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W

by 이삼오

"질문이... 너무 훅 들어왔나? 그래서,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든 거야?"



너무 훅 들어온 질문이 맞았다. 네, 아니오로 답 할 수 있는 질문이긴 했다. 그러나 그 과정 까지는 수많은 생각이 머리에서 맴돌았다. 그러게... 내가 무슨 생각으로 그렇게 약을 한 알 한 알 야금야금 삼켰을까?



극심한 불면증에서 벗어나고 싶었을까? 그러면 전문가를 찾아가서 나에게 맞는 처방을 받으면 되지 않나? 도움을 원치 않았던 것일까? 도움을 요청하는 게 민폐라고 생각했던 것일까? 나로 인해 누군가 귀찮아질 수도 있다는 게 용납이 안 됐을까?




(전날 늦은 오후, 나의 임시 안식처 테리 형님 집)


몸은 피곤한데 잠은 안 오고, 생지옥도 이런 생지옥이 없다. 잠 못 자게 하는 게 최악의 고문 중 하나라는 말이 정말로 와닿았다.



하루하루 기분은 거지 같고, 뭘 하고 싶은지도, 뭘 보고 살아야 할지도 갈피를 잡기가 어려웠다.



'아, 맞다. 그게 있었지.'



약 통을 꺼내 들었다.



'하루에 한 알이상 복용 금지. 침상에서 약을 복용하시오.'



제법 위협적인 문구다.



한 알을 삼켰다. 30분 정도 지났을 까? 살짝 노곤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 외엔 큰 감흥이 없었다. 한 알을 더 삼켰다. 아까보다 더 몽롱해지는 느낌이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 까... 한 알 더 털어 넣었다.



'약은 많이 있네. 하아... 그냥 끝내버릴까?'



스테레오에 오지 오스본의 CD를 중간 정도 볼륨으로 켰다.



노래 하나가 끝날 때마다 한 알씩 삼켰다.



CD 다음 트랙이 흘러나왔다. 'Suicide Solution'(자살 해결책), 타이밍이 기가 막혔다.



몸이 살짝 굳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러던 중, 계단 쪽에서 우당탕하고 누가 내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테리 형님은 문을 안 잠그고 다녔기 때문에(잠금장치가 고장 났지만 집주인이 고쳐주질 않아서 그냥 안 잠그고 지냈다) 형님 친구, 내 친구 할 거 없이 자유로이 드나들었다.



"야. 전화도 안 받고 뭐 하냐? 나가자. 작업실(당구장) 가서 한 판 치자."



경준이와 프랜시스였다.



"난... 그냥 있을 게. 너희끼리 가."



"웃기지 말고 따라와. 학교 휴학했다고 뭐 세상이 무너지냐? 잠시 쉬고 좋지 뭐. 팔자 좋은 놈일세."



이 둘은 키도 덩치도 나보다 컸기 때문에 거의 질질 끌려나가다시피 갔다.



겨울 방학이 끝나자마자 학교에 휴학 신청을 했다. 공부고 뭐고 아무것에도 집중할 수 없었고 의욕도 없었다. 그냥 혼자 조용히 있고 싶었고 아무도 없는 곳에 있고 싶었다. 실제로 캐나다 서부 어느 숲 속 마을에서 벌목이나 배우며 지낼까도 심각하게 고민 중이었다.



그래도, 한 편으론 흐뭇했다. 걱정해 주는 친구들도 있어서.



당구 큐대를 잡았다. 제대로 서있기도 어려웠다. 초점도 안 맞고 큐대 끝은 흰 공을 치기는커녕 허공을 찌르기 일쑤였다.



"우리 중에 제일 잘 치는 놈이 왜 이러지?"



"내 컨디션이 영 별론가보다. 너희끼리 쳐. 난 구경이나 할게."



"오늘따라 좀 이상한데... 그래, 알았다."



핑핑 도는 느낌이었다. 그래, 이래 된 거, 한 통 다 삼켜버리자. 뭐, 별거 있나.



"물 한 컵만 주세요..."



"너 어디가 안 좋냐?"



사장님이 걱정 어린 눈빛으로 물을 건네주셨다.



"아니요. 감사합니다."



약 통을 꺼냈다. 뚜껑을 열었다. 이런, 떨어트렸다. 약 몇 알이 바닥에 굴러 다녔다. 빨리 줍는다고 허둥지둥 댔다. 우리 쪽 테이블을 봤다. 프랜시스랑 눈이 마주쳤다. 심각한 표정으로 날 보고 있었다.



"야, 그냥 가자. 오늘은 뭔가 날이 아닌가 보다."



그렇게 우리는 작업실(당구장)을 나오려고 발걸음을 옮겼다.






"그런데... 진짜 죽으려고 하는 사람이 말로 '나 죽을 겁니다'라고 얘기하지는 않을 거 같은데요? 뭐, 유서 같은 걸 남기긴 하겠다만."



"질문을 잘 피해 가네. 그럼, 살고 싶은 거니?"



젠장, 아까보다 더 어려운 질문이다. 이제 정신이 좀 들락 말락 한, 이제 곧 17번째 생일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학생에겐 간단하면서도 심오한 질문이다.



"살고 싶다기보다, 그냥 사니까 사는 건데... 막상 그렇게 생각을 해보진 않았네요."



"요새 기분은 어땠니? 뭔가 불안하다든가, 의욕이 없다든가, 우울감이 있다든가..."



"기분이, 보통 좋은 편은 아니에요. 특히 아침에 더 기분이 안 좋네요. 항상 불안해요.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도 모르겠고... 이런 게 우울한 건 가요?"



막상 깊이 생각해 본 문제들이 아니기에 정확한 답을 하기가 어려웠다. 그런데, 이 간호사 분은 다른 간호사들과 달랐다. 간호사 복 대신에 사복 차림에, 계속 심리에 관한 이야기를...



"그런데, 간호사 맞으세요?"



"아, 내 옷차림이랑 질문들이 널 의아하게 만들었구나? 호호."



'빙고...'



"난 주로 7층에서 근무하지. 이 병원 정신과 소속이란다."



'아하...'



"지금 기분은 어떴니?"



"글쎄요... 지금은 별 생각이 없는데, 그다지 좋지는 않네요. 계속 잠도 잘 못 잤고... 영영 잠들어버렸으면도 했는데..."



"평소에도 잠을 잘 못 자니?"



"네. 하루, 이 틀 밤새다가 기절하 듯이 자는 게 거의 일상이 되어버렸어요. 최근엔 더 심해졌는데... 정말 미칠 거 같아요."



"그렇구나. 지금 집에서 살고 있니?"



무언가 다 안다는 눈치였다.



"아니요. 친한 형님 집에서 얹혀살고 있어요."



"부모님이랑 연락은 하고?"



"아버지랑 가끔 통화하거나, 한 번씩 밥은 먹어요. 어머니는... 친어머니도 아니고 제 인생에 거의 없는 사람이라..."



"그래. 알겠다. 몸도 많이 피곤할 테고... 몇 시간만 있으면 아침이니 우선 여기 응급실에 있으련."



"여기 계속 있으라고요? 가도 되지 않나요?"



"그건... 좀 곤란할 거 같다. 네가 여기 오게 된 과정과 상황 때문인데... 경찰 신고도 있었고 네 처방전이 아닌 약을 과다복용으로 왔잖아. 여러 가지를 놓고 봤을 때 자살 위험군으로 분류되는데... 무조건 강요할 수는 없지만, 입원을 하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야."



"입원을 한다면... 어디에 입원을 하나요? 정신 병동인 7층이요?"



"그런 셈이지. 네가 동의만 한다면 강제 입원이 아닌, 자발적 입원으로 수속을 밟을 수 있단다."



"둘의 차이는 뭐죠?"



"자발적 입원을 하게 되면 외출도 어느 정도 허용이 되고 면외도 병동이 아닌 곳에서 가능하단다. 그리고 퇴원도 비교적 자유로운 편이고. 강제 입원은... 내가 말한 정 반대이지."



그러면, 내가 자발적으로 하지 않으면 강제로라도 입원시킬 수 있다는 건가? 가능하긴 한 건가? 부모 동의 없이?



"경찰이랑 같이 왔으니, 그렇게 할 수 있지."



간호사가 내 머리 안에 들어와 다 꿰뚫어 보는 것만 같았다.



"저, 담배 한 대만 피우고 올게요."



머릿속이 복잡했다. 딱히 선택의 여지가 없는 듯했다. 그런데, 어차피 잃을 거, 손해 볼 거 없지 않은가? 솔직히 내심 호기심도 들었다. 정말 오랜만에 느껴보는 기분이었다. 어차피 살아난 거, 다시 한번 삶에 대해 생각을 해 볼 수도 있겠다. 테리 형님이 전혀 눈치를 주지는 않았지만 언제까지 계속 얹혀 살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자발적으로 입원하겠습니다."




"그래. 정말 잘 생각했어. 눈 좀 붙이려고 해 봐. 이따 아침 7시쯤 다시 올게."






7층에 도착했다. 7W와 7E의 푯말이 보였다.



"네가 머물게 될 곳은 7W야. 7층 서쪽이란 뜻이지. 통원 치료는 7E, 7층 동쪽이야."



다른 병동과 다르게 두터운 철문을 통과해야 병동으로 들어올 수 있었다. 중앙 컨트롤룸은 유리로 되어 있어서 안에 근무 중인 간호사들이 훤히 보였다. 이 분들이 출입을 통제하고 있었다. 함부로 나가고 들어올 수 없었다. 조금 삭막했지만 안전한 느낌이 들었다.



"7W(웨스트)에 온 걸 환영해! 정식으로 소개할 게, 난 너의 담당 간호사인 데이나야."



이렇게, 또 다른 삶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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