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쌀쌀한 기운이 가시지 않은 2011년 봄, 학원에서 갖는 첫 공연 준비가 한창이었다.
이전에 라이브 카페 같은 곳을 빌려서 발표회 성격의 소규모 공연을 진행한 적이 있었으나, 진짜 공연 다운 공연은 첨이었다.
무대에 처음 설 친구들이 많았고 대부분 긴장과 설렘, 걱정을 적절하게 혼합한 감정을 갖고 연습에 임했다.
공연 포스터가 나왔는데... 아... 별로다. 누가 디자인 했는지는 기억이 안 나지만, 초안 그대로 인쇄되어 나왔다. 시간이 없으니 바꾸지도 못하고.
온전하게 합법적인 행위는 아니지만 시내에 포스터를 부착하기로 하고 학생들에게 조를 나누어 각 구역을 선정해 주었다.
아이들에게 어디에 붙일지 잘 모르겠으면 관광 나이트, 성인 나이트 보이는 옆에 같이 붙이라 했다.
전국 어느 나이트에서나 볼 수 있는 '뻐꾸기', '박지성', '노홍철' 삐끼님들이 모델로 되어있는 포스터 옆에 학원 공연 포스터가 나란히 사이좋게 부착됐다.
학원 이미지에 안 좋을 수 있다고? 그렇다고 나이트크럽이 죄 지으러 가는 곳은 아니잖아? 어른들 놀이터이지 뭐, 복잡하게 생각할 거 있나. 나이트 포스터 부착하는 분들은 어디가 명당자리인지 잘 아실 테니... 그렇다고 목욕탕 같은 데 붙이기에는 좀 애매하지 않은가.
공연장 책임자와 시설관리 실장 (?) 같은 사람과 사전 미팅을 가졌다.
이게 정식 공연장은 아니고 허름한 강연장을 개조한 느낌이랄까? 층고가 낮은 소규모 강당 느낌. 빌트인 사운드 시스템도 없고 간이 무대에 조명 몇 개, 백스테이지도 따로 없었다. 여기가 선정된 이유는 말도 안 되게 저렴한 대관료와 학원 공연에 적합한 규모를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책임자: 그냥 편하게 사용하시면 됩니다. 그런데, 조명이나 음향은 좀 만질 줄 아시나요?
나: 시스템이 마구 복잡한 게 아니면, 간단한 건 다 합니다. 마이크들은 어떻게 되나요?
책임자: (실장을 보며) 야, 마이크 뭐뭐 있지?
실장:... 네? 마이크 뭐뭐요? 그냥... 목소리 나오는 마이크...
나: (아... 이거 왠지 좀 쎄한데...)
실장: 직접 와서 볼래요?
별 기대 안 했는데 어지간한 마이크는 다 있었다. 드럼 마이크들부터 해서, 스테이지 마이크 등등. 각종 케이블이며 스탠드들이 다 있어서 귀찮은 일거리가 하나 줄어든 셈이다.
실장이란 사람은 공연에 있어서 아무것도 모르는 거 같다.
공연장을 둘러보며 여러 사항을 체크하기 시작했다.
편의점 앞 플라스틱 의자 같은 게 쫙 깔려있었다. 의자들은 줄에 규칙적으로 맞춰있지도 않았고 누가 대충 던져 놓고 간 느낌이랄까... 상태도 좋아 보이지 않았다. 파손된 의자가 많았다.
"실장님, 이거 의자 몇 개는 빼야겠는데요. 잘못하면 다치겠어요."
"내가 이거 세팅한다고 얼마나 개고생 했는지 압니까? 아씨... 뺄 거 있으면 저기에 갔다 놔요."
(이 걸 왜... 내가 옮겨야 하지?)
"네. 그럴 테니 좀 도와주시겠습니까?"
"(중얼중얼)... 진짜 귀찮게 구네..."
(하아... )
이 실장 때문에 점점 신뢰가 안 가기 시작한다. 그냥 돈 더 주고 다른데 대관하자고 원장님한테 제안해 볼까? 그런데, 공연이 코 앞이라.
하긴, 이 가격에 이 정도만 돼도...
실장은 계속 졸졸 따라다니면서 입을 댄다. 혼자 둘러보고 체크할 테니, 궁금한 거나 요구 사항이 생기면 알려드리겠다고 정중히 말했다.
그래도 듣지 않고 계속 내 옆을 배회한다.
뭔가 아는 척을 계속해보지만 내가 되려 너무 못 알아듣겠다. 그런데 자기가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는 것들을 지껄여 대는 데 내가 이해를 못 한다고 짜증을 낸다. 괜히 쓰잘 때기 없는 기싸움을 거는 듯했다. 아니면 시비 거는 게 취미인가.
나: 저기, 저 실장이란 분은 공연 쪽 사람인가요?
책임자: 아, 쟤는 그냥 이런 거 한 번씩 있을 때 도와줍니다.
(그 말은 즉슨, 역시, 쥐뿔도 모른다는 거군.)
피아노맨: 실장님, 여기 건반 있는 거 테스트해 봐도 될까요? (제법 좋은 건반이었다.)
실장: 네. 해보세요.
피아노맨: 흠, 근데 건반은 몇 번 채널이죠? 소리가 안 나오는데요? 연결은 다 되어있는데...
실장: 전원 들어왔나요? 그럼 그냥 치시면 되는데.
피아노맨: 그러니까... 몇 번 채널에 연결되어 있나요?
실장: 티브이도 아닌데 무슨 채널 타령을 하나... 참나...
피아노맨, 나:...(웃으라고 한 얘긴가?)
나: 야, 3번 4번인 거 같은데... 이거 케이블이 맛이 간 거 같은데? 신호가 안 먹히네.
(케이블 교체. 소리 잘 나기 시작. 피아노맨 연주 후리기 시작.)
실장 표정을 보니 완전 벙쪄있었다.
두 가지 이유가 아닐까?
피아노맨의 현란한 연주와, 그리고 어지간한 키보드는, 빌트인 스피커가 있지 않은 이상, 사운드 시스템, 스피커에 연결해야 소리가 나온 다는 것을...
(피아노맨과 국밥 한 그릇 중)
피아노맨: 야, 아까 걔 실장 뭐냐 진짜.
나: 그러게, 그냥 가만히 있으면 좋았을 텐데. 기분 잡치게 하는데 출중한 능력을 가지고 있네. 또 우리 보고 이래라저래라...
피아노맨: 나이도 우리 또래던가, 아님 두세 살은 어려 보이던데 반말 비슷하게 계속 띠껍게 말하고 이유 없이 짜증 내고.
나: 책임자한테 물어봤거든. 그냥 그 병신 같은 새끼 제끼고 하면 안 되냐고. 좇도 모르는 게 계속 옆에서 깝쭉거리니까 방해만 된다고.
피아노맨: 진짜 그렇게 얘기했어?
나: "실장님이 경험이 별로 없으셔서 많이 긴장되시나 봐요. 너무 열정적이신데, 큰 부담 안 가지셔도 된다고 전해 주셨으면 합니다."라고 얘기했지. 그런데 뭔가 알겠다는 눈치였어.
피아노맨: 아쉽네. 그냥 나한테 얘기한 데로 했으면 좋았을 걸.
나: 그렇게 얘기한다고 뭐가 달라지겠나. 허허.
피아노맨: 며칠 뒤 공연, 피곤하겠네.
나: 그치. 공연장엔 꼭 언제나, 빌런이 하나 둘 있기 마련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