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릭터 사용 설명서
코난을 순서 없이 앞뒤로 아무렇게나 읽다 보면 문득 드는 생각이 있다.
‘이 캐릭터가 원래 이렇게 생겼었나?’다. 모든 캐릭터가 그림체의 변화로 뾰족해진 것은 한번 본 사람도 느낄 것이다. 가장 많이 안 변한 건 주인공 쿠도 신이치다. 물론 코난(신이치)의 친구인 하쯔토리 헤이지라는 오사카 탐정과 느낌이 비슷해서 좀 더 차분한 느낌으로 중반부터는 바꾼 것 같다. 내 생각으로 가장 많은 변화가 일어난 건 여주인공 모리 란이다. 1권과 90권 근처를 번갈아 보면 머리에 뿔이 심각할 정도로 뾰족해졌다. 유니콘이라는 소문도 있는데 그럴 법하다. 심지어 코난에서는 쿠도 신이치와 도플갱어 같은 캐릭터가 세 명이나 나왔다. ‘비슷하다’로는 도무지 표현이 안 될 정도로 머리 모양 빼고 얼굴이 똑같다. (참고 ; 16권, 43권, 93권) 그중 가장 많이 봐온 캐릭터가 아마 괴도 키드일 것이다. 코난 작가도 이젠 평행우주를 만들려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괴도 키드와 친한 여자 캐릭터마저 모리 란과 똑같이 생겼다. 다행히 그쪽은 머리가 뾰족하진 않아서 그나마 구분이 가능하다. 이렇게 주인공을 복사 붙여넣기한 캐릭터들을 많이 보지만 이젠 하도 많아져서 그러려니 하게 되었다. 주인공과 똑같이 생긴 사람이 한 명쯤은 있으면 흥미진진한데 세 명이나 있으니 주인공이 아닌 느낌이 들어 코만 긁적대며 읽을 뿐이다.
주인공 쪽에만 포함되는 얘기는 아니다. 또 다른 똑같이 생긴 인물이 있다. 바로 경시청에 사토 미와코 형사와 코난이 다니는 초등학교에 담임 선생님인 코바야시 선생님이다. 옆머리와 안경을 다르게 그렸지만 역시 똑같이 생겼다. (참고 ; 67권, 68권) 그리고 1권에 나온 모리 코고로 탐정을 보고 너무 놀라서 허걱했었다. 완전 백수 아저씨나 마찬가지였다. 게다가 코난의 머리를 계속 때려서 혹이 나는 걸 보고 만화라서 쓱 지나갈 수도 있지만, 실은 허걱하는 부분이기도 했다. 다행히 최근 작품에서는 캐릭터도 좀 괜찮아지고 대놓고 코난에게 꿀밤을 때리지 않는다. 사실 여기엔 또 하나의 비밀이 숨겨져 있다. 괴도 키드를 잡는 형사인 니카모리 경위가 모리 코고로 탐정과 너무 비슷해진 나머지, 수염 모양과 눈썹 모양을 바꾸었다고 책 뒤 부록에 밝히고 있다. 딱히 생각하지 않고 봤던 부분이었는데 그러고 보니 비슷해 보였다. 작가는 왜 거기에 대한 해답은 알려주면서 다른 똑같이 생긴 캐릭터들에 대한 해답은 안 알려주는지 답답한 심정이다. 게다가 똑같이 생긴 캐릭터들은 서로 안 만난다. (코난과 괴도 키드가 만난다 해도 쿠도 신이치의 모습으로는 만나지 않았다.) 이유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아마도 스토리가 밋밋해지거나 비슷한 얼굴이 겹치면 독자들이 비슷한 그림을 눈치챌까 싶어 그럴 수도 있다. 견우와 직녀도 아니고 맨날 만나려다가 못 만나지 설정이 100권까지 이어지니 고구마를 100개를 꾸역꾸역 먹은 것 같다.
코난에서 꽤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소년 탐정단의 코난의 친구들도 최근 들어서 점점 작아지고 있다. 코난 애니메이션에서는 자동차 옆에 코난이 서 있다면 타이어와 크기가 같아져 버렸다. 아무리 작아도 다 같이 서 있으면 다른 캐릭터들의 무릎 관절을 넘지 못한다. 키가 크지도 못하니 안됐다는 마음밖에 없다. 이러니 내가 30~40권 사이에 코난 책을 좋아하는 이유를 알겠는가? 그나마 코난에 집중적인 얘기도 많이 나오고 키도 쬐끔 컸다. 검은 조직 얘기에 대해서도 나오고 형사 얘기도 쏠쏠하게 나온다. 이 글을 쓰는 오늘도 코난 36권을 읽었다. 무엇보다 스토리도 재미있지만 여주 그림이 그나마 제일 예쁠 때인 것 같다. (20~40권 참고) 50권에 가니 슬슬 머리에 뿔이 커지고 뾰족해졌다. 몇 번씩 여주가 저걸 흉기로 쓴 것이 아닌가라는 엉뚱한 추리도 해본다. 생각해보면 은근히 맞아떨어지는 것 같은 느낌도 있다. 그리고 책 뒤쪽 부록에 특별편으로 실린 내용이 있는 권이 있는데 거기에서 여주가 작가의 이상형이어서 그렇게 그렸다고 쓰여 있다. 예쁘면서 용감한 여자아이지만, 귀신을 무서워하는 약점도 있게 그리고 싶었단다. 확실히 뿔을 가리고 보면 미소녀이긴 하다.
또한 생김새가 아닌 이름에 문제점이 있는 캐릭터들도 있다. 코난 한국판 애니메이션에서는 ‘하이바라 아이’ 라는 이름이 ‘홍장미’ 가 되는 놀라운 마법이 생긴다. ‘츠부라야 미츠히코’ 라는 이름도 ‘세모’ 라는 도형 이름이 되어버린다. 제일 심하다고 생각하는 건 ‘코지마 겐타’ 라는 이름을 ‘뭉치’라는 왠 먼지 같은 이름으로 바꿔버린 작명 센스는 좀 별로인 것 같다.(엄마에게 물어보니 일본어 이름을 한국어로 직역해서 그렇다고 한다.) 그래. 하이바라는 장미라고 치자. 아무리 그래도 미츠히코를 대놓고 세모라고 하고, 겐타의 뭉치 변신은 좀 이상하다. 원래 이름 그대로 실었으면 더 좋았을 텐데 싶다. 예전에 애니메이션 한국판만 볼 때는 전혀 몰랐는데 일본어 이름으로 된 만화책을 보니 이름이 구리다는 걸 그제야 눈치챘다. 책으로 보기 전에는 나도 이 정도면 코난에 대해서 꽤 아는 편이라고 자신했는데 책으로 보고 나니 캐릭터 이름 외우는 것부터가 만만치 않아서 우왕좌왕했던 거는 기억이 난다. 하지만 이젠 얼굴의 생김새만으로도 단번에 범인을 알아맞힐 수도 있고, 달라진 점을 척척 설명할 수도 있으니 코난에 관해서는 천재급인 거 같아서 으쓱하게 된다.
글: 초등작가 아린
사진: 에디터 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