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의 설렘을 기억한다.
어쨌든 새로운 시작이라고 생각했다. 어떤 잡음도 없었다고는 설명할 수 없지만 아주 오랜만에 설렘을 느꼈다는 게 유의미했다. 걸음을 내딛을 때마다 손끝이 짜릿하게 저릴 만큼 이상한 기분에 휩싸이는 건 내 평생을 통틀어 거의 유일한 기억이었다. 그러니 오래 기억에 남았다. 문제는 그 설렘이 유지된 게 첫 학기뿐이었다는 게 문제였지만 한없이 가벼운 주머니에도 시간을 쪼개 수업을 듣고 잘 짜인 하루를 사는 기분은 나쁘지 않았다. 그제야 시곗바늘이 제 박자로 가는 거 같았다. 다만, 다시 현실이 숨 막히게 다가왔다는 게 문제였다. 어쩔 수 없이 옆자리에 앉은 누군가와 내가 비교가 됐다. 한없이 편해 보이는 보통의 대학생과 늘 정신없이 뛰어다녀야 하는 나와의 거리가 이상한 격차로 느껴지는 건 순간이 분명 있었다. 순간순간 시선이 땅에 처박혔다. 그래도 다른 방법은 없었다. 이 긴 터널 같은 시간을 통과하지 않는다면 아무것도 될 수 없다고 믿었다. 누구나 그럴 때가 있지 않나. 외골수처럼 지금 내가 서 있는 길에서 떨어져 나간다면 영원한 낙오자가 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있지 않냐는 거다.
우리나라는 나이에 꽤 예민한 편이라고 생각한다. 돌이켜보면 그래봤자. 스물넷다섯 인 날 두고 나이가 많단 얘기를 서슴없이 하는 걸 보면 어딘가 남다른 면이 있는 게 분명하다. 서른이 훌쩍 넘은 지금 돌이켜보면 정말 모든 것이 새파란 나이인데 말이다. 그 무렵에 나는 너는 나이가 많아 라는 말을 정말 많이 들었다. 수업을 들을 때도 아르바이트를 할 때도 취업을 할 때도 면접을 볼 때도. 물론 거절하기 좋은 구실이 나이였다는 것도 잘 안다. 하지만 그런 것치고는 너무 자주 들었다. 요즘 말로 소위 가스라이팅이라는 건데, 나 역시 그 말들에 치여 스스로 나이가 많다는 감옥에 들어가 밖으로 한 발자국도 떼지 못했다는 게 문제였다. 말의 힘이라는 게 그렇게 무섭다. 지금도 기억한다. 비록 미술을 전공했지만 졸업할 무렵 가고 싶었던 출판사가 있었다. 돌이켜보면 아무것도 아닌데 그때 그게 왜 그렇게 커 보였는지. 작은 방에 혼자 앉아 채용 공고를 띄워놓고 얼마나 오래 고민했는지 모른다. 그렇게 며칠을 고민만 하다 결국 지원을 포기했다.
하는 수 없이 전공과 관련된 회사에 서류를 넣을 때도 일부로 허들이 조금 낮아 보이는 작은 회사들을 찾고 또 찾았다. 그 조차도 한참을 덜덜 떨면서 마우스 커서를 딸각거렸다. 어쩌다 운 좋게 면접제의를 받아 전화면접이라도 볼라치면 버릇처럼 온몸이 딱딱하게 굳고 입술이 바싹 말랐다. 괜히 부족해 보일까 봐 보이지도 않는 허리를 뻣뻣하게 세우며 스스로를 부풀리는 말을 내뱉기도 했다. 차라리 뭐든 잘하는 것처럼 보이란 말을 등 뒤에 세워둔 것처럼 이상한 척을 했다. 그런다고 그럴싸한 꾸밈이 쉬울까. 나는 쓸데없이 솔직하고 그때 내 모습은 오늘 면접관이 된 사람도 눈치챌 만큼 허술해 보였을 거다. 이런 내 성격을 아는 친구는 한사코 그냥 지원해라든가 겁먹지 마 생각 그만하고 그냥 해라고 조언을 했지만 그게 어디 쉬운가. 한 번의 선택이 인생을 좌우한다고 믿는 누군가에겐 그냥이라는 말만큼 무모한 사치가 없었다. 그땐 그렇게 생각했다.
외나무다리 위에 홀로 서서 등에는 커다란 등산가방을 메고 두 팔에는 다른 짐들까지 든 채 간신히 한 발자국씩 떼는 사람 그게 바로 나라고. 그렇게 착각했었다. 그냥 용기가 없었던 건데, 그땐 왜 그렇게 와닿지 않았는지 모르겠다. 그 무렵의 나는 온몸으로 불행을 품은 사람처럼 살았다.
나는 선택의 나비효과라는 말을 자주 하곤 한다. 잘못된 생각이 싹을 틔어 한쪽으로 기운 채 뻗어간다. 한 발자국만 떨어져서 보면 보이는 빈틈이 내 눈만 보이질 않고 몸도 생각도 자꾸만 기울어 간다. 그러다 기운 선택이 옳은 것처럼 보이는 시점에 다시 기운 선택을 한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또 기운 선택을 하려 할 땐 이미 잘못된 선택을 했다는 걸 알지만 되돌아가긴 늦었다고 생각하고 만다. 거기엔 비틀린 자존심도 있고 안일한 게으름도 함께 있다. 그런 날 보고 누군가 다시 시작할 수 있어!라고 말하지만 내 시선은 자꾸 합리적이란 핑계를 깔고 보다 편한 선택을 반복한다. 돌아가기엔 너무 늦었어라는 말을 면죄부처럼 사용하면서 말이다. 사실 돌아갈 용기가 없는 거면서. 새로운 걸 찾을 만큼 부지런하지 않은 거면서. 그냥 익숙한 방식이 편한 거면서 자꾸만 핑계를 댄다. 그러다 한껏 기운 선택이 바닥에 닿으면 그제야 아차! 하고 멈춰버린다.
꼭 나처럼.
한동안 많은 후회를 했다. 오래된 감정의 둑이 한밤중에 터진 것처럼 방 안에서 아이처럼 운 날도 있었다. 오랫동안 하던 마라톤이 아무 이유 없이 멈춰졌을 때 순식간에 몰려든 적막을 마주한 사람처럼 나는 오래 울었다. 어린아이처럼 울면서 우습게도 뒤늦게 찾아온 홍수 같은 후회가 몹시 반갑기도 했다. 많은 사람들이 후회는 짧게, 지나간 것은 빨리 잊으란 말을 하곤 한다. 하지만 나는 그 의견에 반대다. 오히려 후회는 깊게 하되 반드시 기억하고 마지막 한 줌까지도 모두 반성하라고 말한다. 그래야 두 번 다시 같은 실수를 하지 않을 수 있으니까. 언제부턴가 우리는 실수에 방만한 사람들이 됐다. 그럴 수도 있지가 너무 만연해진 거 같다는 뜻이다. 갑자기 스스로를 되돌아보는 일에 야박해졌고 성찰을 통해 자신을 다듬는 일을 잘하지 않게 됐다. 이제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는 일 조차 하지 않는다. 아니, 하지 말라고 말한다. 물론 자책과 완벽주의는 스스로에게 좋지 않지만 그렇다고 헐거운 정신이 당연한 건 아니다. 정신을 가다듬어야 한다.
머뭇거리는 찰나에 휩쓸리지 않도록.
나는 스물여덟이 한참 지난 요즘 후회를 했다. 아주 힘든 후회의 과정을 통과했고 덕분에 지금은 제법 가뿐하다. 이걸 후회의 순기능이라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적어도 나는 후회했음에 돌이킬 수 있었고 한껏 기운 것들을 이제라도 되돌리고 있으니까. 물론 시간을 되돌릴 수는 없다. 과거를 바꿀 수도 없다. 하지만 나는 바꿀 수 있지 않은가.
나는 계속 변한다.
<계속>