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쪽 상담소 2

by 이삼오

"선생님은 아직 싱글이고 아이가 없으니 모르셔서 그래요."



학부모님이 가장 많이 하시는 말씀 중 하나, 이런 푸념을 시작으로 하소연을 듣게 된다.



따지고 보면 아이의 미래를 진지하게 의논하기보다는 본인의 답답한 마음을 어딘가에 털어놓을 곳이 필요한 걸 수도 있다.



"얘가 이걸 한다고 했으면 성실하게 해야지 학원 핑계 대고 놀러 다닌다니까요."



"이걸로 대학 갈 수 있는 거 맞나요?"



"제가 당부드리는데 학원에서 연애 못하게 해 주세요."



"저희 애가 소질이 있는 게 맞나요? 타고난 게 크다고 하던데, 이게 노력한다고 되나요?"



"저희는 이 분야를 잘 모르니... 선생님만 믿을게요. 책임 지실 수 있죠?"




이런 말들을 들으면 답답하기도 했지만 한편으론, 어느 정도 이해가 갔다. 아이가 잘하던 못 하던 항상 걱정이 많으실 테니, 특히 몇몇 학생들은 내가 정말 걱정스러울 때도 있었다. 남남인 나도 이런 생각이 들면 부모님은 오죽하랴...



학생들의 이슈와 문젯거리도 참 버라이어티 하다.



학생 A


"선생님, 제가 대학은 갈 수 있을까요?"


-요새 연습은 얼마나 하니?



"두 시간 정도? 하는 거 같아요."


-두 시간이면 나보다 적은데.



"얼마나 더 해야 할까요?"


-그건 네가 알아서 해야지. 좋아서 하는 거 아닌가? 그냥 대학이 목표면 공부해서 일반 대학을 가라.



"선생님이 연습 스케줄을 만들어 주세요! 그럼 진짜 열심히 할 거 같아요."


-... (그냥 관둬라)




학생 B


(통화 중)


-어디니?


"네? 왜 그러세요?"



-너 오늘, 지금 레슨인데?


"네?! 오늘.. 지금... 아.. 아... 깜빡했어요."



-너 그거 아냐? 지금 한 달째 이러는 거?


"아... 죄송해요 ㅠ 요새 진짜 정신이 없어서... 지금 빨리 갈게요."



-오늘 다른 레슨으로 꽉 찼다.


"그럼 혹시 아주 늦은 밤은 안 되실까요?"



-밤에 약속 있다. 안 된다.


"그럼 내일은요?"



-내일도 안 된다.


"(짜증 가득 찬 말투) 그럼 언제 되는데요?"



-지금 스케줄 보아하니... 그냥 너 정규 레슨 시간에 해야 할 거 같은데.


(그냥 끊음)



-와.. 뭐 이런 XX가 다 있지?




학생 C


"선생님, 보컬 전공 000 있잖아요. 걔는 서울예대 아님 호원대 시험 칠 거라는데... (합격) 힘들지 않을까요? 저랑 얘기 많이 했는데.. 저는 그냥 하향 지원하는 게 안전할 거 같다했는데 니나 잘하라면서 화를 내지 뭡니까."


-뭐, 맞는 말 했네. 너나 잘해야지. 남 걱정 할 입장이 전혀 아닐 텐데.



"아니, 객관적으로 봐도 전혀 그 학교들 갈 실력이 아니지 않습니까? 그렇게 노래해서는 백석대나 국제예대도 어려울 텐데..."


-흠, 그래? 그럼 너의 계획은?



"저는 현실에 맞게 예대나 호원대, 한양대, 경희대 이런데 말고... 안전하게 백석대, 국제예대나 단국대 지원하려고요. 백석이나 단국이면 천안이니까.. 근데 알아보니까 천안도 원룸 월세가 만만치 않더라고요."


-우선 그 보다 시험 곡부터 선정해야 하는데.. 너 지금 곡을 몇 번째 바꾸는 거냐? 조금 해보다 바꾸고를 무한 반복 하는데.



"우선 느낌이 와야지 않겠습니까? 또 추천해 주실 곡 없나요?"


-내가 너한테 곡 몇 백개는 담아 주고, 또 그중에서 추려서 준 게 몇십 곡은 될 텐데... 조금 힘들면 바꾸고, 또 바꾸고 하면 되겠냐? 그것도 그거지만, 박자를 비롯한 기본기도 많이 부족한데.



"아니 뭐 정 안되면 그냥 기존에 칠 수 있는 거 대충 하면 되죠."


-내가 볼 땐, 이런 얘기 잘 안 하는데... 넌 지금 백석이던 국제던, 다 떨어질 거 같다.



"그게 말이 되나요? 그 정도는 충분히 갈 수 있습니다. 선생님은 저를 너무 띄엄띄엄 보시는 거 같네요."


-그 학교들이 만만해 보이냐? 큰코다친다.



(이 학생은 시험 보고 들어가는 학교는 다 떨어졌다. 그 후로는 연락이 안 되었지만 들리는 소문에, 돈만 주면 가는 어느 대학을 한 학기 다니고 군에 입대했다고 들었다.)




학생 D


"선생님, 저는 진짜 재능이 없나 봐요. 지금이라도 관두고 그냥 공부에 집중을 해야 할까요?"


-그래. 잘 생각했다. 악기는 그냥 취미로 해.



"네? 진심이세요?"


-어. 진심이야. 예전부터 내가 얘기했잖아. 게다가 부모님 상담 때도 말씀드렸는 거 기억 안 나? 넌 그냥 취미로 하는 게 나을 거 같다고.



"저는, 농담하시는 줄 알았는데요?"


-농담할게 따로 있지. 평소에 네가 어땠는지 생각해 봐. 연습을 많이 하는 것도 아니고, 레슨 준비도 대충 해오고, 이론 수업은 툭하면 째버리고... 취미로라도 하고 싶은 생각이 있긴 하냐?



"학생을 참 쉽게 포기하시네요..."


-쉽게 포기한다고? 연습도 안 해, 수업은 툭하면 빼먹고 PC방 가있고, 그런데 대학 가서 전공은 한다 그러고, 조언 같은 거 해주면 귀 닫아버리고 듣지도 않는데, 내가 너한테 뭘 해줄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포기를 안 하는 걸까? 더 이상 여기서 수강료 낭비하지 말라고 너한테도 얘기했고 너의 부모님에게 까지 말씀드렸는데도 등록은 계속하고.



"저보고 나가라는 소린가요?"


-제대로 하지 않을 거면 그게 맞지 않을까?



"학원이 여기만 있나? 배가 불렀네..."


-... (그래 빨리 꺼져주세요)





상당수의 전공생, 아니 전공을 희망하는 학생들은 좋은 친구가 훨씬 더 많다. 간혹 소수의 무리가 여러 사람 힘들게 하는 경우가 더러 있다.



난 연습은 싫고, 귀찮지만 잘하고 싶고, 주목받고 싶고... 수강료를 냈으니 날 어떻게든 잘하게 만들어라는 막무가내 정신을 앞세우는 경우도 있다. 이런 정신은 부모의 영향도 상당히 크다.



돈으로 다 해결된다는 마인드를 가진 사람이 은근히 많다.



레슨 받으면 무조건 잘하게 될 거야. 투자했으니 대학은 쉽게 갈 수 있어. 학원을 다니니까 난 이미 준 프로야....



불확실성이 큰 분야이니 최대한 현실적인 차원에서 조언을 해줘도 도무지 듣지를 않는다.



그러나 결국 답답한 사람, 답답하게 될 사람은 내가 아니라 당사자이니...



어찌 됐든, good lu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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