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란 언니! 100권만 더 기다려줘요

인내심 기르기



"란 언니! 100권만 더 기다려줘요."


인내심 기르기



몇 시간 동안 코난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한 번 눈을 돌려보면 허리가 뻐근하고 시계를 보고 시간이 이렇게 많이 흘렀나 하고 혼자서 흠칫 놀란 적이 많다. 기지개를 쭉 켜며 굼벵이처럼 구르며 일어나다 보면 일어나느라 힘을 빼서 그런지 지쳐서 다시 눕게 된다. 그리고 또다시 코난을 읽는다. 그렇게 오랫동안 코난을 읽다 보면 나도 모르게 감정이입이 될 때가 있다. 예를 들어 범인이 뒤에서 내려치려는 장면을 보면 다음 페이지로 넘겨야 하는데 그때의 불안감으로 넘기지 못하고 발만 동동 구른다. 그리고 떨리는 마음으로 넘기면 더욱더 발만 동동 구르게 된다. 메뚜기도 아니면서 펄쩍펄쩍 날뛰거나 입술에 침을 바른다. (그것 때문에 내 입술은 항상 튼 상태로 유지하고 있다.) 다시 진정하고 말풍선에 들어 있는 말을 천천히 읽는다. 몸에 조금 힘을 주며 흔들거리며 집중력을 더 높여 본다. 그렇게 집중력을 높이며 읽다 보면 어느 순간 마지막 한 장을 넘긴다. 손에 힘이 풀렸는지 촵 소리가 나게 책을 내려놓고 누운 채로 천장 위에 달린 전등만 빤히 쳐다본다. 긴장감 때문에 목이 말랐는지 일어나서 물을 마시러 간다. 다시 돌아와 보면 켜켜이 쌓여있는 수 십 권의 코난 책이 보인다. 그리고 누워 생각해본다.


과연 여주인공인 모리 란은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까? 못 버티면 내가 코난을 못 읽는다는 현타에 마음이 조마조마 해진다. 물론 현실적으로 생각하지 않고 만화로 생각하고 지금까지 온 것만으로도 알 수 있다. 검은 조직의 NO.2를 찾을 때까지 100권이나 걸렸는데 NO.1을 찾으려면 200권은 더 걸리지 않겠냐는 두려움이다. 아니다. 좀 더 적게 걸린다고 가장하여 100권만 더 기다려 달라는 바람은 이때부터 생긴 것 같다. 지금까지도 이렇게 오래 걸렸는데 마음 약한 란이 과연 기다릴 수 있을까. 설마 이대로 원피스나 포켓 몬스터처럼 세계관이 확장되어 결말을 못 짓는 상황이 될 수도 있을지 모른다.

실제로 코난 애니메이션 극장판 중 <10년 후의 이방인>이라는 영화에서 란은 28살이 되고 코난은 18살이 되어버린 끔찍한 스토리도 나왔었다. 하지만 그럴 일은 없다고 보는 게 코난은 나이를 안 먹어서 굳이 걱정할 필요 없을 것 같다. 그래서 악당 조직을 무찌르기까지는 100권만 더 걸린다고 생각해버리고 싶다. 정말 그렇게 생각하고 싶다. 만약 100권만 더 걸린다고 가장한다면 코난은 정체를 들킬 위험이 얼마나 더 많이 올 것인가 도 생각해야 할 부분이다. 지금까지 100권 중에서는 총 네 번의 들킨 뻔한 위험이 있었다. 그런데 솔직히 이미 들킨 것 같기도… 안 들켰다고 생각하고 싶다. 하지만 또 다르게 생각해보면 ‘코난이 알고 봤더니 신이치였어요~’라고 정체가 들통난다면 검은 조직에게 죽기 전에 란한테 혼나거나 가라테로 맞아 사망할 수도 있어서 말을 안 하는 것 같긴 하다. 그 이유는 너무 많아서 말하기도 버거울 정도다. 아무튼 100권이 더 이어진다면 적어도 열 번 정도는 더 들킬 위험이 있을 것이라는 대강을 추측을 해본다. 하여간 란은 최근 호가 될수록 유니콘 머리 스타일을 한 채 계속 속고 살고 있으니 보고 있는 내가 더 답답하다. 코난도 옆에서 위로랍시고 또 속이고 있으니 그런 면은 한숨이 절로 나온다. 코난은 꼬마 주제에 거짓말도 점점 능숙해지고 있다. 탐정을 한답시고 사기꾼 수준으로 거짓말을 한다. 하지만 나 혼자 이렇게 안타까워한다고 만화 내용이 급 전개 될 것도 아니고, 갑자기 아침 드라마처럼 김치 싸대기를 날릴 것도 아니니 다 소용없는 기대일 뿐이다. 그냥 있는 그대로 재미있게 보면 거기까지가 내가 할 일이다. 내가 혼자 난리를 치며 상상력이 꼬리에 꼬리를 무니 이상해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100권까지 정주행해 본 사람이라면 내가 하는 말을 이해하고도 남을 것이다.


26권에 속터지면서도 절절한 사연이 나온다. 이 장면에서 나도 모르게 란 언니를 진심으로 응원하게 된다.



어쩌면 나의 희망은 코난이 흐지부지 끝나지 않았으면 하는 진심이 담겨 있다. 그저 여주의 기다림이 가능할지 말지 안타까워하는 건 란이 기다릴 수만 있다면 코난의 이야기도 계속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란에게 응원을 보내는 거다. 100권이 아닌 200권, 300권이 앞으로 계속 나오면 좋겠지만, 100권이라도 더 나온다면 여한이 없다. 그래도 란이 더 끙끙대며 신이치를 기다릴 것을 생각하니 딱 100권만 더 나와줘도 괜찮을 것 같다. 다음 권이 나오면 또 다음 권은 언제 나오지 하고 기다리고, 또 다음 권이 나오면 다음 권은 또 언제 나오지 라는 말을 되풀이한다. 작가도 사람인데 독자 입장에서만 너무 다그친 것 아닌가 생각이 들어서 괜히 미안해지기도 한다. 그러나 한 권을 읽고 나면 다음 권은 도대체 언제 나오지 라고 하는 말은 늘 똑같다. 근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내가 기다린다고 책이 계속 나오는 일이 벌어지는 게 아니었다.  아니었다. 여주인 란이 마음 굳게 먹고 버텨야 코난 만화책은 계속 나올 수 있다. (물론 현실적으로 본 것이 아닌 만화에서의 시점으로 본 생각이다.) 비로소 내가 아닌 란이 잘 기다려줘야 하는 일인 것을 자각했을 때는 간절한 마음으로 소원을 빈다.

‘란 언니! 100권만 더 기다려줘요.’


글: 초등작가 아린

사진: 에디터 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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