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터리 추리소설] 나는 미쁘고 의로우사
잠시 후, 대문 밖을 나서는 이철영의 얼굴은 서늘한 바람과 떨어진 낙엽이 뒹구는 늦가을 날씨만큼이나 쓸쓸해 보였다.
야위다 못해 피골이 상접한 이경윤에 이어 어른들 눈치만 보느라 눈만 깜박거리는 어린 두원에 어느새 죄책감이 스며든 탓이었다.
모든 기력을 쏟아낸 두 아이의 엄마 김지희는 현재 병원에서 안정을 취하는 중이라고 했다.
실종됐던 6살 아이가 유괴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이철영은 아이의 생존확률이 희박하다는 사실을 이미 짐작하고 있었다.
대게 아동청소년 유괴사건의 경우 골든타임은 고작 3시간 남짓이었다. 이후 생존확률은 75% 이하로 떨어지고 24시간이 지나면 사실상 희박했다.
그런데 이소원을 데려간 유괴범들은 무려 48시간이 훨씬 지나서야 처음 이경윤에게 연락을 해왔다.
유괴한 아이가 미래유통 손녀가 아님을 알고 무척 고민했던 모양새였다. 공범들끼리 난투극을 벌인 이유 또한 그것일 터였다.
그러나 모든 일에는 예외가 존재했기에 이철영은 통상적인 통계를 벗어나 그의 예상이 틀리길 바랐다. 불행히도 결과는 그렇지 못했지만…….
자식을 가슴에 묻는다는 것은 평생 저미는 아픔을 지고 가야 한다는 의미였다.
이철영 또한 결혼 8년 만에 얻은 귀한 아들을 불과 3년 만에 병마로 떠나보내야 했던 아버지였으니까.
그의 아이처럼 소원이 역시 아직 꽃도 피우지 못한 6살 어린이였다.
“소원이를 위해서라도 꼭! 잘 사세요.”
대문을 돌아서기 전 미처 전하지 못한 말을 건넨 이철영이 발걸음을 옮겼다.
그가 경윤의 가족과 마주한 마지막 날이었다.
**
한 달 뒤.
거리 곳곳 크고 작은 크리스마스트리와 신나는 캐럴이 화려한 겨울을 가득 채운 연말이었다.
12월 25일 크리스마스를 이틀 앞둔 12월 23일 오후.
갑작스러운 뉴스속보가 들떠있던 전 국민의 마음을 한순간 먹먹하게 만들었다.
일산화탄소에 중독된 일가족 세 명이 사망한 안타까운 사고에 관한 보도였다. 새 집에서 보일러 배기통이 이탈된 것을 미처 보지 못한 채 이사한 지 불과 하루 만에 사고를 당한 거였다.
사고발생지는 부산이었고 확인결과 사망한 일가족은 얼마 전 놀이공원 유괴살해사건으로 떠들썩했던 고(故) 이소원 양의 부모와 8살 된 오빠였다.
며칠 후, 경찰은 연탄보일러 가스누출로 인한 사고사로 사건을 종결하며 안타까운 명복을 빌던 대중들의 기억 속에서는 1998년 새 해와 함께 점차 잊히는 과거가 되었다.
***
27년 후.
세월과 함께 양 볼이 통통했던 6살 가인은 어느새 34살의 젊고 능력 있는 사회인이 되어있었다.
어린 시절, 친구 이소원의 죽음 이후 더 이상 유치원을 다니지 않은 가인은 소위 재력가 자녀들이 거친다는 엘리트 코스로 학창 시절을 보냈다.
한국에서 초등학교를 마친 그녀는 중학교 입학과 동시에 캐나다 유학길에 올라 밴쿠버 명문 UBC 대학 경영학을 전공한 후 무려 10년 만에 귀국길에 올랐다. 평범한 일상과 더불어 무사히 학업을 마친 화려한 귀국이었다.
27년이라는 세월 속, 가인의 인생에도 엄청난 변화가 있었다. 굳이 표현하자면 매우 가파른 삶의 굴곡이었다.
그 첫 시작은 그녀의 남동생 이서인에 관한 것이었다.
구태여 떠올리지 않는 이상 이제는 희미한 과거가 되어버린 어린 시절, 친구를 잃은 충격에 한동안 일상이 힘들었던 가인에게 새 봄이 다가왔던 1998년이었다.
좀처럼 집 밖에 나가는 것을 꺼려했던 7살 가인의 유일한 놀이친구는 그녀보다 3살이 어린 남동생 서인이었다.
동그랗고 커다란 눈에 똘망똘망한 눈빛이 귀엽고 사랑스러운 데다 애교가 넘쳐 어른들의 사랑을 듬뿍 받는 아이였다.
서인은 누나를 졸졸 따라다니며 귀찮아하는 손짓에도 아랑곳없이 장난감을 들이대거나 가인을 끌어안고 함박웃음을 지었다. 큰일을 겪은 후 웃음을 잃었던 가인도 그런 동생 덕분에 조금씩 활기를 찾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사랑스럽고 유난히 웃음이 많았던 이서인이 사라졌다.
사방에 흩날리는 벚꽃을 비롯해 각종 꽃들이 만발하던 5월 5일 어린이날이었다.
미래유통에서 주최한 어린이날 행사에 참석한 가인 가족은 인사를 다니느라 바쁜 이태진 사장과 도미연을 대신해 비서 이영민의 보호 아래 두 아이가 손을 꼭 잡고 있었다.
초등학생 이하 자녀가 있는 미래유통 직원들이 모두 참석한 행사는 그야말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그런 가운데 비서 이영민이 아주 잠깐 한눈을 판 사이, 아이들이 모두 사라졌다.
깜짝 놀란 영민은 급히 아이들을 찾아다녔고 10여 분쯤 지나 행사 당일 입점한 간이 아이스크림 가게 앞에서 울고 있는 가인을 발견했다.
“여기 있었구나! 어휴 놀래라. 근데, 서인이는 어디 있어?”
양손 가득 녹아내리는 초코아이스크림을 꼭 쥐고는 눈물을 뚝뚝 흘리는 가인에 영민은 알 수 없는 소름이 돋았다.
“……몰라요. 으아아 앙!”
“모.. 모르다니? 같이 있던 거 아니었어?”
쭈그려 앉아 눈물과 콧물을 닦아주는 영민에 겨우 울음을 그친 가인이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속삭였다.
“저기…… 의자에 앉아 있으라고 했는데…… 아이스크림 갖고 오니까 없어졌어요.”
“뭐?!”
덜컹 내려앉은 심장과 눈앞이 캄캄해지는 충격을 뒤로한 채 벌떡 일어난 영민이 사방을 둘러봤다. 발 디딜 틈조차 없는 인파 사이로 북적거리는 아이들이 자그마한 4살짜리 꼬마를 알아보는데 오히려 방해가 됐다.
짐작컨대 사방에 돌아다니는 색색깔 오색 풍선을 따라 아이가 무작정 따라간 듯했다.
“삼촌…… 내 동생, 찾아주세요. 으아아 앙!”
“걱정 마. 어디로 갔든 밖으로 나가진 않았을 테니까. 방송하면 금방 찾을 거야.”
차분하게 아이를 달래는 영민에 그제야 눈물을 멈춘 가인이 그를 올려다봤다. 아이 앞에서 최대한 침착하려 애썼지만 달달 떨려오는 두 손을 그는 미처 감추지 못했다.
“그나저나 가인이 너, 아이스크림 먹고 싶어서 삼촌한테 거짓말했구나! 다음부터는 절대 그러면 안 돼! 알겠지?!”
잔뜩 겁먹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는 가인에 미소를 보인 영민이 아이를 번쩍 안고는 연수원 관리실을 향해 전속력으로 뛰기 시작했다.
조금 전, 가인은 아빠가 비서를 찾고 있다는 거짓말로 영민을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 사이 동생 손을 꼭 쥐고는 곧장 아이스크림 가게로 달려갔다.
감기 기운이 있으니 아이스크림이나 슬러시는 절대 사 먹이지 말라는 도미연의 당부를 영민 뒤에서 가인도 엿들은 후였다.
아이가 사라지는 엄청난 사태가 벌어졌지만 마냥 가인을 나무랄 수만은 없는 상황이었다.
눈앞에 보이는 달콤한 아이스크림의 유혹을 참으라는 건 7살 인생에 엄청난 시련이었을 테니까.
“헉헉…… 서인아, 어디 가지 말고 차라리 크게 울어. 그래야 널 빨리 찾을 수 있어.”
간절함과 긴박함이 뒤섞인 혼잣말과 함께 영민이 관리실에 들어섰다.
“헉헉 아이가…… 아이가 없어졌어요!”
*
오후 7시.
턱 끝까지 숨이 차오른 영민이 연못 근처 잔디 위에 털썩 주저앉았다.
풀려버린 눈동자에 땀에 젖은 몰골은 그야말로 처참했고 흙투성이가 된 양복바지와 하얀 셔츠, 흠집 난 검은 구두는 복구가 어려울 지경이었다.
서인을 잃어버린 후부터 지금까지 그는 단 1초의 쉼도 없이 아이를 찾아 헤맸다. 그러나 행사를 마치고 날이 저물도록 영민을 포함한 직원들은 끝내 이태진 사장의 아들 이서인을 찾지 못했다.
연수원 내 건물은 물론 혹시나 싶은 마음에 펜스를 쳐놓은 연못까지 바닥을 모두 드러낸 후였다.
그럼에도 4살 아이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마치 아이들을 위해 섭외한 유명 마술사가 진짜 마법을 부려 아이를 사라지게 했나 싶을 만큼 아이러니한 상황이었다.
금일 어린이날 행사는 미래유통 관할 하에 있는 서울 소재 연수원에서 주최되었고 출입구 cctv 확인 결과, 4살짜리 아이 혼자 연수원을 빠져나간 흔적은 없었다.
트릭을 숨긴 마술처럼 일순간 아이가 사라져 버린 거였다.
실종신고가 접수되자 경찰은 유괴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행사에 참여한 모든 관계자들을 대상으로 조사를 시작했다.
그러나 며칠이 지나도록 금전이나 기타 거래를 요구해 오는 협박전화는 끝내 걸려오지 않았고, 이태진과 도미연은 아들을 찾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하며 실낱같은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있었다.
**
14년 후, 어느덧 21살 대학생이 된 가인이 여름방학을 맞아 잠시 한국 땅을 밟았다.
그동안 잃어버린 아들을 찾느라 미처 자신을 돌보지 못한 도미연은 이르게 파고든 주름과 더불어 사방에 침투한 새치까지 방치하며 여전히 아이를 그리워하고 있었다.
그런 어머니를 보며 가인은 어린 시절 자신의 부주의로 동생을 잃어버렸다는 죄책감에 마음의 짐을 안은 채 모친 곁을 떠나지 않았다.
“가인아, 네 잘못 아닌 거 알지?”
꽃이 만발한 수목원을 거닐던 도미연이 팔짱을 낀 가인에게 넌지시 진심을 건넸다.
동생 실종에 힘들어할 가인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던 이태진과 도미연은 그녀에게 항상 “네 잘못이 아니야.”라는 말을 입버릇처럼 해주었고 긴 상의 끝에 가인이 원하는 캐나다로 유학을 보냈다.
그리고 14년이 흐른 지금, 여전히 딸을 만날 때면 도미연은 어김없이 진심을 전하고 있었다. 여전히 집안 가득한 남동생의 장난감과 그림책, 침대와 옷가지들을 보며 훌쩍 커버린 딸 가인이 느낄 마음의 무게 때문이었다.
“그래도 엄마…… 내가 미안해.”
말끝에 가인이 눈물을 훔쳤다.
그녀는 어린 시절, 달콤한 선물로 자신을 속인 유괴범들이 이소원을 데려갔다는 사실을 알고도 경찰에게 진실을 말하지 않았던 대가로 동생을 잃어버린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었다.
사실 그 부분에 있어서는 도미연과 이태진 또한 같은 마음이었다.
딸이 엮여 좋을 게 없다며 남의 아이가 유괴, 심지어 살해되었음에도 한 번을 찾아가지 않았던 그들이었다.
게다가 유괴범들의 본래 목적이 미래유통 손녀였을 가능성이 높다는 형사 말에 이태진과 도미연은 차갑게 선을 그으며 사건종결을 부추겼다. 이제와 자신들 또한 미스터리한 아들의 실종으로 그 죄의 대가를 치르고 있는 건 아닌가 싶은 생각이 차오르는 까닭이었다.
부부는 뒤늦게라도 이소원 가족을 찾아 용서를 빌고자 했다.
그러나 가족 모두가 이미 사망하고 없는 가운데 그들이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