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행은 통제감이 무너질 때 찾아온다

by p id

인간의 정신은 애써 세워둔 모든 계획이 무산되어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때 완전히 무너진다. 앞서 강한 통제력은 생존을 보장하므로 통제감을 보존하는 소비가 안정감, 행복함과 같은 좋은 감정으로 이어진다고 설명했다. 반대로 불행은 통제력이 훼손될 때 찾아온다. 무엇이 되었든 예측을 벗어나 의도한 대로 따라주지 않을 때, 자꾸만 자신이 하는 일을 방해할 때,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일이 하나도 없을 때 우리는 무력감과 함께 불행하다고 느낀다.


무너진 통제력에서 비롯한 무력감은 평소에 드러나지 않는 잠재된 행동을 끄집어낸다. 세상이 자신을 억지로 깎아내리는 것만 같은 상황에서, 평생 점잖고 침착하게 행동해 왔던 사람도 자신이 모르던 스스로의 공격성을 발견하곤 한다. 일이 뜻대로 되지 않을 때 인간의 정신이 처음부터 무너지지는 않는다. 나는 격한 감정의 표출이 일어나기까지 과정을 '인지 부하 - 계획과 대응 - 인지 과부하 - 표출' 네 단계로 표현한다.


첫 번째로 인간은 어떠한 문제를 맞닥뜨리면 인지 능력에 부하, 즉 스트레스를 받는다. 사용 중이던 물건이 갑자기 작동하지 않거나 누군가 자신에게 무례한 행동을 하는 등 예상하지 못하게 평온한 일상의 지속을 방해하는 여러 일들이 여기에 해당한다. 이러한 갑작스러운 상황은 미리 예측하던 상황이 아니므로 통제감을 일부 훼손한다.


두 번째로 상황에 따라 플랜 B, C 등 여러 가지 계획을 세우고 대응책을 펼친다. 키보드가 작동하지 않는 문제가 생겼다면 배터리가 떨어지지 않았는지, 연결이 끊어지지 않았는지 점검해 볼 수 있다. 그래도 해결이 안 된다면 스마트폰으로 인터넷에 문제를 검색하거나 챗gpt 같은 ai를 이용하는 등 도움을 구할 수도 있다. 여기까지는 우리가 해볼 수 있는 수단이 있으므로 통제력에 큰 타격을 받지 않는다. 문제는 이 모든 노력들이 하나씩 수포로 돌아갈 때다.


세 번째로, 예상한 수준을 넘어 문제가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으면 슬슬 인지력에 과부하가 오기 시작한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인간의 인지 자원은 한계가 있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집중하고 에너지를 쓸 때마다 인지 자원이 소모된다. 사소한 문제라도 우리가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 예측한 방법을 모두 소진해버리고 나면 완전히 진이 빠져버리고 만다. 이럴 때 우리는 더 이상 이 상황을 통제할 수 없다고 느낀다.


마지막으로 스트레스에 대한 반응이 표출된다. 이전 글에서 통제력의 훼손은 생존의 위협을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때문에 내분비계와 신경계가 생존을 위한 반응을 내보인다. 열이 오르고 심장이 빨리 뛰고 혈압이 오르며 식은땀이 난다. 절제력이 떨어지고 충동적으로 행동한다. 일이 뜻대로 되지 않으면 화가 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지나친 통제력의 훼손은 인간으로 하여금 벼랑 끝에 내몰린 느낌을 받게 한다. 이럴 때는 작은 자극만으로도 사람이 격분할 수 있다. 집에서 자신을 무시하는 가족들, 운전 중 만난 난폭 운전자, 자신을 함부로 대하는 직장 상사까지 삶의 여러 군데에서 통제감을 상실하다 보면 극한의 스트레스를 마주하게 되고 극단적인 행동을 하게 된다. 보통 올바른 통제 방식을 지닌 사람은 이런 상황까지 가는 경우가 잘 없지만 많은 사람들이 한 번쯤 삶에서 힘든 시기를 겪는다.


내몰린 상황에서 잘못된 방향으로 통제력을 회복하려는 사람들도 있다. 길을 다니거나 뉴스를 보면 이해할 수 없는 행동으로 남에게 피해를 주는 사람을 심심치 않게 마주할 수 있다. 눈사람을 발로 차거나 꽃을 짓밟는다거나, 자신보다 체구가 작은 사람의 어깨를 치고 다닌다거나, 난폭 운전을 한다거나. 모든 케이스가 통제력 훼손에 따른 동기를 지니진 않겠지만, 일부는 일상에서 뜻대로 할 수 있는 게 없으니 만만해 보이는 다른 곳에서 통제감을 회복하려 시도로 볼 수 있다. 이런 경우 대부분 통제력은 장기적으로 더 크게 훼손된다. 피해보상금을 물어주든지, 감옥에 가든지. 혹은 사회부적응자로 낙인찍힐 수도 있다. 올바르게 삶의 통제력을 회복하는 방법을 익히지 못한 미숙한 통제 행동이다.


우리 삶에서 통제력이 한 번에 무너질 만큼 큰 사건도 종종 일어나지만, 대개는 조용히 조금씩 깎여나간다. 처음부터 심각한 일로 시작하지는 않는다. 통제감을 훼손하는 요소들을 방치하다가 갑자기 한 번에 무너지듯 모든 게 휩쓸려 나간다. 앉아보지도 않은 의자를 사고, 자극적인 뉴스를 찾고, 무례한 사람을 계속 만나는 등 남들이 한다니까, 좋은 게 좋은 거니까, 있어 보이고 싶으니까 소비한다. 이런 기준으로 소비하는 습관이 스스로의 통제력을 야금야금 갉아먹는다.


통제력의 침식을 막으려면 주변 환경을 잘 갈무리하는 습관을 길러야 한다. 생산자는 사용자의 통제감을 훼손하지 말아야 하고, 소비자는 자신의 통제감을 보존하는 요소들로 일상을 채워야 한다. 그렇지 않는다면 언젠가 되는 일이 하나도 없다고 느끼게 될 것이고 그런 때만큼 불행하고 비참한 순간이 없다. 우리는 구체적으로 어떻게 통제감을 회복하고 보존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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