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제력 프레임

by p id

무언가 좋다고 말할 때 혹은 별로라고 말할 때 왜 그렇게 느끼는지 생각해 본 적 있는가? 스스로 느끼는 감정의 근원을 판별하기 위한 기준을 갖추면 비로소 깊이 있는 경험을 하게 된다. 감정은 자기만의 견해에 따른 요소라서, 무언가를 볼 때 어떻게 느껴야 하는지 정답은 없다. 감정은 단지 관점에 따를 뿐이다. 같은 현상을 마주해도 바라보는 방식에 따라 느끼는 바가 다르다. 심리학에서는 세상을 바라보는 이러한 관점을 사고의 틀에 빗대어 '프레임'이라고 부른다. 인간은 세상을 마주할 때 특정 프레임을 통해 해석한다.


같은 그림을 보고도 정신과 의사는 그림 속 인물의 표정을 보고, 천문학자는 배경에 수놓인 별을 보며, 종교인은 상징물을 찾는다. 그러므로 정답은 없고 관점이 있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정답이라고 확신하는 사실도 다른 프레임을 통해 바라보면 거짓이 된다. 판단은 프레임에 따라 달라지므로, 무엇을 바라볼 때 거기서 얻는 감정이 왜 발생했는가라는 질문의 답도 프레임에 따라 달라진다. 왜 그렇게 느끼는지 알고 싶을 때, 삶을 통제력을 쟁취하기 위한 싸움으로 보는 프레임을 가지면 유용하게 상황을 해석할 수 있다.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상황을 통제하고 있는지 보면 된다는 뜻이다.


왜 통제일까? 통제력은 생존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예측하고 의도한 대로 상황이 흘러가지 않는다면 통제력을 잃었다는 뜻이고 런 상황에서 우리는 존속을 보장할 수 없다. 원시시대나 현대나 마찬가지다. 단순히 물리적인 힘이 통제력의 원천이 될 수도 있고 사회의 맥락을 해석하고 대응하는 능력을 통해 고도화된 통제력을 발휘할 수도 있다.


고 인류의 모습을 떠올려보면, 그들은 맹수의 위협에 대응하지 못하면 죽은 목숨나 다름없다. 무리를 보호할 움막이나 동굴, 함정, 맹수의 접근을 미리 감지할 수 있는 보초가 있어야 상황을 통제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현대로 돌아와 우리의 모습을 샬펴보자. 공동체에서 경쟁자가 당신의 성과를 깎아내릴 때 적절히 대응하지 못하면 지위를 잃는다. 상대의 공격에 휘둘리고 아무 대응도 하지 못해서 모두가 당신의 성과를 절하하게 된다면 경쟁자가 걸어온 통제력 싸움에 진 것이다. 이때 당신이 공동체에서 가진 상대적 지위는 내려가고, 더 높은 연봉이든 더 좋은 동료 관계든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할 가능성이 커진다. 자본주의 세상에서 통제력의 상실은 지위의 하락으로 이어지고, 지위 하락은 곧 생존 능력의 저하로 이어진다.


강한 통제력은 어느 시대든 생존을 보장하고, 반대로 통제력의 상실은 생존의 위협으로 이어진다. 예상하고 의도한 대로 기대 이상의 결과가 나타나야 통제감을 보존하고 '좋다'라는 안정된 감정을 느낀다. 의도한 대로 상황이 흘러가지 않고 기대보다 못한 결과를 마주하면 통제감을 잃었다 느낀다. 생존을 위협받으면 몸이 외부의 위협에 대처하도록 스트레스 반응이 오는데, 신경전달물질과 호르몬 분비를 통해 투쟁 또는 도주를 준비한다. 심장이 빨리 뛰고 호흡이 가빠지며 불안하거나 우울해 지는 등의 이유가 여기에 있다.


공간이나 제품, 혹은 서비스든 콘텐츠든 소비할 수 있는 모든 형태를 경험할 때 마찬가지로 통제력이 작용한다. 어떤 물건을 사용한다고 생각해 볼 때, 우리는 이 물건에 기대하는 바가 있다. 예상하는 대로 작동해서 문제를 해결해 주거나 머릿속에 상상하던 모습을 구현할 수 있도록 도와주길 바란다. 제품을 사용하면서 혹은 공간이나 서비스를 이용하면서 좋은 감정이 든다면 통제력을 떠올려보라. 의도한 대로 잘 동작하거나 예상했던 수준 보다 더 만족스러운 결과를 마주했을 것이다. 반대로 화가 나거나 기분이 나쁠 때 통제력을 생각해 보면, 물건이 뜻대로 작동하지 않았거나 기대보다 못한 수준의 대접을 받았을 것이다.


통제력 프레임을 가지면 어떤 것들을 소비해야 하는지 명확해진다. 어떤 사람들이 우리를 기만하고 휘두르려고 하는지, 혹은 통제감을 온전히 보존해 주는지 판별할 수 있다. 우리가 소비해야 할 것들은 장기적으로 우리의 신체와 정신을 건강하게 만들어 줄 재화여야 한다. 진정으로 소비할 가치가 있는 것들을 구분할 기준을 갖추지 못하고, 미디어와 SNS에 넘쳐나는 자극적이고 허황된 이야기에 휘둘리다 보면, 세상에 가치를 전달하기보다 오직 소비자의 돈을 뜯어내는 데 혈안이 된 자들에게 통제력을 잠식당할 뿐이다.


앞으로의 글을 통해 살펴볼 텐데, 소비자가 어떤 경험을 하는지 관심이 없는 생산자는 소비자의 통제력을 깎아내린다. 누군가 투자해 만든 소중한 자산을 베끼고, 은근한 속임수로 기만하고, 주변 환경과 관계를 무시해 맥락을 무너뜨린다. 악한 의도로 만들어진 제품을 소비하면 악한 자들이 힘을 가진다. 그런 사람들이 많아지면 점점 선한 사람이 살기 어려운 세상이 된다.


삶을 더 좋은 경험으로 채워가고 싶거든 생각해봐야 한다. '내가 소비하려는 이 물건이, 음식이, 공간이, 서비스가 내 통제감을 훼손하지 않는가?' 때로는 소비자의 통제력을 잠식하려는 의도가 뻔한데도 불구하고 '더 싸니까', '남들이 다 하니까'라는 말로 합리화하며 잘못된 소비의 유혹에 빠질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선택권을 가지고 있다. 소비를 한다는 것은 선택한다는 말이다. 세상의 무수한 재화들 속에서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선택은 신념을 대변하며, 행동만이 우리가 어떤 사람인지 드러낸다. 삶은 단순히 흘러가는 게 아니라 우리가 어떤 존재인지 증명하는 과정의 연속이다. 당신은 어떤 존재인가? 통제력 프레임이 앞으로의 삶에서 존재 증명을 위한 좋은 도구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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