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 아파트 단지와 틈틈이 중소형 단지로 메꿔져 있는 동네, 학원들이 즐비한 동시 식당과 술집, PC방이 뒤섞여 있는 동네는 여느 도시를 가나 흔히 볼 수 있다.
학원 수업을 마치고 나와있는 학생과 술이 떡이 되어서 나와 있는 직장인, 그중 엔 얼마 전 자기가 먹은 안주를 게워내어 다시 확인하는 사람들도 더러 있다. (지저분한 건 새벽에 비둘기들이 싹 해결 해 주겠지)
학생들의 생기 넘치는 수다소리와 직장인들의 고성방가가 나름 그럭저럭 괜찮은 화성을 이루고 있는 활기찬 동네...
이런 전형적인 어느 동네에 그다지 작지 않은 건물 2층에 째즈바가 생겼다.
베이스의 달인 '비지'형님의 바.
"안녕하세요 형님. 잘 지내셨죠? 오픈하셨다고 들었는데 이제 와 보네요."
"오... 잘 있었어? 허허. 뭐, 내가 따로 연락도 안 하고 알리지도 않았으니. 반갑다. 잘 왔어. 이쪽으로 앉아."
비지 형님, 일 년 반? 2년 만에 뵙는 거 같은데 변함이 없으시다. 아닌가? 머리가 더 기셨고 흰머리가 좀 더 눈에 띄게 들어오는 걸 빼고는 그대로다.
'키보드'의 꾐(?)에 넘어가 아무 연고도 없는 곳으로 오셔서 ('키보드'의) 학원에 '원감'이란 타이틀 다셨다.
나를 비롯해 비지 형님을 아는 지인들은 반가워하면서도 안타까워했다.
'그 인간을 보고 여기에 정착을 하시는 건 상당히 리스키 할 텐데...'
어쨌든 형님은 젊은 날부터 소망이, 나이가 어느 정도 차면 한 곳에 정착해서, 형수님은 좋아하시는 노래를 하면서, 형님은 또 느긋하게 레슨과 연주를 병행하시는 걸 원하셨단다.
우선 계획대로 실행해 나아가시는 건 좋으나... 같이 엮여있는 사람이 문제일 텐데.
작은 무대 한편에 디지털 피아노, 그 옆에 콘트라베이스와 형님의 SWR앰프, 또 붉은색 통기타와 음향 시스템이 눈에 들어왔다. 무대 위에는 지나치지 않은 은은한 조명 빛이 담배 연기에 뒤섞여 내리쬐니 제법 째즈 느낌이 나는 무대를 연출했다.
"멋지네요 형님. 근데, 출혈이 좀 크셨겠어요."
"그럭저럭 괜찮은 거 같아. 근데 내 입맛에 다 맞게 하려니까 금액이 너무 커져서.. 적당한 선에서 합의 본거지."
"그럼 공사는 업체에 맡기신 건가요?"
"어. 왜, 너도 알잖아. 걔 친구 중 인테리어 하는 사람 하나 있잖아."
'키보드' 친구인 인테리어 업자. 수많은 정직한 인테리어 업자들 중 간혹 몇몇 소수의 업자들로 하여 명성에 먹칠을 하는, 이들 중 하나인...
"아... 그렇군요."
"인사해. 여기는 기타 치는 삼오, 여기는 노래하는 내 와이프야."
"안녕하세요. 첨 뵙겠습니다."
"안녕하세요. 반가워요. 비지 씨한테 얘기 많이 들었어요."
형수님은 작은 체구지만 말 한마디 한마디에 힘과 카리스마가 느껴졌다. 전형적인 외유내강 형의 느낌이 뿜어져 나오는 거 같았다. 활짝 웃으시는 모습이 누가 뭐라 안 해도 사람 좋다는 게 진심으로 느껴졌다.
"자, 오늘은 오랜만에 봤으니까 편하게 맘 껏 마셔!"
"형님, 그래도 계산은 하겠습니다."
"에이! 신경 쓰지 마."
"그럼 제가 다음에 어떻게 오나요. 정 그러시다면 안주 빼고 술 값 만이라도 계산하겠습니다."
"어허. 신경 쓰지 말래도."
내가 당시 살던 곳과도 그렇게 멀지 않은 동네라서 나도 형님과 연주할 겸, 혹은 그냥 심심해서 형님과 형수님이랑 수다 떨 겸 자주 마실 왔다.
장사가 안 되는 날은 진짜 두 어 테이블 있었다가도 어느 날은 무슨 핫한 홍대 클럽 마냥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 없을 만큼 사람이 붐비기도 했다. 물론, 극히 드문 경우지만.
술 값을 계속 안 받으시니 한 가지 묘안을 떠올렸다. 장사가 안 되고 조용한 날은 바로 옆에 있는 소주 집에 가서 한 잔 하러 가자고 했다. 형님도 원래 소주파에다 바 에는 소주를 안 파니 제법 설득력이 있었다. 소주집에서 계산은 내가 하는 식이고 바에서 마시는 맥주와 손님이 까놓고, 키핑도 안 하고 가는 위스키와 코냑은 형님이 제공하셨다. 거의 일종의 암묵적인 룰로 되었다. 물론 소주집에서 형님이 계산을 절반 넘게 하셨지만...
시간이 점차 흘러 바에 어느 정도 단골도 생겼다. 그러나 문제는, 항상 적자에 말이 째즈 바이지 거의 소주 단란, 가라오케 형태로 변한 느낌이었다.
째즈 바라고 해서 항상 째즈 음악만 다루지는 않는다. 다만 연주나 흘러나오는 음악의 상당 비중이 째즈가 되야 하는 건 맞다.
그러나 인구가 그리 많지 않은, 공업과 제조업이 압도적으로 높은 도시에서 직장인의 문화생활은 부어라 마셔라에 노래방이다.
술도 있겠다, 무대도 있겠다 (무대는 원래 연주자만 올라가는 곳이지만), 반주기도 있겠다... 어느덧 바는 동네 진상들의 놀이터가 되어갔다.
다들 한 때 가수의 꿈을 갖고 있었던 것인지, 아니면 정말 말도 안 되는, 그냥 완벽한 소음에 가까운 본인의 노래를 자랑을 하고 싶은 것인지. 그렇게 거의 매일 밤마다 '진상스타 K'의 오디션 장이 펼쳐졌다. (아, 간혹 정말 숨은 고수라 할 만한 실력자도 있었다.)
형님과 형수님은 이런 행태의 스트레스로 몸과 마음이 더더욱 지쳐만 갔다. 운영 방침을 지키자니 장사가 안 되고, 손님이 해달란 대로 해주면 스트레스가 한 트럭이고, 진퇴양난이다.
또, 두 분은 장사 체질이 아니다. 전국의 모든 클럽과 행사에 연주를 하며, 산전수전 다 겪으며 살아오신 두 분이지만 장사와 운영은 이 들에게 축복이 아닌 저주였다.
마음이 좋고 여리셔서 알바가 폰 만 만지작 거리고 빈둥거리고 있어도 모진 말 한마디 못하고 알바가 해야 할 일을 직접 하시니 보는 입장에서도 너무 답답했다. 하도 답답해서 한 번은 제가 동업자라고 하고 제가 알바 교육을 제대로 하겠다고 까지 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형님. 여기서 계속 장사하실 건 가요?"
"아휴, 해야지. 그래도 간혹 괜찮은 단골손님들이 소개 많이 해줘서 조금 나아지긴 했지. 여기라도 잘 돼야지. 별 수가 없네."
"거기 레슨생도 꽤 늘지 않았나요?"
"그렇긴 하지."
"그럼 다행이네요."
"그런데, 걔가 급여를 똑바로 안 줘. 학생이 몇이고 돈 들어오고 빠져나가고, 관리를 안 하나 봐. 그래서 어느 달은 이만큼, 또 어느 달은 저만큼 주고... 그래서 언젠가부터 내가 직접 기록해서 정산해 달라고 했는데. 항상 징징거리고 힘들다면서 급여를 미루던가 아님 적게 주던가."
"형님. 당장 고용노동부에 신고하시고 그만두시는 게 맞지 않을까요?"
"그래도, 어떻게 그러니. 딸도 아직 많이 어리고, 제수 씨도 좋은 사람이고..."
"물론 형님 선택이긴 했지만, 여기까지 모셔 놓고... 이건 좀 아니잖아요. 그리고 이래 된 거, 그냥 저희 학원에서 레슨 하시는 게 어떠세요?"
아무 말씀 없이 담배 연기만 뿜으셨다.
내가 옆에서 더 이상 주저리주저리 말을 이어 갈 수 없었다.
형님의 답답한 마음이 긴 한숨과 담배 연기 안에 담겨 나오는 듯했다.
형님과 형수님은 특유의 유쾌함과 긍정의 힘으로 장사가 잘 되든 안 되든 미소를 잃지 않고 지내셨다.
그래도 사람은 언젠가 한 번쯤은 방전되지 않던가.
방전되기 전에 충전기 같은 뭐라도 등장했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