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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달 Nov 30. 2024

4화. 그쪽, 이름이 뭐야?

[미스터리 추리소설] 나는 미쁘고 의로우사

꼬르륵꼬르륵


점점 요동치는 배꼽시계에 두원이 등가죽에 붙은 배를 움켜잡고는 살금살금 침대로 향하던 찰나였다.


똑똑! 문이 열리고 모친 김지희가 들어섰다.


이틀 사이 반쪽이 된 그녀의 얼굴은 몰라보게 초췌했고 축 처진 두 어깨는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만 같았다. 그럼에도 지희는 엄마라는 역할에 충실하기 위해 아들 두원을 향해 미소를 지어 보였다.



“우리 두원이가 일어난 걸 깜박했네. 엄마가 미안. 배고프지?!”

“……아니.”



엄마를 본 순간 터지려는 눈물을 참은 두원이 메이는 목에 힘을 주었다.



“정말? 엄마 아빠는 배고픈데, 같이 뭐 좀 먹자. 우리가 씩씩해야 소원이도 씩씩하게 있지.”

“소원이…… 왜 안 와?”

“어? 어, 지금 경찰아저씨들이 우리 소원이 열심히 찾고 계셔. 그러니까 곧 집에 올 거야. 걱정하지 마.”



애써 미소를 머금은 지희가 차분히 설명하자 눈치를 보며 입술을 오물거리던 두원이 용기를 냈다.



“소원이 유괴, 됐어?”



어디서 들었는지 갑작스레 물어오는 두원에 놀란 지희가 달려와 두원을 끌어안았다.



“누가 그래? 그런 말 어디서 들었어?”

“……형들이.”

“하 참! 어디서 그런 말도 안 되는 얘기를…… 아니야. 소원이는 잠깐 길을 잃은 거고 엄마 아빠가 꼭 찾을 거야. 아빠 엄마, 믿지?”



지희가 묻자 이미 눈물이 그렁그렁한 두원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리웠던 엄마 품에서 한참 동안 얼굴을 떼지 못했다.


그러나 바짝 입이 마르고 애가 타는 간절한 바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깜깜한 밤이 되도록 소원이에 대한 어떤 소식도 들을 수 없었다. 그렇게 긴 하루가 흘러 거실에 놓인 괘종시곗바늘이 어느덧 밤 10시를 가리키던 순간이었다.



따르르르르 따르르르르


종일 무거운 정적이 잠식했던 거실에서 갑자기 요란한 전화벨 소리가 울려 퍼졌다.



“여보세요?”



경찰이 소원을 찾았을 거라는 기대감에 내내 쳐져있던 이경윤이 냉큼 전화를 받았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전화를 건 발신인은 아무 말이 없었다.



-“…….”

“여, 여보세요? 전화를 하셨으면 말씀을…….”



순간, 뭔가 떠오른 경윤의 두 눈이 커지며 옆에 숨죽여 앉아있는 김지희와 눈이 마주쳤다.



“혹시, 소원이니?”

-“…….”

“소원아! 소원이지?! 어디야? 아빠가 당장 갈 게.”

-“…….”

“소원아! 한마디만, 한마디만 해봐. 제발…….”



숨소리조차 들려오지 않는 수화기 너머의 긴 침묵에 두 손 가득 수화기를 잡은 경윤이 절절히 호소했다.


아이의 목소리만이라도 들을 수 있다면 원치 않아도 휘몰아치는 어두운 상상과 극한 두려움에서 잠시나마 숨통이 트일 것만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때였다.



-“그쪽, 이름이 뭐야?”



뭔가 묵직한 저음에 발음이 어눌한 음성이 경윤의 귀에 들려왔다.


남자였다. 신분을 들키지 않으려 의도적으로 어색한 말투를 쓰는 듯했다.



“……누구십니까? 혹시, 제 딸을 데리고 있습니까?”



꿀꺽. 이경윤이 마른침을 삼켰다.


이 순간 그는 통화 너머의 남자가 딸을 데리고 있다며 생생한 소원이의 목소리를 들려주길 간절히 바랐다.


목숨보다 소중한 딸 목소리를 듣는다면 최소한 아이가 살아있다는 걸 확신할 수 있으니까.



-“당신 딸 이소원, 우리가 데리고 있다.”



소원을 데리고 있다는 놈의 한마디에 소름이 돋은 경윤과 지희가 큰 충격과 더불어 딸 행방을 찾았다는 안도감에 서로의 손을 맞잡았다.


놀이공원에서 딸이 유괴되었다는 사실을 확인한 순간이었다.


평소 소원은 모르는 사람을 절대 따라가지 않았다. 두 아이에게 그 교육만큼은 늘 철저하게 반복했던 엄마 김지희였다. 때문에 소원이 사라진 여러 이유 가운데 유괴되었을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만약 아이가 길을 잃었다면 누군가 아이 목에 차고 있던 미아방지 목걸이를 보고 연락해 주었을 테니까.


딸이 유괴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충격도 잠시, 정신을 차린 이경윤이 유괴범에게 물었다.



“소원이 옆에 있습니까? 목소리, 목소리 한 번만 들려주세요. 제발요.”

-“이경윤이 정말…… 그쪽 이름이야?”

“네. 제가 소원이 아빠 되는 사람입니다.”

-“그러니까, 당신이 이경윤이란 말이지?”



자꾸만 이름을 확인하는 유괴범에 순간 경윤은 뭔가 이상함을 느꼈다. 재차 자신의 이름만 확인하는 모양새가 이제껏 뉴스에서 봐왔던 유괴범들의 행태와는 사뭇 달랐기 때문이었다.



“네. 우리 소원이만 무사하다면 원하는 건 다 드리겠습니다. 그러니까…….”



휙! 마음이 조급해진 지희가 별안간 수화기를 뺏어 들었다.



“우리 소원이 목소리 들려주세요. 그래야 우리도 돈 준비해요.”



지희는 시간을 끄는 중이었다. 대답을 기다리는 와중에 그녀는 남편 경윤을 향해 무언의 입모양으로 한 단어를 설명했다. 그러자 이를 알아본 경윤이 서둘러 일어나 급히 밖으로 뛰쳐나갔다.



-“하아…… 경찰에 알리면, 알지?! 당신 딸은 죽어.”

“알아요. 우리 소원이만 돌아올 수 있다면 다른 건 아무 관심 없어요. 그러니까 소원이 목소리만…….”

-"하아."



딸 목소리 대신 길게 한숨만 내쉬는 유괴범에 일순간 지희의 얼굴이 백지장처럼 새하얘졌다.



-“지금 당신 딸은 잠들었어.”

“그럼 언제, 언제 들려주실 건가요?”

-“당신 딸 목숨 값은 정확히 30억이야. 하아…… 딸 살리고 싶으면 반드시 구해 와. 반드시.”





뚝! “여보세요! 여보세요!!”



일방적으로 끊긴 전화에 흐느끼던 지희가 힘없이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그녀는 딸 목소리를 듣지 못했다. 목숨보다 몇 곱절 소중한 딸의 몸값으로 유괴범은 30억을 요구해 왔다.


어떻게든 구해야 하는 돈이었다. 그러나 자신의 목숨 값이 30억 보다도 가치가 없다는 사실에 지희는 몹시 괴로워했다.



“아니야. 무슨 수를 쓰든 내 딸 소원이, 반드시 데려올 거야.”



그때였다. 거칠게 현관문이 열리며 이경윤과 함께 사복차림의 형사들이 들이닥쳤다.



“뭐야, 끊은 거야?”



다소 실망한 듯한 경윤에 지희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뭔가 넋이 나간 듯 그녀는 멍한 눈빛을 하고 있었다.



“그쪽에서 뭐라고 말했습니까?”

“내 딸, 소원이 목소리를 들려주지 않았어요. 자고 있다고……. 딸 목숨 값은 30억.”

“유괴범은 어땠나요? 혹시 특이사항 같은 거 없었습니까?”



물어오는 형사에 그제야 정신을 차린 지희가 딸을 찾겠다는 일념 하에 기억을 더듬었다.


그녀는 ‘경찰’이라는 자신의 입모양에 뛰쳐나가 신고한 남편 경윤과 함께 순식간에 지나간 통화를 곱씹으며 경찰에게 유괴범과 나눈 대화를 전달했다.



“‘내가’라고 하지 않고 ‘우리’라고 했네요. 그럼 범인은 한 명이 아닌 공범이 있을 거고.”

“어, 어떻게 하죠? 우리 딸…… 살아있는 거죠?”

“일단 최대한 빠른 시일 내 다시 전화가 오기만을 바래야겠습니다. 돈은 준비됐다고 하세요.”



실종에서 유괴사건으로 전환된 소원의 집에는 이후 몇몇 형사들이 상주하며 밤새 전화기를 에워쌌고 갑작스러운 유괴범의 전화에 정신없이 흐르던 시간은 어느새 새벽으로 치닫고 있었다.


그사이 지희는 종일 혼자 방치되어 있던 아들 두원을 재우기 위해 방으로 들어갔고 경윤은 거실에서 형사들과 함께 전화가 오기만을 기다리는 중이었다.



“그런데 말입니다.”



오랜 침묵가운데 입을 뗀 경윤에 강력반 팀장 이철영이 고개를 들었다.



“혹시 짐작 가는 인물이 있습니까?”

“아니요. 그것보다 좀 이상해서요.”

“어떤 부분이죠?”

“자꾸만 제 이름을 확인하는 게, 뭔가 굉장히 실망하는 눈치였습니다. 보시다시피 제 가정형편은 30억을 가지고 있을 만큼 넉넉하지 않은데 무리수를 둔 것도 이상하고요.”

“추측이지만 유치원생 가운데 혼자 이탈된 아이를 보고 무작정 유괴한 것 같습니다. 다만 아버님 성함을 계속 확인했다는 부분은 주의 깊게 짚어볼 부분이죠.”



내색하진 않았으나 이철영 또한 가장 거슬리는 부분이었다.


보통의 유괴범들은 추적을 피하기 위해 꼭 필요한 말 외에는 말 수를 줄이는 게 일반적이었으니까.


한데 이번 유괴사건은 뭔가 다른 냄새가 났다.


‘유괴한 아이 아버지 이름을 거듭 확인하며 한숨을 쉬었다…….’


협박과 동시에 돈을 요구하는 중요한 전화에 굳이 필요하지 않은 사실을 유괴범은 몇 번이나 확인한 거였다.


그러나 이철영은 말을 아끼는 중이었다. 누군가에게 아이가 유괴되었다는 사실 외에 확인된 건 아무것도 없었으니까.


다만 그가 떠올린 가설이 맞아떨어진다면 유괴범들의 타깃은 이 아이가 아니었던 게 분명했다.



“일단은 전화를 기다려 보죠. 놈들 은신처를 알아내는 게 아이를 구할 수 있는 가장 빠른 방법이니까요.”



화제를 돌린 이철영에 이경윤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범인의 의도는 아이를 찾은 후에 알아내도 늦지 않을 테니.



**





다시 침묵이 시작되고 그렇게 다섯 시간이 흘러 새벽 3시가 넘어가던 찰나였다.


따르르르르 따르르르르 따르르르르


정적가운데 전화벨이 울리자 형사들의 움직임이 바빠졌다. 곧, 팀장 이철영 신호에 따라 이경윤이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돈은?”

“30억, 준비됐습니다.”

-“뭐? 진짜야?”

“내 딸 소원이만 찾을 수 있다면 전 뭐든 합니다.”

-“당신 직업이, 선생이야?”



또다시 반복된 아이러니한 유괴범의 반응에 난감해하던 경윤이 형사 지시에 따라 10초간 침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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