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비스업의 고충 (1)

by 이삼오

다른 선생님들과 달리 나는 학원 상주 직원이다. 출퇴근 시간이 있는, 평범한 직장인 보다 늦게 출근하고 퇴근한다 뿐이지 크게 다를 바 없었다.



원장님이나 매니저보다 학원을 더 오래 지키는 사람으로서 기타 레슨뿐만 아니라 모든 업무를 조금씩 다 총괄하고 있는 셈이었다.



전화받기, 자잘한 청소하기, 상담하기, 수강료 결제받기, (내 능력 안에서 해결 가능한) 악기 수리 하기, 건물주의 사소한 푸념 따위 들어주기 등 딱히 업무의 경계가 없었다. 가장 꾸준하게 오래 있던 사람이니 자연스레 일이 생기면 처리하고, 능력 밖이면 보고하고 하는 식이었다.



이러다 보니 거의 모든 학생 및 학부모의 동태를 파악할 수 있었다.



원래 남에게 별 관심을 두지 않는 편이지만 학생을 가르치고 하는 입장이다 보니 자연스레 사람들을 관찰하는 버릇이 생겼다. (아, 평가하고는 전혀 다른 개념이다.)



취미로 오는 어린 학생이라든지 입시생은 본인들 뿐만 아니라 학부모도 꼭 상대할 일이다.



어린 학생들이 주로 많이 모이는 영어, 미술, 수학 학원 등은 학부모 관리와 상담이 본인 수업만큼이나 중요한 업무의 일부이다 보니 많은 어머니는 이러한 시스템에 제법 익숙해져 있다.



학부모와 선생님들 사이의 가교 역할도 어려운 일 중 하나다.



반면 우리 학원은(아마 대다수의 실용음악 학원) 상담에 대한 가이드라인이 딱히 없었다. 대부분 오고 간 선생님, 쭉 계시는 선생님들은 크게 모난 성격의 소유자가 아니어서 학생이나 학부모와의 마찰은 드물었다.



그렇다. 드물다고 했지 문제가 아예 없었던 건 아니다.




어머님 A의 아드님은 취미로 드럼을 1년 정도 배우다가 흥미를 크게 못 느끼는 것 같아서 피아노로 전향을 했다. 레슨 시작부터 마칠 때까지 항상 학원에서 대기하셨던 열성적인 어머님이었다. 드럼 선생님은 서글서글한 성격이라 학생과 어머님과의 관계도 매우 좋았다.



그런데, 새로 오신 피아노 선생님이 조금 걱정 됐다.



어머님 A: 안녕하세요 선생님. 제가 00 엄마예요. 잘 부탁드립니다. 저희 00은 좀 어떤가요?



피아노 선생님: 뭐가 어떻다는 말씀이세요? 오늘이 처음이라서... 뭐 딱히 드릴 말씀이 없는데요.



어머님 A: 그러니까... 소질이라든지, 잘 따라갈 수 있을지, 이런 것들요. 재능은 좀 있어 보이나요?



피아노 선생님: 그거야... 뭐, 00이 연습하기 나름이겠죠? 재능이라... 그냥 피아노 처음 치는 초보인데 제가 그걸 어떻게 알겠습니까.



어머님 A: 아, 네...



이튿날 00은 학원을 끊었다.




대학을 졸업한 지 얼마 안 된 피아노 선생님은 본인 실력은 출중했으나 학부모 응대에 서툴렀고 학생들, 특히 어리고 취미로 하는 이들과 관계가 그리 좋지 못했다. 너무 현실적이고 뚱한 성격의 소유자라고나 할까나. 수업 때 가르쳐주기보다는 질책을 더 많이 하는... 면접 땐 안 그런 성격인 줄 알았는데...



"선생님, 학부모 상대하는 게 만만치 않죠? 그래도 대부분 좋으신 분들이라 크게 어려울 건 없을 것 같은데요."



"제가 계속 입시생 위주로 레슨을 하다 보니... 예전 학원에선 학부모 상대 할 일이 전혀 없었거든요."



"그래도 입시생이면 학부모가 궁금해 하실 텐데요?"



"그건 원장님이 다 하셨어요. 그런데 여기는 제가 다 해야 하나요?"



"그렇다기보다 학부모가 오며 가며 인사할 수도 있고 궁금하면 물어볼 수 도 있잖아요. 내 아이가 어떤지를."



"당황스러웠어요. 피아노 처음 쳐본 아이에 대해서 무슨 할 말이 있을지. 그래서 그냥 있는 그대로 말한 건데요."



"네. 그게 선생님의 생각이자 현실이긴 하죠. 어머니도 아실 테죠. 그렇지만 어머님께선 그냥 일종의 희망의 메시지가 듣고 싶으셨겠죠. 본인 아들이 대단한 음악가가 될 거라는 기대는 안 하시죠."



"피곤하네요. 제가 이런 뒤치다꺼리까지 해야 하나요?"



"레슨도 중요하지만, 학원은 일단 서비스 업이죠. 학부모와 학생은 엄연한 고객입니다. 조금 맞춰준다고 해서 나쁠 건 없다고 봅니다."



"그거야 사람마다 다른 거 아니겠어요? 저는 누구한테 비위 맞추고 이런 거 딱 질색이네요."



"비위를 맞추라는 게 아닙니다. 그냥... 친절해서 나쁠 거 없다는 거죠."



"저는, 그게 잘 안 돼요. 좋으면 좋은 거고, 아니면 아닌 거고."



레슨 할 때마다 항의가 들어오는 상황이 벌어졌다.



이 선생님은 결국 해고 됐다.






나도 몇 년간 쌓아온 경험치로 어지간한 상담은 자신 있었다.



어떤 상황이 건 감당이 안 되는 상담은 없다. 상대방이 욕설이나 폭력을 행사하지 않는 선 안에서다. (다행히 이런 일은 없었다.)



그래도 힘들 때가 있다.





드럼 입시생 JH는 고등학교 1학년 남학생이었다.



덩치는 정말 컸고 인사하는 거 외에는 말이 없는 아이였다.



얼굴 표정은 근심이 가득했지만 그렇다고 화나있거나 반항심이 가득한 느낌은 아니었다.



항상, 자신감이 없어 보였다.



아버지에 의하면 악기를 시작하게 된 계기도 JH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무언가 해보고 싶은 게 드럼이었다고 하셨다. 아버지는 이 말에 너무 감격스러워 그다음 날 학원 열자마자 바로 오셔서 등록을 한 거였다.



"선생님, JH는 좀 어떤가요?"



"아무리 취미라고는 하지만... 연습을 너무 안 해요. 그래도 혼내거나 하지는 않아요. 계속 타이르긴 하는데... 실력이 늘지 않아서 걱정이에요. 아버님께선 전혀 부담 갖지 말아 달라고 하셨지만..."



"다음에 아버님 뵈면 선생님 마음 전해 드릴게요."



드럼 선생님은 타지에서 오셔서 학부모와 마주 할 일은 별로 없었다. 그럴 때마다 내가 비공식적인 대행으로 상담을 맡아야 하는 경우가 생긴다.



JH아버님은 항상 직접 오셔서 수강료 결제를 하셨다. 그리고는 항상 감사하다는 인사를 전하셨다. 그러던 하루 아버님이 매우 진지하신 표정으로 상담을 요청하셨다.



"선생님. 저희 JH를 드럼 전공을 시켜 볼까 합니다."



한동안 멍했다. 취미만으로도 버거워하는 JH가 드럼을 전공하고 싶다고?



"아버님 생각이신가요 아니면 JH의 생각인가요?"



"저희 둘 다 그렇게 하기로 했습니다."



"결정적인 계기라도 있습니까 아버님?"



"저도 JH가 연습도 소홀히 하고 하는 것도 압니다. 그런데 이 녀석이 태어나서 처음으로 뭘 해보고 싶다는 게 이거였어요. 그리고 드럼으로도 대학 갈 수 있다면서요. 사람이 적어도 대학을 나와야 뭐라도 할 수 있는 거 아니겠습니까."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지금 상태로 JH가 전공을 목표로 하는 걸 추천드리고 싶지 않습니다. 첫째, 아버님이 아시는 바와 같이 연습을 소홀히 합니다. 여기부터가 힘든 겁니다. 연습은 기본이자 자신의 열정을 표현하는 방식입니다. 그게 없습니다. 둘째, 지금이나 앞으로도 봐서 JH는 드럼으로 대학 가기는 어렵습니다. 돈만 주면 합격시켜 주는 곳을 제외하면요."



"안 됩니다. 대학은 가야지요. 정 안 되면 돈만 주는 학교라도 보내겠습니다."



"우선 알겠습니다. 드럼 선생님께 전해 드리겠습니다."





(통화 중)


"안녕하세요 선생님. 드럼 치는 JH 아버님이랑 면담했는데요... 전공을 희망한다네요."



"네?! 뭐라고요? 그건 안 됩니다. 아니, 차라리 다른 선생님에게 맡겨 주세요. 저는 자신 없습니다."





*2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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