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해달 Dec 04. 2024

5화. 가장 느리게 흘러가는 새벽

[미스터리 추리소설] 나는 미쁘고 의로우사

“네. 중학교에서 도덕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하아.”



수화기 너머 들려오는 긴 한숨에 형사 이철영이 미간을 찡그리던 찰나, 유괴범 위치를 추적 중이던 경위 유성욱이 이철영에 확인 사인을 보냈다.



“제 딸은요? 잘 있는 거, 확실합니까?”

-“장소는 내가 정해. 설마, 그 사이 경찰에 알린 건 아니겠지?!”



입을 가린 차진수가 여전히 어색한 억양에 불안정한 음성으로 물었다.



“내 딸 목소리도 못 들었는데 제가 미쳤다고 신고를 합니까?!”

-“하아, 그냥…… 재수가 없었다고 생각해.”

“내 딸! 소원이 목소리는 언제 들을 수 있는 겁니까? 네?”



뚝! 아무런 대답 없이 끊긴 전화에 깊은 탄식을 뱉어낸 경윤이 힘없이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이철영이 그의 어깨를 툭툭 치며 무언의 위로를 건넸다.



“위치 파악됐지?”

“네. 은평구 응암2동 한 주택가 공중전화입니다.”

“좋았어. 준비해!”



유괴범들의 은신처가 파악되자 유상욱을 비롯한 형사들의 움직임이 빨라졌다. 서둘러 나가려는 이철영 팔을 김지희가 붙잡았다.



“저기 형사님!”

“왜 그러시죠?”

“우리 딸 소원이, 꼭 데려오실 거죠?”



기대와 두려움이 뒤섞인 아이 엄마의 목소리가 몹시 떨리는 중이었다.



“확신할 수는 없지만 당황하지만 않았다면 아이를 어떻게 하진 않았을 겁니다. 놈들은 유괴가 처음이거든요.”

“그걸 어떻게 아시죠?”

“대게 유괴범들은 통화를 이렇게 길게 끌지 않습니다. 쓸데없는 말은 더더욱 남발하지 않죠. 그리고…….”



잠시 머뭇거린 이철영이 말을 이었다.



“조사 후에 확실해지겠지만 아무래도 놈들은 소원이를 노린 게 아닌 것 같습니다.”

“네?”



그때였다.



“팀장님! 시동 걸었습니다!”



재촉하는 유 경위에 이철영이 옷깃을 잡고 있던 지희 손을 내려놓았다.



“자세한 건 아이부터 찾고 말씀드리죠. 그럼 이만.”



쾅! 요란하게 현관문이 닫히는 소리와 함께 일사불란하던 거실은 이내 정적이 흘렀다.



“소원아빠. 우리 소원이…… 아침이면 돌아오겠지?”





부들부들 떨려오는 몸을 주체하지 못한 지희가 남편 손을 잡고는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빛으로 확답을 기다렸다.



“그럴 거야. 우리 소원이가 어떤 아이인데.”



남편의 대답에 그나마 마음을 가라앉힌 지희가 손으로 대충 눈물을 닦아냈다.



“그런데 유괴범들이 소원이를 노린 게 아닌 것 같다는 건 무슨 말이지?”

“모르겠어. 근데 통화하면서 나도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긴 했어. 내 이름을 계속 확인하는 게 실망한 것 같기도 하고.”

“혹시…….”



순간 지희 머릿속에 한 아이가 떠올랐다. 그러나 미처 입 밖으로 꺼내기도 전, 경윤이 그녀 손을 감싸며 말했다.



“일단 지금은 우리 소원이가 무사히 돌아오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생각하지 말자.”



남편 말이 옳다는 생각에 지희가 맴돌았던 의구심을 지워버렸다. 잠시 후면 그토록 그리웠던 딸을 품에 안을 수 있을 테니.





똑딱똑딱 똑딱똑딱


앤티크 한 괘종시곗바늘이 어느덧 숫자 5를 지나치고 있었다. 부부는 소파에 앉아 두 손을 모은 채 뜬눈으로 소원이를 기다렸다.


1분이 1년처럼 느껴지는…… 인생을 통틀어 시간이 가장 느리게 흘러가는 새벽이었다.



**



어느덧 해가 뜨고 창밖으로 아침햇살이 모습을 드러냈다.


등교를 위해 알람시계를 맞춰놓고 일어난 두원이 조용히 방문을 열고 나왔다.


이제 막 잠에서 깬 터라 비몽사몽인 와중에도 아이의 발걸음은 살얼음판을 걷듯 살금살금 거렸다. 어젯밤까지만 해도 거실가운에 북적거리던 경찰아저씨들이 모두 사라진 걸 눈치챈 후였다. 불현듯 아이 마음에 두려움이 밀려왔다.



“엄마.”



거실로 나온 두원이 개미만 한 목소리로 엄마를 불렀다.


잔뜩 겁에 질린 아들에 초췌한 얼굴로 두 손 모아 깍지를 끼고 있던 지희가 두원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어 그래. 두원아! 이리 와!”



지희가 두 팔을 벌리자 뛰어온 두원이 그리웠던 엄마 품에 안겼다.



“내 아들…… 엄마가 미안해. 그래도 지금은 이해해 줄 수 있지?”

“응.”



두원이 울먹이며 고개를 끄덕이자 지희 눈에도 눈물이 고였다.



“소원이만 돌아오면 예전처럼 돌아갈 거야. 우리 가족 전부.”

“소원이 언제 와?”

“음, 아마도 오늘?”

“정말? 정말이야?”

“응. 오늘은 학교 안 가도 돼. 네 동생 소원이가 집에 오는 날이니까.”



곧 동생이 올 거라는 지희 말에 신난 두원이 만세를 부르며 거실을 방방 뛰어다녔다. 경윤은 그런 아들을 말리지 않았다.


처음 딸아이가 실종되었을 당시 경윤은 금방 딸을 찾을 거라는 믿음에 두원을 누나 집에 맡기지 않았다. 그리고 유괴당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는 두원이 가지 않겠다고 떼를 썼다.


진작 아이에게 상황을 설명하고 설득시켜 보냈어야 했다. 그랬다면 초췌해진 부모의 모습도 또 경찰이 드나드는 혼란스러운 광경도 보이지 않았을 테니.


온 신경이 소원이를 찾는 데만 쏠렸던 탓에 소원이 만큼 소중한 아들을 방치한 꼴이 되어버렸다. 부모로서 응당 울타리가 되어주었어야 할 두 아이들에게 상처를 준 셈이었다.


동생이 온다는 말에 방방 뛰고 있는 아이를 경윤이 물끄러미 바라봤다. 두원을 말리지 않은 경윤은 이 순간 집이 아파트가 아님에 다행이라 생각했다.


신나 하는 아들에 야윌 대로 야윈 경윤과 지희 얼굴에도 화색이 돌았다. 곧 집으로 돌아올 소원이를 상상하며.


그렇게 20여 분이 흐른 오전 8시 23분이었다.


따르르르르 따르르르르


차분해진 거실에 전화벨이 울리고 경윤이 수화기를 들었다.


몹시 떨리는 손가락에 수화기가 흔들리자 그가 다른 손으로 수화기를 든 손을 감싸 안았다.



“여보세요?”



누군가와 잠시 통화하는가 싶더니 이내 전화를 끊은 경윤이 서둘러 옷을 챙겨 입었다. 뭔가를 눈치챈 아내 지희도 따라나섰다.


현관문을 나서기 전, 어리둥절해하는 두원 앞에 쭈그려 앉아 눈을 맞춘 경연이 차분히 말했다.



“엄마랑 아빠, 경찰서에 갔다 올 테니까 잠깐만 우섭이 형아네 가게에서 놀고 있어. 괜찮지?”

“소원이 오는 거야?”

“어? 어. 가서 동생 데리고 올 게.”



잠시 후, 떼쓰지 않은 두원이 경윤의 손을 잡고 집을 나섰다.


두원보다 2살 많은 이웃집 아이 우섭이는 어릴 적부터 한 동네에 살아 꽤나 친하게 지내는 문구점 집 아들이었다. 게다가 우섭이네가 운영하는 문구점은 어느 정도 규모가 있어 두원이가 혼자 시간을 보내기에는 안성맞춤인 공간이었다.



“그럼, 부탁드리겠습니다.”



문구점에 아들을 맡기고 나온 경윤과 지희가 다급히 경찰서로 향했다.



*



오후 1시 13분.


문구점 주인 강 씨가 시켜준 짜장면을 먹고 아직 학교에 있는 우섭이 방 침대에서 잠들었던 두원이 갑자기 눈을 떴다.



“어!”



외마디 비명과 함께 일어난 두원이 낯선 방, 혼자 있다는 두려움에 느닷없이 울음보가 터졌다.



“으아아 앙! 으아아 앙!”



방금 전, 아이는 악몽을 꿨다. 그러나 꿈과 현실을 구분하기에는 아직 어린 나이였다.


꿈속, 아무것도 없는 넓은 벌판에서 오직 두원만 홀로 남겨둔 채 손을 잡은 아빠 엄마 그리고 동생 소원이 그에게서 멀어지는 꿈이었다.





보호가 필요한 여덟 살 아이에게 혼자 남겨지는 것보다 더 큰 악몽은 없었다. 잠에서 깬 두원이 쏟아지는 눈물을 참지 못한 까닭이었다.


탁! 아이 울음소리에 놀라 뛰쳐 들어온 우섭 엄마 이 씨가 냉큼 두원이를 끌어안았다.



“아이고! 아줌마가 미안해. 아줌마 있으니까 이제 괜찮아.”

“으아아 앙~! 엄마! 으아아 앙~!”



낯선 품에 안긴 두원이 엄마를 부르며 눈물을 멈추지 않았다. 눈물에 잠긴 아이는 엄마에게 가겠다거나 엄마를 데려오라고 떼쓰지 않았다. 이유는 알 수 없었다. 다만 아이는 그래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두원을 안고 달래주는 이 씨 눈에도 쉴 새 없이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이를 어쩌나…… 불쌍한 것. 어쩌다 이런 일이…….’


조금 전, 이경연으로부터 전화를 받은 이 씨는 유괴됐던 소원이 죽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그런데 놀란 마음을 추스르는 사이, 집안이 떠나갈 듯 우는 두원에 눈물을 훔칠 새도 없이 뛰어 들어온 거였다.


이 씨는 아이 등을 토닥이며 달래면서도 두원이 울게 내버려 두었다.


8살 어린 나이에도 부모를 위한다고 씩씩한 척 애쓰는 녀석이 동생 장례식에서는 목 놓아 울겠느냐는 게 이 씨 생각이었다.


그렇게 두원의 마음을 헤아리고 있던 이 씨였기에 그녀는 아이가 마음껏 울도록 품에 안았다.



**



그날 저녁, 6살 이소원 양의 유괴살해사건은 뉴스속보로 빠르게 전파를 타며 전국에 보도됐다.


당일 새벽 5시 13분경, 은평구 응암2동 다세대주택 반지하방을 급습한 경찰은 현장에서 세구의 시체와 함께 혈액이 묻은 흉기 한 점을 발견했다.


두 구의 시체는 공범으로 추정되는 성인남자와 성인여자였고 나머지 한 구는 유괴되었던 아이, 이소원이었다. 안타깝게도 경찰이 들이닥쳤을 때 이미 모든 상황은 종료된 후였다.


확실한 수사결과는 부검 및 면밀한 현장감식이 끝난 후 밝혀지겠지만 현장 정황으로 보아 용의자들 사이에 다툼 내지는 이견이 일어나며 혈투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며 여행가방 안에서 발견된 아이는 부패정도로 미루어 유괴 당일 사망한 것으로 보인다고 경찰은 밝혔다.


더불어 성인남자 두 명과 여자 한 명이 거주하고 있었다는 집주인의 진술과 더불어 용의자 한 명이 다른 공범들을 살해한 후 도주한 것으로 경찰은 달아난 용의자를 추적 중이라고 전해왔다.


그날 밤 경윤과 지희는 우섭이네 집으로 아이를 데리러 오지 않았고 뉴스를 못 본 두원은 내일 일찍 데리러 오겠다는 경윤의 전화에 마음을 놓으며 우섭과 함께 잠들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