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락

by p id

맥락은 제품이나 서비스, 콘텐츠가 소비되는 물리‧사회 환경의 총체로, 무시되거나 적절히 반영되지 않을 경우 사용자는 불확실성과 예측 불가능성에 직면하게 되며 이는 곧 통제감의 붕괴로 이어진다. 통제감은 사용자가 환경의 맥락과 부단한 상호 작용을 함으로써 얻기 때문에, 사용자가 대상을 일관성 있게 인지할 수 있는지, 이를 통해 안정감 있는 정서를 얻을 수 있는지가 중요하다.


간판 디자인을 생각해 보자. 만약 주변 건물이나 도시의 분위기, 구성원, 사회 분위기 등의 맥락을 무시하고 시각적 주목을 극대화하기 위해 경쟁적으로 자극적인 디자인만 채택하면, 오히려 정보 혼잡도가 비대해져 마치 소음과도 같이 변모하게 된다. 이런 현상은 마치 치킨게임처럼, '남들보다 더 눈에 띄기 위한 경쟁'이 결국 모두의 주의를 분산시키는 아이러니를 낳는다. 정보가 과잉된 환경에서는 인간의 인지 자원이 쉽게 고갈되며, 이는 결국 사용자로 하여금 아무것도 선택하지 못하게 만든다. 뿐만 아니라 해당 공간은 간판에 뒤덮인 채 환경이 가지고 있는 본질적인 가치에 훼손을 입는다. 이러한 환경에서는 어떤 개별적 시도도 효과를 발휘하지 못하며, 통제감은커녕 혼란과 무기력만이 남는다. 주변 환경의 맥락을 무너뜨리더라도 돈이 우선이라는 이기주의가 장기적으로는 스스로를 포함한 모두에게 손해만 안기는 셈이다.


어떤 사람은 간판 규제에 따른 벌금을 매달 물면서도 그렇게 하는 편이 사람들을 더 끌어모아 버는 돈 보다 경제적이라는 신념에 가까운 집착을 보이며 거리낌 없이 맥락을 무너뜨린다. 사실 생산자가 인간인 이상 탐욕 자체를 제어할 수는 없기 때문에 이러한 행태를 자율적으로 하지 않도록 만드는 것을 불가능하다. 오직 주변에 피해를 입히는 행위가 그로부터 얻는 이익보다 더 큰 손해를 입을 때만 제재 행위가 유의미한 제어력을 갖는다. 그러므로 이러한 사례에서 소비자가 스스로의 통제감을 보존하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해당 공간을 이용할지 안 할지 선택하는 것뿐이다.


생산자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상시 던져야 한다. "이 제품 혹은 서비스는 어떤 상황에서 사용되는가?", "사용자는 이 경험을 어떤 인지적 흐름 안에서 접하게 되는가?", "현재의 시대적 감수성과 문화적 정서 속에서 이 표현은 적절한가?", "이 맥락에서 예상되는 사용자의 기대는 무엇이며, 그것은 어떻게 충족될 수 있는가?" 이러한 질문은 단순히 디자인의 적합성을 판단하는 기준을 넘어서, 사용자의 통제 경험을 설계하는 핵심 준거가 된다. 각각의 질문은 사용자의 기대와 해석, 행동의 방향성을 예측하고 이에 부합하는 설계를 도출하는 출발점이다. 간단히 말하면 딴 소리 하지 말라는 얘기이다. 우리가 친구와 강아지를 주제로 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세탁기 얘기를 하면 상대방은 대화가 맥락을 벗어났기 때문에 우리의 의도를 파악할 수 없다.


맥락을 무시한 제품은 사용자 경험의 일관성과 예측 가능성을 해체시키며, 이는 곧 사용자의 신뢰 상실로 귀결된다. 반대로, 맥락에 정교하게 조응하는 제품은 사용자의 삶에 유기적으로 통합되어, 보다 능동적인 삶의 조율을 가능하게 한다. 이는 마치 제품이 사용자 의도를 사전에 이해하고 있는 듯한 경험을 선사하며, 통제감이라는 심리 자산을 강화시킨다. 이러한 설계는 단지 기능의 편의성이나 심미적 만족을 넘어, 사용자가 스스로를 유능하고 상황을 관리 가능한 존재로 느끼게 한다. 즉, 맥락의 고려에서 비롯한 통제감은 사용자가 자신의 삶을 더 효과적으로 관리하고, 더 깊이 있는 몰입과 만족을 경험할 수 있도록 돕는다. 그러므로 소비자는 통제감을 지키기 위해 갑자기 이상한 소리를 하는 생산자가 아니라, 일관된 대화의 맥락을 제공하는 생산자를 찾아야 한다.


통제감은 폐쇄적 상태에서 자족적으로 발생하지 않는다. 언제나 맥락이라는 무대 위에서 구성되고 연출되는 감정이다. 생산자가 설계하는 경험은 고립된 객체가 아니라, 사용자의 인지, 정서적 흐름과 해석, 환경과의 관계 속에서 만들어지는 구성물이어야 하며, 소비자가 양질의 사용자 경험을 얻고자 한다면 통제는 맥락 위에서 유효하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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