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무슨 냄새지?”
숨막힐 듯 어지러운 향기에 취해 해피는 깨어났다.
“도대체 여기가 어디야?”
해피는 눈을 비비고 주변을 둘러보았고 벌어진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온갖 종류의 달콤한 향과 다양한 커피향이 뒤섞인 냄새가 진동을 하는 커다란 방이었다. 빵과 케이크, 쿠키와 여러 가지 구움과자, 캬라멜과 초콜릿 등 스위트 디저트가 유리 쇼케이스와 나무 선반과 탁자 등에 화려하게 전시되어 있고 반짝이는 은빛의 커피머신과 다채로운 원색의 커피머신들도 곳곳에 보였다.
“럭키, 럭키! 어서 일어나!”
해피가 옆에서 자고 있던 럭키를 깨웠다.
“어, 여기가 어디야? 우린 아직 고행점에 있는 거지?”
럭키가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말했다.
“그러게, 문을 나선 기억은 없으니 아마도 그렇겠지? 하지만 내 기억을 믿을 수가 없어. 아깐 분명 푸른 들판에… 검은 산, 아니 거대한 피아노가 있었고…”
해피가 혼란스러운 듯 기억을 더듬으려 애쓰며 천천히 말했다.
“그런데 어쩌다 이런 곳으로 온 거지? 여긴 사람들이 즐겨 먹는 달콤한 것들만 잔뜩 있는 곳인데…”
럭키가 옆에 있는 무지개 케이크 진열장 안을 들여다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흠흠, 어쩌면 집사가 고행점에 갔다올 때마다 행복해하던 이유가 이곳 때문이었나?’ 해피는 집사가 고행점을 다녀올 때면 묻혀오던 냄새 중에 이런 종류의 달콤함도 있었다는 생각을 했다. 고양이 얼굴 모양의 케이크 진열장으로 다가가던 해피를 럭키가 갑자기 불렀다.
“가만, 해피! 무슨 소리가 난다. 조용히 해봐!”
해피도 그 순간 어떤 소리를 들었다. 멀리서 뭔가가 다가오는 소리 같았다. 두 고양이는 동시에 바닥에 몸을 납작 엎드리고 공격 태세로 전환했다. 생쥐나 바퀴벌레 한 마리라도 나타나면 바로 덮쳐버리기라도 할 것처럼.
그러나 그 방에 두 마리 고양이 외에는 아무도 없었다. 아니, 그림 속의 여인과 고양이 한 마리가 있긴 했다. 빈티지풍의 플라워 패턴 벽지로 장식된 한쪽 벽면에 사람 키만한 커다란 그림 액자가 걸려 있었는데 로코코풍 거실에서 티타임을 즐기고 있는 우아한 귀부인이 그 속에 있었다. 여인의 무릎 위에는 작고 귀여운 검은 고양이가 엎드린 채 잠을 자고 있었다.
그림에 한눈을 팔고 있던 해피와 럭키는 또다시 그 소리를 느꼈다. 그림 뒤편의 벽 안쪽에서 뭔가가 바닥을 부드럽게 스치며 다가오는 듯했다. 스륵스륵 옷자락이 스치는 것 같은 소리가 점점 가까워지자 두 고양이의 검은 눈동자가 커지면서 심장이 두근거리고 등근육은 꿈틀대고 꼬리는 부풀어올랐다.
긴장감이 최고조에 달하는 순간 갑자기 소리가 멈췄다. 두 고양이는 호흡을 멈춘 채 귀를 쫑긋거리며 그림을 응시했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그림이 움직이기 시작했고 회전문 열리듯 돌아가며 열리더니 키가 큰 검은 고양이가 런웨이로 등장하는 모델처럼 천천히 걸어들어왔다. 광택이 나는 흰색 긴 망토를 걸친 고양이의 우아한 자태와 위엄 있는 태도에 해피와 럭키는 넋을 잃고 납작해진 몸이 더 움츠러들었다.
“안녕하십니까? 어서 오십시오. 저희 백화점에 오신 걸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키가 큰 검은 고양이가 무대 위의 배우처럼 망토를 양손으로 펼치고 고개를 약간 숙이며 정중하게 인사했다. 목소리는 부드럽고 친절했지만 단호한 어투와 절도 있는 몸짓에서 범접할 수 없는 권위가 느껴졌다. 해피와 럭키는 일단 환영이라는 말에 안도하며 서로의 얼굴을 마주 보았다.
“두 분은 저희 백화점을 처음 방문하신 고양이 고객이십니다. 이 순간을 정말 오래 기다렸습니다. 아주 오래…”
검은 고양이는 계속해서 존대말을 썼는데 감격으로 목이 메인 듯 목소리가 떨렸다.
“어떻게 된 일이지? 고행점엔 고양이는 출입금지라고 했는데… 이 고행점이 자기 백화점이라고 하며 우릴 환영한다잖아.”
해피가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럭키에게 속삭였다.
“그러게. 고양이가 고행점의 주인이라는 건 금시초문인걸.”
럭키가 자세를 고쳐앉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넌 누구냐? 어째서 이 고행점 주인 행세를 하는 거지?”
해피가 낮고 굵은 목소리로 검은 고양이에게 물었다. 해피의 당돌한 질문에도 검은 고양이는 차분함을 잃지 않고 입가에 미소를 띠며 대답했다.
“말 그대로 저는 이 고행점의 주인입니다. 두 분이 양해해주신다면 편하게 존대말을 계속 써도 될까요? 저는 그게 더 익숙해서요.”
“물론이지. 네가 원한다면…”
해피와 럭키가 동시에 대답했다.
“그러니까 이 백화점의 주인이 고양이란 말이야?”
재차 확인하려 드는 해피의 질문에 검은 고양이는 입가에 미소를 띤 채 고개를 끄덕였다.
“두 분이 놀라시는 것도 충분히 이해가 됩니다. 설명을 좀 드리자면 이 고행점의 소유주인 백수로 회장님이 제 집사십니다. 백회장님의 선대부터 이 백화점의 기초가 만들어졌고 그걸 제 집사가 마무리했지요. 집사의 유일한 가족이자 상속자가 바로 저 블랑쉬입니다. 그러니까 제 백화점이라고 말해도 큰 문제는 없겠지요. 저는 지금 고행점의 총괄 매니저 역할을 맡으면서 경영 수업을 받고 있습니다.”
검은 고양이가 친절하게 자기 소개를 했다.
“블랑쉬? 정말 특이한 이름이다.”
해피의 말에 럭키도 공감의 뜻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제 집사가 그렇게 지어주었습니다. 프랑스말로 하얗다는 뜻인데 이거야말로 아이러니죠. 흰 망토를 걸치고 있지만 전 검은 고양인데 말입니다. 제 집사는 저의 눈부신 아름다움에 딱 어울리는 이름이라 그렇게 지었다고 제게 말하더군요. 꿈보다는 해몽이라고나 할까요? 어쨌거나 전 제 이름이 아주 맘에 듭니다. 아 참, 제 집사가 좋아했던 여자의 이름이라는 얘기도 있습니다.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를 타고 왔던 어떤 여자가 있었답니다. 그 여자가 전차를 타고 마지막에 내리는 역이 천국역이었다는데 제 집사는 그 여자한테서 많은 영감을 얻었다고 해요. 제 집사는 이곳에 고양이들의 천국을 만들려고 했거든요. 그런 집사가 저를 위해 만든 유토피아가 바로 이 고행점이지요.”
블랑쉬가 장황한 설명을 마친 뒤 환한 미소를 지었다.
“그런데 왜 고양이들은 출입금지를 시킨 거야? 고양이들의 행복을 위해 만든 곳인데…”
해피가 날카롭게 질문을 던졌다. 블랑쉬는 그런 질문을 당연히 예상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네, 맞습니다. 저도 고양이들의 출입이 금지된 고행점은 넌센스라고 늘 생각했습니다. 달은 하늘 높은 곳에 있어 바라만 보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때가 있었지요. 그런데 지금은 달나라로 우주여행을 가잖아요. 여러분들이 바로 탐험가이자 개척자, 파이오니아입니다. 저는 어느 날 이곳을 방문하는 고양이가 있다면 그때부터 이곳은 진정한 고행점이 될 거라고 생각하며 줄곧 준비하고 기다려 왔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오늘 밤 이 귀한 시간에 귀한 손님인 두 분이 오신 겁니다. 그러니 제가 얼마나 감격스럽겠습니까? 전 지금 너무 행복합니다. 너무 행복해서 몸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해피와 럭키는 꿈을 꾸는 듯 어리둥절하면서도 알 수 없는 행복감에 휩싸였다. 이렇게 어마어마한 백화점 주인이 고양이라니! 게다가 그 주인으로부터 이렇게 환대를 받다니!
‘왜 칸슈는 고행점의 주인이 고양이란 사실을 말해주지 않았을까? 어쩜 칸슈 같은 박사님도 그 사실을 모르고 있었던 게 분명해.’ 해피는 그런 생각을 하며 검은 고양이를 동경의 눈빛으로 올려다보았다.
“우린 초대받은 손님도 아니고 백화점에 무단침입을 한 셈인데 이렇게 반갑게 맞이해줘서 정말 고마워. 우리 소개를 해야 할 것 같은데 내 이름은 해피, 오늘 밤 문득 행복을 찾고 싶어 이곳에 오게 됐어.”
해피가 예의를 갖춰 인사를 했다.
“네, 잘 오셨습니다. 정말 잘 오셨습니다.”
블랑쉬가 우아한 목례로 화답했다.
“내 이름은 럭키, 해피의 권유로 이곳에 함께 왔어. 고행점은 정말 환상의 나라야. 내 묘생에서 이렇게 행복한 밤은 처음인 것 같아. 세상의 모든 고양이들이 이곳에 한번씩 와봤으면 좋겠어.”
럭키가 감격어린 목소리로 소감을 얘기했다.
“네, 바로 그게 제 꿈입니다. 고행점이 존재하는 이유이기도 하지요.‘이 세상 모든 고양이들이 행복한 그날까지’가 우리 백화점의 모토니까요.”
블랑쉬가 힘주어 말했다.
“그런데 여긴 어디야? 아깐 분명 푸른 들판에… 피아노가 있었고…”
해피가 다시 궁금한 질문을 했다.
“아, 제가 피아노를 치다 급하게 커버를 덮어놓았는데!”
“피아노를 친다고?”
해피가 깜짝 놀라서 물었다.
“네, 가끔 칩니다. 잘은 못 치지만.”
블랑쉬가 겸손하게 말했다.
“하지만 그 피아노는 마음을 읽는 피아노라고 하던데… 실제로 그렇기도 했고.”
럭키가 블랑쉬의 매혹적인 눈을 응시하며 말했다.
“네. 맞습니다. 그런 특별한 피아노지요. 사실 모든 피아노가 치는 사람의 마음을 읽는 거 아닐까요? 소리에 그 사람의 마음이 묻어나니까요.”
해피는 노래 생각이 났다. 노래 말고도 피아노를 치는 고양이가 있다니 정말 놀라운 일이었다. 하룻밤 사이 피아노 치는 고양이를 두 마리나 만난다는 건 꿈에서나 가능한 일일 거라고 해피는 생각했다.
“그 방에서 캣닙을 조금, 아니 좀 많이 뜯어 먹었어. 너무 향기가 좋고 맛이 황홀해서 참기 힘들었어. 그리고 잠이 든 것 같은데 여긴 대체 어디야? 고양이를 위한 방은 아닌 거 같은데…”
궁금증을 참지 못한 해피가 다시 묻자 블랑쉬가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
“이곳은 고행점의 꼭대기층 길티플레져홀입니다. 세상의 모든 달콤한 유혹들이 다 모여 있는 곳이지요. 고양이의 행복을 위해 애쓰는 집사들을 위해 특별히 심혈을 기울여 만든 프리미엄 디저트 매장입니다. 백 개의 방을 둘러보려면 체력이 필수요건이죠. 쇼핑도 만만치 않은 노동이거든요. 당충전을 위해 고행점 곳곳에 디저트 카페가 있긴 하지만 이 홀은 규모나 메뉴들이 단연 독보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디저트 트렌드를 알려면 고행점으로 가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죠. 이곳은 전 세계 파티셰들이 가장 일하고 싶어하는 곳 1위로 늘 꼽히는 곳이기도 합니다. 고행점은 고양이들의 행복 뿐만 아니라 사람들의 행복을 위해서도 노력하고 있는 거죠. 사람들이 행복해야 고양이들의 행복에도 더 신경을 쓸 테니까요.”
‘맞았어. 집사가 고행점을 다녀오면 행복해하는 이유 중에 이런 이유도 있었던 거네. 우리 집사는 맛있는 커피와 달콤한 디저트를 좋아하니까.’ 해피는 그제서야 어떤 의문 하나가 풀린 듯 고개를 끄덕였다.
“참고로 이곳은 고행점에서 상품을 구매한 고객 누구나 무료로 이용이 가능합니다. 아, 물론 당일 구매고객에 한해 1회라는 제한은 있지요. 고행점을 찾는 손님에게 맛있는 커피와 달콤한 디저트를 대접하는 건데 그 정도는 찾아주신 손님에 대한 기본적인 예의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런 점이 저희 백화점과 다른 백화점들의 차이점 중 하나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말하자면 저희 백화점의 차별화된 서비스 전략인 셈이죠.”
블랑쉬의 얼굴이 자부심으로 빛났다.
“이렇게 맛있는 것들이 무료라고? 공짜란 말이야?”
해피가 의문을 갖고 묻자 럭키도 의구심을 표현했다.
“하지만 이렇게 큰 백화점을 운영하려면 돈이 많이 필요할 텐데…”
블랑쉬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맞습니다. 어마어마하게 돈이 들죠. 하지만 저희 백화점은 감사하게도 그 이상을 충분히 벌어들이고 있습니다. 저희 집사 가문은 대대로 백화점 재벌 가문입니다. 백화점 사업으로 엄청난 부를 일궈냈죠. 고행점은 사양산업이라 일컫는 백화점의 새로운 활로 모색으로 시작된 사업이지만 사실은 그 이상의 의미를 담고 출발했습니다. 백화점을 운영하는 사람들에게 가장 중요한 게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블랑쉬가 갑자기 질문을 던졌다.
“상품을 많이 파는 게 중요하겠지. 상품을 파는 곳이니까.”
해피가 명쾌하게 대답했다.
“예 맞습니다. 그걸 매출이라고 말하죠. 저희도 이전 백화점에선 그랬습니다. 하지만 고행점은 그런 공식을 깼습니다. 고행점은 매출에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아요. 고객의 행복에만 신경을 쓰죠. 아이러니하게도 그 점이 전 세계 매출 1위의 백화점을 유지하고 있는 비결입니다. 세상 일은 이렇듯 의도치 않은 우연이 이끌어가는 경우가 많지요. 이익은 나누고 선하게 써야 한다는 선대 집사의 유지를 충실하게 반영해서 저희 백화점은 직원도 다 직접 고용을 합니다. 전 직원 모두가 한 배를 탄 식구라는 개념이 있지요. 물론 대우도 업계 최고입니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고객의 행복을 최우선시하는 마음이 저절로 우러나온다고 생각합니다. 직원들의 자부심과 자긍심이 엄청나죠. 직원채용도 기존의 모든 틀을 깼습니다. 유일한 조건이 ‘좋은 집사’입니다. 다양한 연령, 학력, 계층의 직원들이 조화롭게 일하고 있지요. 집사라는 공통점만으로 그걸 이루어내고 있다는 점에 유통가에서도 놀라움을 표하고 있습니다. 백화점의 혁신, 새로운 르네상스를 만들어냈다고요. 아, 죄송합니다. 제가 저희 백화점 자랑을 너무 했나 봅니다. 백화점에 대한 강의를 하려고 했던 건 아닌데…”
자신의 긴 이야기가 신경쓰였는지 블랑쉬가 정중하게 사과를 했다.
“이야기를 듣고 보니 고행점이 더 대단하게 느껴져. 그런데 여기가 꼭대기층이라면… 고행점엔 백 개의 방이 있다고 들었는데… 우린 겨우 몇 개의 방을 구경한 것 같단 말이야. 길을 잃고 좀 헤매기도 했지만…”
해피의 말에 럭키도 공통된 의문을 제기했다.
“그래, 내가 기억하는 건 겨우 몇 개의 방인데…”
블랑쉬는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미소를 지었다.
“당연히 그럴 겁니다. 우리의 기억은 한계가 있고 왜곡되는 경우가 많으니까요. 밤엔 더욱 그렇지요. 두 분은 운이 좋으셨습니다. 저희 백화점을 구경하는 여러 코스 중에 최단 vvip 코스를 선택하신 거니까요. 아니면 좀 지루하셨을 수도 있었을 겁니다. 백만 원짜리 냥모차에 두 분이 관심을 가지실 것 같진 않습니다. 유명 브랜드의 목걸이 같은 고양이들의 패션 아이템들도 두 분한테는 필요없는 것들이 아닐까 싶네요. 그런 것들은 모두 집사들의 욕망의 산물이지 고양이들한텐 그닥 중요한 게 아닐 수도 있을 테니까요.”
블랑쉬의 말에 럭키가 공감의 뜻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처음에 좁은 문을 선택하길 잘한 것 같아. 잠시 의심하긴 했지만 결국 좋은 선택을 한 거야.”
“맞아, 럭키. 네가 그 문을 발견하지 못했더라면 우린 어쩜 아주 다른 여행을 했을지도 몰라.”
해피도 수긍을 했다.
“네. 탁월한 선택을 하신 겁니다. 갈림길에서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달라지는게 묘생이고 또 인생이지요. 오늘 밤의 이벤트를 위한 제 메시지를 받아주셔서 감사합니다. 덕분에 테마가 있는 방들의 팝업스토어를 체험하게 해드릴 수 있었으니까요. 백화점은 뭐니뭐니해도 재미 있어야 하고 놀라움이 있어야 하고 꿈이 있어야 한다는 게 저의 오래된 신념입니다. 상품만 파는 백화점만큼 뻔하고 지루한 게 또 어디 있겠습니까? 어쨌거나 두 분의 지금까지의 여정이 나쁘지 않았던 것 같아 다행입니다.”
블랑쉬의 겸손한 말투에는 전문가다운 자긍심이 묻어났다.
“나쁘지 않은 정도가 아니야. 정말 좋았어. 너무 좋았다구!”
해피가 힘주어 말했다.
“그랬다면 더더욱 다행입니다. 제가 특별히 심혈을 기울여 기획한 오늘 밤의 이벤트가 맘에 드셨다니 제겐 무한한 영광일 따름입니다. 그렇지만 지금까지 두 분이 경험하신 고행점은 그저 평범한 백화점에 불과합니다.”
“평범하다고? 말도 안 돼! 모든 게 얼마나 특별하고 환상적이었는데!”
럭키가 진심을 다해 말했다.
“여기는 그냥 백화점이 아니고 행복백화점입니다. 행복은 지구에 살고 있는 우리 모두의 삶의 영원한 주제라 할 수 있을 겁니다. 이제 그와 관련해 더욱 특별한 곳으로 제가 두 분을 모시려고 합니다.”
블랑쉬가 검은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더욱 특별한 곳? 도대체 지금까지 경험한 것보다 더 특별한 게 뭐가 있다는 거지?’ 해피와 럭키는 침을 꼴딱 삼키며 검은 고양이의 빛나는 얼굴을 바라보았다.
“가장 중요한 건 언제나 감춰져 있지요. vvip만이 접근할 수 있는 곳에. 비밀공간이 없는 백화점만큼 매력없는 곳도 없을 겁니다. 서프라이즈! 네, 백화점에는 서프라이즈가 있어야 해요. 저희 백화점에서는 그곳이 바로 저 위에 있는 옥상정원입니다.”
“옥상정원?”
해피가 고개를 들고 위를 쳐다보며 물었다.
“네, 고행점에서도 가장 중요한 곳이고 일반 손님에게는 여태껏 공개된 적이 없는 비밀의 공간이지요.”
블랑쉬가 비밀이라는 단어에 특별히 힘을 주어 말했다.
“노블레스 오블리주 차원에서 시작된 저희 백화점의 신사업이라 할 수 있지요. 고양이들의 행복에 대해 백 년 동안 연구한 결실이 이제 곧 선을 보일 예정입니다. 이 역사적인 순간에 두 분이 오신 겁니다. 두 분은 오늘 밤 이곳에서 진정한 행복이 뭔지 찾게 될 겁니다. 기대되지 않나요?”
블랑쉬의 말에 해피와 럭키는 흥분된 얼굴로 서로를 마주 보았다. ‘진정한 행복이라고?’ 두 고양이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할 수 없었고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자, 그럼 두 분을 위층으로 모시겠습니다. 저를 따라 오십시오.”
블랑쉬는 열린 그림문 안으로 앞장섰고 해피와 럭키가 뒤따라 문 안으로 들어가자 회전문이 돌아가며 닫혔다.
긴 복도가 있었다. 복도는 어두웠고 양 옆으로 화려한 포장의 상품 박스들이 높이 쌓여 있어 통로가 더 좁아져 있었다. 긴 복도 끝에 나선형 철제 계단이 있었다. 계단 앞에 선 블랑쉬는 잠깐 뒤돌아 해피와 럭키에게 눈빛으로 신호를 한 뒤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해피와 럭키는 서로 얼굴을 한 번 마주본 뒤 심호흡을 하고 천천히 블랑쉬의 뒤를 따랐다.
검은 고양이의 하얗고 긴 망토자락이 계단을 오를 때마다 스쳐서 나는 소리뿐 주위는 고요했다. 한참을 올라가 계단 꼭대기 노랗고 둥근 문 앞에 도착하자 블랑쉬는 멈춰섰다. 뒤따르던 해피와 럭키도 걸음을 멈췄다.
잠시 숨고르기를 하던 블랑쉬가 갑자기 알 수 없는 긴 주문을 노래하듯 외우기 시작했다.
“냐~오~옹 야~오~옹! 야옹 야~옹 야~오~오~옹! 냐옹 냐~옹 냐~오~오~옹!”
높은 음과 낮은 음이, 여린 음과 센 음이 파도처럼 출렁대며 아주 이상하고도 신비로운 음악을 만들어냈다. 블랑쉬는 두 발로 선 채 두 손을 기도하듯 모으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마치 어떤 제의를 주관하는 여사제처럼 신성한 느낌마저 주었다. 해피와 럭키는 그 상황에 압도되어 숨조차 쉬기 힘들었다.
마침내 마법처럼 문이 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