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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필로그

나에게 (코)난



에필로그


"나에게 (코)난"


(왼쪽, 가운데) 코난은 나를 더욱 나답게 만들어줬다. (오른쪽)침대 옆에는 항상 코난이 그득하다.



어른들은 항상 어린아이에 대해서 두 가지 정도의 단어로 단정 짓는다. 순수함과 상상력. 차별을 안 한다면서 은근히 하는 경우도 꽤 된다. 어른이 되기까지는 언제나 바르고 곱게 공부를 열심히 하라는 잔소리도 종종 듣는다. 물론 코난에도 포함되는 말이다. 코난을 좋아한다고 하면 같이 밝게 반응을 해주는 좋은 어른이 있지만, 본인이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고 해서 남이 좋아하는 것에 대해 막말하는 어른도 있다. 만약 어린아이가 어른에게 그렇게 말하면 어차피 혼낼 거면서.

내가 코난을 좋아한다는데 그 좋아하는 것을 싫어하게 만드는 건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남의 마음은 그렇게 함부로 돌리려고 해서도 안 된다. 그리고 어린이는 자기가 좋아하는 것에 더 많은 순수함과 창의적인 상상력을 찾기도 한다. 나도 코난에 빠진 이후에 집중력도 높아지고 추리력도 강화되고 배경지식도 많아졌다.(잡지식에 더 가깝긴 하지만) 그렇다고 어른에게 함부로 버릇없게 굴어서도 안 된다. 내가 코난을 좋아하는 것에 대해서 단순히 아이로 보는 것이 아닌 사람과 사람 관계로서 평등하게 봐줬으면 좋겠다.


어린이는 어른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많은 생각을 가지고 단순한 상황을 다른 눈높이로 바라볼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 어른들이 생각하는 코난은 트릭을 풀고, 범인을 색출해내는 것이라고 하면, 나의 눈높이에선 그냥 재미와, 편안함이다. 코난은 나에게 이런 식으로 친구가 되어줬다. 보통 어른들이 코난을 만화책이라고 생각한다면 나에게 코난은 친구다. 이렇게 다른 눈높이가 볼 수 있었기 때문에 글을 쓰는 것에도 과감히 도전할 수 있었다. 바르고 곱게 자라는 것이 어른들이 바라는 모습이어도 한결같이 예의 바르게 살 수만은 없고, 언제나 곱디고운 면만 보이며 살 수는 없다. 어린이 나름대로 억울하고 욱하는 마음이 생겨서 말하면 어른들은 말대꾸한다고 한다. 그러나 그냥 아무 말 안 하는 것보다는 말대꾸라도 하는 게 마음이 덜 무겁다. 그리고 내 주위에는 내가 코난을 좋아하는 것이 한낱 어린이의 취미라고 여기는 사람보다 사람과 사람으로서 동등하게 존중해주는 분위기라서 편안했다.

코난을 싫어하는 사람에게는 그들만의 이유가 있을 것이다. 잔인해서, 무서워서, 흑백이어서, 만화를 싫어해서 등. 하지만 코난을 좋아하는 것에는 이유가 없다. 그래도 특별한 이유를 꼭 집어 생각하라고 한다면… 너무 좋아해서 좋다는 것밖에 생각이 안 날 정도다. 코난을 좋아하는 것에 근사하고 웅장한 이유가 있을 필요도 없지 않은가?

아이들의 마음은 이렇다. 아무리 무리수여도 논리 몇 개만 타다닥 갖다 붙이면 꽤 그럴싸한 문장이 완성되고, 마음속에 있는 것을 솔직하게 그대로 표현만 하면 어떠한 명언보다 훌륭한 말이 될 수 있다고 말이다. 그러나 주위에서 느껴지는 압박감 때문에 안에 있는 것들을 표현하지 못할 뿐이다. 순수하고 상상력이 가득하기에 무엇이든 할 수 있다. 만약 내가 코난을 초3이 아닌 초6인 지금 나이 때부터 처음 봤다면 그 당시의 생각과는 다르게 좀 더 재미없게 다가왔을지도 모른다. 당시 얼마나 감동했으면 맨 처음에 어떻게 코난을 접했고 마음이 어땠는지 다 말할 수 있을 정도일까?


어른들은 긴 인생에서 많은 경험이 있다고 하지만, 아이는 짧은 인생에서 더 세밀하고 깊은 경험을 지니고 있다. 코난을 언제 봤는지, 언제 안 봤는지, 어떻게 몇 권이나 더 늘었는지, 왜 코덕 친구가 없는지… 이 모든 경험을 어른이 되서 써 보라고 했다면 아마 처음 말고는 기억도 못 했을 것이다.

어쩌면 시간이 지나서 내가 성장하고 더 이상 코난을 좋아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좋아했던 기억이 더 강렬하게 남고, 코난에 대한 나의 자존감을 올려주고, 집중력, 상상력, 관상 보는 재미있는 능력까지 갖게 해준 것에 부족함 없이 감사하다. 내가 어리기에 가능했고, 새 A4 용지처럼 경험이 없었기에 모든 것이 뚜렷이 기억에 남는다. 어떨 때는 엉뚱발랄한 똥추리를 펼쳐보기도 했다. 즐거웠다. 또 다른 시간대에 나는 종일 코난을 끼고 본 적도 있었다. 피곤했지만 보람차고 재밌었다. 또 반 친구들 앞에서 용기를 내서 제법 씩씩하게 코난을 좋아한다고 말했을 때도 있었지. 알아주는 것 같아서 우쭐하고 신이 났었다.


지금까지 내 인생에 있어서 코난에 대한 기억은 결국 해피엔딩이다. 재밌어서 좋아하는 것이 아닌, 좋아해서 재밌는 것이다. 누가 뭐라 하든 간에 이제 나는 내가 좋아하는 ‘코난’ 에 대해 더 좋아할 용기가 생겼다. 계속 보고, 여러 차례 엉터리 추리를 하고, 코난에 관한 모든 것을 맞힌다. 열심히 계속 파고들었기에 코난 마스터가 되었다. 힘들고 지칠 때도 내가 좋아하는 코난을 보면 눈이 번쩍 뜨였다. 하지만 코난을 보다 보면 ‘범인이 천재도 아니고 이런 것 까지 아는 거지?’싶기도 한데 그럴때면 내 마음을 아는지 살인 동기를 나름 자세하게 설명해주는 친절한 면도 있다. 그런 부분이 재미 있기도 하고 때로는 ‘아이고!’ 소리가 나올 정도로 안타까운 사건도 있다. 지루할 틈 없이 새롭고 신기한 이야기 덕분에 코난을 계속 볼 수 있었다.


2022년 9월, 드디어 코난 101권이 나왔다. 100권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고, 101권부터는 새로운 이야기의 시작이 될 것 같다. 밝혀지지 않는 수많은 비밀이 나를 기다리고 있기에 여기서 멈출 수는 없다. 게다가 90권쯤부터 떡밥을 엄청나게 뿌려놨기 때문에 궁금해서 목이 빠질 지경이다. 무언가를 이렇게 애타게 오래 기다린 적도 없고, 특별한 취미도 없었는데 이젠 책을 하루에 수십 권씩 읽으니 자랑스러워서 안 그래도 오뚝한 코가 더욱 오뚝해질 지경이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굉장히 즐겁다. 코난에 대한 수많은 시점, 줄거리, 행복, 슬픔을 전한다는 것이 과연 지금 아니면 올 수도 없는 기회이다. 내가 코난을 좋아하고, 계속 읽고, 많은 사건이 있었기 때문에 말할 수 있다. 초등학교 6학년, 13살 나이라서 더욱더 분명하게 엉켜 있던 마음속 감정을 솔직하게 풀어 쓸 수 있다.


한마디로 나에게 나 자신은 축복이었고 나에게 코난은 행복이었다.


글: 초등작가 아린

사진: 에디터 윤


2015년 아린 작가 5살, 일본 아키하바라 지하철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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