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삶을 살아가며 만드는 모든 행위가 일련의 일화 또는 삶의 끝에 행복을 얻기 위한 수단이라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행복을 거머쥘 수 있을까? 고대 철학자들과 종교, 현대 과학에 이르기까지 행복에 다다르기 위해 인류는 끊임없이 고뇌를 이어왔으며 저마다 해답을 내놓았다. 모두 각자의 방식으로 행복을 추구해 왔고 단지 관점에 차이가 있을 뿐 행복으로 가는 길에 정답이 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살다 보면 차라리 행복에 정답이 있길 바랄 때도 많다. 그렇다면 고단한 수양의 과정과도 같은 삶이 얼마나 평온해질까. 안타깝게도 우리는 무수히 많은 장애물을 맞닥뜨리며 험난한 길을 걷고, 그 과정에서 각자 답을 찾아간다. 다들 좌절하고 또다시 희망을 품고 선구자들의 지식과 지혜를 빌리며 답을 찾아가는 여정에 있다.
각자 행복으로 가는 자신만의 길을 가지고 있겠지만, 여기서는 내가 디자이너로 일하고 시장과 교육과 산업 등 인류가 구축한 체계와 인간관계를 겪으며 얻은 경험, 그리고 현대 심리학과 과학 지식을 토대로 얻은 한 가지 방법론에 대해서 이야기할 것이다. 내가 인간 행동 너머의 동기를 볼 때 취하는 한 가지 관점이 있는데, 바로 '통제력'이다. 우리는 삶의 여러 상황에서 통제감을 얻을 때 불안과 같은 정신의 고통에서 벗어나 행복한 감정을 얻는다. 다음 장에서 설명할 텐데, 통제력은 앞으로 할 이야기의 전반을 관통하는 주제이다. 왜 통제감이 중요한가? 인간은 통제감을 위해 어떤 일을 벌이는가? 이후 글에서 이런 질문들에 답을 찾아갈 것이다. 우리를 알게 모르게 잠식하기도, 취하게 하기도 하는 이 보이지 않는 힘이 우리를 격정적인 감정의 늪에 빠트리고, 일과 관계를 망치고, 행복과 불안을 오가게 한다. 이렇게 막강한 힘을 가진 통제력이 우리의 일상에서 어떻게 작용하는가.
통제감을 주는 경험은 우리에게 '좋다'라는 감정을 전달한다. 그렇다면 어떤 요소들이 우리에게 통제감을 줄까? 통제는 제한을 거는 일을 뜻한다. 예상하고 의도한 대로 상황이 흘러갈 수 있도록 제한을 만드는 행위가 통제이다. 그러므로 통제감은 예측 가능성, 그리고 의도에 대한 결과에 달려있다. 물질적이든 정서적이든 그 결과가 이익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 이익은 주관성을 띤다.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뻔한 손실이더라도 본인이 이익이라고 느끼면 된다는 말이다. 인간은 비합리성이 강해 보일 정도로 복잡한 행동 메커니즘을 가진 존재라서 단순한 알고리즘처럼 동작하지 않는다. 타인의 충고를 듣는 게 실제로 이익이 되더라도 타인의 말을 따르면 지위가 떨어진다고 느껴 실리를 포기하기도 한다. 또는 예측 범위를 벗어나 운 좋은 일이 발생해도 스스로 노력한 대가라고 여기며 예상했던 범주로 덮어씌우기도 한다. 그러니 우리 내면에 각인된 소스코드를 분석하려고 하지는 않아도 된다. 우리가 스스로 삶의 방향키를 쥐고 있다는 인식이 중요하다.
그렇다면 우리는 예측 가능하고 의도한 대로, 혹은 의도했다고 여기게 하는 결과를 내비치는 대상으로부터 좋은 경험을 얻는다고 볼 수 있다. 다시 말해, 공간, 물건, 서비스, 관계 등 우리가 일상을 경험할 때 예상 범주 안에서 일이 일어나고 계획을 통해 대응하며, 의도한 일이 이익이 된다고 느낄 수 있는 결과로 나타나야 한다. 이러한 것들을 소비할 때 우리는 올바른 방식으로 통제감을 얻고 나아가 행복을 느낄 수 있다. 좋은 소비란 허황된 이야기로 포장된 물건을 사는 게 아니라, 실제로 우리에게 안정적인 통제감을 안겨주는 경험을 얻는 일이다. 자신의 내면과 상황에 맞지 않는 소비를 털어내고 진정 가치 있는 물건과 경험을 알아보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까? 앞으로의 글에서 자세히 다뤄볼 것이다. 왜 하필 통제력인지, 통제감이 무너지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우리의 일상에서 어떤 부분에 주목해야 하는지 하나씩 살펴보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