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와 R은 동갑내기 친구로서 J는 4학년 때, R은 6학년 때 처음 학원에 왔다.
둘은 나이가 같고 조용한 성격도 비슷했으며 여러 악기에 관심을 보였으며 음악 취향도 살짝 비슷했지만 학원 다니는 내내 친하게 지낸 적은 없던 거 같다. (본인들도 몇 년간 서로 봐왔지만 친한 관계는 아니라더라.) 그냥 같은 나이에 성별이니 형, 누나, 선생님들이 1+1으로 묶을 때 가 많았다.
J는 어릴 때 집 앞에 학원이 생겨서 취미로 피아노, 기타, 노래, 드럼, 작곡... 그러니까 학원에서 다루는 모든 과목들을 한 번씩 다 집적(?) 거린 후 중3 때 본격적으로 작곡 입시생이 되었다.
R의 경우는 특이하게, 원래 희망이 아이돌이었으나 (어머니에 의하면) 그러기엔 끼가 너무 없어 보였다.
나름 귀여운 외모에 길쭉한 팔다리를 가지고 있었지만 정작 본인은 춤에 1도 관심 없다 했다. 오히려 조선시대 선비 이미지에 더 가깝다고 해야 할 까... 그리고 어머니의 말씀과 다르게 본인은 정작 아이돌에 전혀 관심이 없다고 했다.
취미로 노래를 배우던 이 아이는, 안타깝게도 노래에는 너무 재능이 없었다. 아니, 너무 음치였다. 이 친구의 장점이라 할 수 있는 점은 본인 주제를 매우 잘 안다는 것이다. 노래 녹음 후 자기 목소리를 듣더니 실망이라기 보단 너무 어이가 없다며 실성한 듯 막 웃었다.
처음엔 '뭐 이런 녀석이 다 있지...?'라고 생각했다. 그러더니 진지하게 자기는 음악이 너무 좋지만 노래는 아니고 악기나 작곡이 더 맞는 거 같다고 한다. 6학년 학생이 진지 하게 얘기하는 걸 보니 괜히 숙연해졌다.
J와 R은 친하지 않았지만 음악적 동료이자 라이벌로 써 서로 이끌고, 도와주고, 자극하는... 어찌 보면 진정한 프로 관계를 유지했다.
중3 을 마무리 할 무렵 둘 다 서울에 있는 같은 실용음악 고등학교에 진학하기를 희망했다.
오디션과 생활 기록부 및 성적을 중요시 한 이 학교의 진학 조건은 R에게 더 유리한 상황이었다.
아쉽게도 J는 떨어지게 되고 R은 서울에 있는 할머니 댁에서 기분 좋게(?) 눈칫밥을 먹으며 지내야 하는 신세가 되었다.
고등학교에 진학한 R은 하루하루 즐겁게, 재밌게, 또 자기는 실력이 너무 부족해서 현타가 온다는 등의 카톡을 종종 보내며 잘 지내는 듯했다.
반면 J는 일반 인문계 고등학교를 진학했지만 적응을 못하고 2학년 시작과 동시에 자퇴를 하게 된다.
학원에서도 어지간하면 자퇴를 말린다. 음악이고 뭐고 떠나서, 공부를 하든 안 하든 학교는 사회의 중요한 일부이기 때문이다.
누구나 다 그렇지만 특히 어린 나이 때는 소속감이라는 게 매우 중요하다. 내가 중요한 존재이든 아니든 한 울타리 안에서의 나의 존재감이란 결코 무시될 수 없는 것이다.
학원에서는 학교에 계속 남아있으라고 설득했지만 J는 온순한 성격과 달리 고집은 매우 센 아이였다.
그렇게 방황하고 혼란스러운 시간을 보내는 듯했으나 자기 갈길을 묵묵히 가고 있었다.
결국 J는 나보다 더 오래 학원을 지키게 되었다. 내가 학원을 그만둔 후에도 1년인가 더 있었다고 하니... 10년을 채우고 서울로 상경을 했다.
서울 골방에서 피아노를 죽어라고 파던 중 군에 입대하고 전역 후에도 피아노를 놓지 않고 결국 유망한 학교에 재즈 피아노 전공을 시작했다.
명절 때 연락을 주는 고마운 아이였다. 때론 같이 학원 다녔던 친구들과 술자리에서 뜬금없이 전화해서 안부를 묻는 이 친구는 언젠가부터 연락이 뜸하다. 그래도 잘 지내고 있을 것이다.
R과도 서로 꾸준히 연락을 했다.
마침 내가 서울에 있을 때 서로 동네도 멀지 않아서 우리 집 근처에서 술을 두어 번 먹기도 했다.
나름 힘들지만 즐겁게 음악 활동을 하고 있었다.
그러다 군입대를 한 이후, 전역 후에도 연락이 잘 되지 않던 와중, 최근 근황을 알려왔다.
음악 쪽은 아예 접고 대학에 다시 편입하여 다른 걸 배우고 있었다.
자세한 이야기는 2025년 언젠가 있을 술자리에서 듣기로 했다.
개인적으로 가르치기 힘든 나잇대를 말하라고 하면 나는 주저 없이 삼촌 뻘, 혹은 아버지 뻘이라고 한다.
이런 '뻘'은 대부분 한 기업의 최소 부장님에서 임원급이시다.
실제로 어느 기업의 임원 분은 나를 자기의 부하 대하 듯이 하시는 분이 계셨다.
"저기... 나 오늘 수업 못 가는데 내일 오전에 하면 안 되겠나?"
(오전에 학원 오픈 안 합니다. 그리고 왜 계속 반말하시는데요?)
툭하면 이런 식이다. 이 외에도 수많은 '임원질'이 있었지만 나는 나름 새로운 경험과 인생 공부를 한다며 그러려니 했다.
좋으신 분도 많았지만, 이런 걸 몇 사람에게 겪다 보니 새로 등록한 수강생이 아저씨가 된 내가 봐도 '진짜 아저씨'면 긴장부터 하게 되었다.
마지막 레슨 타임에 왜소한 체격에 스타일이 제법 세련된 분이 정중하게 인사를 하신다.
말투에 사투리는 없고 원래 서울 분이란다.
종합병원 의사고 연배는, 그 유명한(?) 58년 개띠.. 그러니까, 아버지 뻘 되는 분이셨다.
우선 나는 긴장 모드로 돌입했다.
그러나 상당한 교양과 젠틀함을 지닌 분이셨다. 오히려 이 분 수업을 내가 기다릴 정도로 인품이 훌륭하신 분이었다. 항상 풍부한 이야기를 해 주셨고 또 그만큼 들어주시는 분이었다.
레슨을 몇 차례 진행해 보니 음악적 감각은 크게 없지만 꾸준함의 끝판왕을 보여주셨다.
연습은 많이 못 하더라도 거르지 않고 조금이라도 시간을 쪼개서 하셨다. 더디지만 조금씩 좋아지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우리는 서로 선생님이라고 불렀고 한 달에 두세 번은 술자리를 하는 사이가 되었다.
마지막 타임 수업인지라 자연스레 악기를 정리하고 같이 퇴근을 하는 게 익숙했다.
문어숙회, 자연산 회, 해물 모둠 등 주로 해산물 위주의 안주가 주를 이뤘다. 둘 다 고기 안주보다는 해산물을 선호하니 딱이었다. 늦은 밤 고기를 굽는 것도 다음날 아침 부담이기도 하다.
선생님께서는 내가 몰랐던 숨은 단골 맛집들을 많이 소개해 주셨다.
어느 순간부터인가는 그냥 술친구가 되어버린 듯하다.
계속 이어질 수 있었던 선생님과의 술자리는 내가 학원을 그만두고 서울로 가게 되면서 맥이 끊겼다.
단순 술자리보다는 인생공부를 간접적으로 할 수 있어서 여러모로 유익했던 시간이었다. (물론 간에는 안 좋았겠지만)
명절 때나 생각이 날 때 종종 연락을 드렸지만 그 수가 서서히 줄어갔다.
내가 다시 내려왔으니, 지금도 연락을 드려보고는 싶지만 어색할 까봐 주저하게 된다.
기회가 되면, 아니 다시 술자리를 만들어 볼 기회를 만들어야겠다. 조만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