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은 놀이동산이나 테마파크를 옮겨다 놓은 듯한 방이었다. 서커스 텐트같이 천정이 아주 높은 원형의 커다란 홀에 고양이용품 박람회가 펼쳐진 듯했다. 홀의 한가운데 황금색으로 화려하게 장식된 회전목마가 있고 그 주위로 캣타워와 캣폴, 캣휠과 스크래쳐, 요람과 숨숨집 등 고양이들의 필수 생활용품과 놀이용품 부스들이 자유롭게 펼쳐져 있었다. 둥근 회전목마 위에는 색색깔의 말들과 황금마차뿐만 아니라 군데군데 캣폴이 있었고 크고 작은 캣휠도 곳곳에 놓여 있었다. 회전목마는 움직이지 않고 멈춰서 있었다.
해피는 먼저 홀에서 가장 높은 캣타워 위로 단숨에 뛰어 올라갔다. 천정 거의 끝까지 올라가는 아주 높은 캣타워였다. 위에서 내려다보니 저 멀리 아래로 럭키가 아주 작게 보였다.
“럭키, 어서 올라와봐. 여긴 정말 너무 멋진 곳이야!”
해피가 큰 소리로 외치자 럭키도 맞은 편에 있는 캣타워 위로 뛰어 올라갔다.
“해피, 여기도 만만치 않게 멋진데! 세상이 모두 우리 발 아래 있어!”
럭키가 거친 숨을 몰아쉬며 꼭대기에서 소리쳤다. 그렇게 높은 곳에 올라온 건 처음이어서 아찔한 현기증이 느껴졌지만 그 느낌이 싫지는 않았다.
“고행점이 이렇게 멋진 곳인지 몰랐어. 모든 고양이들이 이곳에 와봐야 해.”
해피가 흥분해서 외치더니 캣타워에서 후닥닥 뛰어내려와 회전목마가 있는 쪽으로 달려갔다. 회전목마 위에 올라탄 해피가 몇 걸음을 옮기자 음악소리가 나면서 멈춰 있던 회전목마가 돌아가기 시작했다.
“럭키, 그만 내려와봐! 너도 어서 여기 타!”
럭키도 캣타워에서 뛰어내려와 돌아가는 회전목마 위에 올라탔다. 금빛으로 장식된 색색깔의 말들이 올라갔다 내려갔다 스텝을 밟으며 돌아가고 있었다. 해피는 그 중 황금 갈퀴를 휘날리는 흰 말 위에 올라탔고 럭키는 그 옆에 있는 황금마차 안으로 폴짝 뛰어 올라갔다.
“야호!”
해피가 소리쳤다. 말 위의 해피는 개선장군같이 늠름했다. 허리를 곧추 세운 채 말 등에 앉아 위아래로 움직이는 둥근 봉을 꼭 잡고 있었다. 럭키는 그런 해피를 보며 마차 안에서 우아하게 손을 흔들었다.
바람을 일으키며 회전목마는 돌아갔고 음악소리는 더 크고 빨라졌다. 해피는 시원한 바람에 몸을 내맡긴 채 눈을 감았다. 집을 떠난 순간부터 고행점에 오기까지의 과정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갔다. ‘오늘 밤 집을 나오길 정말 잘했어.’ 해피는 마음속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한참을 돌고 난 해피는 말에서 내려와 옆에 놓여 있는 캣휠 위로 뛰어 올라갔다. 캣휠을 타본 적이 없는 해피였지만 본능적으로 타는 방법을 알 수 있었다. 천천히 발을 몇 번 굴러본 해피는 캣휠이 돌아가자 더 열심히 발을 굴렀다. 빠르게 돌아가는 회전목마 위에서 캣휠도 속도를 냈고 음악소리도 점점 고조되었다.
“해피, 어지럽지 않아? 난 보기만 해도 어지러운데…”
황금마차의 팔걸이에 기대고 앉아 있던 럭키가 힘겹게 외쳤다.
“아니, 너무 재밌어. 너도 한번 해봐. 세상이 빙빙 돌아. 돌고 돌고 또 돌아.”
해피가 숨을 헐떡이며 말했다.
“됐어. 난 지금도 충분히 어지러운걸.”
럭키가 고개를 내저었다. 토할 듯 어지러웠지만 해피는 자신도 모르게 계속 발을 굴렀고 회전목마도 속도가 점점 더 빨라졌다.
‘지구는 돌고 있다지. 나도 돌아가고 있어. 어지러워… 멈춰야 하는데! 그만 멈춰야 하는데…’
얼굴이 사색이 된 럭키가 갑자기 토하기 시작했다. 해피도 달리기를 멈추고 캣휠에서 내려오더니 켁켁거리며 토하기 시작했다. 두 고양이는 한참을 토하다 회전목마가 속도를 늦추자 휘청이며 내려와 바닥에 쓰러졌다. 음악도 점점 느려지면서 소리가 잦아들었다.
“어지러워. 천정이 빙빙 도는 것 같아.”
해피가 중얼거리자 럭키도 낮은 소리로 웅얼거렸다.
“속이 울렁거려. 세상이 빙빙 돌아.”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정신을 차린 해피가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찾았으나 럭키는 보이지 않았다. 회전목마는 멈춰서 있었고 음악소리도 나지 않았다.
“럭키, 럭키!”
덜컥 겁이 난 해피가 큰 소리로 럭키를 불렀다. 그러나 넓디넓은 홀에 홀로 서 있는 자신의 목소리만 메아리쳐 되돌아올 뿐이었다.
“럭키, 나 혼자 두고 어디로 가버린 거야?”
낯선 곳에서 미아가 된 해피는 두려움과 외로움을 느꼈다. ‘럭키, 럭키!’ 마음속으로 계속 럭키를 부르던 해피의 시선이 주위에 있는 숨숨집들로 향했다.
둥근 홀에는 회전목마를 빙 둘러 다양한 숨숨집들이 자태를 뽐내며 자리하고 있었는데 적어도 수십 채, 많게는 백 채도 될 듯했다. 집들은 말 그대로 각양각색이었다. 바로크 건축물의 미니어쳐 같은 집도 있었고 실용성을 강조한 단순하고 현대적인 주택도 있었고 이글루 같이 생긴 둥근 형태의 집도 있었고 고행점의 미니어쳐 같은 피라미드형 집도 있었다. 코끼리 모양의 숨숨집과 뱀처럼 구불구불한 모양의 숨숨집 등 동물 모양의 숨숨집도 여럿이었다.
“럭키, 어디로 간 거야?”
해피는 어쩌면 럭키가 숨바꼭질을 하고 있거나 어떤 숨숨집으로 들어갔다가 깜빡 잠이 들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곳 어딘가에서 럭키가 자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불안하던 마음이 좀 누그러드는 느낌이었다.
‘정말 멋진 집들이 많은걸! 구경 좀 해볼까?’ 해피는 먼저 바로크 시대 저택 같은 숨숨집으로 들어가 보았다. 꽃무늬 벽지로 도배가 되어 있고 바닥에는 부드러운 벨벳 카페트가 깔려 있는 그 집은 숨숨집이라기보다는 대저택이었다. 겉모습에 비해 안이 아주 넓었고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에도 빨간 카페트가 깔려 있었다. 그러나 럭키는 그곳에 없었다. 빨간 벨벳 카페트의 부드러움이 해피를 유혹했지만 해피는 굴복하지 않고 밖으로 나왔다.
회색 이글루 앞에서 해피는 다시 럭키를 불러 보았다. 아무 대답이 없었지만 해피는 일단 안으로 들어갔다. 회색 펠트천으로 둘러쳐진 벽에 달과 별 모양의 구멍이 몇 개 나 있고 바닥에는 푹신한 노랑 누비방석이 깔려 있어 아늑한 느낌을 주었다. 역시나 그곳에 럭키는 없었고 방석에는 럭키의 털 하나 묻어 있지 않았다.
“럭키, 대체 어디 있는 거야?”
해피는 걱정스런 얼굴이 되어 다시 밖으로 나왔다. 누비방석에 누웠다간 그대로 잠이 들어버리고 말 것 같아서 서둘러 나와버렸다.
다음은 피라미드형 숨숨집이었다. 왠지 그 안에 럭키가 있을 것 같았다. 해피의 예상은 맞고도 틀렸다.
“럭키, 안에 있는 거야?”
럭키는 그 안에 없었다. 하지만 뭔가가 있었다. 서늘하고 퀴퀴한 냄새 속에서 해피는 럭키의 체취 한 자락을 포착했다.
‘흠흠, 이건 분명 럭키 냄샌데…’
사건을 좇는 탐정이 된 것처럼 해피는 럭키의 흔적을 찾았다. 바닥에 깔린 초록색 매트에서 럭키의 털 몇 가닥도 발견했다.
‘럭키가 이곳으로 들어온 게 분명해. 그런데 럭키는 어디 있지? 어디로 간 거지?’
안쪽으로 회색문이 보였다. 그 문을 열려던 해피는 잠시 주춤했다. 럭키의 자취를 발견했다는 안도감에 긴장이 풀리면서 운동 후의 나른함 같은 졸음이 쏟아졌다. 해피가 털썩 하고 초록색 매트에 몸을 던지는 순간 바닥이 아래로 푹 꺼졌고 그바람에 해피는 쿵 하고 엉덩방아를 찧으며 다른 방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야~옹!”
깜짝 놀란 해피의 털이 바짝 서면서 동공도 크게 확장되었다. 졸음이 확 달아나 버렸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이지? 갑자기 바닥이 꺼질 줄은 몰랐어. 럭키가 말한 앨리스처럼 모험을 하는 느낌이야. 자꾸 알 수 없는 이상한 곳으로 가잖아. 그런데 럭키는 어디로 간 걸까? 회색문을 열고 나갔어야 했나봐.’
후회도 잠시 해피는 새로운 공간에 바로 정신을 빼앗겼다. ‘우와, 이게 다 뭐지?’ 해피는 고양이가 수놓아진 거대한 태피스트리를 보고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곳은 고양이 굿즈샵이었다. 유명한 고양이 캐릭터 굿즈들뿐만 아니라 실물 그림과 사진을 이용한 상품들이 커다란 방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언제부턴가 사람들의 라이프 스타일 곳곳에 자리를 차지하기 시작한 고양이가 요즘은 최고의 전성기를 누리고 있었다. 쿠션에도 고양이, 이불에도 고양이, 접시에도 고양이, 꽃병에도 고양이, 시계에도 고양이, 전등에도 고양이… 온통 고양이 세상이었다. 고양이는 그 자체로 가장 멋진 인테리어 오브제일뿐만 아니라 큐티즘이 대세인 디자인과 캐릭터 산업 분야에서 트렌드를 주도하는 주인공이었다.
하지만 그곳에는 실제로 고양이들을 위한 상품은 거의 없었다. 고양이 아플리케가 수놓아진 티셔츠나 가방은 고양이를 위한 건 아니었다. 고양이 형상의 스탠드나 고양이 모양 베개도 고양이를 위한 건 아니었다. 고양이 장식의 반지나 목걸이, 열쇠고리나 마그네틱, 온갖 종류의 캐릭터 문구용품도 마찬가지였다.
‘도대체 고양이가 뭐라고 사람들은 이렇게 난리법썩일까? 우리 집만 해도 집사가 고행점에서 사온 고양이 물건이 점점 늘어나고 있어. 고양이 인형은 물론이고 고양이 발매트, 고양이 전등에다 고양이가 퐁당 빠져 있는 유리컵까지 온통 고양이야. 사랑하다 보면 그렇게 된다고 집사가 말했어. 내가 만약 돼지나 참새였다면 어땠을까? 두더지나 개구리였다면 어떘을까? 고양이로 태어나길 잘했어. 이놈의 인기가 언제 식을지 모르지만 고양이만큼 사람들과 잘 어울리는 동물도 없을 거야. 내 생각엔 그래. 그러니 우리 시대가 한동안은 지속될 거라고 생각해. 어쩜 아주 오래 오래…’
해피는 둘레에 고양이와 꽃 그림이 화려하게 장식된 스탠드형 거울을 발견하고 그 앞에 섰다. 거울 속에는 통통한 호랑이무늬 고양이 한 마리가 있었다. 뱃살이 불룩하고 볼은 빵빵하고 줄무늬는 선명했다. 좀 지쳐 보였지만 호기심으로 가득찬 두 눈은 여전히 빛나고 있었다. 해피는 거울 속 자신의 모습이 좀 낯설게 느껴졌다. 거울을 본 게 언제쯤이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왜 나는 흰 고양이나 검은 고양이가 아니지?’ 해피는 처음으로 그런 생각을 해보았다. 특별히 자신의 몸에 대해 불만은 없었지만 꼬리 끝이 휘어진 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꼬리가 긴 고양이, 짧은 고양이, 다리가 긴 고양이, 짧은 고양이, 털이 긴 고양이, 짧은 고양이… 다양한 고양이 중에 해피는 꼬리 끝이 약간, 아주 약간 휘어 있는 고양이였다. 해피의 호기심과 반항심은 어쩌면 그 꼬리 끝에서 나오는 것 같았다. 생각에 잠긴 해피의 꼬리 끝이 까딱까딱 움직일 때면 집사는 귀엽다며 웃곤 했다. 가끔씩 의도치 않게 꼬리 끝이 꿈틀댈 때면 해피는 당황스러웠다. 거울 속의 해피도 지금 꼬리를 까딱까딱 움직이고 있었다. ‘럭키는 대체 어디로 간 거지? 날 두고 혼자 가 버린 건 아닐까?’ 꼬리가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럭키! 거기 있었던 거야?”
해피가 갑자기 뒤를 돌아보며 소리쳤다. 거울 속 자신의 뒤로 보이는 흰 고양이를 보고 순간 럭키로 착각한 것이다. 흰 고양이는 긴 털과 수염에다 파란 눈동자와 진한 아이라인까지 모든 게 럭키를 닮아 있었다. 아니 럭키에 비하면 털이 너무 하얗고 윤기가 났다. 그 방에는 실물크기 고양이 인형도 곳곳에 놓여 있었다. 흰 고양이 뒤로 검은 고양이와 회색 고양이, 줄무늬 고양이도 보였다. 하지만 그곳에 살아 있는 진짜 고양이는 없었다. 모두 사람들의 행복을 위해 만들어진 고양이 상품들이었다. 해피는 그만 그 방을 나가고 싶었다.
‘분명 어딘가 문이 있긴 할 텐데…’ 하지만 눈에 보이는 곳에 출구는 없었다. 해피는 굿즈샵 이곳저곳을 샅샅이 훑으며 문을 찾기 시작했다. 고양이 그림책 코너에는 고양이가 주인공인 여러 종류의 그림책이 전시되어 있었다. ‘럭키가 봤으면 아주 좋아했을 텐데…’ 해피는 알록달록 고운 색감의 그림책들을 보며 그 안에는 어떤 이야기가 들어 있을지 궁금했지만 책을 펼쳐볼 여유는 없었다. ‘칸슈라면 이 책들을 밤새 다 읽어치우고 말 거야.’ 해피는 그런 생각을 하며 그림책 코너 안쪽으로 깊숙이 들어갔다.
‘아이구, 깜짝이야! 칸슈인 줄 알았네!’ 한 쪽 벽에 내려와 있는 커다란 고양이가 프린트된 블라인드를 보고 해피는 놀라서 뒷걸음질쳤다. 그럴 만도 했다. 블라인드에 그려진 턱시도 고양이는 칸슈를 똑 닮은 모습이었다. 쌓여 있는 책에 몸을 기댄 채 서 있어 더 칸슈를 생각나게 했다. 그 고양이는 한 손으로는 책을 짚고 다른 손으로는 어딘가를 가리키고 있었다. 그쪽 끝부분에 둥근 버튼이 하나 있었다.
버튼을 누르자 블라인드 커튼이 소리를 내며 올라갔다. 놀랍게도 그 안에 문이 숨겨져 있었다. 해피는 넋을 잃고 보라색 문이 온전히 드러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톡톡 조심스레 두드리자 살며시 문이 열렸다.
냥냥 퍼니쳐샵. 그 방은 고양이 가구점이었다. 침대와 소파, 탁자와 의자, 장롱과 장식장 등 다양한 가구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사람들이 사용하는 가구들과 같았지만 다른 점이라면 모두 앙증맞고 귀여운 미니 사이즈라는 것이었다. 모두 고양이들을 위한 가구였으니까.
문에 꽃과 나비 장식이 새겨진 목재 장롱이 해피의 시선을 끌었다. 동그란 손잡이를 잡고 문을 열려던 순간 해피는 집사 집 옷장 속에서 잠들었던 어느 날의 기억이 떠올라 잠시 멈칫했다.
그날 집사는 겨울옷 정리를 한다고 바빴다. 문이 열린 옷장 안으로 몰래 들어가 옷박스가 쌓인 구석을 찾은 해피는 털고르기를 하다 바로 잠이 들어 버렸다. 집사의 옷냄새가 나는 아늑한 옷장은 낮잠을 위한 최고의 숨숨집이었다. 한참 동안 단잠을 잔 후 해피가 깨어났을 때 옷장 안은 캄캄했고 옷장 문은 닫혀 있었다.
‘해피, 해피!’ 밖에서 해피를 찾는 집사의 목소리가 들렸을 때 해피는 꿈인지 생시인지 분간이 안됐다. 바로 응답을 못하고 한참 후에야 ‘야~옹!’ 하고 구조 신호를 보냈던 건 그 때문이었다..
‘혹시 저 안에 럭키가 잠들어 있는 건 아닐까?’ 순간 그런 생각이 든 해피는 조심스레 손잡이를 당겨 문을 열어 보았다. 옷걸이에는 여러 종류의 작고 귀여운 옷들이 걸려 있었다. 세일러복 셔츠와 반바지, 니트 조끼와 체크무늬 셔츠, 화려한 레이스가 장식된 케이프, 수퍼맨의 빨간 날개옷, 한복 저고리와 실크 원피스 등 미니 사이즈의 다양한 옷들이었다. ‘이런 옷들을 입는 고양이들이 있다고?’ 해피는 어리둥절해하며 안으로 들어가 옷장 뒤 구석을 살폈다.
그러나 그곳에 럭키는 없었다. 럭키 냄새도 나지 않았다. ‘휴, 여기도 없어!’ 해피는 문을 닫고 침대와 소파 코너로 갔다. 실망과 걱정으로 마음이 점점 무거워졌다. 그 순간 침대 크기의 초록색 소파가 해피의 시선을 끌었다. 꽃무늬가 조각된 아름다운 곡선의 목재 프레임에 진한 초록색 벨벳이 씌워진 장의자였다. 해피는 그 위로 뛰어올라가 팔걸이 부분에 볼을 부벼대 보았다. 처음 느껴 보는 부드러운 촉감이었다. ‘보드라워. 정말 보드라워. 이렇게 보드라운 감촉은 처음이야.’ 기분이 좀 나아진 해피는 자리를 잡고 앉아 털을 고르기 시작했다.
여기저기 구석구석 꼼꼼하게 침을 발라가며 몸단장을 하던 해피는 팔걸이에 턱을 대고 엎드려 앉은 채 곰곰 생각에 잠겼다. 고행점에 오기까지의 모든 여정이 꿈만 같고 집을 떠나던 순간이 아득하게 느껴졌다. ‘집사는 집으로 돌아갔을까? 날 찾다 지쳐 쓰러진 건 아니겠지?’ 그런 생각을 하던 해피에게 불쑥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혹시 이 모든 게 다 꿈은 아닐까?’ 그러나 해피는 바로 고개를 내저었다. ‘아니야. 그럴 리 없어. 그럴 순 없어. 정신줄을 놓으면 안 돼. 정신 똑바로 차려야 해. 난 잠시 길을 잃은 거야. 그래. 난 지금 고행점에 있고 럭키를 찾아야 해. 럭키는 대체 어디로 갔을까? 혼자 떠나버린 건 아닐까? 그래서 여행 계획이 비밀이라고 했던 거 아닐까?’ 해피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점점 무거워지는 눈꺼풀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