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비스업의 고충 (2)

by 이삼오

아버님의 간곡함에 어쩔 수 없이 JH를 전공생으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다만 조건이 있었다.


1. 연습 일지 양식에 꼬박꼬박 기록하기.


2. 정해준 앨범, 곡 듣고 분석하기.


3. 이론 (단체) 수업도 성실히 하기.


4. 정말 몸이 안 좋거나 하지 않은 이상, 수업 절대 빠지기 않기.


5. 막힌 거나, 궁금한 거나, 이해가 안 가는 건 무조건 질문하기.



이 조건들이 지켜질지는 모르겠으나 아버님과 JH가 동의했고 서명까지 했으니 잘 따라와 주기를 바랄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역시. 반전은 없었다.



1번 에서 5번까지 지켜지는 게 하나도 없었다.





"차라리 JH를 돈으로만 보고 포기해 버리면 참 편한데... 제 성격상 그게 안 되네요."



"아버님도 너무 좋으시고 한데, 참 안타깝네요."



"아버님이 댁에 드럼 부스 설치할 거라고 공사 끝나면 저보고 와서 봐달라 하시던데요?"



"네? 진짜요? 뭘 그렇게까지... 가뜩이나 연습도 안 하는데 부스까지? 공사비 장난 아닐 텐데요..."



"들어보니까 완전 탑급으로 하시려는가 봐요. 한 몇 천은 들 텐데..."



(며칠 후)



"선생님. 다녀오셨어요?"



"네. 장난 아닙니다. 제가 별의별 시설, 스튜디오, 부스 다 봤는데... 진짜 예술입니다. 아휴, 이 녀석은 자기 아버지가 이렇게 까지 해 주는데... 그 정성을 알려나 모르겠네요."





퇴근 시간을 조금 넘긴 늦은 밤, 예상치 못 한 시간에 누군가 학원 문을 열고 들어왔다.



JH의 아버님이 수강료 결제를 하러 오셨다.



그런데 얼굴은 붉게 달아오르셨고 술 냄새가 났다.



"아, 선생님. 마침 근처에서 회식이었는데 수강료도 결제할 겸, 인사도 드릴 겸 왔습니다. 물어보기도 민망하지만, 요새 JH는 좀 어떤가요?"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이런 말씀은 드리기 좀 그렇습니다만, 나아지는 모습이 안 보입니다."



(어... 아버님?)



"아아아.... 흑흑..."



(하아... 왜 우시는데요...)



"다 제 잘못인가 봅니다. 제가 애를 잘못 키운 거 같습니다."



"에이, 그럴 리가요 아버님. 저나 드럼 선생님이 볼 때도 이렇게 아들 잘 챙기시는 분은 없을 겁니다."



".... 선생님. 괜찮으시다면, 소주 한 잔 하시겠습니까?"



(하아... 네. 칼퇴만 했어도 이런 상황은 없었을 텐데...)





아버님은 소주 한 잔, 회 한 점에 답답한 마음을 한 줄씩 쏟아 내셨다.



얘기를 들어 보아하니 JH는 어릴 때부터 별일 없이 무난하게, 나름 행복한 가정에서 성장한 친구였다.



오히려 그래서 아버님은 더 답답하셨던 모양이다. 직장 동료들과 같은 동네, 같은 학교, 비슷한 환경에서 모자랄 것 없이 성장했는데 JH는 왜 이 모양이냐고, 동기들 애는 가만히 놔둬도 다 멀쩡하게 학교 다니면서 공부도 잘한다고.



"아버님, 근데 JH도 은근히 느끼지 않을까요? 자기가 비교당한다는 걸요. 물론 아버님이 악담을 하거나 하시지는 않겠다만... 왠지 JH도 생각이 많을 듯합니다."



"네. 선생님이 맞습니다. 결국 제일 힘든 건 제 아들놈일 테지요. 그런데 저도 그냥 평범한 인간이라서 답답한 건 어쩔 수 없나 봅니다."



소주가 한 두 병 비워지다 보니 주제는 JH에서 시시껄렁 한 이야기로 흘러갔다.



그렇게 회에서 감자탕까지 이어졌다. 해가 슬 뜨려고 하는 중이었다.



"아버님, 근데 출근은 어떻게..."



"아, 저는 오후 출근이라 괜찮습니다. 선생님, 오늘 저 때문에 고생 많으셨습니다. 그래도 우리 JH, 잘 부탁드립니다."



집에 도착해서 대충 씻고 침대에 누웠다.



슬 해가 뜨려고 할 때, 슬 내 눈이 감기려 할 때 아버님의 마지막 한 마디가 내 머리 어딘가를 쿡쿡 찌르는 느낌이 들었다.



'... 그래도 우리 JH, 잘 부탁드립니다....'




이 날 이후로 아버님을 뵐 수가 없었다. 수강료도 이체로 바꾸셨고, (드럼 선생님이) 상담차 전화를 드려도 받지 않으셨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JH는 졸업을 앞두고 있었다. 대학 진학을 앞두고 고민할 필요 없이 시험을 안 봐도 되는 학교에 원서를 넣었다.





JH의 사례가 특별했을까? 꼭 그렇지도 않다. 입시생들을 둔 학부모님은 다들 나름대로의 고충이 있다.



전학 와서 적응하는데 애를 먹어 방황하는 아이를 둔 부모...


너무 엄격한 부모와 자유분방한 아이와의 갈등...


남의 아이와 남의 부모를 항상 비교하면서 대립하는 관계...


어찌 됐든 대학만 가면 된다는 부모...



학부모와 머리를 맞대며 어떻게 하면 학생에게 더 나은 방향으로 갈 수 있게 끔 도와주는 게여간 쉬운 일이 아니다.



무엇보다 아무리 소통을 해도 자식이 없는 내가 학부모의 마음에 완전히 공감하기엔 부족한 면도 많았다. (지금이면 훨씬 더 수월 할 것 같다.)






역시, 사람 상대하는 일이 가장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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