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 포함 15년.
결혼 12년.
나는 이 나라의 사람과 가정을 이루었다고 믿었다.
그런데 그 나라가 나를 거절했다.
한국 생활을 정리하고 영국에서 중학교에 입학한 열 살 딸.
공립학교 교사로 새 출발을 한 남편.
그리고 나.
나는 혼자 삶의 경로를 이탈해
아무도 살지 않는 섬에 떨어진 낙오자가 된 기분이었다.
나는 이제 혼자였다.
여름옷들이 여행용 가방 안에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곧 다시 입게 될 거라 믿으며 챙겨 온 옷들.
그 옷들이 방구석에서
이게 무슨 상황이냐고 묻는 듯했다.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방문 밖에서 엄마의 목소리가 들렸다.
“밥 먹어라. 식기 전에 와서 먹어라.”
나는 눈물을 닦고 식탁에 앉았다.
아무 일 없는 사람처럼 밥을 삼켰다.
부모님은 모르는 척했다.
어쩌면 알고도 모르는 척해주었는지도 모른다.
그 무심함이, 그 평범함이
그날은 이상하게도 고마웠다.
시간은 흐르지 않는 것 같았다.
한국의 일상은 바쁘게 돌아가는데
나만 멈춰 있는 기분이었다.
영국이라는 국가는
나를 짐처럼 밀어낸 것만 같았다.
내 역량은 이 정도밖에 되지 않는 걸까.
자존감은 바닥으로 떨어져 흩어졌다.
나는 매일 조금씩 무너졌다.
그 와중에도 영국에서는 일상이 계속되고 있었다.
딸은 새 학교에 적응해야 했고,
남편은 교실로 돌아가야 했다.
이 상황에서 가장 먼저 손을 내밀어 준 사람은 시부모님이었다.
특히 시어머니는 말했다.
“손녀는 내가 잘 챙길 테니, 너무 걱정하지 마.”
그 말이 고마웠다.
그리고 동시에 마음이 저렸다.
나는 여전히 가족의 일부였지만,
그 중심에서는 밀려나 있었다.
그렇게 나는,
가족과 떨어진 채
나 자신과 마주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