그리 크지 않은 책장에 책들이 촘촘하게 꽂혀 있었다. 소설부터 해서 자기 계발 도서까지 다양하게 있었지만 아무도 읽지 않을 것 같았다. 그 옆에는 딱 봐도 오래되어 보이는 피아노가 한 대 있었다. 상태는 모르겠다만 쳐도 되니까 놓여 있는 듯했다.



"여기는 식당인데, 배식이 여기로 올 거야. 식판에는 자기 이름이 써져 있는 걸 가져가서 먹으면 돼. 여기서 먹어도 되고 각자 병실에서 먹어도 되고. 다만, 식판은 꼭 반납해야 한단다. 아, 그리고, 아마 쓸 일은 없겠지만 전자레인지를 쓸 거면 간호사에게 부탁해. 절대 허락 없이 혼자 사용하면 안 돼."



전자레인지로 무슨 사제폭탄이라도 만드나? 뭐, 규칙이 그렇다면...



이 외에도 자잘한 설명들이 많았지만 적당한 선에서 멈추었다. 내 표정이 아직도 살짝 넋이 나간 모습이었나 보다.



"간밤에 한숨도 못 잤지? 우선 방에서 좀 쉬고 있으렴. 오전 중에 의사가 방문할 거란다."



내 침대에 누웠다. 긴장이 좀 풀렸는지 몸에 힘이 쫙 빠졌다. 눈을 몇 번 깜빡였을 까? 누군가가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조금 잤니? 내 이름은 닥터 헬리오스야."



나도 모르게 그냥 곯아떨어진 모양이었다. 시간을 보아하니 1시간쯤 잔 듯했다. 그런데 생각보다 매우 상쾌했다.



"아직 정신이 없겠지만 몇 가지 좀 물어볼 게."



지난 새벽에 데이나에게 받았던 질문과 거의 비슷했다.



"지금 기분은 어떻니?"



"그냥, 피곤해서 별 생각이 없어요."



"얼마 만에 잔 거니? 두어 시간 정도 잤나?"



"그저께, 어젯밤도 거의 새우다시피 했으니... 이틀 만에 잔 거 같아요."



"흠, 왜 잠을 못 잘까? 우선 알았다. 오늘은 여기까지..."



"어... 네? 이게 끝인가요?"



"어? 뭐가? 아... 상담, 치료... 뭐 이런 거?"



"어... 네."



"응. 그렇단다. 우선 오늘은 여기까지."



한 5분도 안 지난 거 같은데, 조금 당황스러웠지만, 환자가 나만 있는 게 아니니...



병실을 나와 복도에 걸려있는 게시판을 봤다. 병실 호수와 환자 이름, 담당 의사와 간호사 이름이 쓰여 있었다. 보통 환자 두 세명 당 의사 한 명, 간호사 한 명 지정인 듯했다. 결코 많은 수는 아니었다.



아침처럼 분주한 모습이 펼쳐지지 않았다. 간호사들도 각자의 자리에서 커피나 차를 한 잔 하며 한숨 돌리는 듯 보였다.



복도에 종종 다른 환자들이 지나다니는 모습을 보았다. 몇 사람과 눈이 마주치기는 했으나 서로 별 반응 없이 지나칠 뿐이었다. 서로를 봤지만 마치 아무것도 못 본 듯, 무심하게 지나치기만 할 뿐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무엇 때문에 여기 왔을 까? 다들 우울하고, 불안하고, 잠을 못 자는 것일까? 아니면 정신이 살짝 오락가락한 것일까?



정신병원 하면 다들 이상한 사람이 있는 곳, 정신 나간 사람들이 모여있는 곳, 언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불안정한 모습을 떠올리게 될 것이다. 나도 그런 생각을 했으니... 그런데 막상 오고 나니 별 생각이 없었다. 나도 이 들과 한 배를 탔다고 생각이 들어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복도 끝에서 남자 둘이 얘기하는 모습이 보였다. 거리가 제법 되어서 자세히는 안 보여도, 딱 봐도 아저씨들이었다. 멀리서 봐도 딱 동네 건달 같은 느낌이었다. 이 둘은 나를 응시하며 서로 뭐라고 얘기하는 듯했다.



나를 향해서 걸어오기 시작했다. 뭔가 느낌이 싸늘했다.



"신참이네! 딱 봐도 어려 보이는데... 막내 수감자 하나 들어왔네."





나보고... 수감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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