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가을은 아름답다. 하긴 어디 가을뿐이겠는가. 사계절이 뚜렷한 한국은 사계절 모두 특색있게 아름답다. 겨울의 눈이 앙상한 가지에 순백의 꽃을 피우면 채색된 어떤 모습보다 더 아름답다. 파릇한 새순과 함께 분홍과 노랑이 어우러진 봄의 화사한 색깔은 겨우내 움츠렸던 모습을 떨쳐버리고 만물이 기지개를 켜게 만든다. 여름의 짙푸른 색은 활력이 넘치고 힘차게 나아가게 한다. 이 가을. 가을이 나는 제일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단풍나무의 빨강은 너무나 화려하게, 여인의 짙은 립스틱처럼 빨갛고, 노란 은행잎은 샛노란 원색의 뚜렷한 색으로 노랑 중에 가장 예쁜 노란색이다. 각각 채도나 명도가 조금씩 다른 주황색으로 물든 나뭇잎들의 그 색깔도 가슴을 설레게 하기에 전혀 손색이 없다. 겨울 눈을 듬뿍 뒤집어쓰고서도 자신의 푸르름을 잃지 않고 당당히 버틸 수 있는 저 푸른 잎들은 이 상황에서도 이질감 없이 너무나 잘 어울린다.
그저께는 복지관 사람들과 차를 타고 가다 길가에 흩뿌려진 단풍들을 보며 너무 아름답다고 탄성을 질렀다. 그러자 곁에 있던 사람이 “언니, 우리는 보기에 아름답게 보이지만, 청소하시는 분들은 얼마나 힘드시겠어요”라고 했다. 아, 그렇구나. 내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지는 못했구나. 청소하시는 분들이 정말 힘드시겠다. 초 단위로 떨어지는 저 낙엽들을 매일 쓸어야 하는 분들의 노고를 내가 잊고 있었구나. 미안한 마음이었다.
어릴 때 ‘레오 버스카글리아’의 수필집 “살며 사랑하며 배우며”를 감명 깊게 읽었다. 문장들이 너무 아름다워 정말 한 문장, 한 문장을 곱씹으며 읽었던 기억이 있다. 그 책에서, 어느 가을, 자기 정원에 떨어진 낙엽이 너무 아름다워 쓸지 않고 자주 보며 감상했단다. 그러자 이웃에서 청소하지 않아 지저분하다고 시청에 민원을 넣어 시청직원이 와서 경고한 적이 있었다고 했다. 다음날 그는 모든 낙엽을 자신의 거실로 가져다 쌓아두었더란 글을 재미있게 읽었던 기억이 난다.
오늘, 교회 가면서 길가에 가득히 떨어져 있는 낙엽들이 왜 그렇게 아름답게 보이던지. ‘청소하시는 분들’을 또다시 잠시 잊어버리고 그 아름다움에 취했다. 인도에는 낙엽들이 수북이 쌓여있었다. 차를 잠시 세우고 그 길을 밟고 싶었다. ‘구르몽’의 “낙엽”을 읊으며 시몬이 좋아했을 그 바스락 소리를 들으며 잠시 낭만 가득한 소녀의 모습으로 걷고 싶었다. 비록, 바바리코트 깃을 세우지는 않았더라도. 저렇게 많은 낙엽이 쌓여있는 것을 보니, 아마 청소하시는 분들이 며칠 동안 청소를 하지 않으신 모양이다. 아주 잘하신 일이라고 크게 말하고 싶다. 현재진행형으로 떨어지는 낙엽은 잠시를 쉬지 않고 흩날린다. 내 차창에도 몇이 내려앉았다. 웃음 지으며 말을 걸었다. 나와 같이 교회 갈 거야? 대답 없는 낙엽은 잠시 머물고는 다시 제 갈 길로 갔다.
앞에서는 찻길에 떨어져 조용히 누워있던 주황의 화려한 나뭇잎들이 차가 지나갈 때마다 우르르 일어서서 차의 뒤꽁무니를 힘을 다해 따라갔다. 저 차를 놓치면 안 되기라도 하는 듯이, 누가 먼저 저 차를 붙잡을 것인지 내기라도 하듯 힘차게 달려간다. 아니, 옛날, 소독차가 소독약을 뿌리고 가는 그 뒤를 어린아이들이 우르르 따라가는 것처럼 함께 모여 까르르 웃으며 뒤엉키며 따라가고 있다. 그 낙엽들이 너무 귀엽기도 하고, 재밌기도 해서 혼자 크게 웃었다. 낙엽 굴러가는 것만 봐도 웃음이 터지는 낭랑 18세도 아니면서.
나는 지금 이 아름다운 가을을 보고 있다, 내 인생 가을의 중심에 서서. 우리의 생이 하나님의 손에 달렸으므로 앞날을 기약할 수 없음이니. 내가 앞으로 이렇게 아름다운 가을을 몇 번이나 더 볼 수 있을까 생각에 잠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