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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복수 Sep 19. 2024

나는 마흔에 글을 쓴다.


나는 마흔에 글을 쓴다.


마흔, 적지도 많지도 않은 나이.. 나는 나이 마흔에 글을 쓰기로 했다. 언제 어떻게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은 딱히 없었지만 평소 책 읽는 것을 좋아했고, 나도 모르게 떠오르는 잡생각이 많았으며 이를 언제 한번 글로 표현해 보고 싶다는.. '마치 그럴것 같다.'는 느낌이 있었다. 


부족하지만, '글'이라는 것으로 나의 생각을 표현해 본다는 그 어느 시점은 전혀 예상치 못한 장소, 어떤 순간에서 문득 떠올랐다. 엄마가 아플 때, 함께 간 병원 복도에서의 시간이 순간 멈추고 아득하게 느껴질 때, 나이 마흔에 느낀 감정과 여러 장면이 섞여 머리속에서 글로 표현되고 있었다. 참다 참다 이제는 손을 움직여 글을 쓰지 않는다면 견딜 수 없을것 같았다. 문득, 그렇게 내 글은 시작되었다. 


마치 무라카미하루키가 소설을 써야겠다고 생각한 것과 같이 말이다. 


'1978년 4월 어느날 오후에 야구를 보러갔다. 외야 쪽 스탠드에 앉아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타자가 첫 볼을 외야 2루타로 쳐냈다. 그때 문득 소설을 쓸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건 갑작그런 계시 같은 것이었다. 이유도 설명 할 방법도 없다.' 


마흔이라는 나이는 빼박이다. 누구나 '중년'이라고 부르는 나이다. 그렇게 나는 어느덧 중년이 되었다. 앞으로 펼쳐질 시간은 끝없이 아늑해 보이지만 뒤돌아보면 정신없이 빨랐던 것이 마흔이고 지금의 내 나이다. 앞으로의 삶이 구만리 같으면서도 내 주변을 돌아보면 벌써 아이 둘과 아내, 직장, 작은 집, 그리고 늙은 부모님까지.. 제법 가진것이 많고 충분히 그럴법한 것이 나이 마흔, 중년이다. 


어른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직 모르는 것이 많고, 아직 아이이고 싶은데도 주변은 '불혹'이라며 그럴법한 역할을 강요하는 나이, 그런 어려운 나이 '마흔'에 대해 짧게 이야기 해 보고자 한다. 


먼저, 나이 마흔은 생각이 많은 나이다. 정신없이 아기띠 매고 업어 키우던 아이들도 이젠 학교에 걸어다니고, 직장에서도 자리를 잡고 나름 경력을 뽐내며 여유와 요령을 피울 수 있게 되는 시기다. 그래서 책을 읽을 시간이 생기고, 건강을 위해 운동을 하고, 내가 아닌 주변을 살펴본다. 그리고 비교한다. '과연 나는 잘 살았을까?', '누구는 벌써 서울에 집이 두채라는데', '정년이 지나면 뭘 해서 먹고 살지?', 건강은? 부모님은? 아이들 공부는? 마흔의 생각과 고민은 끝이 없다. 


나이 마흔은 어쩔 수 없이 약해지는 몸을 인정하는 시기다. 예전에는 고기를 먹을 때 기분좋게 큰 덩어리째 생각없이 우적우적 대충씹어 삼켜 많이 먹는것이 좋았다. 이제는 그렇게 먹으면 어김없이 소화가 되지 않고 탈이 난다. 그래서 나는 항상 고기를 가위로 작게 잘라 꼭꼭 씹어 천천히 음미하듯이 먹는다. 쇠도 소화시킨다는 나이는 지나간지 오래다. 


건강을 위한 운동도 마찬가지다. 한창 즐기던 러닝도, 헬스장에서의 벤치프레스도 경사를 뛰어 내려갈때는 무릎이 아프고, 기합을 짜내 들어올리던 무게도 손목이 아파 하지 못한다. 가끔 동호회에서 치는 배드민턴은 칠 때마다 어깨와 팔꿈치가 아프지만 아직 이것까지 포기하기 싫다. 아파도 참고 웃음으로 친다.


하지만 나이 마흔은 아직 의욕이 넘친다. 책을 읽다보면 유달리 자주 눈에 들어오는 문구가 있다. '죽기 전. 나이 80이 되어 깨달은 것들..', '왜 그때 하고 싶었던 것을 하지 않았을까?' 라는 의욕과 격려 넘치는 글 들. 슬프지만 나이 마흔은 안다. 정확히 말하자면 '내가 의욕만 넘친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20대 만큼이나 순수하고 무모하게 도전하고 뛰어들지 않는다. 


열정과 하고 싶은건 많지만 일단 겁이나고 몸을 사리게 되는 것이다. 그나마 쥐뿔만큼 가진것이 사라질까 무섭고 딸린 처자식에 대한 책임감에 대한 변명이 나도 모르게 생긴다. 그래서 뭔가 일을 벌이고 싶고, 하고 싶고, 배우고 싶다가도 아내의 한마디에 기대어 다시 소심해진다. "여보~ 다니던 직장 잘 다니고, 집안 일 도우고, 아이들 잘 키우는게 돈 버는거야." 나이 마흔은 그렇게 꾸역꾸역 산다. 


마흔은 부모님이 늙는 시기다. 계절이 바뀔때마다 엄마의 얼굴에는 주름이 더 깊게 페인다. 희고 밝던, 그 총명하던, 올려 우르러 보던 엄마는 언제부턴가 품 속 아기처럼 나에게 기대어 운다. 그런 부모님을 바라보는 아들은, 마흔의 느낌은 어떠할까? 곧, 나도 멀지 않았다는것을 어렴풋이 짐작한다. 


마지막으로 마흔은 행복한, 웃음이 넘치는 나이다. 내 생각과 주관이 어느정도 자리잡고 안정되는 시기가 지금이기 때문이다. 남이 날 어떻게 볼지에 대한 고민도, 내 생각을 남에게 이야기하는 것도 어렵지 않다. 위트있게 농담을 섞어가며 내가 싫은 사람에게 무안도 잘 준다. 어디하나 모나게 행동하지 않고 사람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선을 너무도 잘 그을 나이다. 그래, 나이가 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나이가 드는것이 좋다. 나이 마흔은 그래서 행복하다. 


나이 마흔에서, 인생에서의 정답은 없다. 8월 말, 오늘 아침 조금은 무더운 산책길에서 나무들은 벌써 반 이상이 가을로, 낙엽으로 물들었다. 하루하루 조금씩 계절이 바뀌듯, 일년과 한 삶이 그렇게 돌고 돌듯, 그렇게 재미있게 사는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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