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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인이 보이는 관상

“이 사람이 범인이네.”



범인이 보이는 관상


“이 사람이 범인이네.”




이젠 엉터리 탐정보다 관상에 의지하는 비과학적인 탐정에 가까워졌다고 보면 된다.코난을 볼 때면 혼자서 진짜 사건 속에 있는 것 마냥 추리를 시작한다. 지금부터 코난 범인을 맞추는 나만의 추리 비법을 공개할 건데 읽고 나면 ‘도통 이상하지만 진짜 맞네’라는 생각이 들 것이다.


일단 네 명의 용의자가 있다고 가정해보자. 불량배처럼 생긴 아저씨, 인자한 65세 교장 선생님, 혹독한 여자 교생 선생님, 착한 여자 보건 선생님 이 용의자라고 치면 범인은 ‘착한 여자 보건 선생님’일 가능성이 커진다. 이상하다고? 그 이유에 관해서 설명해보겠다. 우선 불량배는 코난에서 용의자 중 범인이었던 적이 거의 없다. 아마 독자들이 불량배를 먼저 의심하게 만드는 트릭 중 하나인 것 같다. 또한 교장 선생님도 ‘착하다’는 이미지 대신 ‘인자하다’에 가까워서 범인일 가능성이 조금 작아진다. 만약 반대로 교장 선생님의 성격이 ‘혹독하다’에 가깝다면 범인보다는 오히려 피해자일 확률이 높다. 아무리 그렇다고 보건 선생님을 범인으로 몰아가는 게 앞뒤가 안 맞는다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캐릭터에 선입견을 심어주는 혼선을 주는  방법도 코난의 트릭 중 하나다. 아까 교장 선생님의 ‘인자한’ 성품은 범인일 가능성이 낮아진다 했지만 ‘착한’ 이미지를 밑밥으로 깔아 놓는다면 백발백중 코난에서 범인일 가능성이 매우 높아진다. (이와 비슷한 흐름이 7권에 월영도 사건에 등장한다) 그런데 ‘착하다’ 라는 말이 코난에서 유독 위험한 이유는 OO의 복수로 많이 쓰이기 때문이다. OO의 빈칸으로는 애인, 친구, 가족이 가장 많이 쓰인다. 그러므로 착한 여자 보건 선생님은 범인의 낌새가 느껴지고 범인인 확률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 매 사건이 항상 이런 정해진 틀 안에 있지는 않다.

그렇다면 여기서 피해자와 범인이 가진 각각의 특징을 알아보자. 피해자 특징 중 가장 많이 두드러진 것은 싸가지 없는 성격이다. 내용 속에서도 밉상으로 찍혀 있어서, 꼭 나쁜 짓을 저지를 것 같고, 독자는 싸가지 없는 사람을 범인으로 오해하도록 만들어 놓는다. 그러나 막상 사건이 벌어지면 이런 사람은 꼭 다치거나 죽는 경우가 많다. 최근에 나온 작품에서는 더욱더 성격 더러운 사람이 피해자일 때가 많은 것 같다. 얼굴 생김새를 묘사한다면 눈이 좀 퀭하고 쫙 찢어져 있거나 웃는 게 기분 나빠 보이는 게 가장 적절한 표현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면 범인의 생김새는 어떨까? 범인이라 하면 남자의 경우 눈이 옆으로 적당히 길쭉하다. 코나 얼굴이 세로로 길쭉할 때도 많다. 머리가 빠글빠글한 파마이거나 쫙 펴진 뻗친 머리이거나 인중이 길 때도 있다. 여자의 경우는 눈이 옆으로 적당히 길쭉하거나 대각선 위로 눈이 클 때가 많다. 머리 스타일은 장발보다는 단발일 때가 더 많았다. (여자 캐릭터들은 머리 스타일이 다양하기 때문에 콕 집어 말하기가 힘들다.) 립스틱을 바르고 있을 때도 간간히 있다. 이런 것들을 하나하나씩 배열하다 보면 범인의 얼굴 정도는 쉽게 상상이 간다.



제7권에 등장하는 월영도 사건. 더 자세한 내용은 스포 금지. 코난은 함께 범인을 추리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아직도 코난에 대한 자부심을 버리지 못한 나는 가족과 TV로 코난 애니메이션을 볼 때면 “이 사람이 범인이네!”라는 말을 할 때가 많다. 놀랍게도 정말 그 사람일 때가 있다. 하지만 애니메이션과 코난 만화책은 느낌이 좀 다르기 때문에 만화책으로 추리하는 게 훨씬 쉽다. 만화책으로는 90% 이상 맞출 수 있다. 책으로 볼 때 나의 추리가 맞으면 성취감이 잔잔한 강물이 되어 흘러간다. ‘아! 나 진짜 너무 똑똑해서 증말!!’ 이라고 혼자 감탄하는데 이럴 땐 너무 잘난 척하는 것 같아서 코난을 다음 장으로 넘겨 생각을 끊고 다시 코난에 집중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자신감이 가득한  나만의 범인 찾기의 상식을 엎어버린 에피소드도 가끔 등장한다. 그럴 땐 ‘뭐야, 이 사람이 범인이라고?’ 하며 말도 안 된다고 우기고 싶지만, 범인 맞추기에 실패한 셈이다.  이러니 코난 속 캐릭터라면 내가 엉터리 탐정이 될 수도 있다는 것도 충분히 가능성 있다. (이때쯤 다시 등장하는 입이 삐죽이 튀어나온 야마무라 형사가 생각난다) 맞추면 생색내고, 틀리면 부정한다. 맞는 말인데 내가 맞은 거라며 빡빡 우기고 싶지만 관상만 보고 맞추다 보면 실패할 경우도 생긴다. 하지만 이렇게 전체를 다 읽다 보면 관상만으로도 대강 범인 찾을 수 있게 되고, 머리 아프게 추리하는 게 조금 귀찮아서 여전히 관상으로 범인을 맞춘다. 만약 관상만으로 범인을 찾기 힘든 경우에는 극 중 나오는 캐릭터가 흠칫 놀라는 장면에서 하는 말을 보면 힌트가 된다. 그러나 만화책의 흐름상 절대 중요하게 언급하지 않고, 그냥 배경처럼 슉~ 흘러가기도 해서 보통은 놓치기가 쉽다. 머리로 생각하기보다 역시 내 방식대로 관상으로 범인 넘겨짚기가 훨씬 재미있기도 하다. 성공률도 높고! 관상 보고 범인 찾는 나같은 엉터리 탐정이라니… 나 같은 사람이 코난에 실제로 등장한다면 웃기기도 하고 신기할 것도 같다.

“당신은 성격이 더러우니 피해자가 될 거요!! 흠… 당신은 착하고 눈매를 보아하니 범인이군요!!”

이렇게 진행된다면 코난 시리즈가 얼마나 웃겨질까? 혹시 내가 언급한 관상으로 범인 찾는 방법을 못 믿겠다면 아무 코난 책 한 권을 열어서 직접 확인해보면 된다. 놀라서 입이 쩍 벌어질 수도 있다. (물론 틀릴 때는 틀렸구나 라고 생각하며 넘어가 주길 바란다. 항상 모든 것을 맞추고 살 수는 없지 않은가?) 사실 엄청 자신만만하게 “범인은 저 사람이야!”라고 했다가 우습게 틀린 적도 있다. 그럴 땐 그냥 자존심 내려놓고 ‘난 모르는 일이오.’라며 자연스럽게 넘어가는 게 어떤 변명보다 낫다. 그래도 계속 성공하고 싶다면 등장하는 사람마다 “저 사람이 범인이야!! 얼굴이 그렇게 생겼어!!!” 라며 외치는 것도 한 방법인데 시끄럽다고 주변 사람들이 핀잔을 줄 수도 있으니 그건 각자 알아서 하길 바란다. 



내가 관상만 보고 범인을 잘 맞추게 된 계기는 내가 아는 사람 중 특이하게 그런 걸 잘 맞추는 사람이 있었다. 그 사람을 A라고 가정(하고 오빠라는 것은 안 비밀)한다면, A와 함께 TV 서바이벌 프로그램을 보는데 누가 탈락할지 A가 척척 맞췄다. 갑자기 내 눈에 A가 코난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나는 갑자기 A의 제자를 자처하고 A에게 어떻게 알아낸 거냐고, 얼굴만 보고 어떻게 맞춘 거냐고 물어보니 스승님(?)께서 드디어 비법을 말해줬다.

부채 도사 내 뒤로 무표정하게 서 있는 사람이 스승님 A다.

“관상 is a science.”


완전 사이비 같은 말이었지만 왠지 멋있어 보였다. (나는 절대 사이비가 아니다.)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진실로 받아들인 순수하고 귀여운 나는 코난을 볼 때마다 그 말을 떠올리며 지금까지도 범인을 잘 알아내고 있다. 


나에게 있어서 ‘수학이 제일 쉬웠어요.’보다 ‘추리가 제일 쉬웠어요.’ 가 더욱더 맞는 말인 것 같다.



글: 초등작가 아린

사진: 에디터 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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