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아나려면 벌레를 잡아야 해요

모니터의 불빛은 꽁초의 빛보다 밝지 않았는데.

by 임형진

새벽 4시쯤 넘어가면 널브러진 옷들을 주워 입죠. 별 이유는 없어요. 담배 피우러 나가는 길이에요.

학교가 몰린 동네의 새벽은 조용해요. 아이들의 그 부모의 그 무엇의 열정은 둘째 치고, 여긴 서울이 아니니까. 조용하다 못해 정적이네요. 좋아요. 좋아해서 바람을 마중나가요.


벤치에는 죽은 나무들을 파낸 파묘의 자리와 간신히 허수아비 취급을 받고 있는 죽은 나무들이 있죠. 이어폰을 꽂고 연초를 하나 꺼냅니다. 불을 붙이고, 옅은 가로등 때문에 색이 바랜 나무와 꽁초를 번갈아보죠. 천천히.


오늘 첫 담배네요. 니코틴이 머릴 치고 달아나기 시작해요. 계속해서. 계속해서. 잠깐, 오늘이 며칠이죠? 무슨 요일인가요? 누워만 있으니 시간을 잘 모르겠는걸요. 우울증을 숨기고 동네 사람들에게는 허리 디스크가 터져서 제대를 했다고 했죠. 허리가 아파 집 밖에 잘 나가지 않는 거예요. 그렇게 사람들을 믿게 만들었어요. 이젠 꽤 거짓말을 잘한다고 생각해요. 눈빛이 흔들려도 괜찮아요. 내가 그들을 보지 못하면, 그들도 보지 못하는 거예요.


죽은 나무가 어지러움을 타고 고개를 숙여요. 나를 껴안아요. 추워요. 손 끝이 시리네요. 이제 들어갈 시간입니다. 12곡 짜리 플레이리스트가 끝이 났죠. 12월에 생일을 맞으면, 금세 1년이 끝나버리는 것처럼. 4 글자 비밀번호를 치면 집에서는 개가 짖고, 새벽의 나는 아침에 껴안고 놀던 개를 무시하고서 방으로 들어가 문을 잠가버리고. 요새는 방 불도 꺼버려요. 눈이 머는 것에 집중해야 해요. 암막커튼은 창문 밖 사람들의 빛을 막고, 두꺼운 옷 사이에 끼여 들어온 벌레는 모니터에 달라붙죠. 내가 재능 있다고 생각한 여러 날들에는 눈동자에 달라붙었었죠.


도망치고 싶어서 도망쳤어요. 이젠 어디로 도망쳐야 하죠? 벌레를 모니터에 짓눌려 죽였는데, 시체가 보이질 않네요. 쓰레기를 모아다 버리는 날에는 자연스레 그 속에 들어있을까요? 어느 날은 글을 꼭 쓰자며, 책을 읽자며 다짐했어요. 이젠 다짐조차 붙잡을 힘이 없네요. 손목이 부러진 것만 같은데.


계속 잠들어 있자. 죽은 나뭇가지를 몸에 접목시키고 잠들어있자. 후덥지근한 이불 안에서 가지에 곰팡이가 필 때까지 잠들어있자. 가까스로 그것만 다짐했어요. 그래도 늘 잠에서 깨요. 대부분은 목마름에 깨죠. 텁텁한 입에 미지근한 물을 들이부어도 속이 아파요. 이렇게 조금씩 아픈 게 내 속죄의 길인가 보다 생각해요. 그래도 내가 저지른 것들에 비해 너무 과하다고 생각이 들지만요.


조금씩 해가 뜨면 어디로든 달아날 준비가 되었습니다. 준비만 되었습니다. 낙원을 찾아 도망가는 게 아니에요. 지옥이라도 조용하면 좋습니다. 림보를 바라요. 아무도 없는 나만의 림보를. 이루어질 수 없기에 아름다운 것이라면 나는 아름다운 것을 꿈꾸지 않겠습니다. 가끔은 개미목숨이 부럽죠. 커다란 몸뚱이는 아무리 짓눌러도 욕지거리 그 이상 그 이하도 되지 못했으니.


오늘은 여기까지만 해요. 아직 이른 시간이지만, 한 대 더 피우러 가야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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